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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6년 3월 13일 주일낮설교 (나그네와 같은 인생!)

2016년 3월 13일 주일낮설교 (나그네와 같은 인생!)

나그네와 같은 인생!

3. 13, 2016

本文:창세기28:10-22

: 根 牧 師

 

한 때 대한민국의 국민가수로서 명성을 떨쳤던 최희준씨는 하숙생이라는 노래를 불러 대 히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 가사가 오늘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이것이 바로 그 생생한 가사입니다. 이 노래는 김석야씨가 가사를 쓰고 김호길씨가 곡을 붙였으며 최희준씨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생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꼭 같습니다.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 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는 말씀들이 그렇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이와 같은 표현을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네 인생은 누가 뭐라고 하든 나그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구약의 3대 족장인 야곱의 생애를 들여다보노라면 , 인생은 참으로 나그네로구나!” 하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짧은 인생 여정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나그네와 같은 슬픔과 아픔과 애환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야곱을 통해서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펴보면서 제대로 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듣고 은혜 받아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지만 왕과 같이 살다 가는 멋들어진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

야곱이라는 한 사람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인생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가 살아갔던 인생 여정은 오늘 우리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인생을 다 살고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처량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47:8-9)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 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온 130년이란 긴 인생 여정을 나그네 길이었다고 고백하고 그 세월이 험악하였었노라고 회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라서 인생 말년에 야곱과 같이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야곱의 그 험악했던 삶을 더듬어 보고 그는 그와 같이 험악했던 삶을 어떻게 극복하고 나왔었는지 또한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들의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함께 말씀으로 돌아가 야곱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은 움켜쥐려고 하다가 다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한 인생들은 근본적으로 욕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타락하게 된 근본 배경 자체가 더 가지려는 욕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욕심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려 두셨습니다.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들은 한결같이 이와 같은 욕심 때문에 오히려 가진 것까지도 다 잃는 어리석은 우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4:2-3)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인생들은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소중한 인생을 그렇게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야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배고파 허덕이며 한 그릇 팥죽을 구하는 형에게 조차 대가를 요구하였을 정도였습니다.

(25:29-33)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야곱은 결국 그 형이 받아야 할 축복까지도 다 빼앗아 움켜쥐게 됩니다. 나중에 이것을 안 형 에서가 아버지에게 울면서 조금이라도 남은 것이 있으면 달라고 애결 하였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아버지의 최후 선언을 받아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27:38)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야곱은 그 이름이 사기꾼이라 이처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움켜쥐었던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그는 외로운 강변에 홀로 누워 모든 것을 잃은 슬픔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28: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어머니도, 자신에게 축복해 주시던 아버지도, 이 땅에 단 하나뿐인 형도, 그립고 정들었던 고향 땅도 모두 다 버리고 머나먼 하란으로 도망가야 하는 외로운 나그네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들이 귀하다고 욕심 부리며 움켜잡고 있던 그 소중한 것들을 놓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늘의 더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그렇게도 소중했던 그 모든 것들을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이처럼 움켜잡았던 것을 하나씩 둘씩 내려놓고 주님의 손을 잡기 위해 연약한 빈손을 높이 들고 한 걸음 두 걸음 주님께로 다가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수업이란 책을 보면 저자인 엘리자베스 로스 퀘블러 여사를 찾아 온 한 40대 초반 여인의 간증이 주님을 찾아 나그네 길을 떠나온 우리들에게 작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주말 오후 이 여인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여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통체증이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미러를 보니 이와 같은 상황을 모르는 듯 계속 고속으로 달려오는 자동차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나갈 곳도 없고 옆으로 비켜 설 공간은 더 더욱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차는 전혀 상황을 모르는 듯 질주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 여인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이렇게 죽는구나 체념하고 운전대를 꼭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눈을 꼭 감아버렸습니다.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박살이 났습니다. 눈을 떠 보니 앞에 있던 차도 자기 차의 앞부분도 박살이 나 있었고 뒤를 돌아보니 자기 차의 뒷부분도 방금 자기를 들이 받은 뒷 차도 박살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와 같은 아수라장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자신은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멀쩡하였습니다. 병원으로 모두가 다 실려 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이것을 보고 기적이라고 합니다. 사고가 난 순간 핸들을 놓고 몸의 경직을 풀어버렸기 때문에 다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 이 여인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움켜 쥔 것을 놓았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2년간 외삼촌 집에서 사기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야곱의 타향살이는 문자 그대로 소망 없는 눈물이요 고통이었습니다. 남도 아닌 외삼촌이었지만 그는 야곱보다 한 수 위였습니다. 철저하게 한 청년의 노동력을 이용해 먹고 품삯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당했던 외삼촌댁에서의 고통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1:6-7)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이처럼 야곱은 남도 아닌 외삼촌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불 유익을 당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는 일에까지 외삼촌은 거짓말을 하여 14년이란 세월을 갈취해 갔습니다. 당시는 근친결혼이 성립될 때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라헬과 결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라반은 야곱에게 7년을 일해 주면 딸을 주겠다는 약속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7년을 두 말 않고 일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그 7년이 지나고 라헬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라헬은 주지 않고 라헬의 언니인 레아를 주었습니다. 깜짝 놀란 야곱이 외삼촌에게 항의하자 외삼촌은 또 다시 7년을 더 일해 주면 라헬을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야곱은 또 다시 7년을 더 라반을 위해 죽도록 일 해야만 했습니다. 무려 14년이란 세월을 보낸 후에야 야곱은 자신이 원했던 라헬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것은 그렇게도 긴 세월을 투자하고 얻었던 바로 그 라헬이 두 번째 아들을 해산다가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35:16-20)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신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 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나그네 인생 야곱의 슬프고도 아픈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세에 인생들의 삶이란 이렇듯 속이고 속으며 처절하게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누가 악하고 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생들이 마지막 종말에 겪어야 할 삶의 현주소입니다.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난 월요일(37) 한국일보에 게재된 뉴스를 그대로 옮겨 드립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 세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능해 볼 수 있는 섬뜩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20149월 어린이집 보육교사 A(42·)씨가 등산 동호회에서 알게 된 그는 자신을 법무부 6급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는 장성급 전직 군인이라고 했다. 유부녀 A씨는 자신에게 호감을 나타낸 한 살 연하의 이 남자와 지난해 4월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급기야 둘은 결혼을 전제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자녀도 있는 A씨는 이 과정에서 이혼까지 했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사위처럼 잘했다. 예비 장인이라며 환갑잔치까지 열어줬다. 아우디 차로 데이트도 다녔고, 해박한 법률지식은 그 남자의 매력을 더했다. 달달한 만남을 이어가던 지난해 5월 어느 날 그가 다급한 요청을 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냈는데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공무원 신분이라, 문제가 커지면 안 된다는 절박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돈은 주식투자에 묶여 있어 뺄 수가 없다며 처음에 2천만 원을 시작으로 도합 63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혼까지 한 여자는 어렵게 돈을 마련해 애인에게 갖다 줬다. 그렇게 불행의 서막이 올랐다. 사무관 진급을 하려면 윗사람들에게 선물과 청탁을 해야 한다며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수술로 입원해 병원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친구 주식투자금을 사기 당했다며 또 돈이 급하다고 했다. 결혼할 남자라고 믿었기에, 그때마다 A씨는 은행과 지인에게 돈을 빌려 급전을 마련했다. 이렇게 1년도 안 되는 시간, 남자가 여자에게서 가져간 돈은 15천만 원에 달했다.

다른 문제도 이어졌다. 그 남자는 지난 1월 중순 A씨가 길에서 다른 남자를 쳐다봤다는 이유로 '나만 바라보라'며 폭행했다. 고막에 구멍이 생길 정도로 다쳤다. 이전에도 종종 손찌검을 했다. 지난달 A씨는 자신의 이름이 애인의 휴대전화에 '사무실'로 돼 있단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A씨 몰래 A씨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은 사실까지 확인됐다. 의심을 시작하자 모든 정황이 수상했다. 그제야 A씨는 친구를 통해 법무부에 애인이 실제 근무하는지 확인했다. 남자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매일 그곳으로 출근한다던 그는 거기에 없었다. A씨는 지난달 26일 경찰에 B(41·무직)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경찰 수사결과 그의 이중생활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는 직업도 없는 사기꾼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건 그에게 처자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과 동거하는 기간인 지난해 7월 본부인은 그 남자의 아들을 낳았다. 정부 과천청사로 출근한다며 나갔지만, 실제로 간 곳은 본부인과 사는 집이었고 A씨는 정부(情婦) 신세였다. 부인에게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밤샘 근무를 한다고 속이고 A씨 집으로 갔다. 더 기막힐 노릇은 이미 그가 똑같은 수법으로 다른 여자를 울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1년도 안 된 것이었다. 무고한 두 여자를 감쪽같이 속여 온 사기극은 B씨가 구속되면서 막을 내렸다.]

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급기야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품삯도 제대로 쳐주지 않는 외삼촌 집을 떠가기로 결단하고 모든 가족들과 함께 야반도주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야곱이 자신을 떠나 도망갔다는 사실을 안 라반은 그 모든 형제들을 총동원하여 야곱을 추적하여 7일 만에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 라반에게 나타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와 같은 도우심으로 라반의 반격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야곱에게는 이제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형 에서였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은 참으로 많은 마음고생을 하게 됩니다.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 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는 말씀 속에서 야곱의 애처로운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기 하나의 몸만 건수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아내가 넷이요 아들들도 열한명이나 되는데 에서가 그 옛날 품었던 독한 마음으로 자신을 공격한다면 이 보다 더 비참한 비극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가족들과 종들과 양떼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얍복 나루에 남아 외롭게 하나님을 향하여 엎드렸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얍복 나루의 환도뼈 사건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에서의 분노를 녹여 주셔서 그렇게도 야곱이 두려워했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브니엘의 축복이었습니다.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 여정에는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두려움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들과 같이 진정한 나그네가 되어 타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 더욱 두려움이 많습니다. 재정적인 두려움과 사건과 사고가 너무나도 많은 다민족국가라 안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한 순간에 찾아오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도 많은 숱한 두려움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있는 방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곱처럼 그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우리들을 지켜 주시겠다고 친히 약속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121:5-8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나그네 인생 여정에도 야곱과 같이 소망이 넘치고 새로운 희망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야곱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나그네 인생의 험악한 길을 예외 없이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욕심을 내며 움켜쥐기도 하였고 외롭고 고달픈 타향살이를 수십 년이나 겪어야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도 아닌 형제를 두려워하며 남모르는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 누구도 야곱의 일생을 실패한 허무한 인생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이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섬기는 멋들어진 신자로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비록 외로운 나그네 길을 걸아야 했었지만 그 길목에서 반드시 함께 했던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바로 우리 하나님이 나그네 인생길의 해답이요 축복이요 모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그 어떠한 나그네 길의 위험과 고통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야곱과 같이 승리하는 왕과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화사한 봄기운이 피부를 자극하는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겨울처럼 춥고 바람 불고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야곱과 같이 스스로의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인생 여정에는 늘 이와 같은 매섭고도 찬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봄과 같이 우리들의 마음도 환경도 아니 지구조차도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야곱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의 족장으로 성경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덧 입어아만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오늘 우리들의 삶에 변화를 주거나 근본적인 역사를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 인생은 근본이 타락하였고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Selfish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에서, 야곱과 외삼촌, 야곱과 그의 자식들을 보더라도 이 말씀은 성경을 배경으로 하는 불변의 진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꿈에라도 소원하며 만나야만 합니다. 만약 야곱의 생애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인생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누가 야곱을 불행한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사나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당당하게 이스라엘과 성경 역사의 한 획을 긋고 간 위대한 인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야곱이 만났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만들어 놓았던 나그네 길의 핸디켑을 극복하고 승리자로서 우뚝 서서 우리들 자신도 우리들의 후손들도 한결같이 야곱처럼 승리하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오직 능력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디 오늘 복된 말씀을 받고 내일의 삶에 희망을 품은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야곱과 같이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아 멘

주후 2016313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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