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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6일 주일낮설교(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7. 26, 2015

本文:요한복음14:1-12

說敎:崔 仁 根 牧 師

이제는 거의 해결되었지만 지난 두어 달 동안 우리 조국 한국에서는 매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온통 나라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인기가 좋고 동네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의사들은 초주검으로 고통에 시달렸고 그 집에 의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였습니다. 행여나 환자를 치료하다가 감염이 되어 자기들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가족들까지도 기침만 하여도 서로 피하며 적대시하는 기현상을 빚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매르스가 다 낳았다고 확진 판단을 받아 퇴원을 하였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과 그 집을 왕따시키고 같이 하려 하지 않는 등 그 피해가 실로 심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세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로 양분화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동남부지방에서는 버스 안에서 게이가 올라타자 한 남성이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며 욕을 하였고 한 여성은 그들에게 침을 뱉었다가 경찰에 체포되거나 추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백인은 흑인을 적대시하고 정상적인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며 이 세상이 그 어디를 가든지 양분화 되어 가며 서로 적대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마지막 때의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서 사라지는 현상들 중에 하나는 바로 이처럼 무정하여 사랑이 말라가고 급기야는 하나님도 부인하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림과 같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오늘 본문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빌립을 향하신 우리 주님의 안타까움을 볼 수 있습니다. 3년씩이나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 주고 보여 주며 자신이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그렇게도 강조하셨는데 뜻밖에도 빌립이 주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더 자상하게 빌립에게 진정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요14:8-12)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의 위력이었습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가르치신 다음 그래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 모든 이적과 기적들이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주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니 실로 믿음의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소원은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힘들여 키우시는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한 두 가지의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 소원은 무엇입니까?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무슨 소원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행복을 소원하실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혼일 경우는 자식 잘 낳고 키우며 저희들끼리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일 거고, 아직 미혼이면 좋은 베필을 만나는 것일거고, 좋은 사업, 좋은 직장을 가지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같은 복을 누리며 행복해 질 수 있는가?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은 대학을 보내 주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을 향하신 우리 주님의 소원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주님도 오늘날 우리들의 부모님들처럼 그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계실까요?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를 향하신 우리 주님의 소원은 이렇게도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그것은 바로 근심이 없는 평안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우리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리저리로 복음을 전하시며 하늘의 사명을 이 땅에 심고 다니시다가 주님의 때가 점차 가까워 옴을 보시고 제자 세 사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변형되신 주님의 모습과 천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잠시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본 베드로는 너무나도 황홀한 나머지 "주님, 제가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우리 여기에서 함께 살고 세상으로 내려가지 맙시다!"고 간청하였습니다. 그곳이 그렇게도 황홀하고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달래시고 그들을 데리고 다시 이 세상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여전히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아들이 귀신이 들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자빠지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그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의 누구도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비는 기진맥진하여 주님께로 나아와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할 수 있거든 이 내 아들을 좀 고쳐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아비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 하나를 전해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아비가 즉각 선언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그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또 다시 믿음 없는 빌립과 맞닥뜨리십니다. 느닷없이 주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빌립은 믿음이 없는 제자였습니다. 항상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그런 빌립을 이미 테스트까지 해 보셨던 것입니다.

(요6:5-7)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빌립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답에 실격하였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기 머리로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믿었더라면 "주님께서 하십니다!"고 선언하였어야 옳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믿음 없는 부정적인 대답을 내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이와 같은 빌립에게 확실한 믿음에 관해 또 다시 설명해 주셨던 것입니다.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믿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주님께서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빌립은 주님을 3년씩이나 따라다니며 온갖 이적과 기사를 다 보고도 아직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도 바울은 그 주님을 어떻게 믿고 있었는지 성경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소망입니다. 우리들이 이처럼 예수님에 관해 확실한 진리를 알고 따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있는 자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특별한 칭찬을 받았던 백부장의 믿음도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하인이 병이 들어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가 백부장이 되어 하인 하나의 고통까지도 챙겨주는 그의 사랑이 가상하여 주님께서 친히 "가자, 내가 가서 고쳐주마"라고 하시자 극구 사양하며, "주님께서 여기에서 말씀만 해 주셔도 내 집에 있는 하인이 낫겠습니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고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친히 극찬하시며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큰 믿음은 바로 주님의 능력을 하늘의 하나님과 동일하게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을 향하신 우리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가고 이제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을 것 같이 변하여 가도, 우리는 우리 주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강력하고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 이 믿음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어릴 때 설날이 되면 마을마다 동네마다 "뻥"튀기 장사가 대목을 보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집에서 한 두 번은 뻥튀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무겁던 쌀을 뻥튀기하고 나면 콧김에도 날라 가버릴 만큼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강정을 만들기도 하고 각종 자반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가벼운 뻥튀기로 강정을 만들려면 반드시 그들을 하나로 강력하게 뭉쳐주는 매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청이나 물엿입니다. 물엿이 그들을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로 타락한 우리 인생들과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매개체는 오직 하나 "믿음"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결단코 하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엎드러지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기까지 하시며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으나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그 수가 60만 명이 넘었지만 광야에서 다 죽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고 그 능력이 아무리 넘쳐나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이와 같은 불신은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니 절대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자고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가 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었던 불신의 모습을 그 실례로 들었던 것입니다.

(고전10:10-11)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있으면 기적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고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져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아브라함이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이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므로 갖다 바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훗날 하나님의 사람은 아브라함이 그렇게 헌신하고 순종할 수 있었던 배경을 그의 믿음에 두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아무나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한 진리가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를 관찰하지 않고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식견이었던 것입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믿음을 사도 바울도 강력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롬4:18-22)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하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보상하심으로 훗날에 믿음의 후손들에게 귀한 귀감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히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으로 보상하시지만 믿음에서 떠난 자들에게는 무섭도록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아예 성경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죄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망으로 단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마는 것입니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믿음은 단순히 우리들을 천국가게 하시는 구원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 성도들의 삶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들의 몸은 평소에 어떤 음식을 섭취하느냐에 따라 건강이 결정지어 집니다. 몸에 해로운 술이나 담배 및 지나친 육류나 탄수화물은 결국 우리들의 몸을 병들게 만들거나 비만이나 성인병에 걸리게 합니다. 음식과 건강은 그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영혼 또한 예외 없이 무엇을 보고 듣고 먹느냐에 따라서 건강해져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가룟 유다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얼마나 돈을 좋아했으면 제자회의 돈 궤를 맡고 있는 회계로서 거기 넣는 돈 조차도 훔쳐갔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결국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까지도 팔아서 돈을 챙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돈으로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니 스스로 목을 매고 죽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생사화복이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어떻게 하든지 그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요?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만들어집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똑부러지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이 길을 확신하고 순종하거나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소는 푸른 풀을 먹는데 어떻게 붉은 양질의 스테이크를 만들어 냅니까? 누에는 푸른 뽕잎을 먹는데 어떻게 그렇게도 하얗고 부드러운 실크를 만들어 냅니까? 그 어떤 스마트한 사람도 이에 대한 대답을 내 놓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오직 그렇게 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만들어지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따르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말씀과 하나님의 축복을 연관시켜 두셨던 것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 모두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까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지 모른 채 동셩결혼도 좋다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기 의나 자기 주관이 아닌 하나님의 몫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때만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최소한 하루에 3장 이상 말씀을 읽고 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도 열심으로 교회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길 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믿음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이 두렵고 위험합니다. 마지막 때에 모든 교인들에게 믿음이 없어질 것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친히 예언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결코 피상적이거나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주님과 같이 역사 할 것이요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탄식하며 주님 품으로 찾아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믿음 없는 그것 때문에 천국도 상실하게 되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을 얻기 위해 이삭이라도 데리고 모리아 제단으로 올라가는 비장한 결단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셔서 그것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 믿음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공은 우리들에게로 넘어 왔습니다. 그 말씀으로 돌아가 믿음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헛된 자기중심의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으로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복된 주일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올라와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말씀으로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신자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7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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