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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5년 10월 18일 주일낮설교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2015년 10월 18일 주일낮설교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18, 2015

本文:요한복음15:7-15

說敎:崔 仁 根 牧 師4

여자 운전사가 큰 버스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버스 안에 있던 깡패 세 사람이 운전석의 여자를 덮쳤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승객이 달려가서 그 깡패들을 뜯어 말렸습니다. 그러자 세 명의 깡패는 이 한 남자를 거의 죽도록 두들겨 팼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차 밖으로 밀쳐 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반항하며 차 밖으로 밀려나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그를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이 깡패들과 함께 합심하여 결국은 차 밖으로 떠밀어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여자 운전사는 차를 최고 속력으로 몰아 다리 난간을 들이 받고 아래 강물로 떨어져 자신도 죽고 함께 악을 행하던 승객과 깡패들도 다 죽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쓰레기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 전 중국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지금 이렇게도 악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신 시간은 오직 33년뿐이었습니다. 30년의 사생애와 3년의 공생애를 통틀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지니셨던 주님께서는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인생들의 현실을 똑똑히 보시고 또한 느끼셨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예 이 땅에 존재하는 인생들에게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2:23-2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백성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예수님을 잘 모시고 순종하고 따라야 할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장로, 제사장, 서기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3년 동안이나 훈련하시고 주님의 사역을 맡겨주셨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한결 같이 다 버리고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인생들의 속마음과 내일의 모든 악한 일들을 미리 先見(선견)하고 계셨기에 그들을 전혀 의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인생들에게 남겨 두고 가셔야 할 연약한 제자들을 늘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 우둔하고 어리석은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0절)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주님께서 친히 부르시고 권면하시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그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은 또 무엇인지 공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진정 그것만이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우리 모두 착실하게 배워서 그 길을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마음 귀를 기울이고 배워서 익히고 익혀서 축복으로 만드는 진정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농부에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농부로서 포도나무를 다스리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요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우리들과의 관계를 또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서 말씀하신대로 포도나무시고 우리들은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지가 풍성한 열매를 맺혀 농부가 되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려면 필연적으로 가지인 우리들이 나무인 예수님께 꼭 붙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 즉시 말라서 죽게 되고 결국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말씀의 근본 취지는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주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익혀서 순종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힐 수 있고 풍요로운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응답 받는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기도에 관해서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많은 가르침의 결정판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기도란 필요한 것을 구하고 응답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구하는 사람이나 응답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잘 형성되어야 구하게도 되고 또한 응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벨 게이츠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도 그에게 가서 "돈 좀 주세요."하고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구했다 할지라도 그렇게 돈을 내주지 않습니다. 무엇입니까? 관계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으로 교회건축을 할 때 당시에는 한국 사람도 많지 않았고 또한 건축을 한 사례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건축을 하던 중 돈이 떨어졌습니다. 50만 불 정도가 모자라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50만 불이 적은 돈이 아니지만 25년 전에는 참으로 큰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행에 융차를 신청했는데 모든 은행이 한결 같이 거절을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비영리 단체인 교회에 융자를 주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습니다. 참으로 난감하고 애가 탔습니다. 그 때 제 마음 속에 빌 게이츠를 찾아가 통사정을 하면 그 정도의 돈은 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습니다. 다리를 놓아 줄 사람도 만남을 주선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주고받는 일에는 반드시 관계가 먼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 것임을 그 때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기도 응답의 비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입니다. 이 한 말씀만 생각하면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힘든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이든지 구하고 그대로 응답을 받는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타게 부르짖어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다 이루리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왜 응답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사랑과 재물과 건강을 잃은 채 눈물로 소중한 세월만 흘러 보내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그렇게도 많이 있는 것입니까?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앞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의 응답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이루어 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하고 주님은 우리 속에 머물러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하기 전에 건축회사에서 하는 일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교회건물의 기초도 놓기 전에 그들은 멀쩡한 마당을 깊이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엄청 깊이 파냈습니다. 뭐하는가? 하고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수구였습니다. 빗물과 우리들이 쓰고 버리는 모든 화장실, 부엌의 물들을 내 보낼 수 있는 하수구를 그렇게도 깊고 넓게 파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 땅 속에 상수도를 묻고 전기와 전화선을 묻고 개스 파이프를 묻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저절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위치만 올리면 저절로 전기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이크만 들면 저절로 큰 소리로 말이 증폭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모든 파이프와 전기선이 끝없이 연결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관계입니다. 하나로 연결된 관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와 같은 확실한 관계 속에서만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우리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 부르짖으면 언제라도 응답 받기 위한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말씀 속에는 나의 가르침을 배우는 제자가 되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진정한 진리를 가르쳐 주는 스승을 두고 그 스승으로부터 잘 배우는 제자가 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주시고 계십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고 말입니다.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는 이 말씀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 되는 가장 소중한 길은 좋은 스승을 모시고 바로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남겨 두었습니다. "내가 삶에 대하여서는 부모님께 은혜를 입었으나 훌륭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서는 선생님께 은혜를 입었노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들이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이 두 분, 부모님과 스승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말세를 만나 이 시대에는 부모님도 없고 스승도 없으니 온통 세상이 혼탁하고 범죄와 고통이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가르침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 중에 큰 축복으로 승리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까지도 엄청난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두 말씀을 엮어서 읽고 묵상해 보면 예수님의 은총이 어떻게 역사하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루포의 아비인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 훗 날 사도 바울이 그 시몬의 아들 루포와 그 아내의 사랑을 기억하고 이렇게 자신의 어머니라고까지 할 만큼 크게 칭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보다 이 세상에서 더 복된 자는 없습니다. 우리 그렇게 그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시려고 지금 우리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이 시대에 제대로 된 신자요 성도인 것입니다.

비밀도 없고 목숨도 주는 친구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말씀 속에는 "비밀도 없고 목숨도 거저 내어 주는 친구관계를 형성하자"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감히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 인생들이 예수님과 친구가 되고 하늘의 비밀도 달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어 주는 놀라운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게 되는 것은 기적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시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15:14-15)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게 거하기만 하면 이처럼 놀라운 사실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하늘의 놀라운 비밀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뽑아 세우신 주님의 제자들에게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마13:10-17)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합니다. 하늘의 비밀이 결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하늘의 비밀을 열어 가르쳐 주실 때 유대인들은 참람하다고 옷을 찢으며 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귀를 열어 하늘의 비밀을 들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수십 년을 교회에 나가도 뚜껑 덮어 둔 그릇에 비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담기지 못해 영적으로 변화를 덧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러므로 우리들의 열심이나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야만 우매한 우리들이 스승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하늘의 비밀을 듣고 깨달아 주님과 친구가 되고 목숨이라도 함께 나누는 놀라운 연합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는 외롭고 삭막한 이 이민 땅에서 하늘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너의 친구야!"라고 선언해 주시니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하고 감격스럽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노년을 함께 할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참 좋으신 우리 주님을 온 가슴을 활짝 열고 친구로 영접하는 엄청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17세기 영국의 정치가요 아울러,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써서 우리나라에까지 그의 명성을 날리고 있는 체스터필드(Philip Dormer Stanhope Chesterfield, 1694-1773)의 글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간단하게 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으면 진정한 우정은 자라지 않는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이 말을 음미하면서 우리들의 경우를 한번 조명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이 이 땅에 살면서 진정한 우정을 나눌 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은, 생의 큰 자산 하나를 잃어버린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정이 짙게 깔린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삶은 한마디로 말해서, 삭막하고 황폐한 삶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친구가 없다는 것은 곧 인생살이에 있어서 무형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참된 친구 만드는 일에 우리들의 남은 삶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곧 주님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불러 조용히 부탁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비참하게 흘러가는지 그 누구보다 온 몸으로 친히 겪으셨던 주님의 따뜻한 사랑이요 놀라운 배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 속에는 엄청난 은총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하고 응답하시는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자는 것이요, 가르쳐 주시고 배우는 사제지간의 놀라운 회복을 보장하시겠다는 뜻이며 비밀이 없는 친구가 되어 목숨이라도 함께 나누게 되리라는 놀라운 축복이 숨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의 작은 음성 하나에도 온 몸이 떨리고 전율하는 사랑과 믿음의 센스가 열려 있어야 하겠습니다. 배신과 불신과 사욕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얻으려고 기웃거리지 말고 조용히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신선한 변화와 결단의 역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한 말씀은 세상이 변하고 천지가 없어져도 여상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세상에서 시달리고 고통당하는 안타까운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품으로 찾아갑시다. 그래서 그 속에 있는 따뜻한 사랑을 만지며 진정한 위로와 소망으로 내일을 꿈꾸십시다. 그것만이 어지러운 이 마지막 때의 피난처가 될 것이며 참된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된 날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와 예배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시는 이와 같은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넘치도록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10월 1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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