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9일 주일낮설교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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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9 May 2016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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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5. 29, 2016
本文:디모데후서1:8-14
說敎:崔 仁 根 牧師
미국에서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광고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를 만 불에 팝니다.”는 것입니다. 내용인즉슨 자기 아버지가 수 년 전부터 중풍과 치매로 병석에 누워계시는데 그동안 밥도 먹여 드리고 대소변도 받아 내었는데 긴 간병에 효자 없다고 이제는 지쳐서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이렇게 만 불에 팔려고 하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고를 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젊은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만 불에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그 젊은 남자에게 “우리 아버지는 중풍에 치매까지 겹쳐 돌보기가 너무나도 어려우니 쉽게 결정하지 말고 일주일간 시간을 드릴 테니 신중하게 잘 생각해 보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일주일 후 그 젊은 남자는 다시 전화를 해왔습니다. 부부가 함께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였으니 자기들에게 그 아버지를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들은 젊은 부부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도 중풍에 치매까지 앓고 있는 노인을 왜 사려고 하는가?”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담담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기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다 같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늘 비어 있었다는 것과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복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지만 아버지 어머니란 이름을 불러보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르며 자라도록 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설명을 다 들은 광고 낸 사람은 그 정도로 확고한 결심이 섰다면 일만 달러를 들고 와서 아버지를 사가라고 하면서 주소를 일러주었습니다. 그 젊은 부부는 아버지가 생긴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그 주소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대저택들만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소가 잘못되었는가 싶어 재확인을 해 보았지만 집 앞에 붙어 있는 주소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벨을 누르니 하인이 나와 맞아주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니 마당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었고 주변 조경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최고급 승용차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집안에 들어서니 휘황찬란하게 실내장식이 되어 있었고 화려한 소파에 준수한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 멍하니 서 있는데 그 노신사가 입에 만면의 미소를 띠며 자리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바로 광고를 낸 사람이오”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자식이 없어 말년에 나의 자식이 될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광고를 냈는데 이렇게 와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네가 내 유일한 아들이요, 딸이다. 그러니 어서 가서 네 집을 정리하고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이리로 오너라. 이제부터는 이 모든 것이 내 아들이요 딸이 된 너희들의 것이란다.” 이 이야기는 지난 수요일 아침 코엠 TV의 사장이신 고종재 장로님이 보내 주신 카톡의 내용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이처럼 소중한 보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딤후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고 말입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 5월을 마지막 보내면서 짧은 인생에서 보다 값지고 귀한 것을 알고 지킬 줄 아는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이 명령을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와 축복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들으시고 깨닫고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소설가인 스티븐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길을 가다가 5파운드짜리 지폐를 줍는 것 보다 행복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기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슬픈 얼굴을 하고 다니지 말라.”(마6:16)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남에게 그만큼 놀라운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갔던 헨렌 켈러는 “단 한 번만이라도 아름다운 이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을 날마다 보고 즐기며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 냄새가 아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비범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아름다운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문맥의 앞뒤를 연결해 보면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예수님의 제자 되고 성도된 우리 모두는 이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복음을 지켜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단 한번 밖에 없는 우리 삶을 가장 복되고 존귀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우리들이 지켜야 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함께 공부하고 배우며 은혜와 축복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이 허망하게 망가져 가는 이 세상을 다시 세우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건설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신선한 생명의 바람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 예수님을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요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행2:22-23)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존귀한 예수님을, 복음을 이 세상은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죽여 버리는 잔인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러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엄중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소중하고 도 존귀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인을 살리시려고 보내 주신 예수님과 복음을 모르면 어리석은 자요 우매한 자가 되고 맙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면 그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요 모든 지식을 다 통달한 사람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놀라운 신앙의 핵심이 되는 진리의 말씀을 가슴으로 깨닫고 아름다운 것을 지키려고 모든 노력을 다하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명의 복음을 빼앗으려는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결코 참 복음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서울 시장인 박원순은 지금도 기독교 복음에 반하는 동성애자들의 편에 서서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동성애자들의 축제 장소로 제공하고 공공연히 동성애를 옹호하며 조장하고 있어 기독교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에 격분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반대 대모를 벌이며 박원순타도를 외치다가 서울시로부터 박시장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고소를 당하여 온갖 고초를 다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어 지난 서울중앙지법 판결에서 무혐의로 해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힘과 권세는 끊임없이 복음의 앞길을 가로 막으며 복음의 진수를 훼방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도전의 도전을 거듭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바마 정권 10년 동안에 동성애, 낙태, 마리화나 등 수 많은 복음의 대적들이 양산되면서 복음이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복음 또한 세월의 흐름 속에 끊임없이 그 진가가 퇴색되어 가고 교회에는 다니는데 예수님은 안 계시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습니다.
Charls Allen박사가 최근 교회를 상대로 다각도의 신앙생활조사를 하였는데 이와 같은 안타까운 소식들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입증시켜 주었습니다. 그의 연구조사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20%의 교인들은 1년 내내 예배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25%의 교인들은 전혀 기도를 해 본적이 없으며, 35%의 교인들은 가정에서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40%의 교인들은 일정한 헌금을 내지 않고 있으며, 60%의 교인들은 기독교서적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75%의 교인들은 교회에서 어떤 책임도 맡고 있지 않으며, 85%의 교인들은 전도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100% 천국에 가기를 희망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을 사랑하고 그 복음을 지키기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교인들은 제대로 거듭난 성도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와이에 가면 다운타운에 실물크기의 조그마한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동상 앞에는 “문둥병자들과 함께 잠든 다미엔 신부”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벨기에 선교사였던 다미엔신부는 미국 본토에서 나병환자를 하와이로 격리하자 그리로 따가 갔습니다. 그곳에서 또 다시 그 수가 600명을 넘자 다른 작은 섬으로 격리를 하는데 또 그곳으로 따라가 그들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나병환자들은 다미앤신부를 배척하였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우리들을 섬기는 척 생색 내지 말라는 편견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미앤신부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도 문둥병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저들과 함께 섬기며 위로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을 그릇에 담다가 손에 엎질렀는데도 전혀 뜨겁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껑충껑충 뛰며 환자들 속에 뛰어 들어가 외쳤습니다. “여러분, 나도 이제 여러분과 같이 되었습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 함께 나병환자가 되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지키는 놀라운 희생이요 사랑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모님과 자녀들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내 주신 분이 바로 부모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부모를 제대로 만나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기 자식은 모든 정성 다해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면서도 제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세의 가장 큰 증거입니다. 이 세상에 부모를 자신들의 자식보다 더 돌보는 사람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MBN에서 방영되는 “실제상황”이라는 프로를 보면 참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부끄러운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들을 넷이나 두고 있는 겉보기에는 전혀 남부럽지 않은 70대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외롭고 아들이 보고 싶어서 늘 제대로 생활을 하지 못한 채 힘들어 합니다. 그러다가 생일을 맞았는데 이때다 싶어 산해진미를 다 마련해 놓고 자식들을 기다립니다. 해가 저물고 어두울 때까지 택배로 선물은 오는데 자식들은 단 한 사람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가 길에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행인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자식들이 순식간에 다 달려 왔습니다. 그 때 그는 아픈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들 넷이 다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퇴원하자 그는 다시 외로워졌고 자식들은 또 다시 볼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느 날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모래밭에 앉아 모래를 퍼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또 다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모래를 먹으면 맹장염이 되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자식들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것 같아 모래를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이 오늘 우리 부모님들이 겪고 있는 외로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부모님의 남은 삶을 편안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들의 자녀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갈 수 있도록 또한 지켜야 합니다.
우리들의 꿈과 같은 자녀들을 우리는 또한 이 험한 세상에서 지켜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들의 사랑스런 자녀들을 이렇게 훈련하고 멋들어진 리더로 키워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시간에는 오직 하나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악하고 강한 세력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도록 강하고 담대하게 훈련하며 믿음의 사림이 되도록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을 잘 압니다.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꿈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Vision입니다. 왜 하나님은 어린 요셉에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꿈을 보여 주셨을까요? 이것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오늘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심어주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는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하나님은 가뜩이나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는 요셉에게 왜 이렇게도 거듭된 꿈을 보여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요셉의 미래를 다 아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그 형들로부터 어떠한 미움과 시련을 당할지라도 그 형들이 끝내는 자신에게 돌아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할 것이니 이겨내고 참아내라시는 사인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믿고 끝까지, 그 형들이 자신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릴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고 그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참아 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해답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이처럼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저명한 임상실리학자인 Shlomo Breznitz박사가 최근 인간의 희망에 관한 연구논문을 내 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인데 이스라엘 병사들을 4개조로 나누어서 완전군장을 하게 한 후 20km를 행군하게 하였습니다. 1조에게는 출발할 때 행군 할 거리를 알려주고 5km를 지날 때마다 앞으로 남은 거리를 알려주었습니다. 2조에게는 “지금부터 먼 거리를 행군하겠다.”고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3조에게는 “15km를 행군한다.”고 미리 말했다가 14km 지점에서 “앞으로 6km를 더 행군하여 총 20km를 행군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조에게는 “25km를 행군한다.”고 알려주었다가 14km 지점에서 “20km로 오늘 행군을 단축한다.”고 열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4개조의 병사들이 받은 스트레스(정신적 압력)을 측정해 보았더니 정확한 행군거리를 알고 중간 중간 남은 거리를 알고 있었던 1조가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에도 예상한 거리보다 더 짧게 행군한 4조가 예상한 거리보다 더 길게 행군한 3조보다 훨씬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을 브레즈니츠 박사는 다음과 같이 분석해 놓았습니다. “예상 했던 것보다 덜 행군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짧아진 행군거리에 긴장이 풀리고 피고가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도 요셉과 같이 정확한 꿈을 심어주게 되면 그 꿈을 실현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목적을 향해 전진할 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들의 아이들은 긴장감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앞날에 대한 꿈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그런 중요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장래에 무엇을 해야 할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는 것을 통해 바로 이와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과 같이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고 자녀들의 적성에 꼭 맞는 장래의 꿈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녀들을 지키는 중요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우리 사람들을 만드실 때 엄청난 축복을 더불어 주셨습니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유지 보존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과 바다와 하늘을 어떻게 유지 보존하느냐에 따라 우리들과 후손들의 삶의 질이 결정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뉴스를 보니 당장에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미세 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미세먼지를 분석해 보니 대체로 황산과 진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황산은 중국의 황사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질소는 한국의 자동차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폐로 들어가면 1시간 내에 방광, 뇌에까지 침범해서 자리를 잡는데 이것들은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결국에는 암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와 같은 자연을 건강하게 지켜내지 못하게 되면 결국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들이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을 가만히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이 있지만 후세들을 위해 자연을 보호하는 것만큼은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철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생활필수품인 개스 값이 4배 이상 뛰었지만 미국은 아직도 본토 내에 있는 기름을 개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가를 주고 원유를 수입해 오면서도 본국의 자원을 후손들을 위해 보호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바다에 있는 하찮은 게 한 마리도 1불짜리 크기 만큼 자라지 않으면 잡을 수 없고 산에 널려 있는 고사리까지도 일정 양 이상 체취할 수 없도록 자연을 보호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미래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오늘만 챙기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돈이면 만사형통하는 줄 오해하고 돈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마다 하지 않는 그런 졸부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떡으로 사는 백성들이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신자답고 예수님 닮은 그런 미래지향적인 마음과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꾸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요즘 독일과 일본을 봅니다. 그들은 사업의 모토를 “정식”에다 두고 오랜 세월 그로 인해 자동차와 기술 부분에 당연히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나 니산 자동차가 연비를 높이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들과 세계의 소비자들을 속였다는 오명을 쓰고 회사의 존폐로까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신용이란 한 순간에 무너지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는 데는 한 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주님게 하듯 하라고 진실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이 마지막 저무는 주일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분부하신 말씀,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는 진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많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지키고 있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마지막 보내면서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친히 부탁하신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 순종할 량으로 가슴에 새기로 잘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신 복음을 지키고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필요한 목적이 있어서 만드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영원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들을 부르시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부모님과 자녀들을 지켜야 합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300여명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여수 앞 바다에서 수장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부모형제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고 통곡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생명까지는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생명의 주님을 스승으로 만들어 주어서 그들의 삶이 영원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과 자연만물도 또한 우리들이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입니다. 우리는 이 자연만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생명의 원천이 다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호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지키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사명이요 의무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래서 친히 정복하고 지키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모쪼록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자로 구별되어 오늘도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와 몸과 마음을 바쳐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령을 가슴으로 받아 순종함으로 잘 지키고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은총으로 만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6년 5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