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1일 주일낮 설교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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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Monday, 12 March 20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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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3. 11, 2012
本文:누가복음5:27-32
說敎:崔仁根牧 師
1969년 영국의 헤롯 백화점에서 엔서니와 쟌은 애완용으로 새끼 사자 한 마리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들은 애지중지 1년 동안 사자를 잘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자의 이름을 크리스티앙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그 사자는 어미 사자만큼 크게 자랐습니다. 도저히 집에서 키우기에는 너무 커서 할 수 없이 그 사자를 아프리카 케냐의 국립공원으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들은 자기들이 키웠던 크리스티앙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케냐까지 크리스티앙을 보러 갔습니다. 주위에서는 사자가 주인을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만류하였습니다. 만일 사자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크리스티앙을 찾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사자가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정들었던 그 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 심정으로 사자를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사자들과 맹수들이 머무는 케냐의 국립공원 동산 언덕에서 그들은 사자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크리스티앙이 언덕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티앙은 그 두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로 천천히 달려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자는 그의 주인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안겨왔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연인들처럼 그들은 하나로 엉겨서 포옹하고 그리움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동물일지라도 사람처럼 주인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왔습니다. 그 날 이후 이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책과 CD와 동영상으로 전 세계에 놀라운 화재거리가 되었습니다. 2008년도에는 You-Tube에 올라와 무려 5천만 번의 조회를 거듭하면서 전 세계에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맹수인 사자도 주인을 알아보고 그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인간이 주인을 배신하고 부모를 배신하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으니 과연 말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들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한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눅5:27-28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당시 그렇게 큰 돈벌이의 근본이었던 세관이란 직장을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한 순간에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그 말씀 한 마디만 믿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 나설 수 있단 말입니까? 요즘 우리들의 상황으로 대비해 보면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땅에 그 누가 한 순간에 자신의 직장이나 사업장을 버려두고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신다고 따라 나설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12명이 모두 이렇게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다고 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주님의 말씀은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들은 순수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이처럼 우리들을 부르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말씀 속에서 새로운 변화와 삶의 목표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따르라!
우리는 지난 주일 우리 예수님께서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들을 부르시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
는 말씀을 말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려놓아 주시지 않는다면 이렇게도 무거운 짐에 눌려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렇게도 다정하게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우리들의 그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주시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주시는 것은 그냥 이 세상에서 한 평생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게 하시려는 뜻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 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15-18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 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고 자녀 삼아주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평안케 하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워주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아깝다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 니하노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처럼 놀라운 사명을 가슴으로 깨닫고 뭔가 우리들도 받기만 했던 삶에서 탈피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고 생명을 구원하는데 동참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말씀에 큰 도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랜 세월 교회에서 성도들을 지도해 오면서 느낀 한 가지 중요한 결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서든지 사람에게 대하여서든지 희생하고 봉사하며 섬길 줄 아는 사람들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만 그를 위하여 섬길 수도 있고 헌신할 수도 있고 희생할 수도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상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없으면 결코 함께 하거나 수고하거나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 못하는 사자 크리스티앙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짧은 재회의 한 순간만 찍은 동영상을 보았지만 저는 그들이 함께 생활했던 긴 시간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비록 맹수 중의 맹수인 동물이지만 그 사자는 달랐습니다. 주인의 사랑에 대한 많은 감사가 그 속에 있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속에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는 이처럼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실을 그 누구보다 더 많이 경험하고 체험하였던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이와 동일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주님을 위해 집안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던 세리 마태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눅5:27-29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자신을 불러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 바로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마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을 수 있었고 또한 많은 경비를 들여 큰 잔치를 배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사람 속에 머물고 있는 주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사람도 이처럼 감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과 사랑을 좋아하십니다. 이것이 없이는 절대로 상대의 진실과 은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 구약을 통틀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충성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속에서까지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서도 감사를 드렸으며 욥은 10남매를 잃어버리고 그 많던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온 몸이 병들어 잿더미 위에 앉게 되었어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그들에게 주셨고 우리들에게도 한 가지 중요한 축복을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 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사람과 하나님 앞에 사랑 받고 은총 받고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사람을 향해서든 하나님을 향하여 늘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그런 근본이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 김국재장로님 댁에서 고 김계윤권사님의 3주기를 맞아 김권사님의 후손들과 우리 교회의 리더들 50-60명이 모여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다들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서 모인 시간이라 음식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큰 잔치를 마련하느라 수고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 속에 느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냥 들어오는데 전연정집사님이 손에 꽃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는 보았습니다. 그렇구나! 이런 자리에 그냥 오는 것보다는 저렇게 꽃이든 과일이든 뭔가를 들고 와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명세기 우리교회의 수석 장로님의 어머니시고 또한 우리들이 평소에 많이 사랑하던 권사님의 추모예배 시간인데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가는 것 보다는 저렇게 예의를 지킬 줄 아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우리들만 모이는 것도 아니고 김장로님의 모든 형제자매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다 모이는 곳인데... 우리들의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작은 정성이지만 남들이 볼 때 칭찬할만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말만으로 사랑한다는 성도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준비 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에서 더욱 사랑으로 연합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멋이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버릴 때는 더 나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가난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소꿉장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요점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닌텐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값비싼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오로지 흙과 돌과 깨진 그릇들을 소재로 한 소꿉장난이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그 소꿉들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놀이의 소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소중한 놀이의 소재를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시장 갔다가 아이스케이크나 풀빵이나 사탕을 사와서 부르시면 그 소중하던 소꿉도 다 버리고 뛰어가곤 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귀하다고 여기던 것을 과감하게 버릴 때는 더 나은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새 차를 샀을 때, 새 집을 샀을 때는 거기에 버금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지난 날 꼬질꼬질하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할 만하던 모든 것들을 마치 배설물과 같이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버리는 이유를 성경에 기록해 두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 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 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 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실로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고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하늘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이처럼 과감하게 그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주님을 위해서 담배 하나도 끊지 못하고 술 하나도 끊지 못하고 도박 하나도 끊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진정한 성도로서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는 천국의 성도라면 오늘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 화답할 수 있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빈손으로 주님을 쫓아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옳지 못한 습관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활이나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우리들의 육신적인 죄악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진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에 합당한 삶의 흔적을 보이라고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나를 사랑하 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들이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해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가져야 하겠고 그 계명에 기록된 대로 실제로 사랑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이 선언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들도 그 사랑을 덧입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화답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불러주셨고 우리들의 그 모든 무거운 짐과 수고를 내려주셨으며 무엇보다도 지옥 형벌에서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할 우리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천국 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이젠 우리들도 화답하고 보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말 못하는 사자 크리스티앙이 주인의 그 사랑을 밀림의 숲 속에 돌아가서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짐승도 이렇게 보답하고 화답하는데 만물의 영장이요 예수님의 피로 구속 받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그 사랑에 화답하지 못한다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성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리 마태는 자신의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아갔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컴퓨터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이 종은 어느 날 컴퓨터의 제어판에 들어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필요 없는 것들은 지워버리고 좀 깨끗하게 컴퓨터를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눈에 익지 않았던 한 프로그램이 있기에 지워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제 컴퓨터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여기고 지워버렸던 그 프로그램은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인터넷 케이블을 내 컴퓨터와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모르면 이렇게 중요한 것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도 매우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주님은 평소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과 그러한 자신이 살아가야 할 험난한 미래를 내다본다면 주님 없이는 안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어리석은 인생들에게 일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눅5: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병든 사람도 죄인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건강하고 밥 잘 먹고 돈 잘 벌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잘 사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의 모든 것을 붙잡고 계시는 주님께서 얼마나 가소롭고 한심해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생보다 더 어리석고 미련하고 가증한 존재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선지자 예레미야는 선언해 두었던 것입니다.
렘17:9-1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 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 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 석은 자가 되리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항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병든 환자이며 죄인이며 주님 없이는 소망이 없는 가련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말씀 앞에 겸허히 서서 말씀을 받으며 신선한 도전과 깨달음을 기다라고 있는 것입니다.
2년 전 이 종은 부산에 있는 감람산 기도원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저녁 집회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 와 쉬고 있는데 중후한 50대 후반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은 울산에서 살고 있었으며 현대에서 높은 지위에 있어 무엇 하나 부족한 없이 잘 살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속이 이상해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울산에서 부산 감람산 기도원으로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집회 때 큰 은혜를 받았다며 자신들을 위해 안수기도를 해 줄 수 있겠느냐며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 사귐을 가지게 된 이후 그분들이 서울 아산병원으로 수술하러 왔을 때도 병원에 찾아 가 기도해 드리고 그 이후에도 말씀과 사랑으로 교제했더니 그것이 고맙다고 지속적으로 연락해 와 지금까지 교제하며 축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분들이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오늘 본문에 기록된 우리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병든 자라야 의원이 필요하다.”는 이 놀라운 말씀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매우 강한 것 같아도 매우 약합니다. 사람이 병들고 죽으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유익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을 본 듯 깨닫고 평소에 우리 자신들이 병든 자이며 죄인이어서 우리 주님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군 다윗과 같이 그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고 그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그 하나님을 이 세상의 그 어떤 보배보다 더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병들고 연약할 때 다윗과 같은 은총과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16:1-2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 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16:8-9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 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 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가 엄마가 없으면 살아날 수 없듯이 우리 주님이 안 계시면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항상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그 분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바라고 항상 그 하나님 앞에서 사랑 받고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지혜롭고 반듯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그분만이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들의 기대를 만족케 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심은대로 거두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은총과 축복을 기대한다면 거기에 걸맞는 신앙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리시고 복 주신 만큼 우리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화답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혀야 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봄의 계절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으로 우리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고 몸과 마음이 더욱 평언하고 건강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우리들도 마태와 같이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고 더 좋으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우리들의 육신적인 욕심은 잠시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것은 우리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잘난 줄 알고 교만과 오만에 눈이 어두워 자신들이 병든 자들인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지 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어리석고 불쌍한 저 세상으로 우리들이 담대히 나아가 생명의 주님을 가르치고 전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오늘은 주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조용히 사도 바울과 같이 이 복된 기회를 가슴으로 맞아서 죽도록 충성하고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은 덤으로 받아 누리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3월 11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