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9일 주일낮설교(치료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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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9 August 20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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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시는 하나님
8. 9, 2015
本文:출애굽기15:22-26
說敎:崔 仁 根 牧 師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 중에 가장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하는 피조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자연은 자연 그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원리를 따라 태양은 뜨겁게 생명의 광선을 단 한 번도 쉼이 없이 비추이고 지구 또한 하루에 한 번씩 스스로 돌며 1년에 한 번씩 태양을 돌아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산과 들에 사는 짐승들도 하나님의 섭리와 만드신 뜻을 따라 종족을 번식하며 주어진 공간을 이탈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존재의 목적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꽃들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히며 바람에 씨앗을 날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누리라고 주신 우리 인생들은 오늘날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토록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전도의 열매 하나를 맺히지 못한 채 오히려 스스로 열심히 믿겠다고 나오는 신자들까지도 시험에 들게 하고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나 않는지? 신문에 난 보도를 보니 뉴욕에 있는 한 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부임하신지 만 2년밖에 안 되었는데 지난 6월 어느 날 장로님들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우리 교회를 나가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작년에 자신이 새롭게 새웠던 7명의 장로들이 그렇게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의회를 열었고 공동의회에서도 나가도록 결정을 하여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자식들이 부모님을 거역하고 내어 쫓는 시대인데 성도들이 목사 내어 쫓는 것이 뭐그리 대수겠습니까? 마는 이시대의 우리들의 모습을 벌거벗은 듯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가 그런데 뭐, 하면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을 만드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보시고 모든 것 다 아시며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시며 탄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보여주신 우리 하나님의 인생들에 대한 진단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변질된 가치관과 부패상은 탄식의 소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부적인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 내부적인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은 실로 중대한 일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창궐하여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 버렸던 에볼라와,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를 마비시켜 버렸던 매르스, 미국의 슈퍼바이러스 및 에이즈 같은 질병들이 바로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동성결혼 합법화로 이 땅에 에이즈 같은 무서운 병이 창궐하게 되고 그것을 치료하느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게 되면 결국 우리들은 세금에 눌리게 되고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에 눌리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한 일일까요? 이스라엘이 범죄 할 때 하나님께서 강력한 블레셋과 아말렉을 일으키셨고 급기야는 바벨론을 세워 이스라엘을 70년 동안 포로로 잡히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부패한 마음으로 인해 그렇게도 사랑하는 우리들의 자손들이 블레셋이나 바벨론에 짓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배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과연 어느 정도로 부패하였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길은 과연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면서 신선한 은혜와 생명 양식을 공급받으시기 바랍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4장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홍해 사건으로 우리들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거세게 분노하고 따라오는 바로와 그 군사들을 물에다 수장하고 유유히 마른 땅과 같이 갈라진 바다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하였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엄청난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은 두 눈으로 보고 또 두 귀로 듣고 온 몸으로 느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5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이와 같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누이 미리암은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순간일 뿐, 드디어 광야로 들어와 마실 물이 없게 되자 그들의 입술은 순간에 변하고 말았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던 그들의 감사와 찬미가 순간에 원망으로 뒤바뀌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바로를 향복시키시던 하나님, 홍해를 갈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시던 하나님, 바로의 군사들을 홍해에 수장하시던 하나님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춤추며 노래하며 감사하던 그들의 입술은 순식간에 원망으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출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우리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직시하고 이와 같은 마음에서 떠나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 새로운 내일을 꿈꿔봐야 하겠습니다.
부패한 우리들의 마음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육신의 생각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결국은 죽을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경고로 받고 마음의 부패함과 육신의 욕심을 제거한 채 그렇게 주님의 뜻 안에서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고 열을 홀리며 흥분하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거기에서 거기이고 도찐개찐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온갖 거짓말을 다 하며 사기치고 살아가는 인간쓰레기 같은 사람들이나 가장 고상한 채 살아가는 성직자도 전혀 예외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군 다윗이 그렇게도 믿고 세웠던 요압이라는 장군은 한 세대에 나올까 말까 하는 그런 용사였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한 시대의 위대한 장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도 작은 육신의 분노에 사로잡혀 왕이 총애하는 용사를 왕도 모르게, 그것도 너무나도 사내답지 못한 비열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삼하3: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삼하20:9-10)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것이 성군 다윗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고 고통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죽을 때 이 일을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여 요압의 배신을 처단토록 하였습니다.
(왕상2:5-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요압을 비참하게 처단하고 맙니다. 인생 말년을 그렇게 비참하게 심판을 받아 용사답지 못하게 죽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압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지혜롭게 처신하고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들의 내면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악한 육신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엡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생활은 이와 같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직시하고 인식하고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앞서 이 종은 뉴욕의 한 교회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어떻게 부임한지 2년도 안 되었는데 목사를 쫓아내었을까요? 그것이 그 교회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세상 법정에까지 갔는데 마지막 판결은 그 목사가 그 교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목사님은 무엇을 잘못하였을까요? 2년 전 그 교회에 부임하기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였을 때 그 이력서를 가짜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가짜로 이력서를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 부임하게 했었는데 그것이 가짜이면 부임 또한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정의 판결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목사가 교회에 부임하기 위해 만든 이력서도 믿을 수 없는 세태가 이 시대라면 우리가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들의 내면이 근본적으로 타락하여 부패하였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는 믿음으로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병든 맘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로마서를 읽어 보면 숨일 막힐 정도로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6장에 가면 그 죄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왜 로마서는 그렇게도 우리 인생들이 다 죄를 지었고 그 죄의 형벌은 죽음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과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자기 죄에 대해 절망하고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와 용서를 구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믿고 주님의 품안으로 돌아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변화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그는 신자가 아닌 교인이고 맙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처럼 죄를 자목하고 하나님 품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찾는 진짜 신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진정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회개라는 결단을 내릴 만큼 용기 있는 사람들이 귀하다는 뜻입니다.
제 친구는 아프리카 케냐로 선교사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오래토록 식민생활을 했던 백성들이라 절대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고백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식민생활 속에 짓눌려 있으면서 "잘못했다"고 시인하면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잘못했다"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어떻게 회개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선교의 열매를 기대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는 절대로 스스로 잘못했다는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까지 와서 잘 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자존심 상하게 잘못했다고 시인하며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대에 진정한 성도들을 만나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만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통회와 자복이 없는 신앙은 결코 바람직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완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고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아무런 증상도 말하지 않고 어디가 아프다고 말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진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대로 된 신앙은 제대로 된 고백과 회개에서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처음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복음을 전하실 때 가장 강력하게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렇게 자신의 심령이 병들었음을 인식하고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외에는 진정한 치료와 회복을 받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렇게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렇게 진단을 한 의사 앞에서 행하는 환자들의 반응이 거의 똑 같다는 보고서를 읽어보았습니다. 첫째는 극구 부인하며 오진일거라고 펄펄뛴다는 것입니다. 밥도 잘 먹고 열심히 일도 잘 하는데 그리고 아무데도 아프지 않는데 내가 왜 말기 암 환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즉시 다른 병원으로 가서 다시 재조사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똑 같은 결과가 나오면 엄청 절망하며 좌절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를 좀 고쳐주십시오. 하고 의사를 찾아가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않다가 결국 죽음이라는 문턱에 이르게 되면 회개하고 화해하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매달리며 호소하는 삶의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주님의 보혈로 거저 받지만 그 구원을 이루어 가며 그 구원의 객관적인 열매를 맺히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이 혼란한 마지막 때에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의사가 되시는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질병의 치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우리들을 진짜로 치료하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출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는 말씀 속에서 질병과 하나님과의 상관관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결코 어기시는 법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셨다면 그 말씀대로 우리들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간단하게 살려내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 종이 20대 때 서울에서 전도사로 모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 교회에의 고등부 부장이신 최범석집사님은 안수집사였습니다. 그런데 유달리 많이 말라 가뜩이나 큰 키가 더욱 커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말기 위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병원에서는 그 분을 권고 퇴원을 시켰습니다. 병원에서 이제 더 해 줄 수 있는 방도가 없으니 집에 가서 편안히 남은 시간을 잘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이제 남은 시간도 얼마 없고 나 역시 위암이라 먹지도 못하니 차라리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주님께로 갈 준비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누구라 그 결단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혼자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던 어느 날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기도하는데 주먹만 한 핏덩어리가 올라오면서 배가 뒤틀리는 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이제 이 몸은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생명이니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다"면서 매주 가장 먼저 나와 교회를 보살피고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38년 동안이나 병으로 앓던 소망 없는 사람도 고치신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하려면 주님을 똑바로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귀하신 주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성경 말씀 속에서 만날 수 있고 기도 가운데 만날 수 있으며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길 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신자답게 바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도 어지럽고 사고도 많고 질병도 많은 이 시대를 우리 힘만으로는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삶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합리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사건 이후 하나님의 권능을 망각하고 단숨에 원망하며 돌아서는 그들을 보시고 일찌감치 그들에게 분명한 진리를 천명해 주십니다. "내 말을 듣고 순종하면 너희들을 치료하는 하나님이 되어 너희들을 고치고 동행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죽는 날까지 문제만 생기면 원망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끝내 하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나의 말을 거역하고 나를 원망하기를 10번이나 더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 백성을 광야에서 다 죽이겠다."고 말입니다. 부패하고 병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유익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광야에서 60만이라는 천문학적인 백성들이 진노의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좀 지혜로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을 똑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지혜는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육신적인 가치관을 이제는 좀 버려야 하겠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가 유익을 보겠지, 하는 정도의 가치관이라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우리들도 모르게 병들었을 때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칼의 양면과 같으신 분이십니다. 순종하고 변화를 입을 때는 한없는 축복으로 다가오시지만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본주의로 돌아설 때는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예배자로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기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처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자손만대에 누리시는 그런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8월 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