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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30일 주일낮설교 (마지막 희망!)

마지막 희망!

7. 30, 2017

本文:마가복음5:25-34

: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원기(55)씨가 등산 도중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은 27일 오후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서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LA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이하 체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한국 대표 선수단의 대회 첫 금메달이자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양정모(64)에 이은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1986년 현역에서 은퇴한 고인은 이후 영업사업으로 시작해 17년 동안 보험회사를 다녔다. 말단 보험설계일에서 총무과 대리·영업소장·본부 업무과장·교육담당 차장 등을 거칠 정도로 능력발휘를 했으나, 가까운 사람의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 전 재산을 날리고 10억여 원의 빚더미에 오르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앞서 고인은 지난 20143월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서 생활고에 대해 털어 놓은 바 있다. 당시 고인은 "보험 회사에서 명예퇴직 후 실업자가 됐다""그 후 빚보증을 잘 못 서 마흔을 넘어 전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됐다. 주유소 세차장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100만 원이 없어 친척집에 살았고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1989년 전남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8년이 지난 2007년 다시 학교로 돌아와 4학기 만에 경희대에서 체육학 박사를 따냈다. 생전 전남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아왔다. 최근에는 전국 교도소를 돌며 자신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는 무료 강연을 하는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을 펼쳐왔다. 유족으로는 아내만 있고, 자녀는 없다. 빈소는 이대목동병원, 발인은 31일 오전이다](조선일보 2017728일자)

이것은 김원기씨 한 사람만의 삶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누구나 다 평안하기를 원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삶의 현실은 결코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기서는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인생이 고난이라고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인생의 고난이 그 얼마나 극심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은 무려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의원이란 의원은 다 찾아다니며 재산까지 몽땅 탕진한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와 같은 고통에서 해방 되고 진정 구원의 소망을 누릴 수 있는 길은 또한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시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희망!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은 혈루병으로 무려 12년을 고생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2년은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 12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12라는 숫자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영적인 또 다른 해석을 내려 볼 수도 있습니다. 원래 12라는 숫자는 사람의 수 4와 하나님의 수 3을 곱해서 만들어진 수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완전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나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가지는 의미가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질병과 고통은 오늘 인간들이 다 같이 공유하는 인간의 현주소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죄인이 된 인생들에게 내래는 하늘의 심판이요 형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고통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 될 수 없는 것입니다.

(5:25-26)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 가슴에 새겨야 할 소중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하게 그 당시에 일어났던 한 사건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이와 같은 사실을 기록해 둔 것이 아닙니다. 오고 오는 세대가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교훈을 받고 깨달음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해 기록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배우면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타락한 인생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절망합니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오직 자신만이 이처럼 비참한 고통 속에서 해매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어리석은 착각일 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저마다 한두 가지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죽하면 우리 찬송가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수록되어 있겠습니까?

근심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이것은 찬송가 4873절로 오래 전 Joshep Scriven이라는 믿음의 아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어머니께 위로하기 위해 써서 바친 시의 일부분입니다. 이렇듯 우리 모든 인생들은 고통의 늪에서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세계의 명문인 스텐포드 대학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대학이 설립된 배경을 보면 감동이 됩니다. 대재벌이었던 스텐포드씨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창 대학에 다니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그 때에 그만 그 아들이 죽고 맙니다. 식음을 전패한 스텐포드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체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꿈속에 죽은 아들이 나타납니다. “아버지, 저만 아버지의 아들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으로 저와 같은 아들들이 다닐 학교를 하나 세우세요. 그러면 저와 같은 많은 아들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며 그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의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털어 또 다른 아들을 만들기 위해 명문 스텐포드 대학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남이 보는 것과 달리 그 누구나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이 바로 그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혈루병은 몸속의 생명 같이 소중한 피가 유출 되는 병으로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이 병은 하나님 앞에서도 부정한 병으로 대중 속에 들 수조차 없는 외롭고 무서운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부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고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15:1-1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이 이러하니 곧 몸에서 흘러나오든지 그것이 엉겼든지 부정한즉 유출병 있는 자의 눕는 상은 다 부정하고 그의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그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 있는 자의 앉았던 자리에 앉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 있는 자가 정한 자에게 침을 뱉으면 정한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 있는 자의 탔던 안장은 다 부정하며 그 몸 아래 닿았던 것에 접촉한 자는 다 저녁까지 부정하며 그런 것을 옮기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과 누가 감히 섞여서 살겠으며 그런 사람을 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부정한 병을 12년이나 지속적으로 앓고 있었으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였겠는지 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여인의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광범위하고 더 넓은 차원에서 본다면 오늘 우리 모두가 다 모양이 다르고 고통이 오는 길이 다를 뿐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종이 30대 후반 때에 소련이 갑자기 붕괴 되고 그 문이 열리자 시애틀에 있는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이 의기투합하여 소련에 복음을 전하자며 1990년에 소련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종의 나이가 제일 어려 가장 연로하신 목사님과 짜매어져 룸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직장암 수술을 받고 항문을 몸 밖으로 내 놓은 채 생활해야 하는 분이었습니다. 더 더군다나 소련으로 들어갈 때가 여름이어서 엄청 고생을 하였습니다. 한 방에서 도저히 룸메이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지독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마음에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렇게도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처절함을 느꼈습니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생이란 저마다 이처럼 지독하게도 힘든 고통과 고난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이 비켜가지를 원하고 그렇게 고통만 없다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임하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고통을 면해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도 그 고통을 해결해보려고 재산을 다 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25-26)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오늘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고통이 해결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고통을 덜어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재산을 다 탕진했는데도 오히려 몸의 고통은 더하여져 갔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주어진 고통은 허우적거리며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늪에 빠진 사람처럼 더욱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인생이요 고통의 모습입니다.

지난 74일 통영에 있는 한 병원으로 41살의 여인이 찾아와 우울증도 앓고 불면증도 있어 고통스럽다며 프로포플을 놓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프로포플은 맞는 즉시 행복하게 잠들 수 있는 일종의 마약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잠을 못자고 우울증 등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많이 찾는 의약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이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은 심장이 멎었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 의사는 두려운 나머지 그 여인의 시신을 진료실에 가만히 둔 채 모든 직원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렌터카를 빌려 한 밤 중에 바다에 갖다 버리고 여인의 우울증 약과 손목시계 등 유류품을 바닷가에 두고 자살을 위장해 두었다가 결국은 결찰에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면해보려다 더 큰 비극을 만들어 낸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이나 통영의 여인과 같이 찾아온 고통을 해결해 보려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사람을 찾아가고 병원을 찾아가고 약물을 의존하고 의사를 찾아가며 알코올을 의존하거나 심지어는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오늘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는 결단코 고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메리스빌에 가면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박장인 Tullalip이 있습니다. 그곳의 주 고객은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단순 노동에 시달리며 단조롭게 살아가는 이민생활의 스트레스를 그곳에 한 번씩 가서 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풀려고 갔다가 중독이 되어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시고 우리들에게 증거해 주시는 말씀 하나를 꼭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5: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많은 의사들을 찾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다 허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더욱 기가 찬 노릇은 그 고통이 더욱 더 심해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의 방법과 도리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도 무서운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마자막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여인에게 마지막 한 가지 희망이 있었음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5:27-28)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녀는 다행히도 그와 같은 고통 중에서 한 가지 마지막 희망에 찬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 소문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소문으로 듣고 흘려버리지 않고 과감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바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가보니 의외로 예수님은 숱하게도 많은 사람들 속에 쌓여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숱한 사람들을 헤치고 무조건 예수님 곁으로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그 예수님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던 자신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곧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옷자락을 움켜쥔 것을 알아차리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숨길 수 없음을 깨달은 그 여인은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서 있는 가운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항복하고 고백하였습니다.

(5: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때의 이 여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얼마나 부끄럽고 당혹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의외로 선선히 그녀를 향하여 더욱 기적 같은 말씀으로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 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사모하는 마지막 소원의 한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여인과 같이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시려면 우리들도 이 여인과 같이 과감하게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되었던 그 여인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 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 여인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녀는 피를 흘리는 부정한 병에 걸려 있었지만, 그래서 사람들 속에 갈 수도 없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다 깨뜨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만나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과감하게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절대적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두 가지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급하지 않기 때문이요, 예수님을 만나도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처신하고 차지도 뜨겁지도 못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고통을 당할 대로 당하였습니다. 12년이라는 숫자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병은 더욱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외에는 더 이상의 소망도 희망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모든 방해물을 헤치고 과감하게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이 여인과 같은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의지할 더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더욱 더 소중한 것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수련의 달 7월이 마지막 주일로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좀 더 우리들의 영혼을 수련하라고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슴으로 받아서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예수님을 다시 만나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와 같이 끊임 없이 고난의 파도가 몰아치는 험악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들이 이 세상의 그것으로 이와 같은 고통의 바람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행복의 보금자리에서 달콤한 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단 한 마디로 대답해 주십니다.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의 이 고통과 그 고통을 해결하려는 방법과 그 고통이 마침내 해결된 사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해답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고통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으로 인해 진정한 구원을 누리는 그런 멋들어진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마지막 소망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과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들의 길을 가로 막고 선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움켜잡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들과 우리 자손들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날 성전으로 올라와 예배자로 구별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오늘 이름 없는 이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고 행복한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730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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