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5일 주일낮설교 (믿음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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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5 June 2016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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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사랑입니다!
6. 5, 2016
本文:누가복음7:36-50
說敎:崔 仁 根 牧師
한 때 세계적인 복싱챔피언이였던 무하마드 알리가 지난 6월 3일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하여 11월 대선 후보들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그의 죽음을 추모하였습니다. 이제 겨우 74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깝게도 그는 파키슨병으로 30여년을 투병하다가 결국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복싱계의 대부라고 할 만큼 그의 실력은 뛰어났고 링 밖에서도 그는 챔피언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선하고 복된 일에 헌신하였으며 젊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흑인들에게 많은 자신감과 소망을 심어주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세계의 챔피언이 되고 나서 자신의 평생 반려자인 아내를 얻기 위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용한 시골로 들어가서 진실하고 때 묻지 않은 신붓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세계 챔피언이 아닌 순수한 한 남자요 남편감이라고 믿어주었던 처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청난 대저택에 수영장, 그리고 차고에 버티고 있는 값진 승용차 등 모든 것을 보여주며 “이 모든 것은 나를 선택한 당신의 것이요!”라고 하여 놀라운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리를 선택한 처녀는, “그 사람을 나의 평생 동반자로 선택한 것은 그의 모습에서 믿음이 묻어나왔기 때문입니다.”고 하여 과연 사랑은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사랑이고 사랑은 또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고 사랑 없는 믿음은 또한 공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초청을 받아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의 한 여자가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값진 향유를 들고 찾아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씻으며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 시몬은 속으로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진짜 선지자라면 자신의 발에 행하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 알았을 터인데 어찌하여 저런 여자를 내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인가? 저 여자는 형편없는 죄인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이것을 금방 알아차린 예수님은 그 시몬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저 여자는 죄인이고 너는 의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저 여자가 너보다 훨씬 더 고귀한 믿음의 사람이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선포였습니다. 특별히 바래새인 시몬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참된 믿음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배워보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참된 믿음이 없는 우리들의 모든 예배와 삶은 결국 공허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랑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의 믿음을 그 행위에서 찾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것은 바른 판단인 것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며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믿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바리새인 시몬은 그 여자를 하대하고 낮게 평가하며 그와 같은 여자랑 함께 하는 예수님을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자기처럼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며 기도생활을 착실하고 잘 하고 있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야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와 같은 시몬을 오히려 책망하시고 그가 심하게 비난하는 죄인 된 여자를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눅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믿음과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한 믿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6월을 여는 첫 주일에 오늘은 이와 같은 주제를 놓고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함이 믿음입니다
이름도 없는 참으로 무명의 한 여인이 예수님이 계신다는 시몬의 집으로 과감하게 찾아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감히 시몬에게 이처럼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고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 여자가 예수님께서 초대 받아 가신 남의 집으로 찾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그렇게 용기를 내고 큰마음을 다지며 시몬의 집에 유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과감하게 그리로 찾아 갔던 것입니다.
(눅7:36-38)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성경은 그 여자의 이름 대신 “죄인”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이렇듯 모든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누가도 그 여인의 이름 대신 죄인이라는 대명사를 쓰고 있고 주님께서 초대 받아 가신 그 집 주인인 시몬도 그 여자를 죄인으로 업신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그 모든 비난과 눈총을 무릎 쓰고 예수님이 계신 남의 집으로 과감하게 찾아 들어갔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여인의 이와 같은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염치없는 여자, 경우도 없는 여자, 뻔뻔한 여자, 형편없는 여자... 등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와 같은 그 여자를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쟈!”로 보셨습니다. 사랑은 곧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술람미 여인에게 빠졌던 솔로몬의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해 두었습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말입니다.
(아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불같은 마음은 그 어떤 비난도 참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예수님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만나야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여인은 모든 주변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찾아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만나자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려 내렸던 것입니다. 도대체 눈물이 얼마나 많이 나왔으면 그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다 씻을 수 있었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여인의 그렇게도 많은 눈물은 결국 회개의 눈물이요 주님을 만난 사랑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주님의 발에 부어 드렸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귀해도 사랑은 아깝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쏟아 부어 주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그녀의 이와 같은 사랑을 그녀의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눅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사랑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스스로 잘나서 죄인도 아니고, 예수님도 집으로 초대할 만큼 명성도 있고 재산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으며 그래서 자타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던 바리새인 시몬은 과연 어떠하였습니까? 그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눅7:40-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예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 결국 사랑이어야 하며 그 사랑은 값진 것을 조건 없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고 또한 죄 용서함을 받았으며 천국을 보장 받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주님께 이름 없는 이 여인처럼 값지고 고귀한 것을 아낌없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모셔 놓고 발 씻을 물조차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의롭고 이 여인은 죄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 같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난하셨던 것입니다.
(마23: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결코 말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 헌신함이 믿음입니다
이름 없는 이 여인은 또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며 한없는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눅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자신을 초대한 시몬에게 직접 언급하시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눅7:45)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는 이 사실은 믿음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관습은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그 손님을 맞이하면서 입을 맞추는 것이 반가움과 기쁘게 영접함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였으면서도 이와 같은 기본 관례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나 환영의 정성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곧 와도 좋고 안 와도 그만이라는 정도의 손님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앞에 인용한 45절의 말씀과 같이 그것을 시몬에게 지적해 주시고 상대적으로 그가 무시하는 여인은 그와 정 반대로 예수님의 발에까지 입을 맞추며 존귀하게 여겼음을 지적해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닦으며 향유를 붓고 입을 맞추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최고로 영접하고 섬기는 자세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이와 같은 자세를 믿음으로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께서 친히 인정하신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진실한 헌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희생으로 우리 죄인들을 섬겨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그 십자가에까지 내어 놓으시면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우리들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구원의 반열에 올려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께 오늘 우리들이 드려야 할 진정한 헌신은 바로 이름 없는 이 여인과 같은 값진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예수님은 시몬에게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서도 소중한 손님에게 하는 기본 인사의 예조차 갖추지 못했던 시몬은 역시 바래새인의 외식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욕하고 무시하던 그 여인은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어내고 값진 향유를 쏟아 부은 다음 그 발에 입을 맞추어 최상의 섬김으로 주님 앞에 엎드러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친히 인정 하시는 바 헌신적인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C.T 스터드는 16세 때에 이미 유능한 크리켓 선수였고, 19세 때는 영국 이튼에서 그의 팀의 주장 선수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캠브리지대학 재학시절 때, 그는 무디의 설교를 듣고 놀랍게 개심을 하였습니다. 더불어 그의 생애와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결심했고, 그는 그의 팀 동료들을 개심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전 생애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드슨 테일러에게로 가서 중국 선교를 위한 사역에 그 자신을 드렸던 것입니다.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그에게 오늘날의 5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의 유산이 즉시 상속되었음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즉시 모든 유산을 하나님께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53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프리카의 중심부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라."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주님이 그를 부르실 때까지 충성으로 일관 했습니다. 그가 바로 WEC(World 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의 창설자 스터드 선교사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함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에서는 존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 식사를 하기 전에 그 손님의 머리에 감람유를 발라드리므로 사랑과 존경의 뜻을 표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눅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고 말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이렇게 평범한 예조차 생략한 채 예수님을 길손쯤으로 여기고 행객처럼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름 없는 이 여인은 주님의 그 발에 값비싼 향유를 쏟아 부으므로 주님을 향한 최고의 예를 다 갖추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기록하였던 사도 마가는 이것을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거룩한 의식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사건을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거룩한 믿음으로 선포해 주셨습니다.
(막14: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잊은 성도는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불신자인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을 위해 친히 살을 찢으시고 피를 쏟아주신 예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매년 꼭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처럼 거룩한 의식을 위해 값비싼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발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몬은 예수님을 외형상으로는 집에까지 초대하고 대접하는 것 같았지만 그 속마음은 전혀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분으로 모시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도 이름 없는 이 여인과 같은 신앙생활로 주님을 모시는 성도들이 있고 시몬과 같이 외식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있음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비록 이름도 올릴 수 없을 만큼 죄가 많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거리였던 삶을 살아 왔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새롭게 변화되고 오로지 예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예수님을 찾아 왔던 이 여인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인 향유를 일부분 드리지 않고 차라리 옥합을 깨뜨려 버리고 미련조차 두지 않은 채 몽땅 쏟아 부어드리는 헌신으로 마지막 가시는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보신 예수님은 그녀의 그와 같은 아름다운 희생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진실로 예수님을 영접한 예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인정받기 원한다면 바로 이 여인과 같이 예수님의 죽음에라도 동참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를 무저항으로 건져냈던 간디는 비록 힌두교도였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도전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크리스챤들이여 나도 예수님을 닮으려고 합니다. 정말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름 없이 등장하는 한 여인은 우리들에게 서너 가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눈물로서 예수님의 발을 씻어내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은 본래 진실을 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눈물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서 믿음의 여인임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분에 넘치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의 발에 쏟아 부어 드림으로 주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값진 헌신을 예수님께서 친히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끝으로 그녀는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그 주님을 사랑하되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같이 부활하는 믿음의 진수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친히 초청하였으나 외식적으로만 정성을 보였던 시몬을 책망하시고 이와 같은 여인의 진정한 믿음을 우리들에게 모델로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이 세상에서 참된 믿음을 보지 못한다고 탄식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깊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을 말입니다. 성도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주님께서 인정해 주실 만한 믿음이 있는지,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이 여인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더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인정 하시는 바 참된 믿음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복되고 귀한 6월 첫 번째 주일에 예배자로 정성을 다 하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처럼 소중한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런 복스런 믿음의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6년 6월 5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