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1일 주일낮설교 (받았으니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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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1 November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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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으니 감사합시다!
11. 11, 2018
本文:마태복음25:14-23
說敎:崔 仁 根 牧師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한 또한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특별히 제한된 삶을 살고 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더욱 명확한 진리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전도서에서 이와 같은 분명한 끝을 바라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전3:1-8)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허무함을 탄식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의미를 가지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야 함을 또한 당부하였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하며 후회하는 그런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당부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더욱 큰 도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인생을 되돌아 볼 때 한 평생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살아 온 우리 모든 빌립보의 가족들이야 말로 가장 복을 받고 복을 누려온 분들이라 감히 말씀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사람과 성도로서의 도리를 힘을 다해 감당해 오는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듯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복을 누리는 삶이야말로 되돌아보고 후회하지 않는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인생일 것입니다.
받았으니 감사합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것을 다시 샘하자고 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인생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받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다시 내 놓아야 하는 때가 있음을 가르쳐 주는 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들은 한결 같이 주인의 마음에 흡족한 열매를 맺히고 칭찬을 듣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25:20-23)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남들 보기에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판단을 받을 때가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그 마지막 때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인생의 시작보다 그 마지막 때가 더욱 축복을 누리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려고 합니다. 모쪼록 풍성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것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값지고 귀한 것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 앞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고 스스로 가진 것처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전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 태어 날 때에는 빈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로 드려야 하고 또한 나누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많이 받은 것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 두 가지만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서슴지 않고 그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구원이 헛되지 않도록 또한 섬길 수 있는 고귀한 직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은혜를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평생에 가슴에 새기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던 것입니다.
(엡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는 말씀부터 한 번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냥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고 신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입었고 또한 예정을 입었던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선택과 예정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까지 내 놓으시며 피를 흘려 우리들의 죄악을 도말하시고 구원 받은 백성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요 또한 소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참으로 눈물 나도록 감사하고 또한 감격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죄 많은 나 하나를 위해 이토록 놀랍도록 선택하시고 예정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의 피를 흘려 희생케 하신 다음 “너는 내 것이라!”고 품어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식도 부모를 버리고 부모도 자식을 버리는 삭막한 이 세상에서 이처럼 놀라운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들을 천국까지도 무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하여 주시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은 그와 같은 백성들 중에서 또 다시 구별하시고 선택하셔서 목사로, 장로와 권사로 그리고 집사와 섬기는 각종 직분까지 주셨으니 이 어찌 두고두고 감사드릴 제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받은 자신의 직분으로 인하여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처럼 우리들의 아무런 공로도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장로와 권사와 집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회장 목사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온 성도들의 2/3라는 투표를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모든 과정을 넘어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어 충성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여 왔으니 이 아니 축복이며 이 아니 감사드릴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구별된 백성들이요 가장 축복을 받은 백성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것은 단순한 직분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성직이기 때문입니다.
1940년부터 일제의 한국 기독교에 대한 신사 참배 강요는 더욱 더 거세졌습니다. 악독한 일제 당국은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를 잡아 가두고도 부족하여 목사직을 사면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주 목사는 "목사의 성직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그만두라기 전에는 절대로 사면할 수 없다."고 버티었습니다. 이에 궁해진 일제 경찰당국은 당시 평양노회 노회장이었던 최지화 목사를 불러 "주 목사를 파면하라.”고 엄명했습니다. 최 목사가 주 목사를 찾아가서 “주 목사가 사면하면 주 목사도 평안해지고, 산정현교회도 평안해지고, 평양노회도 평안해지겠으니 제발 사면해 주시오."하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주 목사는 말했습니다. "내 목사의 성직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그만 두라하시기 전에는 사면 못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최 목사가 다시 여러 번 간청하자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당신들 말을 듣는 것이 어느 것이 더 옳겠소?"하고 강경히 거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주 목사는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성직은 실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사람이 버릴 수도 없고, 그만 두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거룩한 직분은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각종 주님의 일꾼이 되어 충성하시는 여러분들은 이렇게도 고귀한 직분을 받아 평생을 섬겨 오셨으니 진정 복 받은 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이렇게 하여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또한 고귀한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맡은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는 저마다 또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겨서 주인 앞에 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구원 받은 것만 감격하고 직분 받은 것만 자랑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거저 주셨으니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혀야 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직분을 은혜로 주셨으니 그 직분을 잘 감당하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겨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그래서 직분 받은 것을 감격하고 감사드렸던 사도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충성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복된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고 바라보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정녕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고귀한 직분을 받아놓고서도 불행하게 그 직분을 끝까지 다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도 의외로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구약에서는 삼손이요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놀라운 인물들이었습니다. 삼손은 전무후무한 힘의 장사로 구별 받았던 사람이요 가룟 유다는 감히 예수님의 제로 부르심을 받았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아름다운 직분을 끝까지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아름답게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칭찬을 들으며 충성하고 복된 자들이 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직분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게 충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은 인간적으로는 목사님의 총애를 받고 온 성도님들의 인정을 받으며 무엇보다도 자손들이 어버이의 그 아름다움을 본 받아 대를 이어 충성하며 몸된 교회를 섬겨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이렇게 충성한 종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놀라운 축복을 보장해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인생 말년에 사람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만 해도 행복인데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아는 자들만이 아는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고 충성한 종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수고를 기억해 주시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축복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다 한 번은 맡은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옵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을 향해 충성한 일꾼들에게는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잊지 않으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죽는 날에도 복을 누리는 자가 있으며 그 죽은 후에도 진정한 쉼을 누리는 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중한 몸과 재물을 바쳐 충성하고 섬기는 고귀한 종들은 이처럼 살아서도 복을 누리게 되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복을 누리는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더욱 감사며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서 이웃이나 하나님을 위해 섬기고 충성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요 두고도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우리들의 후손들이 이 땅의 주인공이 되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길은 오직 두 가지 감사와 사랑입니다. 이 두 개의 수레바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되 죽기까지 충성하며 헌시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끝까지 흔들림이 없이 주님의 일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권면해 두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단 없는 봉사와 헌신으로 충성하고 더욱 더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사실 미국에서 병원에 들어가 보면 안내데스크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거의 90% 이상이 리타이어 하신 어르신들입니다. 그들은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거기에 나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가슴에 사랑을 품고 자원 봉사하는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고 목사님들을 섬기고 뒤를 이어 충성하는 장로들과 권사들을 권면하며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니 한 가지 중요한 원동력 즉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You Tube에 뜬 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한 늙수그레한 목사님의 간증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뉴욕 부르클린 테버너클교회의 짐 심빌라 목사님이었습니다. 주일 3부 예배를 끝내고 거의 지쳐 있는 상황에서 홈 래스 거지 한 사람이 다가 왔습니다. 그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악취가 나고 있었는데 자신의 소변 위에서 자다가 왔는지 등은 오물로 젖어 있었고 그 몰골은 참아 바로 쳐다 볼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거의 가까이 다가오기에 귀찮고 더러워 얼른 돈을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내심 어서 빨리 여기에서 나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믿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고 말입니다. 순간 그는 큰 망치로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흔들렸고 동시에 온 몸도 중심을 잃고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하는 목사인 자신은 돈을 주어 사람을 내 쫓으려고 했는데 거지인 그는 돈을 뿌리치고 예수님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를 쳐다보던 거지도 눈에서 눈물을 거렁거렁 쏟아냈습니다. 그는 말없이 다가가 그를 얼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거지도 목사님을 으스러져라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는 그 거지를 성탄절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고 그 다음해에는 교회 직원으로 채용하여 교회의 청소와 환경을 담당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가슴에 이처럼 따뜻한 사랑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랑으로 남은 생을 더욱 더 충성스럽게 교회와 이웃과 주의 종들을 섬길 때 비로소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감탄하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감사의 달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행사나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달에 우리들에게 친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빈 손으로 왔습니다. 어렵다, 힘든다며 투덜거려도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건강과 자녀들과 생업은 만 입이 있어도 다 감사드릴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감사의 대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믿음이 있으면 감사가 되지만 믿음이 없으면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받았으므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만 가지를 다 받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를 드리되 말로만 입으로만이 아니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자들과 같이 갑절의 이문을 남겨 예물을 들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구원을 주시고 천국 가게 하시고 재물을 주셔서 풍성하게 살게 하시며 직분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교회를 섬기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처럼 감사함으로 거룩한 성전으로 올라와 찬양과 경배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신실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11월 11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