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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6년 5월 1일 주일낮설교 (희망은 있습니다!)

2016년 5월 1일 주일낮설교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어린이주일

5. 1, 2016

本文:사무엘상1:1-8

:

[서울 서초구에 사는 초등학생 유모(8)군은 작년 9'전국 초등수학 창의 사고력 대회'를 앞두고 어머니 신모(40)씨 손에 이끌려 종로구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을 찾았다. 병원은 신씨에게 "대회 3일 전부터 매일 한 번씩 아이에게 '집중력 강화 주사'를 놔주면 뇌 혈류 순환이 좋아져 맑은 정신으로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며 수액 주사를 권했다. 유군은 한 번에 8만원씩 3일간 '집중력 주사'를 맞고 시험을 치렀다. 신씨는 "주사 맞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머리가 좋아지는 주사'라며 맞게 했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이후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맞히고 있다"고 했다.

자녀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학부모들을 겨냥해 병원들이 앞 다퉈 '두뇌 활성 주사'라고 하는 수액 주사를 내놓고 있다. 입시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가정의학과 원장은 "2000년대까지는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떨어진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포도당 성분 수액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요즘은 경시 대회를 앞둔 초등학생부터 중간·기말고사를 앞둔 중·고등학생까지 시험 성적을 '1'이라도 올리기 위해 '두뇌 활성 주사'를 맞는다"고 말했다.

본지가 대치동 학원가 주변의 가정의학과와 내과, 이비인후과 등 개인 병원 10곳을 조사한 결과, 7곳이 '두뇌 활성 주사''집중력 강화 주사'라는 이름의 수액 주사를 놔주고 있었다. 비용은 1회당 6~12만원으로, 포도당 성분의 수액(3~5만원)2배가 넘는다.

하지만 '두뇌 활성 주사'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많다. 두뇌 활성 주사의 주성분은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은행잎 추출물 '진코민'과 여러 가지 비타민 성분이다. 하지만 성분 대부분이 소변으로 배출되고, 몸에 흡수되더라도 효과가 몇 시간을 넘기기 어렵다고 의학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덕철 신촌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액으로 특정 성분을 주입한다고 해서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플라세보 효과(가짜 약을 투약했을 때도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일 뿐"이라고 했다.](이상은 426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 시대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오로지 성적입니다. 인성이나 사람됨의 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과연 이것이 자녀에게 기대하는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깨달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3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엘가나와 한나 그리고 브닌나가 그들이었습니다.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골에서 살고 있는 촌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아내를 두 사람 데리고 살았으니 하나는 한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브닌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나는 자식을 생산하지 못했고 브닌나는 자식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내를 두 사람이나 두고 살았기에 엘가나는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나도 자식을 생산하지 못한 고로 다른 여자 브닌나로부터 멸시를 당하며 사는 고통의 여인이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도 있고 남편도 있으며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나 성경에 기록된 바로는 한나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에게나 남편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사는 행복한 여인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세 사람들을 중심으로 2016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아 희망은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도 고통과 불행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면 그 삶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희망으로 어떻게 인생을 복되게 살아갔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다른 것은 바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자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하나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자살하게 됩니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철학자 니체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죽었다고 선언한 그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나라는 여인을 만나보게 됩니다. 그녀는 참으로 삶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여자로서 아이를 낳지 못한 고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삼상1: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는 그녀가 먹지도 못하고 울면서 세월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 산골에서 살다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찾아갔던 실로에서 그녀는 제사장 엘리가 머물고 있는 성전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삼상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 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 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대로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사무엘이라는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그녀는 그 아이의 젖을 떼자말자 바로 하나님께 갖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전무후무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절망 할 수밖에 없었던 한나는 엄청난 희망을 안고 이 땅의 그 어떤 사람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삼상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브닌나는 자식을 낳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어떤 삶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였고 아이를 낳았으며 고통 가운데 있는 한나를 괴롭혔다는 기록만 이 땅에 남기고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에서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일의 우리들의 삶에 과연 무엇을 이 땅에 남길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한나와 같이 고통과 좌절 속에 머물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희망의 줄을 붙잡는다면 우리들도 한나와 같이 얼마든지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지금 어떠한 희망의 줄이 있는지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찾아 갈 교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나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동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브라임 산지를 떠나 실로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녀는 그와 같은 예배의 장소에 가서도 브닌나의 독한 방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인 엘가나는 그녀에게 더 많은 제물을 줍니다. 브닌나보다 갑절이나 더 주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사랑으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삼상1: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머물고 계시는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하였습니다.

삼상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한나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꿈에라도 소원하였던 사무엘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우리들의 생명입니다. 이는 그 교회에 하나님께서 머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때 윈스턴 처칠은 잔인한 나치 독일과 선전포고를 하고 대주교인 윌리엄 템플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부탁하였습니다. 대영제국을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뿐이시니 주교께서 온 나라의 성도들과 백성들에게 호소문을 내보내고 기도를 부탁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주교가 방송에 나가 이와 같은 사실을 호소하고 모든 백성들은 다 교회에 모여 기도를 시작하자고 외쳤습니다. 이로 인해 온 영국 백성들은 교회로 몰려갔고 기도의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하여 악랄한 독일 나치를 기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도 기도할 교회와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나 곁에 머무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가깝게는 남편 엘가나가 있고 멀게는 자신을 온통 못살게 구는 브닌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신을 술에 취했다고 책망하는 미련한 종 엘리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한나를 사랑하고 염려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엘가나였습니다. 엘가나란 뜻은 하나님이 차지하신다는 것입니다. 보통 남자 같으면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브닌나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보다 더 사랑할 것입니다. 하지만 엘가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아준 브닌나보다 한나를 더 많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삼상1:4-5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그렇게 사랑해 주는 남편은 단순한 육신적인 남편만이 아니었습니다. 엘가나를 이 시대에 영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우리들을 사랑으로 독차지 하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엘가나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던 여인 한나를 이 시대의 고통당하는 성도라고 본다면 각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엘가나는 하나님의 모습이신 것입니다. 고통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축복이요 희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처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계시는 한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약속의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처럼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았다가 실패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고 기대는 자들을 한 순간도 외면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라고 말입니다. 그가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는 참으로 희망이 없었습니다. 작은 몸 하나 제대로 숨길 데 없는 황량한 이스라엘 바닥에서 3천명이나 정예된 군사를 이끌고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 왕 앞에서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23:1-2,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 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지켜 주시는 자들은 행복한 사람이요 또한 내일에 넘치는 희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눈앞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허망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적인 현실이 지난 28일 목요일 수원지법의 판결로 나타났습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자료를 그대로 게재해 드립니다.

[몰래 낳은 아기를 목 졸라 살해하고서 대학생 남자친구에게 맡겨 하천에 유기한 여고생 커플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4단독 김용신 판사는 28일 영아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여고생 A(18)양에게 장기 8월 단기 6월을, 대학생 남자친구 B(20)씨에게 징역 6월을 각각 선고했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영아의 생명을 침해한 범행으로 중대하며 그 수법 또한 잔인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피고인에게 이 사건 범행의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우지 않을 수 없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A양은 작년 1214일 자정께 경기 안산시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가족들이 잠을 자는 사이 딸을 낳고서 딸의 입을 막고 고무줄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후 A양은 아기 시신을 비닐봉지에 담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B씨에게 넘겼고, B씨는 같은 날 오전 210분께 집에서 1가량 떨어진 하천에 아기 시신을 버렸다.

B씨는 당시 시신을 낙엽으로 덮어 불을 붙이려다가 실패하자 시신을 하천에 던졌다.](연합뉴스 428일 자 게재)

어린아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오늘은 2016년도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이요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을 가로막지 말라고 엄명하셨던 것입니다.

19: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 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어른보다 더 귀하게 훈련하고 있습니다. 타성과 세상에 찌들은 어른들은 결코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훈련해 놓으면 그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믿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속담에서도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형들은 다 들판에 나가서 양을 치고 있었지만 요셉은 아버지 품에서 신앙으로 잘 훈련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떠한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꿋꿋하게 자라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습니까? 어린아이가 희망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케이스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깨달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영원히 어린아이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른들의 놀라운 희망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와 같이 하나님의 복스러운 소망으로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과 부모들은 최선을 다해 말씀과 기도로 저들을 훈련하고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가난하여 오두막과 같은 집에서 자라나는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고 풍족하지 못해 아이에게 좋은 것은 해줄 수 없었지만 그 속사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도록 신앙으로 훈련하였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마켓에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가난하여 산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마켓은 매우 먼 곳에 있었습니다. 아이가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아 왔는데 1센트가 더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먼 곳까지 갔다 온 아들에게 선 걸음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다음 기회에 돈을 돌려보내도 되지 않습니까? 그 먼 곳까지 또 다시 가라고요?” 하면서 안 가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정직하게 교육하고 훈련하였기에 나이 10살에 어머니까지 여의고 불쌍하게 자랐으나 끝내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라고 무조건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였을 때만 그렇게 훌륭한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번 덴버에서 있었던 나이스크 심포지엄에는 영국에서도 목사님들이 왔었습니다. 영국에서 온 목사님들이 영국 교회의 현실을 잘 설명해 주었는데 대부분의 영국 교회는 문을 닫았고 그 교회들을 이슬람들이 사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국 교회는 곧 이슬람화 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유독 하나의 흑인교회는 지금 12,000명이 모이는 큰 성장을 하고 있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 교인들의 80%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소망 없는 나이지리아에 선교하러 가서 굶주리고 버려진 어린아이들을 불러 모아 공부를 시키고 장학금을 주어 유학을 보내어 주의 종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지금 교회의 주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선교사들의 놀라운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어린아이는 내일의 꿈이 되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복된 어린이 주일을 맞아 희망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은 말세를 맞아 어디를 보아도 절망만 넘쳐나고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도 넘치는 희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교회가 살아 있고 그 교회를 친히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일의 우리 교회와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가야 할 소중한 어린아이들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그와 같은 소망찬 희망이 있습니다. 한나와 같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희망도 없고 고통만 넘쳐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찾고 기도로 하늘 문을 여는 한 희망은 넘쳐나는 것입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믿음으로 무장하고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처럼 복스러운 믿음으로 내일에 희망을 안고 오늘도 힘겹고 어렵지만 소망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그런 희망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아 멘

주후 201651

어린이 주일 낮 예배 설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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