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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8년 10월 7일 주일낮설교 (지옥을 두려워하라!)

2018년 10월 7일 주일낮설교 (지옥을 두려워하라!)

지옥을 두려워하라!

10. 7, 2018

本文:마태복음10:24-33

: 仁 根 牧師

아주 절친한 물고기 두 마리가 여유롭게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지혜로운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일렀습니다. “, 저 지렁이는 절대로 먹으면 안 돼. 지렁이는 저렇게 물속에 떠 있지를 않아. 원래 지렁이는 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들이야. 저 지렁이 속에는 아주 날카로운 낚싯바늘이 숨어 있고 그 바늘에는 낚싯줄이 연결 되어 있으며 그 낚싯줄 다음에는 낚싯대가 있고 그 낚싯대 끝에는 아주 무서운 사람의 손이 붙어 있어. 저 지렁이를 삼키는 손간 우리 입이 낚싯바늘에 걸려 뭍으로 끌려가게 되고 그 다음에는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굽히게 되는 거야. 그러므로 저 지렁이는 절대로 먹으면 안 돼.”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 너는 어째 젊은 것이 꼭 우리 할머니 같은 소리만 하니? 저건 우리 앞에 떨어진 행운이라고. 우리가 언제 저렇게 풍성한 지렁이를 먹어봤니? 기회는 왔을 때 잡는 거야. 너는 겁쟁이라 안 먹겠다니 그럼 내가 먹어줄께.” 하면서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 지렁이를 물었습니다. 그 순간 정말 눈 깜빡할 순간에 친구는 육지로 끌려 올라갔고 마침내 뜨거운 후라이팬에서 굽혀지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도 후라이팬에서 돌아와 그 무서운 순간을 말해 주는 물고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물고기들은 그와 같은 말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불순종하고 입에 낚싯바늘이 걸린 채 후라이팬으로 올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수천 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삶에서도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그 무서운 현실을 말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지옥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아무리 들려주어도 믿지 않고 끊임 없이 방종하다가 결국에는 그곳으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이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전해주시고 계십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으로 가든, 천국으로 가든 그 판단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에 관해 半信半疑(반신반의)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으니 의심 없이 믿고 그곳으로 가지 않도록 지혜와 지식과 믿음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옥을 두려워하라!

지난 수요일인 3일 오후 1시 경에 한국에서 부장검사로 제직 중에 있는 50대의 한 부장검사가 도봉산으로 등산 갔다가 하산 하던 중 나무에 묶어두었던 밧줄이 풀려 100m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허망한 일입니까? 한창 일 할 나이에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다가 이처럼 非命橫死(비명횡사) 하였으니 이 보다 더 충격적이고 끔찍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듯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엄중한 심판이 있다고 성경이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심판이라는 말씀은 바로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심판을 일컫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사람이 죽는 것까지만 알고 또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들의 몸과 영혼을 동시에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불신자이지 결코 하나님의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정녕 신자라면 우리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씀부터 믿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지옥이라는 곳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곳으로 가고, 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그곳에 만큼은 가지 않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똑바로 믿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곳에는 단 한 번만 떨어져도 영원토록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뜨거운 불 못에서 몸서리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오늘 우리들을 위해 경고의 말씀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20:12-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형벌은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막연하게 기록하고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심판의 마지막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발 제대로 된 신앙생활로 최소한 이와 같은 불 못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바로 된 신앙생활을 제대로 잘 하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꼭 명심해야만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과 두려워 할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으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대로 된 믿음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이 사모하는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며 영원히 죽을죄에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신다는 확신과 믿음은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어둑어둑해지는 공동묘지 곁을 지나던 한 나그네는 참으로 신기한 모습을 하

나 발견하였습니다. 자신도 날이 어두워오자 공동묘지를 지나는 것이 두려워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아직도 어린 아이 하나가 그 공동묘지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도 신기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물어 보았습니다. “아가야, 너는 이 공동묘지가 무섭지도 않니? 어떻게 너는 날도 저물어 가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뛰어 놀고 있는 거니?”하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어왔습니다. “아뇨,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는데요. 아저씨는 왜 여기가 무서워요?” 하도 신기해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어떻게 여기가 무섭지가 않니?” 그러자 그 아이는 천진하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 묘지를 지키는 관리인에요.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여기에서 놀았고 아버지가 함께 하시니까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해담은 바로 아버지가 함께 하고 있다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은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확신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오늘 짧은 본문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세 번씩이나 거듭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10:26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두려움은 불신앙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부인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이기에 가장 나쁜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살아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는 초대교부로서 대설교가였던 크리소스톰의 신앙과 그의 설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설교를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황제의 명령에 복종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부하에게 그를 감옥에 가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부하는 "폐하, 그는 감옥에 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즐겨하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황제는 부하의 말에 그렇다면 죽여 버리라."고 했습니다. 부하는 그 말에도 반대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폐하, 그는 죽는 것도 기뻐합니다. 그는 천국에 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은 크리소스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그가 죄를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폐하께서 하실 수 있으시다면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일을 위해 그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십시오."

감옥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감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바로 그러한 위대한 신앙가였던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다니엘이 그러하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그랬으며 비록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담대하게 목숨을 내어 놓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섰던 에스더도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담대한 믿음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말세지 중의 말세요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만 할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도 두려움을 내어 쫓고 승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아주 쉬운 비유 하나를 들려주셨습니다.

(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가슴으로 이 귀한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공중에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먹이시고 관리하신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은 그 참새보다 더 귀하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그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두려움을 내어 쫓고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고 자유롭게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을 확신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한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크게 떠돌며 부끄러움과 감동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개를 키우다가 버렸는데 네 발을 철사 줄로 꽁꽁 묶어서 쓰레기 봉지에 넣어 버렸습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개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듣고 발견하고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것을 본 누군가가 그 개를 찾아가 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철사 줄에 묶여 있었던지 이미 철사 줄이 살을 뚫고 힘줄을 뚫고 뼈까지 상하게 하여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리 4개를 절단하지 않으면 개는 죽게 생겼습니다. 원래는 보신탕을 위해 개를 사육하는 곳으로 보내졌는데 이렇게 다리가 썩어가고 있으니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로스앤젤레스 동물보호단체 ARME (Animal Rescue and Media Education)의 유관 단체에 의해 구조된 뒤 절단 수술을 받고, 네 발 모두에 의족을 차게 되었습니다. ARME가 올린 동영상 속에서 치치의 밝은 미소를 보고, 엘리자베스 하웰 가족이 입양을 결심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새 삶을 살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를 잃은 환자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그 개를 통해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귀한 일을 하였습니다. 이 일로 미 전국에서 매년 가장 인간에게 유익을 많이 끼친 훌륭한 개를 선정하는 일이 있는데 다리를 잃은 환자들에게 가장 많은 용기와 소망을 준 기록으로 이 개가 2018년도 미국 전역에서 1등으로 뽑혀 상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묵상해 보면 우리 예수님의 말씀이 절절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참새 한 마리보다 더 귀하다고 하신 말씀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찮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친히 먹이시고 키우신다는 말씀이 말입니다. 한국에서 거의 죽음에 이르렀던 버림받은 개가 미국에 와서 전국에서 최고 훌륭한 개로 선택된 이 사건도 결코 이 말씀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어려움과 절망과 고통이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의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 두려움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두려워하라

비록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운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니 우리는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믿고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라!”고 말입니다. 이 엉뚱한 상대적인 말씀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아침 우리는 분명하게 이와 같은 말씀들 주님을 통해 직접 받았습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서로 대칭 되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하고 또한 삶 속에 적응하여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을 당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행위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적 행위가 되기 때문에 그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을 물리치고 이겨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정녕 그 하나님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다음과 같은 명령부터 조용히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이 말씀들은 한결 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자로 임하실 것이므로 심판 받을 것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가정에서도 아버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만 그렇게 큰사랑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아버지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자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또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방종하지 않고 심판 받지 않고 천국을 상속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거듭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강하게 말씀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고 말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들의 현실은 전혀 이 말씀과 같지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곳곳에 재난이 임하고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비참하게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인생의 인도자이신 절대자 하나님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은 결국 자신을 보지 못한 채 남만 탓하고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의 티만 찾는 어리석은 인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고 지옥 불에 던져지지 않음이 감사하며 그렇게도 오래토록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 두렵기만 합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은혜가 떨어진 자들은 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세편의 취지에 입각한 글들을 많이 모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한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주(莊周)라는 사람이 밤나무 밑 울타리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사롭게 생기지 않은 한 마리의 새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개의 너비는 7척이나 되고 눈의 크기는 그 직경이 한 치나 되어 보였는데 그 새는 장주의 이마를 스치고 날아가더니 밤나무 숲에 앉았습니다. 장주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습니다. “이것은 어찌된 새인가. 날개가 큰대도 제대로 날 줄을 모르고 눈이 크면서도 아무 것도 보지를 못하는 것이로구나.” 장주는 바지자락을 걷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새를 잡는 화살을 들고서 새를 엿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나무의 시원한 곳에서 매미 한 마리가 자기 몸도 잊은 채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사마귀가 잎사귀에 몸을 숨기고서 그 매미를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본 그 이상하게 생긴 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처럼 눈앞의 이익에 혹하여서 장주가 자기를 잡으려고 활을 들고 겨누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장주는 몸서리를 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 생물들은 서로 헤치고 이해(利害)는 서로 상대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주는 활을 거두고 돌아서서 밤나무 숲길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밤나무 주인이 소리소리 지르며 욕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남의 밤을 왜 훔쳐 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장주는 새를 잡으려는데 정신이 팔려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장주는 돌아와 집으로 들어간 후 사흘이나 두문불출한 채 불편한 심기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승 장주의 모습을 본 제자 인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왜 그렇게도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하고 말입니다. 제자의 질문에 장주가 대답하였습니다. “외부의 사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마치 흐린 물에 반해 맑은 물을 잊은 격이다. 나는 예전에 선생님으로부터 그 풍속 속에 들어가면 그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거니와 처음부터 금지구역인 그런 밤나무 밭 속에는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었다. 이번에 나는 산보를 하다가 자신을 망각한 탓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할 밤나무 밭에 들어가 나 자신을 상실한 탓으로 주인으로부터 모욕을 받았다.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 말입니다. 참으로 이 우화는 오늘 우리들의 삶이 어떠하여야 하겠는지에 대한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망각한 모든 것들은 결국 아무런 유익이 없을뿐더러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이렇듯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무엇이 옳은지 그런지를 어떻게 알겠으며 자신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하늘의 하나님을 바로 알고 두려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삶의 불행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자가 어찌 천국을 알며 지옥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는 10월의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제는 좀 이 땅의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세를 생각해 보는 삶의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느 순간에 우리는 지옥 아니면 천국으로 가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이제는 쫓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명세기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살아왔는데 천국만큼은 자신만만하게 들어가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워해야 할 일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인생을 거꾸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도외시 하고 마땅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밤을 새워가며 두려워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불신앙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몸과 영혼을 동시에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실천하고 순종하자면 무엇보다도 오늘 우리들 자신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 줄을 알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자신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색의 복된 이 가을에 자신을 발견하고 또한 하나님을 만나는 풍성한 축복이 가득 넘쳐나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107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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