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6일 주일 설교 (구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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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6 February 20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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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6, 2012
本文:사무엘하22:1-7
說敎:崔仁根牧 師
지난 주말에 타코마에서 살고 있는 어떤 익명의 사람이 CD 두 장과 함께 조잡하게 만들어진 문장으로 기록된 편지 여러 장이 동봉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은 ‘고 한경직 목사님이 천국을 못가고 지옥에서 지금 엄청나게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CD는 한경직 목사님께서 절규하시는 내용을 담아왔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그것을 다시 글로 베껴 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섬뜩하고 소름이 끼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아무리 발달하고 사람의 기술과 재주가 하늘에 닿는다 할지라도 지옥에까지 가서 그곳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의 소리까지 녹음해 올 수 있을 정도는 아닌 듯 싶은데 이런 것을 공공연히 만들어서 전달하고 있다는데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거짓 선지가 나타나고 적그리스도가 출연하게 되어 있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깨어서 근신하고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며 온전히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의 저자이시고 친히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에 관하여서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2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우리 하나님에 관하여서 깊은 진리를 배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과 천지 만물을 만드신 엄청난 능력의 아버지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만물을 친히 다스리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섭리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시시 때때로 찾아와 도와주시는 따뜻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눈을 떼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기록되어져 있고 신약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방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서 짧으면서도 분명하게 정리해 봄으로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기고 더욱 그 사랑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인물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 주제는 바로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삼하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구원은 영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라 말할 때 그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하나는 다윗의 고백과 같은 육신의 구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도 영원히 사는 영혼의 구원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많은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의 말을 따라감으로 비롯된 타락의 형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제공해 주셨던 지상의 천국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인생들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고통과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하였고 결국에는 그와 같은 삶마저도 끝나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불 못인 지옥에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이와 같은 무서운 형벌에서 자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도 우리는 구원의 은총이 필요하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더욱 더 큰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평안을 누려야 되겠고 죽어서는 영생을 얻어야 되는 존재가 바로 우리 타락한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이처럼 타락하여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우리들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냥 구원해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오늘 날까지 우리들을 고통의 현실에서 건져내 주시려고 날마다 우리들을 찾아오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군 다윗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구원에 대한 감사를 노래하며 성경에 남겨 두어 지금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삼하22:2-3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 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다윗은 이 짧은 두 절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심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얼마나 깊이 새기고 있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이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지? 성경으로 돌아가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고통에서 우리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고통에서 자유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인류의 짧은 역사는 인생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그 숱한 소중한 인물들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인류 역사를 이끌어 왔던 수많은 성현들이나 위대한 사람들 또한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 육신대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그릇된 삶의 형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생생한 현실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 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 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 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 라 하시니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인류의 그릇된 삶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의 대가는 또한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 마귀를 따랐던 것이고 그 결과로 받은 대가는 사는 날 동안 고통의 멍에를 지고 저주 받은 땅에서 허덕이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 형벌을 지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욥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시55:1-7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 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 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편안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
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들은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짧은 삶을 수고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렇게라도 오래 오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고 사고를 당하여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다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도우심을 입고 이처럼 비참한 삶의 현실에서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우리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 왕이 그토록 감격하고 노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실로 다윗 왕은 많은 고통의 대명사였습니다. 믿었던 왕 사울에게 미움을 받아 15년 동안이나 피난 생활을 해야 했었고, 믿었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또한 왕위에서 쫓겨나 죽임을 피하여 비참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으며 믿었던 신하들과 장수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을 겪었던 인물이 바로 다윗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와 같은 고통의 삶을 보호하시고 죽임 당하는 비참한 현실에서 건져 주신 이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우리들의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 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 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라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우리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진실된 말씀을 믿고 그 하나님께 우리들의 인생을 맡겨 드려 친히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끄시고 구원의 강을 건너시도록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익히 우리들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육신은 이 땅에서 생산되는 양식을 먹으며 그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영혼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먹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양식은 때를 따라 취할 줄 아는데 영혼의 양식은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세상에서 오래 살아갈수록 더욱 더 메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른 채 오로지 육신만을 위하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그 자체가 죄악이요 죽음이요 비참한 형벌인 것입니다. 화분에 꽂아 둔 꽃이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향기도 내고 있지만 가지에서 꺾인 그 순간 이미 그 꽃은 죽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을 거부하는 그 모든 인생들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누구나 다 구원을 받도록 구원의 길을 마련해 두셨던 것입니다.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단순합니다. 참으로 간단합니다. 사람이 아파트에 살다가 새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간다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여간 준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상에서 천국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사 가는 이 엄청난 일이 이처럼 간단하니 잘난 인생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만의 특별한 방법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 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간단한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의 편에서 본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는지 몰라도 하늘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엄청난 일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담보로 내 놓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과 하나님의 고통을 가슴으로 깨알았던 다윗 왕은 마음을 다해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온 생명을 다해 그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신 희생의 아버지십니다. 그것을 아는 자만이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대 사도였던 바울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늦게나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평생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전하는데 바쳤습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 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 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 또한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자신의 소중하던 모든 것들을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과감하게 다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축복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줄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놀라운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영원한 천국 백성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아는 자식들만이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아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히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 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 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처럼 놀라운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가슴에 담아 사는 날까지 이 놀라운 구원 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겨야 하겠습니다. 아멘!
하나님은 믿는 자들만 구원해 주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 인생들의 영, 육을 고통과 비참한 죄악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그렇게 구원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에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는 자” 라는 것입니다.
요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 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 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저 어떻게 적당하게 믿는 척하면 천국에 갈 수 있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게 하는 우리 예수님의 너무나도 명백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미 국무부에서 발행한 비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는 이처럼 소중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것을 아시고 미리 경고해 두셨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시니라
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깨어서 말씀을 읽고 들으며 믿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도 소중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 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난 주간에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최유라와 조영남씨가 진행하는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를 듣고 참으로 이 세상은 믿음이 없는 세상이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30대의 가정주부는 남편의 윗도리를 세탁소에 보내려고 챙기다가 행여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없나 하고 뒤지던 중 영수증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영수증에는 ‘빨간색 4개, 노란색 3개, 검정색 3개, 자주색 4개... 도합 4만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부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 인간이 어디에서 무엇을 샀기에 이처럼 요상한 영수증을 받았을까? 그 때 전광석같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자 빤쭈다.” 이 세상에 여자 빤쭈 외에 이런 색깔의 종류가 뭐가 있을 수 있겠노?” 하면서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자에게 속옷을 사다 줄 사이라면? 하고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돌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분에 못 이기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늦은 시간 술에 엔간히 취한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다짜고짜 영수증을 들이대며 “어느 여자한테 빤쭈를 사다 주었노? 빨리 대라!” 하면서 따졌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니 또 와이라노” 하면서 침대로 들어가 쓰러져 자고 말았습니다. 분에 못이긴 주부는 큰 가방을 꺼내서 옷가지를 챙겨가지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늦은 밤에 큰 가방을 들고 돌아온 딸을 본 부모는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본 엄마는 딸을 달랬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못 믿고 가출까지 하고 그러면 못쓴다. 아직 아무 것도 확인된 것이 없지 않느냐?”고 달래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밤새도록 울며불며 ‘저 인간에게 속아 내 인생 다 망쳤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그 영수증을 가만히 보니 사업자 이름과 전화번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딸과 함께 그리로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받는 곳은 여자 옷 가게가 아닌 회전수시집이었습니다. 접시의 색깔에 따라 가격이 다른 회전수시의 영수증이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스스로 너무나도 어의가 없어 부랴부랴 가방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평생에 단 한 번도 부려보지 않았던 온갖 코먹은 애교를 다 부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믿음이 없다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살 맞대고 살아가는 남편에 대한 믿음이 이 정도라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막연하게 나는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지 말고 말씀을 기초로 하는 진정한 믿음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이 믿음만이 천국 열쇠를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2월도 다 저물어 가는 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황량한 들판과 같은 이 살벌한 세상에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그 모든 고통과 눈물에서 건져 구원하여 주시고 이 세상 떠나는 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고 하시니 다윗과 같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에게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주시려고 하늘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까지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등한히 여긴다면 우리는 결단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성군 다윗과 같이 가슴으로 이 구원을 감사하고 노래하며 그 구원을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더욱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으로 믿음을 만들어 내는 신령한 성도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짧은 인생 잠시 잠깐 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구원의 확신마저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소중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의 반열에 서는 진정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주후 2012년 2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