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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4일 주일낮설교 (돈을 포기한 사람)

돈을 포기한 사람

7. 24, 2016

本文:누가복음19:1-10

:

 

[청년 버핏박철상(32)씨가 400억 원대 전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박철상 씨는 최근 '잡스엔'과 인터뷰를 갖고 주식 투자 활동을 중단한다.""갖고 있는 400억 원대 자산 중 노후·생활자금을 제외한 전재산을 50여년에 걸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수백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400억 원대 자산가가 된 인물이다. 2013년 장학 사업을 시작해 '청년 버핏'으로 불려 왔으며, 이번에 잡스엔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전업 기부자'를 선언한 것이다.

박 씨는 사실상 전재산을 기부할 것"이라며 "앞으로 가정을 꾸린 후 자식이 생기더라도 재산을 전혀 상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719일자 조선일보)

온 세상이 돈을 주인으로 삼고 돈을 가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같은 현실에서 이제 겨우 32살 밖에 안 된 젊은 청년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기부하겠다고 발표하는 자체만으로도 청량제와 같은 신선함을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진경준 부장검사나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같은 고위직 공무원들이 줄줄이 돈과 연루되어 감옥에 가거나 대통령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고 정치판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때에 이처럼 젊은 청년이 신선한 결단을 내 놓아 더욱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에 자유로울 수만 있어도 이 시대의 성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돈은 우리들을 초라하게 만들거나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부자 삭개오가 성경에 기록되어 오고 오는 세대에 깊은 교훈을 주고 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입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멋들어진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깊은 도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돈을 포기한 사람

오늘 본문에 등장한 인물은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돈을 위해 일생을 걸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당 시대에서 백성들의 세금을 거두어 바치는 세리는 모든 백성들의 공분을 사는 적대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와 같은 세리들을 관리 감독하는 세리장이었으니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세금을 갈취하여 적대국에 갖다 바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재산을 갈취하여 돈을 챙겼던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삭개오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엄청나게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도 돈을 좋아하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갈취했던 그 전재산을 미련 없이 내 놓았기 때문입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의 재산이란 결국 세리로서 그리고 세리장으로서 갈취했던 백성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4배로 갚고 나면 그는 사실 빈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는 생명처럼 소중한 전재산을 다 내어 놓는 기적 같은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자 하는 교훈의 핵심입니다. 사실 돈을 빼 놓고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이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돈은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을 엇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호주머니를 닫아 놓은 채 사랑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똑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헌금에 인색하면서 믿음을 운운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과부가 헌금했던 동전 두 랩돈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가장 많은 헌금을 드린 사람이라고 칭찬하셨고 솔로몬이 바쳐 드린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는 그 속에 전재산을 다 드린 사랑이 있었고 천 번이라는 정성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재산을 아깝다 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회복이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 되었던, 하나님이 되었든 간에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삭개오는 거짓말 같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렇게 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보다 더 귀한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렸고 예수님께서 친히 선포해 주시는 구원의 반열에 서는 엄청난 축복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와 같이 복된 길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지? 우리 함께 공부하며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삭개오는 자신의 핸디캡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라는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하나의 핵심은 삭개오라는 사람은 키가 작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핸디캡 즉 약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와 같은 자신의 약점을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는 복된 관심 때문에 바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바쁘고 스스로 부인하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거짓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자신만의 약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한 그는 결코 행복하거나 복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일단 남보다 자신이 먼저 자신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자신의 약점이 공개적으로 만 천하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을 바로 만나게 될 때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약점 때문에 예수님을 바로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삭개오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자신의 핸디캡을 그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점으로 인해 자신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그것은 더 높은 나무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과정을 통하여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무리들 속에 둘러싸여 계시던 예수님께서 스스로 그 무리를 벗어나 나무에까지라도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던 그에게로 친히 다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그를 우러러 보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삭개오에게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먼 발취에서라도 예수님을 한 번 보았으면 하고 나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속마음의 소원까지 아시고 집으로까지 방문해 주시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 주셨으니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의 소원을 또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더 본문으로 돌아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근본 동기를 살펴보면 키가 작다는 그의 핸디캡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삭개오가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키를 가졌다면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서 예수님 주변만 맴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워낙에 그의 키가 작고 사람들은 많으므로 그는 거기에 머물고 있지 않고 뽕나무에 올라가는 차선책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대목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약점, 바로 그것을 감추지 말고 삭개오처럼 드러내 놓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단편 소설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오 헨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세]가 그의 대표작입니다. 그는 원래 시골의 조그마한 은행의 행원이었습니다. 그는 부정지출로 고소를 당하고 결국은 감옥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전과자가 된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활동이나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립된 그는 혼자 앉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모두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인 소설가로 등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하고 그 약점에 자신을 묻어버린 채 그렇게 세상을 어둡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주시는 한 말씀은 참으로 가뭄의 단비와 같이 소망스럽습니다.

(5:3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이 삭개오와 같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축복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가 되기를 원하고 여자는 또한 남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최근에 만난 어떤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단 한 번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하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보면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 여자는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 만큼 이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자로 태어난 것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처한 환경을 이처럼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또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 앞에서 기가 죽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 앞에서 저절로 기가 죽습니다. 더 더욱 이쁜 사람 앞에서 못난 사람은 이 시대에 가장 기가 죽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자신이 키가 작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본다고 기죽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겠다고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가 스스로 키가 작아 볼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며 돌아섰지만, “삭개오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기가 죽고 낙심하며 돌아섰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느낀 삭개오는 더욱 당당하게 차선의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이 주위에 있는 뽕나무였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뽕나무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일이 아니니 그랬는가보다 하지만 삭대오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키는 작지, 모든 사람들의 비난은 온 몸으로 받으며 미움과 질시의 대상이지, 그런 주제에 돈은 많아 보자지... 그러한 사람이 뽕나무로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신다면 결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키가 작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간다는 그 자체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냥 뽕나무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예수님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마음 중심을 다 알고 계십니다. 체면을 따지지 아니하고, 자신의 신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따지지 아니하고 과감하게 뽕나무에라도 올라갔던 그의 열정과 중심의 소원을 주님은 이미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다 제치고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에게로 친히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우러러 보시고 그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환경을 극복하는 열정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약점을 극복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들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작은 가치 따위는 과감하게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적당하게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천국을 과감하게 두드리고 정복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을 끌 힘도 없는 호흡 곤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여 드디어 열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하신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다.”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의 의원이 되었고, 28세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었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이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대통령입니다.

돈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어 마침내 부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그를 부자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는 객관성이 있는 부자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작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었으며 소외되고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신선한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무관심하며 살았던 예수님에 관한 관심이 싹텄기 때문입니다.

(19:2-3)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관심, 바로 이것이 삭개오의 인생을 180도 달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이웃집 아저씨와 같이 만나도 좋고 만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이와 같은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주자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이다고 한 것은 단적으로 미국의 미래가 얼마나 참담하고 불행해 질 것인가를 보여주는 슬픈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미국의 미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교회에만 나오지 말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삭개오와 같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에라도 올라가는 열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삭개오와 같이 친히 찾아와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렇게도 돈 밖에 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마침내 부자까지 되었던 그가 이제는 그 소중한 돈을 다 포기할 만큼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 외에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가 어떻게 얼마만큼 재산을 포기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이것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앞에서 외친 폭탄선언입니다. 이것을 이 세상의 부자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에게는 이와 같은 놀라운 마력이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들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이처럼 소중한 재산을 다 포기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의 역사 속에서는 웩선교를 창설한 스터드목사님이 그랬었고 새들과도 교감을 가졌다는 성 프랜시스가 그랬으며, 사도 바울이 또한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예 자신의 가장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역사적인 인물 사도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10-11)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갔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부자들보다 그들의 이름은 성경의 주인공이 되었고 인류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라 제대로 사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의 단면인 것입니다. 재산도 좋고 명예도 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순간의 유익일 뿐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해 드렸던 자신의 재산을 다 버렸던 그러한 인물들은 한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소중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있는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순간을 살고 가는 짐승과 영원을 살아야 하는 인류의 다른 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길고도 영원하게 살아가려면 버리는 것도 있어야 하고 얻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버리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다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에 기록된 주인공이 되고 오늘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도 살고 있는 위대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렇게도 짧디 짧은 우리들의 생애를 어떻게 마무리 하여야 하겠습니까? 남들은 버리고 복된 인생 만들어 간 그 재물을 우리는 움켜잡고 그 보다 훨씬 더 소중한 생애를 보기 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들도 소중하다 여겼던 그것을 보기하고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그러한 멋들어진 생명을 유지해 가시겠습니까? 막연하게 교회에만 다니고 예배를 드리며 위로만 받는 종교인이 되지 말고 영육이 진정으로 거듭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덜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핸디캡이 그 무엇이었던 지간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과감하게 결단하는 우리들에게 더 좋고 소중한 것으로 풍성케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된 날 하나님 집에서 예배자로 구별되어 고귀한 말씀을 받으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삭개오와 같은 놀라운 결단으로 영원을 보장 받는 그런 은총을 가득하게 받으시기를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6724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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