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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8일 주일낮설교 (믿음을 지키라!)

믿음을 지키라!

2. 28, 2016

本文:디모데후서4:6-8

:

 

제정시대 때에 만주 연길현에 종성동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은 함경북도 종성 사람들이 개척한 동리로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침례교회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3911월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공산당원들이 이 마을을 습격하고는 교인과 동리 사람들을 예배당에 몰아넣고는 불신자는 좌편에 교인들은 우편에 갈라서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때에 한씨 부인이 나는 죽더라도 예수님을 믿는다! 고 외치고는 우열로 나서자, 너도 나도 60여 명의 교인들이 이에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자 공산당원들은 이 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던 김영진 목사를 끌어다가 완전히 옷을 벗겨 쇠사슬로 결박한 다음 교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면도날을 들고는 발목으로부터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칼을 목에 대고 너 이래도 예수를 믿겠느냐? 고 다짐시킬 때에 김 목사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 예수님할 때에 공산당원들은 그의 생식기까지 잘랐습니다. 이 때에 김 목사는 숨이 끊어지고 말았는데 독이 오른 공산당원들은 너희들도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렇게 죽이겠다.” 고 소리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 배교하는 자 없이 모두 엎드려 울부짖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김영진 목사 후임으로 종성교회에 부임했던 한기춘 목사가 중언한 내용인데 말세에 이와 같은 때가 이르리니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님은 교훈하고 계십니다. 불행하게도 마지막 때에는 믿음을 볼 수가 없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내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들 자신을 들여다보면 두려울 만큼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강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오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지키라!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되었음을 선포하고 하지만 자신의 삶은 당당하고도 자랑스러우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신의 순교의 날이 가까워 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담담하게 회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며 또한 확신하였습니다. 누구나 한 번 살고 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도 바울과 같이만 고백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산 사람을 만나보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죽음 앞에서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살고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들도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하나를 지키지 못하면 그는 결국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믿음을 지키고 사도 바울과 같이 당당하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성경이 증거 하는 바 사도 바울의 믿음에 입각한 삶을 함께 찾아보면서 가슴에 새기는 호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따라가려면 반드시 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인생들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

 

는 말씀은 오늘 우리들을 깊은 생각으로 이끌어 내기에 충분합니다. 이는 믿음을 지키는 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리고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기로에서 망설임 없이 버릴 것을 버리고 택할 것을 택하였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소위 요즘으로 말하며 금수저들을 미련 없이 다 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잘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잘난 금수저를 이용하여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는 현장에서 증인으로 섰었고, 예수님 믿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스스로 살기등등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깨달은 다음에는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겼던 인간적인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다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취하여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통해 두 가지 해결 해야만 하는 숙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것을 말씀하시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과 예수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둘 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엄청난 선택의 기로이기에 오늘 우리들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우리들이 믿음 있는 신자로 인정받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말세에는 사도 바울과 같이 세상과 권세와 돈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상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선택을 올바로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믿음으로 무장시키고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해 두었습니다.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말입니다.

어느 해변가에 평생을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갈매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경험 하르르 애기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부둣가에 버려진 생선 대가리를 발견한 그는 그것을 두 발로 낚아채가지고 공중으로 날라 올랐습니다. 그러자 허기진 갈매기 떼거리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결사적으로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하늘에 높이 뜨면 같이 높이 날으고 히면으로 낮게 내려오면 따라서 해면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을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다 써 보았으나 굶주림에 지친 그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따랐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그 생선 대가리를 포기하기로 결단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하늘을 향해 날라 오르면서 결국 발에 움켜쥐었던 생선대가리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그렇게도 자기를 뒤쫓던 무리들이 순식간에 생선대가리를 향해 쏜살같이 바다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9만리 푸른 하늘이 자기의 몫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썩은 생선대가리 하나를 포기하는 순간 그렇게도 넓고 푸른 하늘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누구와도 다투거나 싸울 필요가 없는 넓디넓은 푸른 창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그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한 후 그 갈매기는 다시는 생선대가리 하나로 싸우는 그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외롭지만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유유적적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썩은 세상의 생선대가리 하나를 더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며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천국까지도 보장해 주신 하나님을 등지고 천년만년 이 땅에 살 것처럼 그렇게 세상에 인이 박히어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도 바울과 같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두 손 벌리고 맞이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난을 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당당하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선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선언하기 까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인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8-19)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을 또한 당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후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험난한 고통을 다 감수해 왔던 것입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말은 그렇게 단순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하는 놀라운 간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할 것 다하면서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도 바울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믿음을 지키는 일이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고난도 감내하고 손해도 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James I Packer박사가 최근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117일 미국 개신교 단체인 복음연합에 따르면 패커 박사는 황반변성에 의해 실명 했으며 시력의 중심을 잡아주는 황반부에 이상이 생겨 치료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패커 박사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복음연합과의 인터뷰에서 비록 육신의 눈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보고 있다.”고 담담하게 심경을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1926년 생으로 향년 90세입니다. 패커 박사는 개인적으로도 이 종에게 실로 많은 감화력을 끼쳐 주었던 신학자였습니다. 제 사무실 책꽂이에도 패커 박사가 쓴 Knowing God라는 책이 꽂혀 있을 정도입니다. 평생을 통해 300권의 책과 사전 및 기고문 등을 쓰며 20세기 복음주의 학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입니다. 갑자기 시력을 상실하는 이렇게 엄청난 고난 앞에서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담담하게 고통을 이겨내며 믿음을 지켜가는 모습이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고통이 없는 믿음이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픔과 시련을 통해 믿음은 더욱 더 단련이 되고 연단이 되어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각자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히브리서 기자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1:33-38)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그러므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한 목숨을 내어 놓고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 바로 믿음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그 숱한 고난과 고통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 한 가지 분명한 무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딤후3:12-16)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려고 한다면 속이고 속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될 것인데 그것을 능히 이겨 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들에게 부족한 믿음을 만들어 주고 그렇게 믿음에 충만하게 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니엘의 담대한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 내야 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믿음의 능력으로 나타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는 기도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과 기도! 이 두 바퀴를 굴리며 천국을 향하여 달음질 할 때 그런 성도들을 가로 막을 수 있는 권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을 등에 업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최근 미국의 설문조사 기관인 라이프웨이 리서리는 최근 65세 이전에 교회를 사임하고 떠난 목회자 7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 그들에게는 3가지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안식년이 없었기 때문이요 두 번째는 적절하게 그들을 상담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요 세 째는 미래 목회에 대한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긴장 속에 깨어 있어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목회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끝까지 감내하지 못하고 결국 교회를 떠나 세상의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사명자의 할 일은 아닌 듯 했습니다. 말씀 속에서 길을 찾고 기도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기에 울며불며 가는 것이 목회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목회자도 힘들고 어렵다고 떠나는 것이 교회라면 평신도들에게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우리들에게 내려 주신 생명과도 같은 믿음을 당당히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또 한 달 2월이 다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종말인 이 때에 우리 주님의 탄식이 들려옵니다. “인자가 다시 이 세상으로 임할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에는 다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오로지 육신적인 유익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종교생활로 위로를 받고 있는 가짜 교인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면 그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즈음에 다시 한 번 우리 가슴 속을 들여다보며 우리 속에 믿음이 있는지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외쳐야 하겠습니다. “내 속에 믿음을 지키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그 어떤 고난이나 환난이 닥쳐와도 묵묵히 감내하며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소중한 것이라도 주 예수님과 바꿀 수 없음을 천명하고 차라리 사도 바울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할지라도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당당한 신자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복된 날 예배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바로 이와 같은 복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승리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228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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