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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6년 5월 22일 주일낮설교 (여호와께서 붙드시는 자!)

2016년 5월 22일 주일낮설교 (여호와께서 붙드시는 자!)

여호와께서 붙드시는 자!

5. 22, 2016

本文:시편37:16-25

:

 

기계체조계의 대한민국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어려서부터 열정을 쏟아 부었으나 훈련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므로 하반신 마비라는 청천병력과 같은 시련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그와 같은 역경과 좌절의 벽 앞에서 천지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새롭게 꿈을 키우며 공부하여 뉴욕대학과 컬럼비아의대를 졸업하고 하바드에서 인턴을 받고 유능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죤스 합킨스의대에서 자신처럼 사고를 당하거나 장애가 되어 낙심하는 영육을 고치는 이 시대의 슈바이처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는 놀라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이승복박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 여정에서 절망을 하거나 낙심을 해야만 하는 그런 안타까운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때 어떤 사람은 영원한 인생의 낙오자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그 고통을 역이용하여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갈림길에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서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절망의 때에 이와 같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기적과 같은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 이처럼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와 있는 우리들은 정녕 복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지난 19(목요일) 현직 검사가 일이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해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신문에 게재된 내용을 그대로 여기에 첨부해 보겠습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 김 모 검사(33·사법연수원 41)19일 오전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시신을 수습한 서울 양천경찰서는 자필로 수첩에 쓴 2장 분량의 유서에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다는 등 일이 많아서 힘겹다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왔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전날 밤 업무를 마치고 늦게 퇴근한 김 검사가 다음 날인 19일 오전 출근하지 않아 동료 검사가 집으로 찾아가 보니 숨져 있었다고 전했다. 검찰과 경찰은 김 검사가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맨 점 등에 따라 자살로 추정하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남부지검에 부임한 김 검사는 그해 지검에서 마련한 신임 검사 부모님 초청 행사에 어머니를 모시고 참여할 정도로 검사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사건을 전담했던 김 검사는 신임이지만 군법무관 경력을 인정받아 다른 신임 검사보다 비교적 중대한 사건을 맡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제 사건이 쌓이고 상사의 업무 지시 등에 스트레스를 받아 주변에 힘겨움을 하소연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동아일보 19일자)

이 세상에서 직장이나 사업을 하면서 힘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하고 인성과 내성을 준비하지 못하고 시험만 잘 쳐 검사까지 되었으나 결국은 인생을 이렇게도 허무하게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롭게 일어나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우리 모두 환경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놀라운 은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붙드시는 자!

이 세상에서 다윗처럼 처절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빼어난 믿음과 환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많은 고통을 당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22:14-15)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단순하게 이 한 말씀만 생각해 보아도 그가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낙심하다가 결국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충성했던 사울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나락에 빠져야만 했었고, 남도 아닌 자신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반역을 당하여 또한 죽을 뻔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믿었던 시므이와 요압 장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그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고백하며 남긴 말씀이 오늘 시편 37편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인생에 파도처럼 다가오는 문제와 고통을 오직 하나님을 통하여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인하여 고통의 강을 건너고 푸를 초장 잔잔한 물가에서 인생의 낙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앞서 이승복박사의 영상을 보았듯이 우리들의 삶에 예고 없이 닥치는 위기를 능히 극복하고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님을 만나서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소유에서 자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의 넉넉함으로 삶의 낙을 누리고 성공의 척도로 삼으려고 합니다. 물론 많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인생의 낙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삶의 성공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

는 말씀이 이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인생의 낙과 성공은 결코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말씀은 천 년이 지나도 틀리거나 그릇됨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말씀 그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2:15-21)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리 예수님께서 바른 삶, 복된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셔도 끝까지 그 말씀은 부인하고 오로지 돈만 있으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과연 돈이면 행복하고 만사형통할 수 있겠습니까? 단순한 논리로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대한민국의 대단한 변호사 최유정, 홍만표만 보아도 당장에 알 수 있습니다.

최유정 변호사는 부장판사 출신으로 변호사를 개업하고 단 2년 만에 200억 원의 돈을 벌었던 인물입니다. 홍만표 변호사는 검사장출신으로 변호사를 개업하고 단 2년 만에 91억 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랬다가 지금 감옥에 가 있습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와 같은 배경으로 단숨에 벼락부자가 되었는데 왜 그들은 인생의 최후가 이처럼 비참한 가십거리의 대상이 되고 결국에는 감옥에 가 있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요? 오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비록 적은 돈이라도 악한 방법으로 떼돈을 버는 것보다 낫다는 우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해서 열심히 돈을 법시다! 하지만 그 돈의 노예가 되거나 그 돈 때문에 사람을 잃고 하나님의 손에서 멀어지는 그런 어리석은 삶은 살지 맙시다!

저는 이번 총회에 가서 참으로 놀라운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감동되고 도전되고 부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총회 둘째 날 새벽기도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나성열린문교회 당회장인 박헌성목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한식을 좋아하시면 호텔에서 드시고 양식도 괜찮으면 저랑 같이 조용한 식당으로 가십시다.” 그래서 물론 한식을 좋아하지만 식사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사모님이 젊은 여성 한 분과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젊아 보여 처음에는 목사님의 딸인 줄 알았는데 그 교회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담임 박목사님이 그 여집사를 소개하는데 놀라왔습니다. “최목사님, 이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가장 헌금을 많이 하는 아무아무개입니다.” 새파랗게 젊게 보였으나 뜻밖에도 나이는 52세였고 그 교회에 반주자였습니다. 총회 동안 새벽 내내 피아노와 오르간을 오가며 참으로 아름답게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다 좋은데 어떻게 이 여성이 3천이 넘는 성도들 중에서 헌금을 가장 많이 할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더욱 이 종을 놀라게 한 것은 그 헌금액이 자그마치 년 70-80만 불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교회의 1년 예산이 70-80만 불이나 되는 교회는 전체 이민교회의 1%도 안 됩니다. 그런데 한 개인이, 그것도 한 여집사가 이렇게 한다니 자랑 할 만하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도 교회 반주자로 봉사자로 새벽기도로, 섬기는데 1등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LA애서 최초로 한인은행을 세운 분이시고 재산이 많아 자손들이 다 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이 많아도 없는 듯 오직 하나님만 중심으로 사는 것,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돈이 없어도 있는 듯 하나님과 사람을 기쁨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렇게 남은 인생을 오로지 하나님 중심으로 자유하며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이 세상에는 7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LA만 해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예배당에도 사람으로 넘쳐나고 식당에도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공항에는 명실공이 인간천지였습니다. 티켓팅을 하고 검사대를 통과하기 위해 선 줄이 끝이 없었고 한도 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을 종합하면 딱 3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자기가 잡은 사람들, 하나님의 손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붙잡힘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이 두 손을 꼭 붙잡아 주시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은 과연 이 세 부류들 중에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신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은 과연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그의 인품과 신앙과 도리를 잘 알고 있었던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을 향해 한 마디로 정리해서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 쌓인 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삼상25: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과연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 숨기운 자였으므로 골리앗의 칼날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사울 왕의 서슬 퍼런 창칼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압살롬의 잔인한 배신의 칼날에서도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보호 받고 쓰임 받고 축복 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땅의 인생들은 결코 우리들의 손을 잡고 승리의 길로 축복된 길로 인도해 주지 못합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불신의 시대요 이기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이 가족이요 친구라는 통계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20일자 조선일보 헤드라인에 이와 같은 사실이 게재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못 믿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라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왔다. 다음소프트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한국인이 신뢰하는 인물 톱 10’ 자료를 20일 열린 소비자심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공개했다. 이번 빅데이터는 최근 35개월간 국내 인터넷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53000만 건의 글을 토대로 추출한 정보다. 자료에 따르면 의심되는 사람 톱 10’1위는 남편이 차지했다. 반면 아내10위권 내에 들지 않았다. ‘남편뿐 아니라 아빠8위에 올랐다. 결혼한 한국 성인남성은 아내와 자식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못 믿겠다는 남편에 이어 의심되는 사람은 친구(2)’직원(3)’이었다. 전문직 종사자 중에는 유일하게 의사(6)’10위권에 들었다. 이어 거짓말쟁이 톱 10’에서는 엄마2위를 차지했다. ‘대학 가면 예뻐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게등의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다음소프트 측은 전했다. 이 부문 1위는 친구였고, ‘남편은 여기서도 3위에 올랐다. 다음소프트 측은 “‘의심되는 사람이나 거짓말쟁이10남편은 물론 아빠’ ‘아들’ ‘아이’ ‘가족등이 고루 들어있어 한국인의 가족 간 신뢰가 흔들리는 양상을 볼 수 있다면서 특히 신뢰’ ‘믿다라는 단어 사용이 35개월 사이에 줄어드는 추이를 보였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불신이 갈수록 증가하는 단면을 드러낸다고 밝혔다.](20일자 조선일보).

실제로 지난 4일에는 23살 엄마가 생후 2개월 된 아들이 잠들자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으로 놀러가 8시간 동안이나 아들을 혼자 두었다가 돌아와 보니 죽어 있어서 경찰에 신고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제 더 이상 사람은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이 확실해 졌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오늘 우리들이 의지할 이는 살아계신 하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번 총회 때 누구랑 룸메이트가 될까? 궁금했었는데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적 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딱 두 번뿐인 새벽기도 설교에서 이 종이 첫 날에, 룸메이트는 둘째 날을 맡았으니 기적이 아닐 수 없었고 또한 그 목사님은 상상을 초월하는 삶을 살고 목회를 하고 있어서 또한 놀라운 도전이 되었습니다. 66세인 그 목사님은 미국 생활을 54년째 하고 있었습니다. 12살 때 입양되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아들로 태어나 고아원에 맡겨졌고 거기에서 미국으로 입양 온 참으로 불운한 삶을 살아온 고통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하나님을 만났고 자신의 연약한 손을 잡아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 목사가 되었고 그 하나님을 15년 동안 뉴욕에서 노방전도로 전하다가 늦게 교회를 개척하고 성공적인 이민목회를 잘 하는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놀라운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해 주고 구원해 주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무렇게나 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십일조를 안 내는 분들은 집으로 찾아가서 받아 오고 목사가 심방 갔는데 감사헌금을 내 놓지 않으면 예배도 안 드리고 그냥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초기 개척하고 400여명이 모일 때는 장로들이 6명 있었는데 하도 애를 먹여서 불러 놓고 몽땅 교회를 나가라 너희들 때문에 내가 목회를 제대로 못하겠다고 했을 정도로, 제대로 신앙생활과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체험을 가진 사람의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가슴이 뜨끔하도록 가르치고 간증하는 놀라운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정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붙잡혀야만 기적과 같은 역사를 만들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의인이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하나님의 사랑 받는 위대한 성도들을 의인이라고 호칭하시며 우리들의 모델로 세워 두셨습니다.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10: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군 다윗 또한 이와 같은 의인들이 누리는 놀라운 축복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시고 그 자손들에게까지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요?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오늘 우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의미는 예수님을 똑 바로 믿고 거듭난 자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 때문에 거듭나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의인이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도 단순한 길을 따르지 못하는 성도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아픔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LA에 가보니 미국이나 한국의 대표격 교회라 할 수 있는 영락교회의 분쟁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종이 한 장 만큼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장로들은 무조건 목사가 나가야 된다고 하고 성도들은 무조건 저런 장로들은 교회에 없어야 한다고 하는 등의 극단적인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일간지 주간지를 막론하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세상의 온갖 비난을 다 받는 모습에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형교회라는 이유 때문에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오고 더 많은 손가락질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주간지의 표지 타이틀에 대문짝만 하게 써 놓았는데, “사랑 없는 이민 교회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교회의 존재까지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구원의 방주라는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대에 성도된 우리들이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천번 만번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만큼은 욕을 듣지 않게 해야 하며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하면 우리들이 죽어야 하고 우리들이 손해를 보아야 하며 우리들이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렇게 사는 의인을 찾으시고 그러한 의인에게는 자손 만대에 축복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의 복된 넷째 주일에 진정한 성도들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칭찬과 복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과연 그렇게 바로 사는 삶이 무엇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세상을 초월하여 신령하고도 영적인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생각과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오로지 돈이니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은총 베푸시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가치 있는 것인 줄 알고 초연하게 그 길을 따르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오늘 우리들의 가치관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이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은 한 말씀으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처럼 목표가 분명하고 소망이 확실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모자라도 하나님의 능력 있는 손에 잡히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믿고 구원을 확신한 다음 주님께서 가신 삶과 가치관을 답습하면서 묵묵히 주님을 따르는 변절되지 않는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직 그 길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고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된 주일에 주님 앞에 나아와 정성 모은 예배자로 구별된 우리 귀한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은 바로 이와 같은 가치관과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시는 그런 아름다운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522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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