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9일 주일낮설교 (주님과 동행하라!)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9 December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292
주님과 동행하라!
12. 9, 2018
本文:창세기5:21-24
說敎:崔 仁 根 牧師
지난 주일인 12월 2일 오후 1시 30분 경 해군 제 3함대 소속 양승민상사는 가족들과 함께 휴일을 보내고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평택 역으로 부인과 함께 승용차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가가 전혀 없는 길에 6살 난 여자 아이 하나가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양상사는 차를 세우고 어린 아이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빠 엄마랑 저쪽에서 친구 집에 갔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빠 엄마의 이름도 모르고 물론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얼마나 걸아 왔는지 어린 아이의 뺨은 추위에 빨갛게 익었고 울었는지 눈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기차시간이 임박했지만 양상사는 그 아이를 차에 태우고 기차를 타고 갈 동안에 먹으려고 넣어 두었던 간식과 음료수를 먹인 다음 경찰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이미 평택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놓쳤고 아이를 경찰에 인계하고 부모님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다음, 다음 기차를 타고 부대에 복귀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다행히도 경찰은 수소문 끝에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 무사히 인계하였고 그 부모님들은 너무나도 감사하다며 양상사와 부인에게 사례 하겠다고 하였지만 우리들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고 또한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당연히 할 바를 했을 뿐 사례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사양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훈훈한 미담이라고 한국에서는 각 매스컴들이 일제히 이 사건을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있어 여기에 잠시 인용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외딴 들판을 혼자서 헤매고 있는 여섯 살짜리 아이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모두가 다 그렇게 세상에서 허덕이고 헤매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허허벌판에서 이 아이가 양상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으로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한국은 지금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한파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는데 6살짜리 아이가 어디로 가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의 삶을 인도해 주실 양상사와 같은 하나님의 손길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처지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들을 인도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과 동행하라!
은행에 돈을 아무리 많이 넣어 두어도 꺼내서 쓰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어도 그 예수님을 영접하고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가장 먼저 그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은 권세 있는 헤롯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 또 그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니 그 당시에 태어난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처참한 살육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마2:13-18)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 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 헤롯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망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렇게도 잔인하게 순전한 어린 생명들을 모조리 죽인 헤롯은 창자가 썩어서 악취를 풍기며 죽었다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훗날 초대교회를 잔인하게 박해하였던 헤롯 안티파스도 또한 하나님께서 치시므로 충이 먹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끝내 예수님을 거역하고 잔인한 살육을 일삼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죽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그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참 지혜롭고 믿음 있는 성도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대표적인 인물로 에녹을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였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도전과 은혜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 땅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경험하는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결혼을 하였고 자녀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창5:21-22)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드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고 말입니다. 얼핏 지나쳐버리면 그랬는가보다 하고 넘어가겠지만 믿음의 눈으로 이 말씀을 곱씹어본다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은 이 땅에 태어났으면 모두가 다 겪어야 하는 무서운 형벌이요 심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녹은 그와 같은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에녹은 자신이 스스로 이와 같은 죽음을 넘어서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이 저를 옳기심으로” 가능하였음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깊이 사모하고 또한 배워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얼마나 기특하게 여기고 사랑하였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죽음도 넘어서는 기적을 보여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한 말씀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을 배운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더 알아듣기 쉽도록 다음과 같이 표현해 두었습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특별한 기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는 대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로 무섭지 않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교회에 나오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살피시고 거기에 합당하게 보상하신다는 사실은 실로 두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적 같은 보상으로 죽음조차도 경험하지 않도록 하시는 축복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은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의 그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다시 말해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의 그토록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 해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 두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에녹을 이뻐하시고 그 풍성한 축복으로 죽음조차도 보지 않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는 에녹이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터득하고 따르고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동행이 무엇입니까? 늘 함께 하고 떨어지지 않는 것이 동행입니다. 이 종은 앞서 6살짜리 어린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서 허허벌판을 헤매고 있었던 사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아이는 반드시 부모와 동행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이처럼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 아이의 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십시다. 6살짜리 딸을 잃어버리고 그 얼마나 애를 태웠겠습니까? 어쩌면 6살짜리 딸보다 그 부모가 몇 천 배 더 걱정하고 마음 졸이고 가슴을 태웠을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진짜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행위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동행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현실은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 채 6살짜리 아이와 같이 세상을 헤매고 방황하는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이제 최초의 사람 아담으로 한 번 돌아가 그 때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3:8-9)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행복하게 잘 살도록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하나님을 떠나 숨어버렸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숨어버렸을까요? 사탄 마귀와 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며 죄로 타락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나서고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이 한 마디 말씀 속에 하나님의 고뇌가 묻어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해 두셨습니다.
(눅15:4-7)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고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양을 잃어버리면 그렇게도 가슴 아파하시고 다시 찾으면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길을 잃고 헤매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면 그 자체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렌지카운티 가든 글로브에 있는 크리스탈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딸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여 한 쪽 다리를 절단하였습니다. 어느 날 다리 하나가 없는 그 딸이 절뚝거리며 강대상 앞에 나와서, "어떻게 걷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앞을 향해 걷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데 우리의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간증하자 모두가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우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삶의 푯대를 정하고 성령님과 더불어 걸어가는 그 속에 삶의 금메달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기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삶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그와 같은 삶이 바로 축복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도 우리들을 찾아 구유에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진정한 신자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선한 목표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고 넘치는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과 동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군살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초반의 시작과 끝 부분의 내용이 동일한 의미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초반의 시작은 에녹이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졌다고 기록하고 끝 부분에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요소가 되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믿음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은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한 번 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동시에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에녹은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고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 무서운 죽음을 보지 않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로 돌아가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에 더해서 에녹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손의 축복이었습니다. 에녹은 나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는데 그 므두셀라가 인류 중에 최고로 장수한 사람이었음을 성경이 직접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5:25-27)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들 중에 가장 오래 산 한 사람은 므두셀라였고 그 무드셀라는 바로 에녹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이는 곧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에 특별히 받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잘 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손들이 잘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112:1-3)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경에 기록하시고 보장하신 진정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던 에녹과 같이 우리들도 복을 받아야 하겠지만 우리들의 자손들이 복을 받는 이 길을 힘을 다해 달려가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사심 없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128:1-4)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들의 여생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무조건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약속에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복을 주신 것과 같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에게도 풍성한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2차 대전 때에는 많은 전쟁의 신화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항구에서 영국군 수십만 명이 후퇴를 하고 있을 때 그 부근의 독일군들이 집결해 있는 항구에는 엄청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은 거기서 얼마 안 되는 거리의 항구였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영국군들이 후퇴하는 항구에는 거짓말처럼 잔잔해서 수십만 명의 영국군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훗날 기록을 보면 영국군들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이시여, 독일군에게서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그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이와 같은 믿음의 자녀들을 반드시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함께 하시고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성탄의 계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려고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그런 귀하고도 복된 계절입니다. 그런데 성탄의 계절만 왔다고 우리 모두가 다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저주 받고 망한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찾아 이 땅에까지 오신 예수님을 우리들도 영접하고 그 예수님과 동행하는 변화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에녹은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가 죽음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그 아들 므두셀라는 무려 969세라는 엄청난 장수를 누리며 자손을 보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답고 복된 계절에 오늘 우리들도 듣고 배우고, 배우고 익혀서 이와 같이 살아가는 지혜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라 우리들이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헌신하는 삶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우리 당대와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갚아주시는 보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아름답고 복된 성탄의 계절에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아 우리들도 누리고 우리들의 후손들에게도 유산하는 그런 멋들어진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12월 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