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4일 주일낮설교 (행복을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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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4 April 2016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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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원하십니까?
4. 24, 2016
本文:신명기 10:12-22
說敎:崔 仁 根 牧 師
마릴린 몬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행복을 찾고, 찾고 또 찾았지만 완전한 행복을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행복은 살짝 지나갑니다. 무지개처럼 지나갑니다. 붙잡으면 현실이 아닙니다. 모래처럼 새어 나가 버립니다. 그것은 환상이고 환영이었습니다.”고 말입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도 탄식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여성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미모와 부귀를 다 가지고서도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채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비관하고 떠났고, 한 남성으로서 더 이상 더 가질 수 없을 만큼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서도 헛되다고 탄식하였다면 평범한 우리 인생들이야 더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우리들에게 조물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고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참 행복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모든 생사화복을 다 주관하시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십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늘 어리석은 인생들은 苦海(고해)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길지도 못한 생을 살아가면서 그렇게도 많은 고통과 불행 속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겸손히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친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참 생의 아름다운 행복을 얻어 가는 그런 복된 시간을 가지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부모님의 품안에서 자식들이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 어버이들의 소원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그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인생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마음을 모른 채 그 하나님께서 행복을 위해 친히 내려 주시는 처방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결코 그분이 주시는 행복의 진정한 열매를 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거듭 우리들의 하나님이 누구신지 천명하고 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기고 행복을 누리는 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실까요? 17절에서 모세는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신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과연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와 같으신 분이 우리들을 지으시고 이 세상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창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形像)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 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六畜)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 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떠나 어떻게 바로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생을 살아갔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다윗을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25:1-3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 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다윗은 당대에 가장 번성했던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전쟁에 능한 용사요 장사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을 향하고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상 연약한 자나 참으로 세상에 의지할 곳 없는 자가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고백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봅니다”고 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여기에서 밝히 배울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의지합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영혼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현실 삶에서 그 분을 또한 의지하고 있으니 그가 승리할 것은 뻔 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행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바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원수에게서 보호를 받고 삶의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으므로 수치를 당치 않으며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의지하는 그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현실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오늘날 우리는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제쳐 놓고서는 결코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맞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실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행복에로의 길을 우리는 바로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인 말씀으로 찾아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증거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아는 자라면 그분께서 처방하시는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실로 돌아와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병원에는 수많은 의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의사들이 다 한결 같이 병을 잘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큰 대학병원의 유명하다는 의사는 몇 달 전에 예약을 해도 만나기 힘듭니다. 이와 같은 문제가 심각해지니 정부에서 의료법을 개정하여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72사람 이상은 진료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였습니다. 하루에 72명으로 법으로 제한하였다면 그 전에는 과연 몇 사람을 보았다는 말일까요? 가만히 계산을 해 보니 점심도 먹지 않은 채 하루에 8시간 근무로 보면 한 시간에 9명을 보게 됩니다. 한 시간을 60분으로 계산하여 환자가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5분에 한 사람씩을 진료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는 의사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고 손도 씻지 않은 채 기계처럼 의자에 앉아서 환자만 계속해서 볼 때를 계산할 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단 5분 만에 환자의 상태를 어떻게 파악하여 질병의 유무와 치료법을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법으로 정해 놓은 사람이 그 정도였으니 법으로 제정하기 이전에는 1-2분에 환자 한 사람씩을 보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됩니까? 그 의사만 만나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맹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맹신하니 그 의사를 만나고 그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을 쓰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게 되는 길을 제시해 주는 위대한 분이 있다면 그분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다면 그 증거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앞서 다윗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는 분이라고 소개해 드렸습니다. 과연 그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었는지? 다음의 말씀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또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25:4-5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는 다윗의 바램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자신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길만이 승리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며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진정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을 원한다면 그 길을 따라 순종하며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목을 곧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행복을 위한 우리들의 삶의 기본자세를 먼저 겸손에다 두고 있습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곧 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교만한 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이는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무척 싫어하십니다.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 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웬만하면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있으니 바로 교만한 자입니다. 이렇게 목을 곧게 함으로 교만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니 그런 사람이 어찌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세는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행복을 위해서” 목을 곧게 하여 스스로 교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신의 모습을 조각한 상을 실은 나귀가 동네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거룩하신 신의 모습을 보고 공손하게 절을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귀 앞에서 절을 하자 나귀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절하는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두들 나를 이렇게 존경하여 절을 하고 있는데 나는 여태껏 내가 이렇게 위대한 존재인 줄 몰랐구나…. 이때 무척 지위가 높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지나가다가 나귀를 보고 절을 하였습니다. 주인보다 훨씬 훌륭해 보이는 어른이 절을 하는 것을 보자 나귀에게는 더욱 더 교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나를 존경하는데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때 주인이 회초리로 나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습니다. 꾸물거리고 있는 나귀에게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매였습니다. 그러자 더욱 약이 오른 나귀는 앞발을 들고 벌떡 곤두서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뻗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