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0일 주일낮설교 (결국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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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3 September 2017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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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믿음입니다!
8. 20, 2017
本文:히브리서11:1-6
說敎:崔 仁 根 牧師
[지난 5월 10일 중국 선전(深圳)의 전자제품 전문 상가인 화창베이(華强北). 스마트폰 매장 여러 곳에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8이 진열돼 있었다. 하지만 이 갤럭시S8은 모두 선전 일대에서 만들어진 위조품이었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에 갤럭시S8을 출시한 것은 5월 25일. 실제 제품이 중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이미 위조품이 시장에 깔린 것이다. 점원은 "통화, 인터넷 등 모든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완벽한 복제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23일 미국 뉴욕에서 공개할 갤럭시노트8도 18일 현재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언론에서 흘러나온 각종 사양과 추정 사진을 토대로 만든 가짜 상품이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하면서 중국산 위조품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위조품과 특허 침해로 미국이 연간 2250억~6000억 달러(약 256조~685조원)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도 중국산 위조품의 주요 피해국이다. 특허청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적발한 한국 제품 위조품만 6만5426건에 이른다. 세계관세기구는 위조품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전 세계 교역 물량의 5~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유럽연합과 미국 정부는 이 중 86%를 중국산으로 지목하고 있다. 무역 업계에서는 이런 기준을 지난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액 1244억3300만 달러(약 141조6000억원)에 적용하면 한국 기업들의 매출 피해액은 연간 8조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위조 피해 품목도 식품·화장품 같은 생활용품에서 최근 들어서는 첨단 정보기술(IT) 기기, 문화 한류(韓流)를 이끌었던 방송 콘텐츠·게임, 프랜차이즈 상표권 등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위조품을 발견하면 중국 인터넷 쇼핑몰에 삭제를 요청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며 "기존 중국 사업이나 각종 인허가 때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 기업이 중국 당국을 상대로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조선일보 8월 19일자)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입니다. 중국으로 인한 가짜 파동은 이제 전 세계로 번져나가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1년에 8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점점 불신이 국제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반증입니다. 이와 같은 가짜 현상은 우리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로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가짜 신자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흉내만 내며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대로 된 믿음의 신자들을 만나보기가 어렵습니다. 홍성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에서 39도를 오르내리는 삼복더위 속에서 부흥회를 나흘 동안 인도하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한 가지 흐뭇한 사실은 제대로 된 신자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중행사로 부흥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신앙훈련으로서의 부흥회를 실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성도들이 말씀 잔치에 참여하는 출석률과 그들이 내는 헌금으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여름 부흥회를 오직 그 교회만 하고 있었던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1년 중 여름만 제외하고 바다에서 새조개와 대하를 일손이 문에 한가한 여름에만 부흥회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더운 여름임에도 그들의 출석률은 매 예배 시간마다 동일하였으며 2-3백만 원씩 헌금하는 성도들이 있음을 볼 때 그들의 신앙이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의 가슴에 믿음이 없을 것이라고 이미도 예언해 주셨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예배를 소훌히 여기거나 그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정성이 없다면 이는 곧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란 눈앞에 보이는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그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 드리는 예물이 아깝고 그 주님께 바치는 예배에 빠지면서 믿음을 운운하는 것은 초라한 변명이요 믿음이 없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고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살아계시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으로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빠져서 세상의 그것으로만 행복하고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연 그 무엇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밝혀 주신 바와 같이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에서 바울로 개종하고 오로지 그 하나님만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사도 바울은 선명하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도 믿음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일까요? 오늘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면서 은혜와 축복을 누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만이 구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남들과 달리 예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구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불신자와 똑 같은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갈 때에는 아마도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을 때 이 말씀보다 더 값지고 귀하며 위로가 되는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단 한 사람도 이와 같은 죽음에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눅16:22-26)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그 누구든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와 상관없이 구원 받은 사람은 천국으로 가서 복락을 누리게 되고 그렇지 못하고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은 부자와 같이 지옥으로 들어가 영원한 고통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구원을 확증 받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행4:10-12)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을 죄악의 형벌에서 건져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믿음만이 축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도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지 않는 불신자들 앞에서 모범이 되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 낼 수 있는 증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풍성한 축복으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렘29:1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덧입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속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우리들의 믿음이 굳건한지 어떤지를 시험해 보시고 거기에 합당하게 인정을 받을 때 넘치도록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창세기 22장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가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친히 부르시고 명령하시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뜻밖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차마 말할 수도 없는 놀라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나이 100살에 얻었던 독자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창22:1-3)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따라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창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22:9-10)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들 이삭을 이처럼 짐승을 잡듯이 잡아 하나님께 불에 태워 바쳐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창세기에서는 이에 대한 그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2천 년이 지난 후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습니다. 자신이 이삭을 잡아 번제로 태워드려도 하나님은 친히 그 아들을 다시 살려내실 줄을 믿었습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믿음이 아브라함의 내면에 있었기에 그는 그렇게도 소중한 아들 이삭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갖다 바쳐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그와 같은 믿음을 인정하신 후에 넘치도록 축복을 쏟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창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믿음만 인정하시게 되면 이처럼 말로 다할 수 없는 넘치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여호와 이레”라는 축복이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때를 따라 준비해 주신다면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처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시대에서도 똑 같이 나타나는 믿음이 축복의 지름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 없는 기적과 축복이 이와 같은 믿음을 쫓아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수 없는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가 다 한결 같이 믿음으로 인하여 나타났던 사실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대략적인 것만을 찾아보아도 다음과 같이 많이 있습니다.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막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 에서 좇으니라
(마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축복은 사모한다고 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과 기적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무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이 오로지 이 땅에서 뿐이라면 우리들이 교회에 올인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재물을 헌금으로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며 소중한 시간과 몸과 정성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생을 자신의 사사로운 삶을 배설물과 같이 다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올인 하였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겨 두었습니다.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 말입니다. 도대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이 이 땅에서만 존재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연속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 하늘나라에서의 상과 꿈과 소망이 있었기에 이 땅에서의 소중한 모든 것을 다 포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리려 이 땅에서 사는 1백년도 안 되는 이 삶보다는 무궁세계에서 영원히 사는 그 삶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나라에서의 상급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먼 훗날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고 살아야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상급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이 땅에서 잘 살고 행복하기만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불신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위대했던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모세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기대하고 이 땅에서의 모든 부귀영화를 과감하게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이 하늘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 앞에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마지막 순간이 닥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랑하며 당당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던 사도 바울이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일생을 오로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았던 사도 바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무서웠던 험악한 한 세상을 살아 왔지만 그 마지막 순간만은 이 땅의 그 누구보다 더 당당하고 소망 넘치게 맞이한 것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다 보여 주었습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말입니다. 이 얼마다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마지막 순간입니까?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놀라운 믿음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믿음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떠나야 할 우리들의 인생을 이와 같은 믿음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소망 넘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날마다 상 받을 믿음을 만들어 가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살같이 빠른 세월이 벌써 8월의 하순을 향하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들의 삶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지막 그 순간에 사도 바울과 같이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 받을 것을 기대하며 이 땅에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않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 모두 믿음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하루하루 삶이 모아져 미국생활의 기본이 되는 크레딧을 만들 듯이 우리들의 삶의 순간들이 모아져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한 축복을 만들어 내는 믿음을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때 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믿음을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의 인생은 믿음을 만드는데 올인 해아만 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는 한 우리들은 하나님은커녕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지 못한 슬픈 삶을 산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별명은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걸 맞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구원과 축복과 상급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이와 같은 복된 믿음으로 남은 삶을 승리하게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년 8월 20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