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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일 주일낮설교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

7. 3, 2016

本文:민수기14:1-10

:

 

나폴레옹의 모든 전쟁 승리의 비결은 최후의 5분간에 있다고 했습니다. 산을 넘어갈 때 척후병을 보내서 탐지를 해 봤습니다. 이탈리아를 점령하려 할 때 척후병이 다녀와서 보고하기를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다음에 "가다가는 큰일 나겠습니다. 못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려 했습니다. 사실 나폴레옹 같은 독재자에게 보고할 때 처음부터 갈 수 없다고 말하면 몽둥이를 맞을 테니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말하려니까 "그만 말해라."하고 나폴레옹은 알프스 산을 넘었습니다. 한 번은 5만 군대가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다리가 거의 구부러져서 금방 내려앉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든 참모들은 갈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최후의 5분간, 아니 최후의 20초 동안에 칼을 휘두르며 한복판에 섰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은 언제나 생명을 건 것입니다. 죽음 아니면 승리를 택하는 사람이 승리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제일 위험한 자리에 서서 진군나팔을 불게 하여 5만 명이 다 지나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떤 문제 앞에 섰을 때에 독수리의 올려치는 날개처럼 힘차게 방향을 바꿔 나아가면 그것이 위대한 승리를 가져 오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용기 있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0만 명이 다 안 된다고 외치는 급박한 현실 앞에서 당당하게 홀로 서서 아니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열 두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명을 뽑아서 마지막 관문인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무려 40일 동안이나 그곳을 돌아보고 돌아 온 각 지파의 수장들은 거의 절망적인 보고를 내 놓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키가 장대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성벽은 엄청나서 난공불락이라며 이미 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 앞에 선 우리들은 메뚜기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 그들을 정복하고 그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여호수아는 그 정 반대의 견해를 내 놓았습니다.

(14:6-9)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똑 같은 시간 동안 똑 같은 환경을 보고 왔는데도 왜 이처럼 그 결과는 하늘과 땅으로 다를까요?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도 극명하게 갈라놓았을까요? 그것은 단 하나 용기입니다.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분석하는데 무엇을 기초로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 같이 다르게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처럼 60만 대 1로 맞선 여호수아의 용기를 배우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인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

大勢(대세)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거대한 힘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12명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데 10명은 절대불가를 외치고 두 사람만이 절대 가능이라고 외친하면 절대불가가 대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거의 각각 5만이라는 엄청난 백성들이 딸려 있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절대다수요 대세인 6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불가능한 일에 목숨을 거는 모세를 제거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내세워 가나안 정복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회군하겠다는 기막힌 계획을 내 놓았습니다.

(14:1-5)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이들을 지금까지 통솔하여 왔던 모세는 참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60만이라는 엄청난 대세가 이제 자신을 제거하고 애굽으로 되돌아가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직접 이와 같은 위기를 해결하셨습니다.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엄청난 대세였지만 하나님은 눈곱만큼의 긍휼도 두지 않으시고 다 죽이셨던 것입니다. 다만 소수이지만 용기 있게 그들 앞에 당당하게 섰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여호수아 장군의 멋들어진 모습을 오늘 함께 공부하면서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는 그런 멋진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인물이었던 토인비는 그의 저서 World History에서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들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속을 감추고 다수를 따라 어부지리로 유익이나 챙기겠다는 자세는 비겁한 것입니다. 비록 손해를 보고 불 유익을 당할지라도 소신을 밝힐 수 있는 용기 있는 인물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말만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수에게 밀리면 급기야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대세였던 그들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지도자를 갈아치우려고 작당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단은 어떻게 하다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족들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소리 높여 곡하며 울고 탈진한 상태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결단은 더 이상의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감히 그와 같은 그들 앞에 당당하게 나셨던 것입니다.

(14:6-9)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고 말입니다. 이것은 60만 대 1이란 엄청난 개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한 목숨 내 놓지 않고서 이렇게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그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앞을 가록 막는 여호수아와 그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 죽이려고 일어났었습니다.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벌떼와 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이들을 쳐 죽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당당하게 나섰던 여호수아는 역시 용기 있는 장수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훗날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머나먼 타국 미국에서 자식들조차도 부모를 알아주지 못하는 문화권에서 언어와 자본과 모든 환경의 열악성 속에서 간신히 살아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용기입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이해해 주는 사람조차도 없으며, 오로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단해야 하는 이 오지에서 우리들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용기입니다. 세상말로 다시 말해본다는 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깡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를 들여다보면 그 깡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내 세운 지도자들은 지금 엄청 분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들을 저렇게도 강하게 버티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끌고 가서 그들 앞에서 다 죽게 만들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 그들이 지금 분노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지금 절대 대세가 되었고 그들의 분노를 달랠 수 있는 더 이상의 변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처럼 절박한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밥이라!”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무엇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토록 강력한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주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절대자 하나님을 기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지식과 경험과 돈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직면한 상황을 분석하고 결단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꼭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같이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이라는 단서를 둘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호수아와 같이 끝끝내 그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수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용기 있게 한 목숨을 내 걸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들어가자고 외쳤던 여호수아는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다 죽임을 당할 때에도 고고하게 살아남아 모세의 후계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1:1-2)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의 잔여 백성들을 이끌고 자신이 들어갈 수 있다고 장담하였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하여 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과 이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고 긴다고 했던 이스라엘의 수많은 장수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남은 백성들은 그들의 후손들로서 전쟁의 경험도 없거니와 광야에서 오랜 세월 지칠대로 지친 문자 그대로 烏合之卒(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을 이끌고 難攻不落(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쳐들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그래서 먼발치에서 그 성을 바라보며 낙심하고 있을 때에 뜻밖의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습니다.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에 칼을 빼든 장수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란 여호수아가 그 장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는 자냐? 아니면 여리고의 적들을 위하는 자냐?”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장수가 대답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는 자도, 대적을 위하는 자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군대장관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단번에 그 장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합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장수가 말했습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두 말 않고 발에서 군화를 벗어던지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5: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한 번 더 이와 같은 사건을 눈앞에 재현해 보십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가야 하는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입니다. 모세의 후계로 이스라엘 위에 우뚝 선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그가 낯선 장수 앞에서 처신 하는 모습을 가만히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모습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도대체 너는 놈이냐? 내가 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군대장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겠느냐?” “전쟁하려는 장수에게 군화를 벗으라고? 이런 정신없는 사람을 다 봤나?” 하면서 그 장수를 부끄럽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그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에게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발에서 군화를 벗어던졌습니다. 그는 이렇게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장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겸손이 없는 용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여호수아는 용기 있는 장수였기에 이처럼 겸손할 줄 아는 덕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조금만 남보다 나으면 교만하여 갑질을 하고 경거망덕을 하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직하고 있을 때 한 판사가 대통령을 향하여 각하새끼짬뽕이라고 하였다가 판사복을 벗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육아정책을 강론하자 야당의 한 의원은 아이도 한 번 나아보지 못한 여자가 무슨 육아정책이나?”고 하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지난 4월 달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한 의원의 보좌관이 음주 단속을 하는 경찰 차 지붕에 뛰어 올라가 굴리며,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잘난 못난이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여호수아를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는 여기는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곳이 거룩한 땅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로구나. 아무리 여리고 성이 견고하여도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정복할 수가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순종할 수 있게 되고 순종해야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귀한 팁을 받아 그렇게도 견고한 여리고성을 칼 한 번 쓰지 않고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겸손한 자세는 순종의 덕을 만들고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은 그 어떤 철옹성도 무너뜨릴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들 인생 여정에 그 어떤 여리고와 같은 강력한 방해물을 만날지라도 여호수아와 같이 겸손하게 엎드릴 줄 아는 순종의 믿음으로 당당하게 무너뜨리고 넘을 수 있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호수아는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유산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비록 모세의 몸종이었지만 그 속사람이 겸손하고 용맹하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인해 조금도 차질 없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가나안 정복을 성공리에 잘 마쳤습니다. 그의 나이도 이제는 늙어 110세가 되었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세겜이라는 지역으로 불러 모으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24:14-15)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말입니다.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과연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를 소상하게 설명한 후(24:2-13), 그는 이제 그들에게 마지막 선택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 하나님을 잘 섬기든지 그렇지 않거든 너희들의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너희들도 그런 신을 섬기든지 이제는 선택을 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먼저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서 담대하게 결단을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지도자이신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24:16-18)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유언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수아만이 할 수 있었던, 그래서 성경에 당당하게 기록 되어진 그런 놀라운 유언이었습니다. 이 보다 더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값진 보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인데 그 때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가야 하겠습니까?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그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훈계하고 결단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후손들이 우리들을 오늘까지 인도해 주셨던 그 능력의 하나님과 함께 그들의 삶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2016년도도 절반이 지나가버리고 7월이 닥아 왔습니다. 수련의 달 7월에는 위대한 인물들의 삶의 가치와 믿음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영혼의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그 숱한 인물들 가운데 오늘은 모세의 후계자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의 멋들어진 모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소신을 굽히지 아니하고 한 목숨 내 놓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던 용기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 픽업되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늘 우리들도 여호수아와 같은 당당한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용기가 만용이 되지 않도록 겸손을 겸비하여야 하겠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눈앞에 두고 시름에 젖어 있을 때 하나님은 군대장관을 그에게 보내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는데 여호수아는 그 장관을 하나님 대하듯 겸손히 모시고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놀라운 팁을 얻게 되었습니다. 겸손은 기적을 만들고 겸손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지름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수가 다하여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 그는 참으로 아름답고 놀라운 유언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평생 자신과 함께 해 오셨던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종용하고 끝끝내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는 확답을 받아내고 하나님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멋진 인물이요 신앙인이요 지도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연휴 중에도 예배자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도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놀라운 은총이 풍성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아멘

주후 201673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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