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4일 주일낮설교 (평안이라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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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4 October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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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이라는 축복
10. 14, 2018
本文:요한복음14:25-28
說敎:崔 仁 根 牧師
결혼한 지 4일 밖에 안 된 신혼부부가 싱크홀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중국의 온라인매체인 ‘thepaper.cn’이 11일 보도했습니다. 지난 7일 오후 중국 쓰촨성 다저우시 중심가 인도에서 지름 약 16m의 땅 꺼짐 현상이 발생, 신혼부부 등 인도 위에 있던 시민 4명이 싱크홀에 빠져 숨졌습니다. 이 중 다른 두 명은 부자지간이었습니다. 싱크홀에 빠져 숨진 신혼부부는 둘 다 23세로, 지난 3일 결혼했다고 합니다. 결혼 4일 만에 변을 당한 셈입니다. 이들은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고향인 다저우시에 와 있었고, 당일 청두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이 커플은 청두에 있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산 뒤 청두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다 갑자기 땅 꺼짐 현상이 발생,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우리는 날벼락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우리들의 삶이 근심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말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도 더욱 의미심장한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 또한 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환난을 당하는 줄 다 아시면서도 담대하라고 권면하시며 평안을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말씀을 종합해 보면 분명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안입니다. 그리고 그 평안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오묘한 진리를 묵상하면서 짧은 인생 여정에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비밀과 축복을 배워보려고 합니다.
평안이라는 축복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다 축복을 사모하고 또한 기대합니다. 하지만 삶의 현실에서 그와 같은 축복을 누리며 산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는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가시적으로 누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무슨 축복을 받아야 제대로 된 축복을 누린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오랜 목회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니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바로 “평안”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평안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축복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평안은 모든 축복을 다 합한 종합적인 축복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은 평안보다 더 큰 축복이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해도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것 또한 진정한 축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은 그 재산이 16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재발 된 암과의 투쟁에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습니다. 그에게 지금 최고로 필요로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닐 것입니다. 오로지 암에서 해방 되고 건강을 회복 받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래저래 따져보면 최고 최대의 축복은 바로 평안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소중한 축복 중의 축복인 평안에 대해 공부하면서 우리들의 삶에 이와 같은 평안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소중한 평안의 축복을 어떻게 해야 누릴 수가 있겠는지,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성경의 진리를 통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마음 귀를 기울이고 그 소중한 축복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게도 소중한 평안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평안을 원하지만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이 그만큼 살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살벌한 세상에 제자들을 두고 떠나시기가 마음이 아파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으로 위로하고 또한 소망을 심어주셨던 것입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며 곱씹어 보십시오. 참으로 위로가 되고 소망이 넘치는 그런 귀한 명언으로 가슴에 감동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보다 우리들의 형편을 더 잘 아는 분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을 그만큼 잘 아시기 때문에 이처럼 조용하면서도 강하고 간단하면서도 엄청난 위로가 되는 이런 말씀을 우리 주님께서 친히 주셨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평생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살았던 모세도, 초대 이스라엘의 3대 족장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갔던 야곱도 인생을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것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찌 이것이 모세와 야곱만의 인생이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평안이라는 축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안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요? 참으로 다행하게도 이에 대한 해답을 우리 주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그 소중한 말씀을 우리 입으로 시인해 보고 보다 더 구체적인 진리의 말씀을 경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14:27-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소중한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안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안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나의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안은 우리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소중한 평안의 축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주님으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그 사랑을 받아야만 합니다. 주고받는 사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란의 코리텐붐 여사는 나치 수용소에서 생지옥을 사는 동안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체험을 하고 해방 후 그 주님을 따라 지구를 돌며 전도하는 분이십니다. 그가 성경을 두 트렁크에 잔뜩 담아 가지고 소련에 입국하는데, 세관에서 발견되면 몰수 되는 것은 물론이고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세관원들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믿고 기도하며 통관 수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맨 뒷줄에서 기도만 하고 있는데 드디어 자기 차례가 다가 왔습니다. 그 트렁크들의 주위가 갑자가 눈이 부시게 빛이 나더니 세관원이, "이것이 할머니 짐이요 꽤 무겁군요. 내가 좀 들어다 드리지요."하면서 열어보지도 않고 택시 타는 데까지 들어다 주었습니다. 천사가 그 짐을 이렇게도 무사히 통관시켰던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간증거리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은 평안의 영이요 그와 같은 주님의 영은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에게 임재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이와 같은 평안의 은총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난 번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강도 7.5의 지진과 쓰나미로 확인 된 사망자만 2천 명이 넘고 실종된 사람들은 실제로는 얼마인지 집계조차 되지 못하고 한 마을에서만 5천 명 이상이 매몰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단 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일본 등에서 들려오는 각종 재난의 소식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난의 현장들은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사신 우상을 섬기거나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평안이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心志(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는 평강으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심지가 견고하다는 말은 흔들림이나 변덕이 없는 덕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그 예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이처럼 작은 일과 유익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견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평안이라는 축복은 간사하고 촐랑대고 변화무상한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하고 바라는 그런 영적인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구별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시37:4-6)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고 말입니다. 백 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지가 견고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엔간해서는 흔들림이 없는 그런 무게가 있고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될 때 그와 같은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평안으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고 촐랑대며 변화가 무상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십니다.
(잠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잠29: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늘 말씀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께서 조급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으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묵직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고 기대하는 그런 성도들을 좋아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인생들처럼 작은 호수의 물결처럼 가볍게 촐랑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실 만큼 신실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그의 나이가 늙어 100살이 되어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을 때도 하나님은 기적으로 아들을 주셨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무려 600년이 지났을 때에도 또한 그 약속을 이루시고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도 한 번 하고 1년도 지나기 전에 응답이 안 된다고 포기하고 만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 하나를 하더라고 길이 참고 묵묵히 믿고 기다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약1:5-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조급하고 무게가 없는 사람들은 평안의 축복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처럼 묵묵히 참고 견디며 인내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평안으로 복을 주시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복을 받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늘 경험하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 번 책상 앞에 앉으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움직이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서 공부에 열중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은 한 번 앉으면 움직이지도 않고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 앉아 하나님과 교통하며 교제합니다. 교회도 한 번 내 교회라고 정하면 거기에서 장례를 치를 때까지 묵묵히 섬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이 보아도 복스럽고 믿음직스럽고 뭔가 미래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가 갑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평안을 누리며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탠리 죤스 박사의 간증에 의하면 죤스는 이런 경험을 어렸을 때에 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배당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설교자가 갑자기 죤스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무릇 나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대적하는 자”라고 외쳤습니다. 죤스는 순간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편은 아니었지만 예수님과 원수가 되기는 싫었기 때문에 곁에 앉았던 친구에게 “지금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자”고 하였습니다. 그 후 죤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세월이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몹시 기운이 없었습니다. 그는 죤스에게 “너는 길을 잘 택하였다. 나도 지금이라도 너와 같이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죤스는 “물론 좋다. 그러나 30년 전에 그 결심을 하였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구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견고한 결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참으로 행운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래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 올수록 그와 같은 결단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제발 흔들리지 마십시오. 제발 뒷걸음질 하지 마십시오.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 하여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이 아름다운 길을 굳굳하게 견지해 나가십시오. 마지막 날에 이 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들을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믿음과 신념으로 하나님을 섬기되 끝까지 섬기는 심지가 견고한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심지가 견고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끈기 있게 충성하는 성도들은 참으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을 한 번 살펴 보십시오. 20-30년을 한결 같이 섬기는 귀한 종들은 감기라도 들지 않고 오랜 세월을 평안하게 살아가고들 있지 않습니까? 이렇듯 심지가 견고한 자는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평안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마침내 우리 모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 어떤 환난과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극복하게 되니 결국은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평강의 축복을 주시고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담대하게 일어설 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믿음만이 목숨을 위협하는 악당들을 극복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떻게 환난을 당하고 있는데 담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잡아 죽이려고 악한 자들이 두루 다니며 찾고 있는데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은 오직 하나 믿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굳굳하게 서서 이겨나갈 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놀라운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눅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모두가 다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말씀이요 그렇게 믿음이 있으면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을 보장하시는 말씀입니다.
1873년 필라델피아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회의가 끝나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욕 항에서 출발하는 블란서 여객선 “바르 두 아베르”호를 타려고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예정대로 그 여객선은 뉴욕 항을 출발하여 블란서를 향하여 순항하고 있었습니다. 그 배에는 우리 찬송가 470장을 쓴 Horatio Gates Spafford의 부인과 네 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Spafford는 시카고에서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함께 동승하지 못했습니다. Spafford씨는 원래 시카고에서 살았는데 그 유명한 시카고 화재 때 모든 집과 재산을 다 잃고 블란서로 건너가 재기를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배가 뉴욕 항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는 11월 22일 새벽 2시 영국의 철갑선 “록키안”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30분 만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226명의 소중한 생명을 실은 채 대서양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던 것입니다. 네 딸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리는 끔찍한 충격 앞에서 Spafford의 부인은 그만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신하여 바다에 떨어진 덕분에 배와 함께 수장 되지 아니하고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신하여 호흡을 멈춘 채 물 위에 떠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충격은 Spafford에게도 마찬가지로 쓰나미처럼 밀어닥쳤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소연하며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시카고에서는 불이나사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하시더니 이제는 대서양에서 그렇게도 사랑하는 네 딸을 다 잃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부르짖는 기도 속에서 그는 평소에 감히 느껴보지 못한 놀라운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평안 속에서 그는 호수처럼 잔잔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응답하신 우리 주님의 음성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470장의 찬송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지은 죄 주홍 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나 흰 눈보다 더 정하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실로 놀라운 은혜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화재로 집과 전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또 다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네 딸들을 순간에 다 잃어버리고도 이처럼 고요한 평안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이는 정녕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영원히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영원히 누리고 살아갈 진정한 축복은 저 하늘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기대하게 될 때 비록 땅에서는 너무나도 소중한 그것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더 귀한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와 같은 평안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또한 그와 같은 평강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이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는 10월의 중순입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대사 없이 살아오게 하신 하늘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조금만 더 믿음으로 다가서서 주님을 바라본다면 진정 감사가 넘쳐나게 될 줄을 확신합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사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그 예수님으로 인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그렇게 평안의 축복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며 감사를 드리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아가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심지가 견고하여 그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어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닮아서 우리들도 변함이 없는 충성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우리들에게 믿음이라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당당하게 버티고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안과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소중한 10월 상달에 이와 같은 준비된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겨 예배드리고 충성하고 헌신하게 될 때 오늘 우리들도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평강의 축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모쪼록 아름다운 믿음으로 이처럼 고귀한 축복을 노래하며 예배에 올인 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10월 14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