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6일 주일낮설교 (자손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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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6 May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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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들을 위해서라도!
어린이주일
5. 6, 2018
本文:시편37:25-31
說敎:崔 仁 根 牧師
말 못하는 들풀도 씨앗을 날리며, 들판을 뛰노는 짐승들도 새끼를 낳아 종족을 번식합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우리 인생들이 어찌 좋은 자손들을 이 땅에 남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참으로 어리석은 방법으로 자손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십대들이 10억대의 고급 아파트에 청약하여 당첨됨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돈 한 푼도 없는 그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백만 불이나 되는 아파트를 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급기야 국세청이 일어나 그들의 자금출처를 조사하고 부모들이 이와 같은 편법으로 자손들에게 재산을 유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세금조사에 들어가는 등 사회적인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재산이 많아 이렇게라도 자손들에게 재산을 유산해 주려는 것을 우리들이 이렇다 저렇다 할 소지는 아니지만 과연 그와 같이 땀 흘리지 않고 나라의 범을 어겨가며 고가의 고급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그들이 나라와 민족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가슴이 따뜻한 사회인으로 잘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데는 의문이 생기기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성군 다윗은 아주 소중한 진리 하나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다윗이 평생 인생을 살아가면서 발견한 진리는 두 가지였는데 의인이 버림을 당하는 경우가 없고 그들의 자손들이 걸식하는 일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들이 가슴으로 깨달아야 할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는 말씀에 나타나는 해답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를 받게 되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도 잘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 당대에도 복을 받아 잘 살고 후손들도 걸식 없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아 그렇게 믿음으로 사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우리들도, 우리들의 자손들도 형통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축복의 진리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손들을 위해서라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남보다 더 잘 되는 삶을 산다면 내가 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그들은 더 잘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성군 다윗이 가르쳐 준 우리 당대가 잘 되고 후손들이 잘 되는 길 또한 결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단서처럼 붙어 있는 “의인”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진정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후손들도 또한 그렇게 복을 누리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시는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시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소동과 고모라 성에 의인 10명이 없어 그렇게도 무서운 유황불에 멸망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지 말인 오늘도 의인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보다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당대와 후손들에게까지 유산 되려면 그만큼 어려운 의인의 길을 회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종도 오랜 세월 목회하면서 성도들의 삶을 경험해 봅니다. 축복된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길은 마다하고 끝까지 제 방법대로만 사는 것을 보면 실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빌립보의 권속들은 제발 제고집대로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길을 쫓아가는 조금은 바보 같은 순종이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와 같이 보장된 복된 의인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만 함께 그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의인의 길로 인도하는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누에가 푸른 뽕잎을 먹고 하얀 명주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나 소가 푸른 풀을 먹고 붉은 양질의 스테이크를 만들어 내는 원리는 사람이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을 만들어 내는 길 또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원리대로 말씀을 통해서만 믿음이 만들어 집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현대교인들의 최악의 약점은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의 현실이 그만큼 바쁜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는 세상적 유혹이 더 정확한 해답일 것입니다. 온갖 세상적인 것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성경에 머물러 있지 못하도록 미혹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성경을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는 나오는데 그 속에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길로 가는 믿음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 몸에서 가장 소중한 칼슘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비타민 D가 없어서 건강을 해치는 원리와 같습니다. 시애틀은 특별히 겨울 내내 비가 내리고, 햇빛이 나는 여름에는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그만한 여유가 있더라도 햇볕에 피부가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햇빛을 기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 몸에 비타민 D가 부족하여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우리 성도들은 이래저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되니 말씀으로만 만들어지는 믿음이 없어지고 믿음이 없으니 의인이 되지 못하고 의인이 되지 못하니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불행이 자신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 유산이 되고 있으니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람 만드신 것을 크게 후회하신 하나님은 물로서 그 모든 인간들을 다 멸할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신으로 삼고 세상에서 자기 좋을 대로만 살아가는 인간들을 대홍수로 심판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라 하나님의 이와 같은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오로지 말씀을 따라 산에다 방주를 짓는 어리석을 만큼 미련하게 순종함으로 결국은 온 가족들을 다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온 자녀들은 아버지 한 번 잘 만난 덕분에 죽을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 도전 받아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도 복을 받고 잘 살아야 하겠지만 우리들의 후손들도 이 땅의 주인이 되며 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노아와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뉴욕시 교육위원회가 재미있는 보고서 하나를 내 놓았습니다. 미국의 명문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며 부흥목사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와 뉴욕에서 술집을 경영하며 거부가 된 마커스 슐츠(Marcus Schultz)라는 불신자의 가정이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가를 그들의 자손 5대를 거슬러 근황을 알아 본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의 자손들은 모두 896명인데 그 중 성직자가 116명 대학 총장이 3명, 학장이 66명이었으며 교육자가 86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학가 75명, 국회의원 4명, 부통령 1명, 사업가 75명, 과학자 21명, 장로와 집사 등 모범적인 신앙인들이 286명이나 되었습니다. 반면에 슐츠의 자손들은 1,062명이었는데 그 중에 평균 5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사람이 96명, 알코올중독자와 정신질환자가 58명, 윤락여성이 65명, 극빈자가 286명이었는데 이들을 위해 지출 된 국고가 무려 1억 5천만 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긴 세월도 아닌 5대에 이르는 세월 동안 이렇게도 놀라운 변화와 차이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결국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사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국의 스트라칸 목사님이 어느 날 서재에서 친구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딸이 들어왔습니다. 딸의 줄넘기 줄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습니다. 그의 딸은 아무 말도 없이 그것을 아버지에게 건네어 주고 조용히 방을 나갔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으나 무심결에 그 줄의 매듭을 다 풀었습니다. 잠시 뒤에 그의 딸이 들어와 "아빠, 고마워요!" 하고는 줄을 들고 깡충깡충 뛰어 나갔습니다. 스트라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는 없는지요?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그것을 다 해결하게 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자기의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친 듯이 일하고 있습니까? 직장을 바꿔야할 것인가, 집을 파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를 결정하지 못하여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사소한 일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있노라 하는 의인들의 기도의 자세입니다. 엄청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그 주님께 삶의 무거운 짐을 맡겨드리는 것, 바로 이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결 같이 지금도 우리들을 향하여 부르시고 계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이렇게도 평범한 진리를 모른 채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결코 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능력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되면 교만하고 못 되면 절망하는 그런 삶은 결코 믿음의 삶이 아니요 의인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닌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일컫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15:21-28에 나타나는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딸이 귀신들려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세상적인 방법을 다 강구했으나 결국은 고치지 못하고 예수님을 찾아와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개 취급을 받았으나 끝까지 참고 그리스도에게 부탁하고 매달렸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칭찬을 받고 딸의 병을 고쳤습니다. 여기서 가나안 여인의 기도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어느 때 기도했습니까? 그 여인은 문제가 커져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서양의 속담에는 "인간의 이성이 다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인간이 스스로 해결한다는 고집이 있는 한 하나님은 그런 자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1948년 1월 30일 흉탄에 맞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인도의 영웅 간디는 말하기를 "신 이외에는 아무도 또 아무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라고 외친바 있습니다. 신(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는 낙심치 않고 간구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겸손하게 간구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낮은 자세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도록 엎드려 기도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세 번째로 가나안 여인은 기도의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시를 당했으나 끈질긴 기도 끝에 칭찬을 받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소원하던 일 곧 딸의 병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말하기를 "인간은 신의 미래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신이 얼마나 축복하느냐에 따라 결론지어지는 신앙적 존재임을 시사 한 의미 깊은 말입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끝까지 믿고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가나안 여인처럼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자손들에게는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렇듯 응답 받는 기도는 반드시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가 기도하고 그와 같이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는 또한 반드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는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의인은 이처럼 기도하고 응답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로 섬겨야 합니다
20세기 정신적 거성중의 한 사람인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하던 중에 행복한 자기는 불행한 자들을 위해서 살고 무엇인가 봉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0세 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그 후부터는 남을 위해 살겠노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30세에 이미 목사로, 신학자로서, 대학교수로서 또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면 남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일로 인류에게 봉사할 것인가? 하던 중 그는 어느 날 신문을 보고 그의 인생의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콩고 지방에서 흑인에게 의료봉사를 할 하나님의 일꾼을 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광고를 본 그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할 일을 위해서 다시 의학공부를 7년간 더 한 다음에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90세가 되도록 흑인들을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슈바이처로 하여금 90평생을 흑인을 위하여 봉사하게 한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믿음, 바로 그것이 그로 하여금 이처럼 아름다운 봉사와 의인의 길을 무려 90년 동안을 지속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가슴 속에 깊이 살아남아 있습니다. 의인은 바로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야고보는 행위실천의 사도로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 스스로 믿음에 굳게 서 있다고 호언장담하여도 행동하는 섬김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 의일 뿐 객관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입증해 보일만한 행동이 있어야 하고 그와 같은 행동이 바로 봉사와 섬김입니다.
40년 동안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신앙의 감격이 없어 답답해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수녀원에 투신하여 계율과 의무에 열중하였지만 마음의 차가움과 공허는 여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복도를 걸어가다가 주께서 헤롯의 뜰에서 채찍을 맞으시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수백 번도 더 본 그림이었으나 그 날 그 순간 그 그림은 전혀 새로운 경이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여인은 자신을 위해 고난 받고 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전에 없던 구원의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순간 그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참 후 여인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 의에만 젖어 있는 죽은 믿음의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새 영혼으로 일어섰던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심정으로 일어섰습니다. 더 이상 이 여인은 옛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바다가 여인의 가슴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빈민굴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며 생명으로 살려 냈습니다. 그와 같은 섬김을 하늘에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지속해 나갔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성 테레사 수녀였습니다. 믿음은 결국 예수님을 따르게 하였고 그 예수님은 이렇게 섬김을 온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봉사와 섬김이 없는 믿음이란 그러므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불행하게도 이처럼 헌신적으로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힘을 다해 봉사와 섬김으로 의인의 반열에 우뚝 서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의인이 될 때 그와 같은 자의 삶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걸식하지 않도록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8년도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유산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이 땅에 재벌처럼 돈이라도 많으면 그 돈으로라도 잘 살아보라고 유산해 주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후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겠습니까? 당연이 그 돈보다 더 값진 유산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다윗이 평생을 두고 확신했던 믿음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진짜로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고백해 놓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의인이었습니다. 그가 본 의인은 보통 사람이 아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해 주시는 특별한 사람이요 또한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친히 걸식하지 않도록 챙겨주시더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사랑하던 아들 솔로몬에게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유언하였습니다.
(왕상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유언하고 다윗과 같이 믿음을 유산할 수 있도록 우리들이 먼저 믿음으로 의인의 반열에 서고 노아와 같이 후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상급과 칭찬을 받고 우리들의 후손들도 그 길을 따라 유복하게 주어진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믿음을 유산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복되고 귀한 어린이 주일에 힘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8년 4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