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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3일 주일낮설교(정직한 희망을 가지라!)

정직한 희망을 가지라!

8. 23, 2015

本文:로마서5:1-8

說敎:崔 仁 根 牧 師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GDP(국민총생산)가 2만 8천 불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및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술을 앞세워 수출 강국으로 우뚝 서 세계 6위라는 엄청난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들이 절반도 취직을 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백성들이 하루에도 46명씩이나 자실을 하고 있어 OECD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학교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자살하고, 학교에서 왕따 당한다고 자살하며 취직이 안 된다고 자살하고 평생 낳고 기르고 공부시켜 놓았더니 부모를 가슴아프게 한다고 자살하는 등 수수 만만의 이유로 도시 농어촌을 막론하고 자살자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자살 이유가 많지만 이런 이유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로 압축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의 부재"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문제를 탐구하는 철학자 신학자 및 과학자들까지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정신의학자 A. H. Maslow는 "희망은 인간의 가치관을 좌우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자 Paul Tillich는 "희망은 인간에게 살아야 할 의미를 제공한다"고 하였습니다. 현대 철학자 Huston Smith는 "희망은 만족한 생활의 기본적 구조"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희망이 없을 때 인간은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희망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Magic Hope라고 하는 '마술적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Honest Hope라고 하는 '정직한 희망'이 그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내일이 되면 뭔가가 나아지겠지..."라고 하는 막연한 희망이 바로 마술적 희망입니다. 이것은 안일한 낙관주의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주의가 긍정적인 사고(Positive Thinking)라는 옷을 입고 한 때 우리 미국을 태풍처럼 휩쓸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나 죠엘 오스틴 목사님과 같은 인물들이 그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경낙관론(Blind Optimism)에 불과할 뿐 우리들의 삶에 진정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책과 설교로 붐을 일으켰지만 2008년도 경제위기가 닥치고 나니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삶은 현실이지 막연한 기대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 희망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거나 막연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진정한 희망은 상당한 대가가 지불되는 것임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 말입니다. 진정한 희망은 하루 밤 자고 나면 어떻게 하다가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에 걸맞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우연이 아닌 정직한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정직한 희망을 가지고 오늘은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일에는 큰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멋진 희망의 삶을 추구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직한 희망을 가지라!

이민 온 우리 한인들의 소박한 꿈은 비록 그로서리나 세탁소와 같은 힘든 사업을 하면서도 조금씩 큰돈을 모아 나중에 호텔이나 모텔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아 꿈에도 소원하던 호텔과 모텔로 사업체를 업그레이드시켜 갔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Financial Crisis(경제위기)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 종이 오션쇼어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아주 큰 호텔에 들었는데 그 주인이 마침 제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장로님이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장로님 내외분과 이런저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의 어려움이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워낙에 단가가 큰 사업체라 모든 재정을 다 동원하여 다운을 하고 그것을 매입하였는데 경제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손님은 끊기고 몰게이지는 매달 나가야 하고 돈은 바닥이 난 것입니다. 한국으로 미국으로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돈을 끌어대었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틸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생 모아 놓은 전재산이 순간에 다 날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깊은 밤 그 장로님의 부인이 탄식과 함께 하는 말이 지금도 가슴에 쟁쟁하게 울려 와 아픔이 되고 있습니다. "목사님, 저 바다에 뛰어 들어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일이면 어떻게 잘 되겠지..." 라는 기대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돈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희망은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 것일까요?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진정한 희망이 오는 루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죽고 싶을 만큼 엄청난 고통과 환난을 당한다고 해도 진정한 희망을 소요한 사람은 기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와 같은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되고 그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받게 되며 그 연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거룩한 희망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한 진정한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 말씀의 기본조차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술적 희망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어쩌다 보면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요행도 역시 배격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잔인하실 만큼 과정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절대로 그냥 적당히 주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이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는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연단을 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인류 최초로 한 사람을 불러내시고 언약을 체결하셨던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르에서 아버지와 가족들과 친척들과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을 뜻밖에도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런데 그 여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종이 지금 목회하고 있는 우리 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치며 인도해 가면서 아브라함의 케이스를 소개하고 그가 받았던 축복 또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고생하고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을 사모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또 물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욥과 같이 고생하고 욥과 같이 배나 되는 축복을 받아 누리시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단 한 사람도 그렇게 한 번 해 보겠다는 사림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참혹하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아브라함은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쳐야 하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아만 했었고, 욥은 10남매를 순간에 다 잃고 자신의 건강마저도 상실한 채 비참한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희망이라는 마지막 축복에 도달하기 이전에 우리들이 받아야 할 고난을 세 가지로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난과 인내와 연단이었습니다.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정직한 희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 하나 없이 달랑 부인과 조카 하나를 데리고 정든 고향 땅을 나왔습니다. 타국을 떠돌며 아내로 인하여 받아야 했던 고통과 조카 롯의 배신으로 인해 받아야 했던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카를 보호하고 살려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치루어야만 했던 전쟁, 천신만고 끝에 얻었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드려야만 했던 아픔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고통을 통해 아브라함은 인내를 얻었고 연단되어 마침내 가나안 땅을 얻는 거룩한 희망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하나님, 그리고 그 앞에서 합당하게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거치고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을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모든 과정을 거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친히 체결하였던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어떤 고통일지라도 능히 참아내며 연단 받는 정직한 희망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이 종은 최근 조국 광복 70주년을 맞으며 한 권의 책을 통해 많은 도전과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일제강정기 한국 현대문학 시리즈 6번째로 나온 "우현궁의 봄"이라는 역사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작가요 비평가요 문예 운동가였던 고 김동인의 작품입니다. 대원군 홍선이 집권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그려낸 작품인데 비록 왕가의 자손이었으나 노론 소론, 동인 서인으로 나뉘이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파당에 밀려 민초에 묻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시를 당하고 짐승 취급을 당하면서도 왕손의 꿈을 버리지 않고 그 모든 멸시와 천대를 온 몸으로 이겨내던 홍선의 삶을 통하여서 진정한 꿈이 무엇이며 희망이 무엇인가를 전율하며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운 여름날의 귀한 보약이 되었습니다. 참아내고 견뎌내며 내공을 만들고 연단을 받는 것은 정직한 희망의 밑거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실이 그 어떠하던 지간에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는 진정한 희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바로 배우고 역사 속에 대원군이 되기 이전 홍선이 50여 년 동안 겪었던 고통을 거울삼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며 견뎌내는 거룩한 덕목으로 내공을 쌓아가는 진정 하나님을 가슴에 모신 신자다운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고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결코 값진 것을 우연히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렇게 귀한 성경의 역사를 통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을 믿고 그 어떤 환란과 고통도 길이 참으며 이겨내 마침내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정직한 희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보다 더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정직한 희망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에 관한 성경구절부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막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 이야기의 숨은 배경은 이렇습니다. 네 명의 친구들이 더 이상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중풍병자를 들것에 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옵니다. 하지만 주님 곁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들것을 매고 그 앞으로 나아가기는 전혀 불가능하였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이 네 사람들은 환자를 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에서 구멍을 내고 들것을 주님 앞으로 달아내려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앞서 인용해 드린 마가복음 2장 5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도 죽음을 내다보고 있는 중풍병자의 고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를 어떻게든지 고쳐보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친구들의 인내와 연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숱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강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붕이 뜯겨져 나갑니다. 부스러기와 먼지와 물건들이 주님 앞에와 그 주변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모든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친구들은 오직 고통당하는 한 사람을 고치겠다는 희망 하나로 그 모든 것을 다 참아내며 끝까지 굽히지 아니하고 환자를 주님 앞에 당도하게 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원하는 한 가지 소원을 품고 이처럼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모든 비난을 감내하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 주님은 한 마디로 "믿음"이라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도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어여삐 여기시고 그들의 소원대로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나에게 과연 이와 같은 친구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난관이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는 이러한 믿음이 이글이글 붙타는 이런 친구들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들것을 준비하고 무거운 나를 들어 주님께로 나아가 줄 그런 친구가 도대체 우리는 몇이나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나 하나를 위해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숱한 비난과 욕을 들으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고 끝까지 헌신해 줄 그런 멋진 친구가 과연 몇이나 나에게는 있는 것일까요? 정직한 희망이 오늘 우리들에게 넘쳐 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포기할 줄 모르는 연합과 사랑과 헌신적인 친구를 통하여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의 우리들의 삶에 이와 같은 멋들어진 벗들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언제나 돈이 많을 줄로 믿고, 자신은 언제나 성공한 자라에 머물러 있을 줄 믿고, 자신은 언제나 아프지도 아니하고 건강할 줄만 믿고 오만하고 교만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희망은 어쩌다가 무지개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서로 연합하고 사랑하고 믿음에 굳건하게 서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난관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표기지하 아니하고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열정이 있을 때 비로소 정직한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개콘에서 뜨겁게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젊은 청년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성훈입니다. 개콘이 방송 되는 한 시간 동안 이 청년의 모습은 여러 모양으로 각색되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만큼 인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니글니글"이라는 코너는 1부 2부로 나누어서 두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그 주인공이 지난 화요일 아침마당에 출연을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그가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원래 그는 대학을 진학할 때 연극영화과에 지원하였다가 낙방하여 물리치료과를 전공하고 물리치료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한 3년 하다가 도저히 자기의 적성과 맞지 않고 또 자기가 평소에 늘 하고 싶었던 코매디를 하고 싶어 모든 것을 접고 나이 30에 코매디언으로 도전을 하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정직한 희망이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도전할 때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네 사람의 친구들과 같이 선한 목적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질 줄을 믿고 지붕에라도 올라가는 열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비록 남의 지붕일망정 그것을 뜯어내기까지 하는 도전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깊은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인정 받고 고침 받는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니다.

정직한 희망의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는 정직한 희망의 뿌리가 구약이나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감으로 얻어질 수 있었고 신약에서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 열정으로 말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에 얻어질 수 있는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끝까지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주님으로부터 "믿음"의 인정을 받아 "네 죄 사람을 받았느리라"는 최후의 축복을 얻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영원히 들어가 누릴 천국의 놀라운 희망도 결국은 말씀을 통한 진정한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므로 말씀을 통한 정직한 희망을 소유함이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믿음으로 천국을 희망하는 영적인 삶을 살게 될 때 육신적으로 그렇게도 소종하게 여기는 이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행복이 더 이상 우리들의 보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

(막4:30-32)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도 그것이 크게 자라나 새들을 행복하게 품고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자랑스러운 나무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고 자랑할 것이 없으나, 그래서 땅에 묻히는 고통과 아픔을 겪고 햇빛에 시달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나지만 결국에 는 그 어떤 나무보다 못지않는 큰 나무로 성장하여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희망을 두고 사는 성도들이라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그 어떤 고통과 수모를 당한다 할지라도 참고 견디며 연단으로 성장하게 되면 정직한 희망의 나라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희망이 있다면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이 그 어떤 시련과 연단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참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 어떤 악한 세력이 등장하여 나라와 우리들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큰 나무가 되려는 겨자씨의 꿈을 안고 그 모든 것을 가슴으로 품으며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대한민국 청년 10명 중 7명은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전국의 만 19~34살 1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청년 의식 조사'를 보면,'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된다'는 응답이 13.9%,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86.1%로 나타났습니다. 또 '사회적 성취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위보다 나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27.3%에 그친 반면에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72.7%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회복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기초로 한 자세가 아니라 극단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좌절과 실망과 부정적인 현실감각으로 인해 나타나는 한국사회의 슬픈 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청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진 것도 또한 좋은 배경도 없는 단지 시골에서 꿈만 안고 막연하게 성장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시골 마을에 방 3개를 터서 만들어진 예배당에 전도사님 한 분이 부임하셨습니다. 이상한 힘에 이끌린 그는 그 작은 개척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완고하신 할아버지와 온 집안 식구들의 반대는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세례를 받는 날에는 성경책이 불태워지고 종아리는 회초리로 피멍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굽힐 줄 모르는 믿음으로 주일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스스로도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주일학교에서 말씀을 전하던 중 의학박사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복음을 전하던 슈바이처 박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 중에 누가 장차 의사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불쌍한 이웃들에게 전하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자신에게 도전이 되어"내가 의사가 되어 복음을 전할 것이다"고 선언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가진 모든 역경을 다 이겨내고 지금 포항선린병원 원장이 되어 주님의 사랑으로 육신의 병과 영혼의 병을 고치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포항선린병원 원장이신 이건오박사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절망의 시대요 불투명의 시대요 인본주의의 시대입니다. 동양대학교 교수이자 목사의 아들인 진중권교수가 동성결혼을 반대하고 나서는 기독교를 향하여 개독교의 망령이 또 되살아났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SNS를 달구고 있습니다. 대학의 교수 정도 되었으면 언어의 선택이라도 고상했으면 좋으련만 이 종이 강단에서 도저히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저속한 말로 기독교와 목사들을 싸잡아 연일 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들은 과연 무슨 희망을 품고 어떻게 이 악한 세대를 이겨나갈 수 있겠습니까? 정직한 희망을 품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으며 마음과 믿음과 뜻을 합하여 중풍병자를 들것에 매고 지붕이라도 뜯어서 주님 앞에 달아 내리던 믿음의 열정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코 희망은 저절로 값없이 주어지는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환란이 따르고 참아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며 연단이라는 거룩한 단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제는 인본주의와 사람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굳굳하게 주님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처럼 이삭이라도 바치고 4명의 친구들처럼 온갖 난관과 역경도 이겨내며 주님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묵묵히 전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때가 차매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르며 우리들을 괴롭히던 모든 악한 세력들을 제거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정직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이 있는 한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목표를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기대하고 기다려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귀한 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거룩한 예배자로 헌신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처럼 정직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8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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