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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6년 1월 31일 주일낮설교 (택한 자와 버린 자)

2016년 1월 31일 주일낮설교 (택한 자와 버린 자)

택한 자와 버린 자

1. 31, 2016

本文:사도행전13:16-23

: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에 올인 하라!”는 표어를 내 걸고 희망차게 시작한 2016년도도 오늘로서 꽉 찬 한 달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예배에 올인 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이라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해도 한 목숨을 다 내어 놓고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예배를 강조하고 강압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앉혀 놓는다 해도 그는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에 관해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먼저 조용히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4:13-2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놀라운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가르쳐 주신 예배의 본질은 이처럼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이름 없는 우물가의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로 남편을 다섯이나 거느렸던 그렇게 행실이 나쁜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예배에 관한 본질을 바로 이 여자에게만 가르쳐 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록 그 여인의 행실은 옳지 못했지만 그 여인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똑바로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아 본 그 즉시 그 선지자에게 예배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이 말씀 속에서 고귀한 진리 하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의에 빠져 있지 말고, 우리들의 육신적인 성결 유무로 우리들의 믿음을 논하지 말고 우리들의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관하여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한 열정과 관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육신적인 허물은 간곳 없고 우물가의 여인과 같이 예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성경에 기록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자지우지 하신다는 사실을 또한 배우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신다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능력과 우리들과 직접 관계된 삶 속에서 우리들을 버리기도 하시고 세우시고 하신다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고 인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인식하게 될 때 바로 그러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놀라운 변화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택한 자와 버린 자

창세 이래로 가장 하나님을 올바르게 고백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렸던 사람 성군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반듯한 진리를 늘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과연 누구신지, 또 어떠하신 분이신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극진히 여기시고 이스라엘 역사에 수도 없이 나타났던 왕들을 평가하실 때 다윗을 그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과연 다윗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다음과 성경 구절에서 함께 공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대상29:11-12)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간단하게 몇 구절만 들어보아도 다윗이라는 사림이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대하여 매료 되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똑바로 알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깍듯이 섬겼고 또한 모든 찬송과 영광을 다 돌려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라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든 매사에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연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성경으로 돌아가 이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똑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자라고도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와 같이 구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성도로 만들어 주시고 신자가 되게 하시며 맏아들이 되게 하시어 천국까지도 상속 받게 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하기야 이 땅에 존재하는 자식들이 육신의 아버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하늘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남자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데 6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나이 60이 넘어야 아버지가 누구인지 조금 알게 된다는 말씀이니 아버지를 제대로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늘의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이번 32차 전교인 수련회 때부터 시작하여 매 수요일 예배 때마다 우리들의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잘 배우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 그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릴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신징 어렴풋이나마 배우게 됩니다. 먼저 다음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3:17-23)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대강 살펴보았는데도 밑줄 친 부분들이 이렇게도 많습니다. 이렇게 밑줄 친 부분 하나만 가지고도 몇 시간을 논해도 끝이 안 날 만큼 방대한 내용들입니다. 500-600년간의 기나긴 역사를 몇 줄 성경에 요약해 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간단하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놀라운 하나님의 이와 같은 역사들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임재하시고 눈에도 보이지 않게 역사 하시어 우리들의 삶을 친히 주관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해 두신 백성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택한 백성들의 삶을 친히 높이시고 인도하시며 그 어떤 대적도 물리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들이 간절히 부르짖을 때는 응답해 주십니다. 원죄와 자범죄를 가지고 사는 우리 인생들의 현실을 친히 인정하시고 숱하게도 많이 참고 또 인내하십니다. 하지만 정녕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을 버리시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계획하신 거룩한 뜻을 그와 같은 종들을 통하여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독생자 예수님이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문장으로는 몇 개 안 되는 짧은 것이지만 이 속에 들어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역사해 오셨고 또 앞날에도 역사해 나가실 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오늘 본문의 어리석은 주인공인 사울과 같이 망하고 맙니다. 이제 그 사건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버린 자 사울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 사울 왕

하나님은 친히 선택하셨던 사울 왕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사울이 너무나도 겸손하게 출발하였다가 너무나도 교만한 왕으로 변절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렇게도 변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삼상10:20-22)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이것이 사울이 최초로 왕이 되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그는 감히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며 행구, 즉 쓰레기더미 뒤에 숨었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는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는 고집쟁이요 오만하고 교만한 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시고 버리기로 작정하시게 됩니다.

(삼상15:10-11)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면 그 어떤 자리에 있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버리시면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사울 때문에 후회하시고 근심만 하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그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삼상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미친 사람처럼 대적들 앞에서 떨다가 결국은 자신의 칼을 스스로 의지하고 자결하여 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삼상31:3-6)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버린 자의 최후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버리시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가를 성경은 이렇게도 분명하게 기록에 남기고 오늘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자는 버림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길이 교훈으로 삼고 그 어떤 유익이 눈앞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어리석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사는 날 동안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다윗 왕

그런 반면에 오늘 본문 말씀은 또 다른 기적 같은 역사가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택하시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삼상16:11-13)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새의 그 많던 아들들을 다 두고 들에서 양이나 치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어린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한 마디 말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 다윗은 이미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큼 그 중심이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훗날 다윗이 스스로 한 고백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삼상17:34-37)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는 말씀처럼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확신하는 체험적 신앙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고 반미치광이가 되어 자신을 질투하고 죽이려고 할 때에도 끝까지 그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이니 헤치면 안 된다는 일관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삼상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버림받은 사울과 선택 받은 다윗의 극명한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오늘 다윗의 이와 같이 철저한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종을 비난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다음의 몇 말씀 속에서 이와 같은 다윗의 사상을 배우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2:1-2)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12:9-10)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비록 미리암이 모세의 누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모세를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문둥병에 걸리는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삼하6:20-23)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비록 남편이지만 하나님의 종 다윗을 비난하였던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가지지 못하는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사사롭게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어기고 무시하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비록 충신의 아내를 취하고 충신을 죽이는 파렴치한 죄를 짓고 사탄 마귀의 미혹을 받아 인구조사를 함으로 수많은 선량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극찬하신 것은 인간의 근본인 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을 더 귀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들이 믿고 예배드리는 우리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신지, 분명히 알고 사울의 우를 벗어나 다윗의 믿음의 덕목을 쫓아 말씀에 순종하는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 중심의 순종생활을 신앙의 기본으로 삼을 때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귀하게 쓰임 받고 하늘의 풍성한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풍성한 영적 체험을 하며 예배에 올인 하자며 출발한 2016년도도 어느 덧 꽉 찬 한 달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버릴 사람을 버리시고 택할 사람을 택하시어 시대마다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세월만 죽이는 어리석은 요행자가 되지 말고 사울과 다윗을 거울로 삼아 왜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왜 하나님께서 다윗은 선택하셨는지? 그것을 배우고 답습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를 매우 싫어하시고 순종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는 사실 또한 가슴에 새기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칭찬 받을 만한 삶을 살지 못한 채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선지자로 고백하고 예배에 관심을 가졌다가 역사적인 인물이 된 우물가의 여인처럼 이제 우리들도 우리들의 의를 접어두고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올인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다윗과 같이 받아 누리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새해 한 달을 마무리 하는 이 복된 주일에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온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다윗과 같이 순종하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가슴을 시원케 해 드리는 그런 고귀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

 

주후 2016131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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