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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7일 주일낮설교 (기회를 포착하라!)

기회를 포착하라!

7. 17, 2016

本文:마가복음10:46-52

:

 

지난 617일 강원도 횡성에서 일어난 17살 난 여고생의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던 이 여학생이 초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마을에 사는 남학생에게 전화를 해서 공부하기 싫으니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학생은 자기 또래의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와서 같이 만나 저녁을 먹고 또 술도 마셨습니다. 그 다음에 남자 셋은 술에 취한 이 여학생을 시골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집단 성폭행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이 여학생은 이와 같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고 세 사람은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되었습니다. 한창 미래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해서 가정과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할 청소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때 아닌 술을 마시고 이처럼 끔찍한 일을 벌여 놓은 현실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배움의 기회를 이처럼 범죄와 자살로 마감하고 말았으니 그들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뻔하기 때문입니다. 기회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인생에는 3번의 중요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로 포착하여 최선을 다하게 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기회 포착에 관한 귀한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소경이 있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자연히 생활력이 없고 그렇게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게 되니 자연 구걸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 소경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부대시설도 많이 보완 되었지만 그 옛날에야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딱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소경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여 인생이 달라지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복된 삶을 위한 아름다운 교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배우면서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회를 포착하라!

예수님과 그 일행들이 여리고를 방문하시고 그곳을 떠나 나가실 때에 길 가에 앉아 있던 바디매오라는 소경 거지가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시로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있는 목청을 다 돋우어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자연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었고 잠시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과잉충성 하는 조급한 자들이 소경을 제지하며 윽박질렀습니다. “귀하신 분이 지나가시니 떠들지 말고 조용하라.” 고 말입니다. 그래도 소경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머물러서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소경이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이부자리나 진배없는 겉옷조차도 내던져 버리고 예수님께로 달려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고 말입니다. 그러자 소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이시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경의 두 눈은 번쩍 뜨였고 평생의 한이 한 순간에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두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온 세상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함께 나누어 읽은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교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함께 찾아보면서 삶의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뉴욕에 가면 맨허턴과 브루클린 사이의 강을 잇는 브루클린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공학적으로 기적이라 일컫는 귀한 다리입니다. 1883년 쟌 브로링이라는 한 공학자에게 이 다리를 만들어야 겠다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다리 건설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단언하고 그와 같은 사업은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쟌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자 공학자인 워싱턴에게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두 사람은 다리 만드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래서 설계도를 만들고 은행가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마침내 다리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되지 못하고 비극적인 건설현장 사고로 쟌은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워싱턴은 뇌를 심하게 다쳐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전보다 더 또렷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의사를 전달 할 수 있는 암호를 개발할 방법이 번개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손가락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손가락으로 아내의 팔을 건드리고 기술자들에게 전할 말을 아내를 통하여서 전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만들 전문가가 하나는 죽고 하나는 중상을 입고 누웠으니 다리 건설은 물 건너 가는 것 같았지만 워싱턴의 이와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끝내 완성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브루클린 다리가 이 땅에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기회는 잡는 사람들에게만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그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년 전입니다. 그때는 모든 이동수단이 오로지 걸어서만 다닐 그런 때였습니다. 소경은 활동 반경이 매우 좁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탓에, 그리고 길도 지금처럼 잘 다듬어지지 않았을 그때는 쉽게 먼 곳까지 다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늘상 그 자리, 그 거리에서 구걸하며 머물러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그가 평생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한 번이 족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겨우 3년 밖에 공생애를 보내지 않으신 예수님을 소경이요 거지인 그가 그 넓은 땅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너무나도 낮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소경이 예수님을 만난 지금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호기였던 것입니다. 지금을 놓쳐버리면 어쩌면 그 소경은 평생을 그렇게 앞을 보지 못한 채 거지로만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귀에 들린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은 붙잡지 않으면 안 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이시란 이름을 듣는 바로 그 순간에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그 예수님으로 인해 눈을 뜨는 기적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회를 잡는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렇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는 이 소경의 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한 한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려는 안타까움을 가로 막고 섰다는 것입니다.

(10:47-48)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도 경험하는 가장 서글픈 현실입니다. 어떻게 한 번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변화를 만들어 보려고 작심을 해도 그 길을 가로 막고 고통을 주는 이가 불신자들이 아닌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측근들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들을 절망케 하고 또한 가슴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네 원수가 네 집에 있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했던 사람들이 바로 같은 민족이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는 슬픈 사실입니다. 그 이후 6.25가 터졌을 때에도 북한 놈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모든 이웃들을 고자질 하고 잡혀 가게 했던 사람들도 다 같은 이웃들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를 힘들게 하고 사업장에서 믿는 이들에게 사기 치는 악한 자들도 다 예수님을 자칭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바디매오라는 이 소경을 통해서 진리 하나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두려워 말고 더욱 큰 열정으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오늘 꼭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소경이 예수님에 관해 정확한 신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시여!” 라고 불렀다는 그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외친 사실도 간과 할 수 없는 놀라운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높여 드리고 자신은 낮추어 애걸하는 이와 같은 신앙자세가 바로 예수님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배가 부른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도 애절함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도 맹목적인지도 모릅니다. 이 소경처럼 목이 타야 합니다. 이 소경처럼 절박해야 합니다. 이 소경처럼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변의 모든 방해꾼들을 부끄럽게 하고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세와 믿음으로 무장해야 어떤 방해가 있고 문제가 있고 장벽이 막혀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헨렌 켈러가 남긴 글에는 다음과 같은 가슴 찡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나에게 단지 3일 만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첫 날에는, 그동안 나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보고 싶다. 둘 째 날에는, 박물관에 가서 각 시대와 각 민족을 통하여 이룩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셋 째 날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에 가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바라보고 싶다.” 고 말입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까?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저 아름다운 새 소리와 음악소리와 특별히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축복입니까?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예수님과 하나님을 자랑하고 전도할 수 있는 것은 또한 그 얼마나 고귀한 축복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모든 복을 다 누리면서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고 고통을 주며 산다면 참으로 하나님과 장애를 가진 모든 분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오늘 소경 바디매오를 통하여서 많은 깨달음과 교훈을 받고 다시 한 번 더 예수님과 부모님과 이웃들에게 감사드리며 사는 위대한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이 종은 강원도 횡성에서 일어났던 지난 달의 비극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때 만약 17살의 소녀가 공부가 하기 싫어도 남들은 학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학원에서 미래의 꿈을 심으며 공부할 수 있는 것도 특별한 축복이라는 깊은 생각을 가지고 학원에서 계속 공부하고 있었더라면 그런 인생 최악의 불행은 당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공부하기도 싫고 현실이 힘들다며 찾아온 작은 새와 같은 여린 여학생을 따뜻하게 보담아 주고 용기를 주고 이런 환경을 극복해야 더 큰 미래가 있지 않겠느냐고 다독거려 주었더라면 그 세 남학생들의 앞날이 감옥에 가는 그런 극단적인 범죄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들은 힘들고 지겨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고 또한 그들은 불쌍한 한 여학생을 보듬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범죄의 대상으로 삼고 말았으니 저렇게도 끔찍한 결과를 맞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한 소경의 끈질긴 인내와 열정으로 환경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기회를 포착하려면 그 기회를 가로 막고 있는 환경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하게 다가 온 기회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종이 평생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 왔던, "Nothing can be done without effort."(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 저절로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제 다음 달이면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전 세계의 스포츠맨들이 다 모여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이 열립니다. 그들이 거기에서 매달을 목에 걸기 위해 피땀을 흘리는 모습을 태릉선수촌의 모습으로 방송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에 14시간 16시간씩 그들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다이빙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을 TV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도 깊고 푸른 물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거꾸로 떨어지면서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방해가 생겼다고 포기하거나 그만 둘 그런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지금 브라질에는 지카바이러스와 슈퍼바이러스와 테러리스트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속속 그곳으로 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코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이미 환경을 극복한 한 여인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고 그곳에서 부모형제를 다 잃어버리고 어린 나이에 사촌 오빠의 손에서 자라났지만 결코 환경에 굴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준비 시켜 당대의 최대의 왕이었던 페르시아 왕국의 아하수에로 왕비로 등극하였던 에스더를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당당하게 배우고 과감하게 일어서는 용기와 신념의 사람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환경도 능히 극복하고 하늘이 내리시는 복된 기회를 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소자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는 놀라운 기적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이웃들은 소망을 획득하며 우리 당사자들을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단순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소경 바디매오가 취하는 단순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겉옷을 내어버리고 달려갔습니다.

(10:49-5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거지에게 겉옷은 옷과 이불의 역할을 동시에 커버하는 매우 소중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그 모든 것을 다 집어던져버리고 달려갔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겠다는 단순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 소경은 예수님께서 소원을 물으시자 딱 하나만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합니다!” 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단순성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려도 소원이 너무 많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이 구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많이도 구하고 또 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만, 가장 소중한 하나만 구하면 스스로도 응답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간절함이 더욱 더 하나님께 상달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매우 단순하신 분이십니다. 믿음 하나만 보시고 우리들에게 기적을 주실 만큼 단순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양식도 일용할 양식만 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날 먹을 것 까지 다 거두고 준비하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쓸모없도록 상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렇듯 단순성을 배워야 합니다. 옛 속담에 토끼 두 마리를 쫓아 가다가는 다 잃어버린다.” 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하나만, 한 우물만, 한 사람만 추구하고 쫓아가면 반드시 끝이 있을 것입니다.

그 옛날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는 정성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과연 귀한 일을 그는 했던 것입니다. 말이 일천 번제지, 그 정성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 번에 양이나 소를 한 마리만 드린다 해도 천 마리가 됩니다. 돈으로 계산해도 엄청난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는 몇 분 몇 초 만에 다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 한 마리를 다 태운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옛날 그 열악한 시설로 소 한 마리를 태우려면 아마도 하루 종일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을 일천 번이나 드렸으니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감동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물으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고 말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대답은 너무나도 단순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종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라고만 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감동하셨습니다. 부귀도 구하지 아니하고 호시탐탐 전쟁을 일으키는 이웃나라를 대적해 달라고도 아니하고 장수도 구하지 아니한 채 오직 지혜를 구하니 이 모든 것을 지혜와 더불어 너에게 주겠노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단순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됩니다. 단순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경이요 거지요 소외된 바디매오에게 왜 필요한 것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오직 하나 눈 뜨기만을 소원했습니다. 그의 단순성의 매력을 보여 주는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 결혼식을 주례 했던 분의 간증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나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 잭의 결혼식을 주례했습니다. 주지사의 관사에서 벌어진 결혼식 전날 밤의 축하연에는 정계의 거물들이 몰려 왔으며, 거기다가 잭과 주디가 다니게 될 조지아 대학교에서 온 멋진 친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각계각층의 내빈들이었습니다. 뷔페 식사를 시작하기 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유리잔을 두드리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 함께 머리를 숙여 주십시오. 기도합시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주님, 아내와 저는 지금까지 멋진 식사를 아주 많이 대해 왔으며, 식탁에 둘러앉을 때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들 주디와 잭도 식탁에 둘러앉을 때마다 그와 같은 즐거움을 누리도록 해 주십시오." 카터는 주님을 찾아 그들의 즐거운 시간에 관해 말했으며, 잭과 주디가 앞으로 식사시간마다 즐거운 시간을 나누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식사시간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체험했던 놀라운 감동이었습니다. 당시 카터는 조지아 주의 주지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아가 식사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드리는 귀한 기도로서 말입니다.”

깨알 같이 많은 날 오늘은 하나를 구하고 내일은 또 다른 하나를 구하면서 단순성에 길들여지는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소경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의 발걸음도 멈추게 하고 예수님의 기적도 체험하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부디 듣기만 하지 말고 오늘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고통의 순간도 있고 행복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 어떤 때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만날 만한 기회를 찾는 것은 축복의 문을 여는 소중한 방법입니다. 일생을 소경으로 거지로 비참하게 살아갔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그 어떤 방해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그 기회를 찾아 열정을 다 했던 그는 결국 기적을 만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기회만 잡았다고 다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천신만고 끝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소원했던 한 가지 그것을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는 기적을 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늘 우리들도 이처럼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열정과 단순함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기회는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그런 열정과 간절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왔으니 하나님을 만나고 가겠다는 간절함으로 바디매오와 같이 단순하게 구하고 풍성하게 응답 받는 그런 멋들어진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6717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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