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5일 주일낮설교 (배워야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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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5 May 2016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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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야 제자입니다!
스승의주일
5. 15, 2016
本文:마태복음11:25-30
說敎:崔 仁 根 牧師
얼마 전 페이스 북에 업로드 된 동영상 하나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고 있어 여기에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I am blind, Please help me(나는 장님입니다. 나를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쓴 보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동전을 던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그가 세워 놓은 보드를 뒤집어서 새롭게 글귀를 써서 세워 놓고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돈을 놓고 갔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It's a beautiful day, but I can't see it(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볼 수가 없네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인생을 내 생각대로 고정관념에 젖어 살지 말고 말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며 배워야 할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자들도 불신자들도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만 살아갑니다. 무엇인가 가르쳐 주려고 하면 잔소리로 여기거나 간섭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큰 발전과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증거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진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배움에도 조건이 있고 그 배움에는 축복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조건은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하는 것이고 축복은 쉼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2016년도 스승의 주일입니다. 이와 같은 귀한 스승을 삶의 맨토로 모시고 겸손하게 배우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가장 우리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쉼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배워야 제자입니다!
이 세상에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배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고 발전이 있으나 배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변화나 역사나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하게 허리를 굽이고 누구에게나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친히 자신에게로 와서 배우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친히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배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에게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배우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으므로 스승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스승이 없는 사람보다 어리석고 가엾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누구의 조언이나 가르침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쓸쓸히 고민하고 불안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그 보다 더 가련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세상에서 마음에 스승을 두고 그 스승을 통해 배우고 따르며 인생을 복되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의 인생의 불행이요 비극인 것입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귀한 스승을 모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초로 복된 진리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진 고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실 때 우리들을 참으로 특이하게 부르시고 호칭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라는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인생들을 부르시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오래 전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났던 인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길이 바로 이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만 함을 주님께서 훤히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인생들은 이처럼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이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예외 없이 우리 인생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며 생명 그 자체가 되시는 주님께로 돌아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진리가 바로 이렇게 풀어지는 것입니다. 모르고서 유익을 얻거나 모르고서도 행복하게 되는 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스승의 길을 따라가도 제대로 된 삶을 살기 힘드는 이 시대에 제 잘난 맛에 도취되어 경거망덕하게 되면 스스로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이기 때문입니다.
한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 죽고 못 살만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같이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부모님들이 완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남자의 조건이 부자인 부모들에게 전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남독녀인 그 딸은 아버지를 밤낮으로 조르고 심지어는 단식까지 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자식 이길 부모 없다고 결국은 부모가 지고 결혼을 승낙하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남자의 건강진단서, 가족증명서 등 몇 가지 객관적인 사실을 알 수 있는 서류를 조건으로 내 세웠습니다. 마침내 그 서류를 준비하고 여자의 부보님과 상견례를 하는 날이 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자리에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마저도 꺼져 있어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별 생각 없이 여자 쪽 부모님께서 요구하시는 가족증명서를 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이미 결혼 한 것으로 나와 있었고 자신의 상대자는 옛날 애인이었습니다. 그 서류를 들고 옛날 애인을 찾아 가 보니 그 애인은 다른 남자랑 약혼한 상태로 이미 임신하여 배가 불러 있었습니다. 그 옛날 두 사람이 너무나도 좋아서 한창 연애하고 있을 때 장난삼아 “우리 결혼하자” 하고 서로가 서명을 한 결혼신고서가 있었고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홧김에 그것을 접수해 버렸던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사실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그 남자랑 결혼하겠다던 여자도 돌아서 버렸고 다른 남자랑 결혼하려는 옛 애인의 아이는 낳자말자 자신의 아이가 되는 희한한 일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옛 애인과 결혼하려던 남자도 황당하기는 매 한 가지였습니다. 이 남자는 혼비백산하여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법원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동분서주 하고 있으나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단순한 것 같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빚어진 비극인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개념 없는 젊은이들처럼 인생을 장난삼아 살아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래저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소중한 인생을 허덕이며 낭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요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소중한 인생을 고통과 무거운 짐으로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진정한 안식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가슴으로 깨닫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멍에를 매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냥 막연하게 와서 배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매고 와서 배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다른 곳에서는 조금 더 강하고 무겁게 주님을 따를 자의 조건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든지 주님을 배우든지 하나의 조건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멍에를 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 하시는 바 “멍에”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멍에”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모든 규범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열매를 맺히게 될 때 비로소 우리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배우기를 원하면서 세상의 모든 풍조를 다 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을 유혹하고 부르는 모든 것들을 잘라버리고 절제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바 명령과 품위를 먼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지극이 마땅한 상식이요 신자의 바른 도리입니다. 가령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기를 원하며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의 진리를 배우면서 세상에서 술을 먹고 운전하거나 도박장에서 노름을 하거나 마약이나 세상의 길을 쫓아간다면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곧 시작되는 브라질 리오올림픽에 마땅히 대한민국의 수영대표선수로 나가야 할 매달권의 박태환선수가 대표선수에서 탈락되어 개인도 나라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의 박지원원내총무까지 나서서 박태환선수의 리오 출전을 선처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한국수영연맹에서는 실정법을 어기고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실력만 있다고 박탈된 자격을 되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잘라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운동을 하고 매달을 따려고 해도 마땅히 그 매달을 획득하기에 합당한 규범을 지켜야 하고 규칙대로 따라야 합니다. 하물며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거기에 합당한 규범도 없이 배우고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요구 하시는 바 규범을 따르고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혀야 할 것이라고 조건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지난 달 중국에서 식당업에 종사하던 북한 사람들이 북한의 실상을 똑바로 직시하고 더 이상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13명이 집단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 이후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중국과 북한 국경지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에게 북한의 납치 및 살인의 테러가 있을 수 있으니 매우 조심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지난 4월 30일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테러들로부터 한충렬 선교사가 살해를 당하여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하시겠습니다.
[지난달 30일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를 돕다가 살해된 조선족 한충렬(49) 목사가 북한 여성 김 모(27) 씨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북한에서 급파된 국가안전보위부 반탐(反探·간첩색출) 요원 3명에게 피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13일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공안이 한 목사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확인한 결과, 피살 직전 북한 혜산시에 거주하는 27세 여성 김 씨의 전화를 받고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며 "사건 현장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김 씨와 북한 보위부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3명의 모습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숨진 한 목사는 1993년 북·중 접경지역인 압록강 변 중국 지린(吉林)성 바이산(白山)시 창바이(長白)현에 장백 교회를 설립하고 탈북자들을 도우면서 북한 선교 및 구호활동을 벌여왔다.
창바이 현은 김 씨가 거주하고 있는 북한 혜산시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국경도시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나 밀무역 루트 등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최 대표는 "김 씨는 한 목사의 북한 선교와 구호활동을 도왔던 인물로 추정된다"며 "중국 공안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등에게 신변안전에 대한 주의 권고를 내린 상황에서 한 목사가 김 씨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것은 한 목사가 김 씨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대북 인권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북한 내에 조력자가 반드시 있다"며 "김 씨도 이런 조력자 중 한 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김 씨는 한 목사의 북한 선교 활동 등을 돕다가 보위부에 적발된 것으로 보인다"며 "보위부가 김 씨를 위협해서 한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내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안은 김 씨와 한 목사를 살해한 3명이 모두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공안은 김 씨의 북한 내 거주지까지 확인했으며, 북한에 (중국 공안) 조사원을 파견해 김 씨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북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북한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인권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납치, 살해하는 만행을 벌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며 "1995년 안승운 목사, 2000년 김동식 목사 피랍에 이어 이번엔 한 목사 살해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5월13일자 한국일보).
이렇듯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합당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올바른 길을 따라서 해야 하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룰을 따라야 실력이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아무리 신령한 일이라도 질서를 따라야 소중한 열매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멍에를 매고 배워야 하며 비록 무겁고 힘들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야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혀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쉼을 보장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친절하게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 인생들을 부르신 다음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쉼”입니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처럼 소중한 쉼이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쉼을 보장하시고 축복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쉼은 평안입니다. 평안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오직 우리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권세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진정한 쉼과 평안은 누려본 자만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엘리샤 올브라이트 호프만 목사님이 레바논에서 시무하던 교회에서 고통에서 울부짖는 한 여성도를 심방하러 갔습니다. 그 여인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어찌하면 좋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하면서 정신없이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호프만 목사도 어떻게 위로하고 어떻게 그 여인을 달랠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한참이나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목사님을 인식하고 그 여인은 또 다시 울부짖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하면서 말입니다. 호프만 목사님은 참으로 그 여인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다가가 그 여인의 두 손을 꼭 잡고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좋으신 주님께 맡기십시다.”하면서 마태복음 11:28의 말씀을 소개해 드리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 여인에게 권면하였습니다. “목사인 제가 기도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통 중에 있는 자매님 자신이 마음을 열고 주님께 모든 무거운 짐과 근심 걱정을 호소하고 맡기십시오.”하고 스스로 기도하도록 권했습니다. 마침내 그 여인은 소리 내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자신의 고통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까지도 쏟아놓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부르짖고 기도한 후에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이 천사같이 환하게 밝아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인의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호프만 목사는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저렇게 울부짖으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을까? 그 모든 사람들이 저 여인과 같이 주님께 맡기고 편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호프만 목사는 집에 돌아오자 말자 성령님께서 영감을 주시는 대로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찬송가 363장의 가사입니다.
네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주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해결하여 주시고 주님을 배울 때 주님은 우리들의 영안을 열어주시며 주님의 멍에를 맬 때 주님은 우리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허덕이며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님을 바로 배우고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을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들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 주시며 우리들의 마음에 세상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배우는 것은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알기를 원하면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을 배우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배워야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만 될 수 있다면 우리 평생에 뭔들 못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이름 있는 인물의 제자만 되어도 평생 어깨에 힘주고 사는데 예수님의 제자만 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가문의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배우고 쫓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의 제가다 되려면 조건을 충족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바 멍에를 매어야 하고 우리들에게 지워 진 십자가를 져야 하며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서 길을 찾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올바로 배우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쫓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우리는 스스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 받고, 주님만이 주시는 진정한 쉼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축복입니다. 오늘 복되고 귀한 스승의 주일을 맞아서 예수님을 보다 더 가깝게 모시고 섬기는 그런 복된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년 5월 15일
스승의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