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6일 주일낮설교 (믿음은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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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6 June 2016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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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감사입니다!
6. 26, 2016
本文:누가복음17:11-19
說敎:崔 仁 根 牧師
사무엘 라이프워츠라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아주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였습니다. 이분의 변호를 통해 사형 구형을 받은 죄수 78명이 사형 언도를 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78명 가운데 라이프워츠 변호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크리스마스카드가 그토록 많이 들어오는데 이 변호사 덕택에 생명을 건진 죄수들이 보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열 문둥병자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매일 아침 4킬로씩을 뛰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은 유럽 여행길에서 너무 피곤해서 뛰지 않고 늦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억지로 일어나서 뛰었는데, 그때 어느 발 없는 노인이 창가에서 자기를 부러워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호숫가에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산책을 하던 중년 신사가 선망의 눈초리로 자기를 보는 것을 발견하고서, 자신의 게으름과 또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잊었던 일을 뉘우쳤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감사를 해야 합니까? 풍년 주신 것, 장사 잘되는 것, 합격된 것, 취직된 것, 진급된 것, 물론 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감사는 이방인도 드릴 줄 아는 감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일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신앙인격의 최고봉은 그러므로 감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인 아이잭 윌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겸손하고 감사하는 심령이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제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자처해도 감사를 잊었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기록하시고 우리들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믿음은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믿음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병중에서도 가장 저주 받은 병이 문둥병입니다. 이 병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 격리된 채 외롭게 투병하다가 죽어야 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된 채 아픈 그들끼리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열 명 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소서.” 하고 말입니다. 이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두 말 않으시고 그들의 그 무서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회복에 도취 되어 자기의 갈 길로 다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유달리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출신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의 한 말씀이 오늘 우리들의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눅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열 명이나 고침과 기적을 보았는데도 오직 단 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아 나와 영광을 돌려드리며 감사를 드렸다는 이 사실이 우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감사를 드린 사람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감사가 곧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침을 받고 감사하여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던 그 이방인의 자세를 예수님은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이 문둥병자는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이처럼 놀라운 자유를 누리며 믿음 있는 자라는 놀라운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요? 역으로 오늘 본문을 추적해 가며 더듬어 보면 거기엔 놀라운 믿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되고 귀한 현충의 달 마지막 주일에 오늘은 이와 같은 믿음의 비밀을 함께 찾아보면서 진정한 믿음이 어떻게 생성되고 인정을 받게 되는지, 함께 배우면서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키워보면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아이는 엄마를 믿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 말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엄마는 아무리 부탁해도 받아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엄마를 찾는 것입니다. 이는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대입해 볼 수 있는 진리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친히 “찾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기적을 보는 믿음을 인정받기 전에 문둥병자들이 열렬하게 한 일이 하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부르짖고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눅17:12-13)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라는 말씀이 이를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이것을 신앙적인 용어로 함축하면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부르고 예수님께 호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보시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기본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눅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보시기만 하면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관심만 가지시면 기적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한 번 하시면 축복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과연 이처럼 놀라운 예수님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찾고 부르짖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이처럼 부르짖으며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목 놓아 애타게 예수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뜨겁게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종이 참으로 놀란 사실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기도원에는 이처럼 예수님을 찾고 부르짖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꾼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봄에 한국에 집회를 하러 갔다가 이와 같은 사실을 두 눈으로 보고 참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온 산천에 꽃들이 만개하였고 특별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4월의 봄날 토요일 오후 3시, 관악에 있는 갈멜산기도원에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자동차 안에서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도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컴컴한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되어 안내를 받으며 대성전으로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곳은 완전히 별세계였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바깥은 순식간에 딴 세상으로 사라지고 찬송하는 모습부터가 범상치 않는 기도꾼들로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기도하던 분들도 주일을 위해 다 내려가고 일주일 중 토요일이 가장 사람이 적다는 것이 그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세계에서도 우뚝 선 영육 간에 복된 나라가 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기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구하는 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사랑과 긍휼에 한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고 부르짖고 목 놓아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나치려는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누가복음 17장의 문둥병자들과 같이 기적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패역한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제 오늘 기적의 역사가 가능했던 믿음의 두 번째 단계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은 고쳐달라고 부르짖는 문둥병자들을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엉뚱하게도 문둥병을 앓고 있는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엄청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문둥병으로 격리 되어 아무 곳에나 자유스럽게 다닐 수도 없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병도 고쳐주지 않으시고 그냥 제사장에게 가사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 말 않고 예수님의 그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그 몸을 보이려고 가다가 기적을 보았습니다.
(눅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이라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 본문에 등장한 문둥병자들처럼 두 말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모두가 다 계산해보고, 형편 따져보고, 현실성이 있는가 점검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은 제생각대로 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정력과 시간과 재물을 허비하고 마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데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선교사 가족이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습니다.
“얘야, 얼른 땅에 바짝 엎드려라!”
그 아이는 대꾸하지 않고 즉각 땅에 엎드렸습니다.
“자, 이제 내게로 빨리 기어와” 아이는 시키는 대로 기었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나에게 뛰어와!”
그 아이는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와 안겼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기가 놀고 있던 나무를 쳐다봤습니다. 거기엔 길이가 5m나 되는 무서운 독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지금 놀고 있는데… 당장 가야 해요?”하며 꾸물거렸더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즉각적인 순종은 믿음과 사랑의 증거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곧 바로 순종하는 것이 큰 축복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렘7: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고 말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감사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무척 안타깝고 서운하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10명이나 되는 문둥병자들이 그 무서운 병에서 고침을 받았으나 그렇게 고쳐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지 못하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눅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해 두었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문둥병과 같이 무서운 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감사를 드릴 줄 모른다면 그것은 사람의 근본을 망각한 그릇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감사를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린 이 이름 없는 이방인을 예수님은 높이 평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축복으로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문둥병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폴 브랜드박사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한센병환자 재활원의 원장으로 있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20년, 미국에서 30년 등 50년 동안을 문둥병 치료를 위해 헌신한 귀한 분이십니다. 그가 출장차 미국을 떠나 영국에 도착하여 여러 지방을 방문하기 위해 기차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볼 일을 보고 런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날 밤 그가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벗는 중에 갑자기 발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문둥병의 권위자인 그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수많은 문둥병 환자들을 시술하고 피고름을 만지면서 치료해 본 경험이 많았던 그는 순간적으로 무서운 의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벌떡 일어나 날카로운 핀을 찾아 복숭아 뼈 아래 부분을 찔러 보았습니다. 역시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핀을 더 깊이 찔러 보았습니다. 피가 나오는데도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문둥병에 감염된 것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브랜드박사는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문둥병자로구나! 문둥병자로서 한 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몸서리를 쳤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온 몸으로 보아 왔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은 더욱 더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장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 그리고 모든 친구들로부터 격리 되어 혼자서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몸서리가 쳐지며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고통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더 핀으로 자신의 발을 찔러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악”하는 소리를 지르며 핀을 집어던졌습니다. 너무나도 아팠기 때문입니다. 발이 다시 아픈 것입니다. 그는 너무 감격해서 “아이고, 하나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시 아프다니요. 아파서 너무 감사합니다!”고 외쳤습니다. 알고 보니 오랜 시간 동안 타향에서 기차여행을 하면서 오래 앉아 있어서 순간적으로 신경의 한 부분이 마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그는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실수해서 칼에 베이고 찔리고 넘어지고 삐이면서 아플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럴 때 그렇게 아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그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픔과 고통은 싫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으로 향하던 우리들의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삶과 건강을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현충의 달 6월을 보내면서 구체적이고 생활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이 믿음이요 참는 것이 믿음이며 확신하고 순종하는 삶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꾸밈없이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로만의 믿음이 아니라 피상적이고 만질 수 없는 그런 류의 믿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들에게 본이 되며 우리들의 삶에 축복이 되는 그런 실제적인 믿음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꼭 필요한데 그와 같은 축복은 반드시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따라서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소금에서 짠 맛을 볼 수 없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탄식하셨던 우리 주님의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들도 우리들의 후손들도 다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도록 믿음에 굳게 서서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런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되고 귀한 날 예배자로 구별되어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놀라운 은총이 풍성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6년 6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