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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6년 2월 14일 주일낮설교 (예수님 때문에)

2016년 2월 14일 주일낮설교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2. 14, 2016

本文:빌립보서3:4-9

:

 

이 종은 구약에서는 다윗 왕을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평생 목회 해 오면서 그 두 분을 목회와 삶의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사도가 되었고 예수님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당하였으며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서 지금 놀라운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한 번은 그의 아들처럼 사랑하는 수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3:12-14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가려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리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 때문에 뚜렷하게 받은 축복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때문에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있는 객관적인 고통을 당하신적이 있습니까? 이 둘 중에 하나는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둘 중에 하나도 자신 있게 꺼내 놓을 분명한 증거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 때문에 무엇을 하였는가를 가장 분명하게 증거해 주는 고귀한 말씀입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서 자신이 직접 개척하고 세웠던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고백하고 있는 간증입니다. 그러므로 가슴 찡하게 울려오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오늘 우리들의 자손들과 이웃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의 예배자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지난 1991년 여름, 페루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번역했던 한 그리스도인과 그의 가족이 페루의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주의 폭력 단체}에 의해, 길에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던 날, 그들 가족은 모두 친할아버지의 묘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할아버지도 2년 전에, 페루에서 그리스도를 공공연히 전했다는 이유로, 똑같은 폭력 단체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신실한 성도들의 핍박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대를 이어 이 땅에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정신을 심어 가야 할 제자 디모데에게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딤후3:12-14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악하여져 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며 잘 살아가려면 진실과 성실로 무장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돈이 있어야 하고 적당한 처세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22일자 서울경제신문의 성공비결 순위에서).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진정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를 드리기를 원한다면 바로 이와 같은 이 세상을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우리들의 몸으로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 때문에 무엇을 얻었으며 또한 예수님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 구원을 주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다 바친 인물입니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렇게도 극단적으로 목숨과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맞바꿀 만큼 극렬하게 복음 증거에 매달리며 살았을까요? 그 해답이 또한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져 있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9:13-16)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선택하시되 주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택하셨다는 해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연히 예수님의 종이 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는 예수님께서 친히 쓰시기 위해 선택하시고 구별하셨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이와 같은 뜻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상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스스로 밝히 증거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가 어떻게, 왜 사도가 되었는지는 오직 예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와 같은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그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일생을 다 바쳐서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 목적이 정확하게 이루어져 그 이후 2천년이 지난 후에 이 땅에 태어났던 저와 여러분들이 이처럼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덧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명을 받은 사도 바울이 우리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외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구원 받은 것은 금이나 은이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값진 것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이 세상 사람들 앞에 잘난 척 나설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지만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로 천국에라도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들아 갈 수 있는 구원 받은 백성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씻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상징은 우리 예수님께서 달려 피를 흘리신 십자가인 것입니다.

1983년에 세계 종교 회의가 시카고 박람회에서 개최되었는데 각 종교의 대표자들은 각자의 종교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회교도, 불교도, 유교신자, 그리고 다른 많은 종교의 대표자들이 그들의 종교에 관한 우월성을 이야기 했을 때 그리스도인의 대표자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종교에서는 사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소가 있습니까?" 다른 종교의 대표자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자 그리스도인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그 해답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우리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 중의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구원은 오직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 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한 순간도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았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축복이 많고도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고귀한 축복은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님의 이름으로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들의 모든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한 시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위해 친히 기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까지 우리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해 주시기 때문이요,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자녀들이 온전하게 태어나서 온전하게 성장하며 주님의 일꾼으로 반듯하게 세워져 가는 것도 우리 주님께서 밤낮으로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덕분이요, 이처럼 불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대도 이처럼 외롭고 삭막한 타국에서도 밥 굶지 않고 비 맞고 자지 않고 따뜻한 침대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역시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 예수님의 기도를 한 순간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를 잊지 않고 배우고 닮았던 사도 바울도 평생을 통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명령하기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고 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신은 평생을 통해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지금 빌립보 감옥에서 친필로 쓰고 있는 편지도 빌립보교회에게 쓴 것입니다. 이 빌립보교회 역시 기도하던 중에 태동이 되었던 뜻 깊은 기도의 열매였던 것입니다.

(16:13-15)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기도하러 나갔다가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여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어서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게 하시어 사도 바울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가서 거기에서 머물며 이웃들을 전도하여 세운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이 땅에 가장 놀라운 하늘의 기적을 만들어 놓는 성도들의 최고의 무기인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그렇게 기도하고 깊은 감옥에서 나오는 기적을 몸소 체험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때문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응답 받은 기도의 역사는 제대로 믿는 성도라면 다 한 두 가지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교회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할 때 그만이야 돈이 떨어져 큰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50만 불이 모자로 교회를 짓다가 중도에 그만 두어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운타운에서부터 에베렛까지 은행이라는 은행은 다 들어가 하소연 해 보았지만 모두가 다 융자를 거절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시애틀에서 책임질 주인이 없는 교회에다 융자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없는 처지라 이 종은 혼자서 매일 아침 칼키 팍으로 내려가 벤쿠버로 가는 기찻길을 만들 때 쌓았던 돌과 돌 사이 바닷가에 엎드려 날마다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Northgate에 생긴지 1년 밖에 안 된 중국 은행 하나를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First International Bank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조건 찾아가 은행장을 만났습니다. 키가 자그마한 Elizabeth라는 여성이 은행장이었습니다. 1주일만 시간을 달라면서 연구해 보겠다고 대답해 주기에 온 성도들에게 기도 명령을 내리고 참으로 목숨을 걸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후 1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마침내 기적을 보았습니다. 50만 불을 신청했는데 60만 불이 나왔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건축이란 하다가 보면 늘 돈이 모자라기 마련이니 넉넉하게 생각해서 10만 불을 더 주었노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넉넉하게 건축을 마무리 할 수 있었고 그 후 3년 만에 60만 불을 다 갚아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 누가 봐도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노라고 말입니다.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기도만 하면 이처럼 응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힘든 인생이지만 한 번쯤 살아 볼만한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기도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말고 사도 바울과 같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멋들어진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누리는 축복과 은총을 다 말하려면 몇날 며칠을 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표적으로 오늘은 구원과 기도 응답으로 요약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엄청난 은총을 덧입은 우리들은 과연 그 주님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 또한 많고도 많겠지만 단 하나로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자!”는 것입니다. 가만히 지나 온 삶을 되돌아보면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았다는 고백은 많이 하면서도 그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았다는 고백은 그렇게 많이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 인생들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손해를 기분 좋게 여기며 감사드리는 사람은 그렇게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그거 주어라는 것이 우리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은 참으로 스스로 고백한 바와 같이 위대하고 자랑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똑바로 만난 이후 그 고귀한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배설물과 같이 다 버렸습니다. 참으로 대단힌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에 길이 남은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리고 희생할 줄 알 때 하나님은 더 귀한 것으로 보상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역사를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같이 일하며 가난하게 사는 절친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같이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던 길에 한 친구가 복권을 여섯 장 샀습니다. 그 중에 친구에서 두 장을 주면서 이것으로 꿈이나 꾸고 위로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두 장 중에 한 장이 1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청금이 자그마치 125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이 돈을 찾아서 복권을 주었던 친구에게 고맙다며 1억 원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무슨 소리냐? 내가 사 준 것이었으니 절반은 내 것이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괘심했습니다. 그래서 주었던 그 1억 원마저 내 놓으라고 싸우다가 결국은 법정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법정에서는 1억 원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하였고 그 둘은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돈 때문에 친구가 원수로 변하고 불행한 자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 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친구의 사업 보증을 서 주었다가 3억 원의 빚더미에 올라 앉아 시달리다가 한강으로 가서 투신하려고 다리 위에 올라갔습니다. 신고를 받고 달려 온 경찰의 설득을 듣고 내려와 경찰서로 연행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같은 연배의 다른 남자 한 사람도 한강 다리에 올라갔다가 붙잡혀 와 취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내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는데 가해자가 오히려 죽은 아내에게 모든 협의를 뒤집어 쉬우고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법정에까지 갔으나 돈만 들어가고 해결이 잘 되지 않자 그만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는 그렇게 자살 소동을 벌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습니다. 같이 상황을 설명하며 위로하던 중 같이 복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당첨이 되어 3억 원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로 그 3억 원을 놓고 먼저 가정을 일으켜 세우라고 양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3억의 빚을 진 사람에게 빚부터 갚으라고 내 밀었고, 아내도 없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 우선 아이들부터 챙기라며 당첨된 복권을 내 밀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안 받으니 편지를 쓰고 그 복권도 함께 넣어 친구 집 앞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발견한 친구도 또한 편지를 쓰고 복권을 넣은 후 친구의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서너 번씩 갖다 넣다가 실수하여 남의 집 우체통에 넣고 말았습니다. 뜻밖에 복권을 발견한 그 사람은 순간적으로 3억이 탐이 났지만 편지를 읽고 나서는 도저히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편지와 복권을 신문사에 갖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서 이 아름다운 우정과 미담이 나가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 소식이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에까지 방송이 되었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에까지 보도 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어 오늘 이 종의 귀에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복권당국인 국민뱅크는 당첨금 3억 외에 3억 원을 더 주어서 각각 3억씩 갖게 하고 국내 최고의 변호사들이 자원하고 나서서 아내의 억울한 누명을 깨끗이 해결해 주었으며 한 영화제작사에서는 이 둘의 감동실화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나서서 이 두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섭외중이라고 합니다. 조금만 손해를 보면 이처럼 놀라운 더 좋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남을 위해 온전히 희생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오늘 말씀으로 크게 변화 받는 은혜가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말세가 까까와 올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속고 속이며 악하게 변절되어 간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사람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사도 바울은 말없이 우리들에게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과 같이 미련 없이 버리고 오로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일생을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 때문에 기도 응답과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들이 과감하게 일어나 그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손해를 보며 희생을 하며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도 귀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배설물과 같이 버릴 수 있는 정신만 가진다면 우리들도 바울과 같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늘의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 같으나 부하고 약한 자 같으나 강한 멋진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남을 위해 주님을 위해 손해보고 섬길 수 있는 그런 멋들어진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214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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