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6일 주일낮설교 (우리를 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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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6 August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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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우라!
8. 26, 2018
本文:사도행전16:1-10
說敎:崔 仁 根 牧師
["저는 미혼모의 아들, 기초생활수급자였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하고 봉사하며 제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졸업하게 됐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는 29일 서울대 후기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오르는 서울대 경제학부 박성태(25)씨의 연설문 일부다. 박씨는 사회과학대학을 수석(首席)으로 졸업한다.
경북 영주 출신인 박씨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사업 때문에 떨어져 사는 줄 알았던 아버지는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박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뿌리 찾기'라는 숙제 때문에 주민센터에서 등본을 떼어보고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운영하던 숙박업소가 문을 닫아 가정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도 생각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장학금을 알아봐 주고 그를 설득해 수시 지역균형 전형으로 2011년 서울대에 입학했다.](8월24일자 조선일보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된 배후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그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바로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도 이렇게 그 누군가가 되어서 사회와 나라를 빛내는 인물들을 키워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세상을 밝히는 가장 멋들어진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도우라!
오늘 본문에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놀라운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쳐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었겠지만 여기에 귀를 기울였으므로 인류 역사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그런 소중한 말씀입니다.
(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란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부르심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한갓 꿈이려니, 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여 기독교 선교역사에 놀라운 획을 긋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래 사도 바울의 꿈은 아시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므로 가슴이 답답하여 있었던 차에 마게도냐로부터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새로운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16:6-9)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예리한 영적인 지각이 있어서 비록 환상 중에 본 것이지만, 비록 한 사람이 부르는 요청이지만,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였을 때 곧 바로 행동하는 그런 놀라운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사람이 와서 도우라고 하였어도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사람이 함께 섞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또한 남을 돕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돕기는커녕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며 고통을 주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서양 격언에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God helps those who helps themselves.)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먼저 보험을 들 듯 돕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도와줘야 할 이웃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밤중에 잠을 자다가 하나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꿈을 그냥 흘러버리지 않고 일어나 순종하게 됩니다. 그는 그 환상의 주인공인 한 사람을 바로 하나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행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들과 사도 바울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들에게 “도우라”고 말씀하셔도 못 들은 척 잊어버리고 돌아서고 마는데 사도 바울은 꿈을 꾸고 꿈속에서 한 사람의 음성을 들었는데도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새롭게 일어나 깊은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한 평생은 짧고도 허망한데, 그뿐 아니라 바람처럼 날아가며 빨리 지나가버리는데 그렇게 꼬장꼬장 자기 고집대로 살고,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였던 모세는 오늘 이와 같은 우리들을 위해 인생의 소중한 한 교훈을 남겨 놓았습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날아가듯 빨리 지나가는 인생을 보다 더 보람 있고 효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 본문을 통한 깊은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엄청 추상적이라면 구체적으로 삶에 적응할 수 있는 말씀으로 재해석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 올 때 외면하지 아니하고 도와주게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게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실컷 도와주고 보살펴 주고 나면 배신하고 떠나간다고들 그렇게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어쩜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이렇게 배신하고 고마움조차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들의 도움으로 망가져야 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람이 새롭게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위대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된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남을 도울 필요가 없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서울 대학교 수석 졸업자 박성태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가정 형편이 가난하고 비참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취직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업자인 엄마랑 둘이서 밥을 먹고 살 수조차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고등학교 때 선생님 한 분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대학진학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이끌어 주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하기는 여전하였고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친구도 사귈 수 없었고 외톨이가 되어 자살까지 결심하였으나 또 다시 학교에서 귀한 상담사를 만나 새로운 꿈을 안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3군데까지 뛰면서 학업을 지속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누군가가 소리 소문 없이 이 불쌍한 청년을 도와주었기에 이처럼 성공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낯모르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여도 외면하지 말고, 주의 종이 도와달라고 해도 거절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도와달라고 하신다면 목숨이라도 드리려는 자세로 도우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우리들의 자손들이 살아가는 미래에도 도움을 받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여도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은 그래서 오늘 우리들과 다른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 해방교회 차봉오장로의 아름다운 섬김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이웃 주내과의 주장로님의 부인의 아버님이시기도 합니다. 차장로님은 이승하 담임 목사님의 사모님이 16년 동안이나 이단에 빠져 있어 목사님의 시무조차 어렵게 되어 쫓아내라고 야단일 때 “불쌍한 우리 목사님을 우리들이 도와드리지 않는다면 이 세상 그 누가 도와주겠느냐?”며 끝까지 지키고 시무하실 수 있도록 도우신 장로님이요, 교회 건축을 할 때는 목사님께 백지 수표를 드리고, “목사님이 쓰시고 싶은 만큼 써 내세요. 저도 그만큼 다시 또 드리겠습니다.”고 하여 건축을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였으며 시골의 작은 전도사님이 찾아와도 허리를 꺾어 인사를 드리고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도와주었던 장로님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승하목사님께서 은퇴하실 때 책을 하나 내었는데, “차봉오장로 그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평생을 경험한 그 장로님의 덕망을 낱낱이 이 책에서 간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어진 우리들의 소중한 삶을 이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남을 도우면 우리도 도움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선택하신 다음 그들을 훈련하여 내 보내실 때 놀라운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담이 될 수 있습니다.
(마10:5-8)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열 두 제자들을 내어보내실 때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이란 예수님을 떠난 자들을 말하고 거저 주어야 할 대상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병든 자, 죽은 자, 문둥이들, 귀신들린 자들이 바로 도와주어야 할 대상들이었습니다. 앞서 우리는 “도와달라”는 사람의 음성을 외면하지 말고 그 음성이 주님의 음성처럼 여기고 도우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도와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런 도와달라는 요청이 없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병들고 죽어가는 그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도우라는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도와달라고 할 때나 간신히,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예수님은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그렇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내어놓고 가장 많이 자선 사업을 하는 사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참으로 감동어린 말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도 많은 재산을 출현하고 전 세계를 향하여 자선사업을 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주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고 말입니다. 남을 돕는 사람의 가치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없는 자들에 대한 빚진 마음, 바로 그것이 사재를 털어 남을 돕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종이 Northgate 아파트에서 우리 교회를 개척할 당시 심방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때마침 그때 눈이 많이 내렸는데 자동차가 다니면서 눈을 한쪽으로 쌓이게 밀어 놓게 되었습니다. 양쪽 사이드의 길 중앙은 거의 대부분이 양쪽으로 턴을 할 수 있도록 공백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양쪽으로 달리는 차들이 눈들을 그 가운데 쪽으로 밀어 놓아 언덕처럼 쌓여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눈은 가운데에서 얼었고 길의 검은 떼가 내려 않아 눈처럼 보이지 않고 까만 보통 길처럼 보이고 있었는데 어두운 밤에 집으로 가려고 왼쪽으로 턴을 하던 이 종은 깜짝 놀랐습니다. 가운데 높이 쌓여 얼어버린 그곳으로 통과하다가 자동차가 양쪽 길을 가로 막은 체 눈 어름 위에 얹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11시 반이 넘은 시간이라 자동차는 많지 않았지만 매우 위험한 상황이어서 일단은 차에서 내려 갓길에 서 있었습니다. 눈바람은 매섭게 불고 지나가는 차는 없고 자동차는 길을 가로지른 체 눈 어름 위에 얹혀 있고,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트럭 한 대가 지나가다가 문득 멈추더니, “May I help you?” 하며 다가 왔습니다. 그러더니 자신의 자동차를 끌고 와서 쇠줄을 꺼내더니 시커먼 눈 녹은 물로 바닥이 질펀해져 있는데도 그 분은 서슴지 않고 종의 차 밑으로 들어가 누워서 어딘가에 쇠줄을 걸고 나와 자신의 자동차로 당기니 쉽게 제 차가 내려 왔습니다. 등은 온통 차고 더러운 얼음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 추운 밤에 더러운 얼음물로 등판이 다 젖었으니 그 사람은 얼마나 또 추웠겠습니까? 그래서 돈이라도 주면서 보답하려고 지갑을 꺼냈더니 두 손을 들고 사양하면서 놀라운 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저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에게 보상하고 싶거든, 너도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와 같이 도와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 이후 이 종은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도와주다가 나간 돈이 30만 불이 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갑시다.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거든 우리 절대 거절하지 마십시다. 그 대상이 낯선 사람이든지, 교회 목사님과 지도자들이든지, 아니면 하늘의 하나님이시든지 두 말 하지 말고 도우십시다. 우리들도 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돕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이제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조건 없이 도우라는 자의 환상을 보고 순종하였던 사도 바울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꿈속에서 도와달라는 음성을 들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그가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아시아를 포기하고 마게도냐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뜻하지 않는 한 돈 많은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자주 장사 루디아였습니다.
(행16:11-15)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아시아에 대한 개인적인 꿈을 접고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한 여인 루디아를 만나 전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여인의 마음을 열어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게 하시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마게도냐의 첫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통하여서 마게도냐 관문 빌립보에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돕는 자를 도우시고 역사하시며 보상하시는 놀라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도우는 자를 도우시고 기적 같은 축복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이 종은 고려신학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고려신학대학은 고 한상동목사님께서 설립하신 학교입니다. 일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신 한상동목사님을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도우시듯이 평생을 도와주셨습니다. 그 일화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4년 일본은 전쟁에서 점점 패하게 되자 감옥에 잡아넣었던 주의 종들에게 더할 수 없는 잔학한 학대를 하였습니다. 그 옛날 평양은 얼마나 추웠습니까? 불이 없는 감옥에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갇혀 있는 죄수 아닌 죄수들은 가만히 놓아두어도 얼어 죽어가는 죄수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합니다. 한 목사님도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아보려고 휴지로 문틈을 틀어막고 잠을 청하고 있었으나 너무나도 추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간수들이 들이닥쳐 시퍼렇게 얼은 몸을 채찍으로 사정없이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게 되자 그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문틈을 막았던 휴지를 뽑아냈습니다. 그런 것조차도 가차 없이 채벌하는 일본놈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5분도 지나지 않아 간수들이 들이닥치고 옥살이 하는 태도가 불량하다면서 문틈을 샅샅이 뒤지고 학대할 건수를 찾더라는 것입니다. 다행이 한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지혜로 휴지로 막았던 문틈을 정리하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밤에 아마도 맞아서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1945년 8월 16일 한상동목사님을 처형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루 전인 15일에 해방이 되게 하심으로 한상동목사님을 살려내셨고 부산으로 내려와 고려신학대학을 설립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돕는 자를 이렇게도 기적 같이 도우시고 이 세상에 위대한 일을 계속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자녀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들의 건강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덧입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남을 돕고 주의 종을 돕고 하나님을 도와야 합니다. 결단코 이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이웃을 돕는 선한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잘 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말입니다. 꼭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교회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선을 행하고 돕다가 낙심하고 포기하고 돌아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도록 오늘 말씀이 우리들의 여생에 축복으로 남아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8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어느 새 우리들의 등을 떼밀어 마지막 순간으로 인도할는지 우리 가운데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주의 종들과 이웃들을 도우면서 주어진 인생을 복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났을 때 자식들과 장례식을 주례하는 주의 종에게 할 말이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소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도우라는 말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꿈속에서 들은 음성이지만 사도 바울은 그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최초의 빌립보교회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도우라는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소리가 사람의 소리든지 하나님의 음성이든지 무조건 순종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도와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도 사람도 주의 종도 달려와 도와주는 그런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남의 어려움을 내 것처럼 여기고 손발을 아끼지 않고 돕고 섬기는 사람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자손들에게도 유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삶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이처럼 놀라운 축복이 충만 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8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