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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5년 8월 30일 주일낮설교(정직한 삶을 지향하라!)

2015년 8월 30일 주일낮설교(정직한 삶을 지향하라!)

정직한 삶을 지향하라!

8. 30, 2015

本文:잠언11:1-13

說敎:崔 仁 根 牧 師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까요? 아니 우리는 하루에 거짓말을 몇 번이나 할까요?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20명을 중심으로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학교에서 선택된 사람들에게 소형 마이크로폰을 달게 하고 하루를 살게 하면서 그들이 하는 대화를 녹음하여 풀어보니 하루에 거짓말을 자그마치 200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소형 녹음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게 하였습니다. 이는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 셈이 됩니다. 루소는 말했습니다.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거짓말을 일곱 번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다음 주에 올 때는 시편 155편을 꼭 잃고 오세요 하고는 그 다음 주에 시편 155편을 읽은 성도님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했더니 더러 많이 손을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참으로 장탄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시편 155편이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읽었다고 손을 들 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거짓말이 이제 성도들에게도 예외가 없이 생활 속에서 버젓이 상용화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쁜 습관은 결국 신앙생활을 그르치고 더 나아가서는 소중한 인생까지도 망치고 만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거짓말 하는 사람을 진짜 싫어하시고 급기야는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외면한 사탄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거짓말은 단순히 윤리 도덕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은총과 직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잠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서 거짓을 제거하고 정직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신앙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삶을 지향하라!

세계지도를 펴 보면 북아메카와 지중해 중간에 Green Land라는 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푸른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이름과 정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두꺼운 빙하가 온통 섬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무려 섬의 85%가 어름덩어리입니다. 그런데 그 섬의 이름이 푸른 섬입니다. 반대로 Ice Land라는 섬이 있습니다. "어름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푸른 숲, 해변, 꽃, 온천 등이 어우러진 지상낙원과 같은 곳입니다. 이 섬들을 발견한 사람들은 바이킹족입니다. 그러므로 바이킹족들은 진짜 거짓말쟁이들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들도 바이킹족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결석하는 성도님들에게 꼭 전화를 드리는데 한 번은 앞서 가는 교회의 집사님이 결석을 했기에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집에는 어린 두 딸이 있었는데 딸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물어 보았습니다. "너 어제 왜 교회에 나오지 않았니?" "저는 가고 싶었는데 아빠 엄마가 놀러가자고 해서 같이 따라갔어요." 그리고 엄마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전화를 받자 말자 굉장히 아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너무 죄송해요. 지난주일 갑자기 몸살감기가 나서 그만 교회를 못 갔어요." 라고 말입니다. 너무나도 기가차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교회에서 앞서서 일하는 일꾼들이 이렇게도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데 참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을 통해 충격을 받은 저도 종종 거짓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속에서 거짓을 제거하고 정직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자들을 정말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우리들의 심령을 쪼개는 말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잠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잠언에서만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계십니다.

(잠20:10)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잠20:23)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남을 속이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말씀은 단순하게 싫어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공의로 심판을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이 없으니 그 누구도 그들의 속이는 삶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니 오늘 이 말씀으로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총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이적과 기적을 많이 행하였던 엘리사 선지자에게 게하시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 엘리사를 통하여서 그렇게도 많은 이적과 기적을 두 눈으로 보았고 온 몸으로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속이는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순간에 문둥병에 걸렸고 그것으로 삶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왕하5:25-27)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방안에 있는 스승이 아무 것도 모를 줄 알고 그 스승에게 나왔다가 문둥병을 고침 받고 크게 사례하려는 것을 스승 엘리사가 사양하자 스승 몰래 따라가서 스승의 이름을 핑계 삼고 금은보화를 받아 집에 감추어 두었다가 스승에게 이처럼 가혹한 형벌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 친히 미워한다고 하신 거짓말의 결국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거짓말 한 번 한 것이 왜 이렇게도 가혹한 형벌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와 같은 거짓이 사탄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한명숙씨는 서울 S교회의 권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재임 시 9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심에서 그는 무죄라는 좋은 결과를 얻어 냈습니다. 돈을 주었다는 한만호 전한신건영 대표가 검찰에서는 돈을 주었다고 해 놓고 법정에서는 안 주었다고 번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등법원에서는 한만호의 증언 없이도 그가 준 수표 및 여러 정황증거를 확보해 2년의 실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법원에서도 2년을 확증하고 지난 24일 구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한명숙씨는 손에 성경을 들고 자기는 결백하며 더 이상의 정치보복을 하지 말라고 언론플레이를 해 모든 매스컴들이 한명숙의 거짓말을 대서특필하여 믿는자가 얼마나 더 부끄럽게 거짓말 하는가를 낱낱이 폭로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말았습니다. 겸손하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죄 값을 겸허히 받겠다고 하였으면 그나마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거짓말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된다는 사실을 한명숙씨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속이는 저울을 하나님은 미워 하신다."고 말입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결과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거짓에 속는 삶도 복되지 못합니다

제작년이었습니다. 청년대학부 여름 수련회를 떠났던 유정이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동생 용이가 한국에서 방학을 마치고 LA에 도착했는데 공항에서 괴한들에게 납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용이를 납치한 괴한들은 엄청난 돈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도 부모님들이 난리 났다는 것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에 있는 우리들이든 그들과 일단은 접촉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기에 우리는 더욱 더 혼비백산을 하였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예쁜 용이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이곳에 있는 결찰들에게 연락을 해서 LA경찰들과 공조가 가능한지부터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고 있는 동안에 다시 유정이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용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무사히 집에 잘 도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있었던 모던 일은 보이스피싱 범인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이었던 것입니다. 보이스피싱이란 전화를 이용해 엄청난 돈을 갈취하는 신종사기 수법을 말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와 같은 범죄에 걸려들어 갈취당한 돈만도 무려 6천억 원에 이른다니 엄청난 범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종범죄라 이를 단속할 수 있는 근거도 겨우 사기죄나 적용하는 정도였는데 지난 금요일인 28일 법원에서 이와 같은 범죄도 조직폭력과 같은 수준으로 3-6년 형으로 단죄하는 판결이 나와 범죄를 조금은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범죄가 가능한 것은 SNS를 통한 우리들의 사생활 정도가 무작위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용이가 한국을 떠나 LA에 도착하는지를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알고 돈을 요구하니 순진한 부모들은 우선 딸을 구해야 되겠다는 일념에 돈을 마련해 들고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세의 현실을 미리 내다보신 하나님은 일찌감치 경고의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와 같은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질을 높이며 내일에 희망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오로지 사람의 머리와 현실을 쫓아 자신의 유익을 얻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꾀를 따르고 귀를 기울이다가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작금의 일만은 아닙니다. 수천 년 전 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대하에 기록된 한 사건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대하18:1-7)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하였더라 두어해 후에 저가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아합에게 나아갔더니 아합이 저와 종자를 위하여 우양을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더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인을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아합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여호사밧은 아합과 동맹하여 전쟁에 나가려고 하지만 그 전쟁이 하나님의 허용 하에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선지자들을 불러 먼저 확인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4백인을 불러 물었는데 한결 같이 하나님이 이 전쟁을 아합왕에게 붙이셨으니 올라가서 싸우라고 부추깁니다. 너무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찌 선지자 4백인이 한결 같이 공산당에 쇠뇌된 것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여호사밧이 다시 묻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선지자들 외에 또 물어볼 만한 선지자가 없느냐? 고 말입니다. 그러자 미가야라는 선지자 하나가 더 있기는 한데 그는 꼭 나에게 불길한 것만 예언하니 내가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유익하고 바른 말을 해 주는 사람은 모두가 다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의 쇄신을 위해 혁신위원을 위촉하고 당의 혁신을 꾀한다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고 신선한 출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동학혁신위원이 한명숙전총리를 유죄 판결한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다가 공개 사과해야 하는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혁신위원조차도 소신 발언이 인정되지 않는 막힌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정직하지 못한 마인드의 현주소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미가야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달했다가 아합왕의 신복에게 뺨을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하18:23)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미가야의 바른 예언을 무시하고 4백인의 거짓 예언을 따랐던 아합 왕은 결국 그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대하18:33-34)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스스로 부지하며 저녁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겠습니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기 아집에 사로잡힌 체 소중한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하게 인생을 낭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같이 자신의 더 소중한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진실과 정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진리를 따라 순박하게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잠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거짓에 현혹되어 아합과 같이 망하는 것은 그나마 약과입니다. 거짓된 이단에 현혹되어 거짓을 따르게 되면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지옥 불에 망하게 되니 더욱 큰 낭패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악한 말과 선한 말,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줄 아는 깨어 있는 심령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우수죽순처럼 일어나 영혼을 혼탁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예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삶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십니다

역대 왕들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음을 구약성경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는 왕과 심판을 받는 왕의 기준은 오직 왕들의 "정직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대하24: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대하26:4)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라는 말씀들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단 왕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녀들의 삶이 이렇게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정직하게 살기만 하면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져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정직한 자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하시고 은총을 충만케 하신다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하느니라

(잠11: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잠11: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성품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그가 한 때 어리석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이것을 가장 강하게 부각시키며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다윗은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지를 말입니다.

(대상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는 말씀 한 마디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넉넉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다윗을 범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풍성하게 복주시고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들에게 완전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이처럼 충복을 살인하고 그 아내를 빼앗는 파렴치한 범죄를 하였을지라도 그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수 있도록 끝까지 사용하셨으며 오히려 그를 자신의 마음에 꼭 합한 자라고까지 귀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와 같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아름답고 복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한다면 다윗과 같이 우리 속에 점직한 영을 먼저 회복 받아야 하겠습니다.

조지아 주립대학 경제학 교수 스탠리(Thomas Stanley) 박사는 지난 20년간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연구하였는데 미국 부자의 80%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나 노동층 가정배경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많은 유산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말도 됩니다. 물질적 유산보다 독립정신이나 근면 정직 같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자녀의 장래를 위하여 훨씬 도움이 된다는 뜻도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귀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직도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고정 관념이 가득 차 있습니다. 실제로 이에 대한 갤럽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백성들의 63%가 정직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정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신다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3%의 소금이 그 넓은 바다를 형성하듯이 우리들이 외롭고 고독하게 정직을 추구하며 정직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소수의 정직한 성도들을 통하여 거짓된 이 세상을 바꾸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을 떠돌며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떡이 먹음직스럽고 값이 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번 떡을 사먹은 사람은 반드시 처음보다 더 많이 사가려 했기 때문에 자리를 펴자마자 떡은 다 팔렸습니다. 하지만 떡이 잘 팔릴수록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할머니는 낯선 동네에서 떡을 팔았습니다. 여느 동네에서와 마찬가지로 떡을 한번 산 사람들은 다시 와서 더 많은 떡을 사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할머니의 손에 금반지를 내밀었습니다. "이 금반지만큼 떡을 달라는 거냐?" "아닙니다. 할머니께 산 떡에서 이 금번지가 나왔어요. 제 것이 아니라서 가져왔습니다." 떡장수 할머니는 많은 유산과 사업장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동안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금반지가 든 떡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욕심 때문에 큰 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고 그와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들의 자손들도 이제는 이와 같은 정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직하셔서 정직한 사람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소중한 한 달이 또 저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고 기꺼이 주님 곁으로 담대하게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 소중한 삶의 하나가 정직한 삶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속이는 삶은 망하는 삶이라고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속이는 이유는 작은 유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정직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게도 눈앞에 있는 작은 것을 위해 먼 미래에 받을 풍성한 축복을 상실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정직한 삶의 대가를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깁니다. 그러므로 남을 속이고 잠시 유익을 얻는 소인배적인 삶을 청산하고 먼 미래와 천국까지 보장 받는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람직한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직한 삶입니다. 오늘 복되고 귀한 주일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정직한 삶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총을 누리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8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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