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주일낮설교 (주님을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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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6 December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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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리라!
12. 16, 2018
本文:누가복음2:25-35
說敎:崔 仁 根 牧師
이 종이 전도사 시절 서울에서 교회를 섬길 때 함께 헌신하시던 여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거의 어머니벌인 그 여전도사님은 평생을 눈물로 보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북에다 두고 온 딸 때문이었습니다. 남매를 낳아 키우던 중 월남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남으로 데려다 주는 트럭을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트럭은 오지 않고 날씨는 매우 차가와 함께 기다리던 딸이, “엄마, 너무 추운데 엄마가 입을 것을 집에 가서 가지고 올게.” 하면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바로 그 때 기다리던 트럭은 도착하였고 북쪽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빨리 가야 한다며 운전수는 옷가지를 가지러 집으로 간 딸을 기다려주지 않고 급하게 출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순식간에 딸과 이별을 한 그 여전도사님은 평생토록 그 딸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한 맺힌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다림이라는 무서운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말은 쉬운데 현실은 매우 어려운 그런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이야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탓에 한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영원히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아들은 무려 25년을 더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은 그 자신이나 부인 사라의 나이가 점점 늙어감으로 아들을 낳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불가능으로 변해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소망으로 예수님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려 600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은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 오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을 읽으신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서 그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셨으니 “네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보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시므온과 같이 예수님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삶 속에서 순간순간 예수님만 함께 계신다면 무엇이 문제이랴 할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들도 시므온과 같이 “네가 반드시 기다리는 예수님을 만나리라”는 축복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성탄주일을 한 주 앞두고 오늘은 이처럼 기다림에 관한 말씀으로 은혜와 축복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여시고 말씀에 심취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기다리라!
오늘 본문은 시므온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정작 시므온이 누구인지는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지를 않습니다. 실상은 그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이었던 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꿈에도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의롭고 경건한 사라이었습니다(25절). 일설에 의하면 이와 같은 시므온은 당시 유명했던 랍비 힐렐의 아들이요 사도 바울을 가르쳤던 유명한 스승 가말리엘 아버지라고 합니다. 이는 당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사람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설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죽기 전에 예수님 만나기를 소원하며 기다렸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 주고 하나님은 그처럼 사모하는 영혼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만족케 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귀한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눅2:25-26)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라는 두 말씀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도 시므온과 같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간절하게 사모하고 기다리면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시고 그와 같은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기다림의 아름다운 소원을 가진 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받은 축복을 살펴보면서 거룩한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소망합니다.
시므온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당시 유명세를 타는 소위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와 같은 세상 것들로 낙을 삼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룩한 영적인 소망을 품은 인물이었습니다.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지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을 받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최소한 오늘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에게까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정확하게 각인 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오늘 본문 한 절에 표현 된 것만 정리해 보아도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성령님의 위로가 그와 함께 할 정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단 하나만 인정받아도 예나 지금이나 굉장한 인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이처럼 의로운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이처럼 경건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을까요? 더 더군다나 객관적으로 성령님의 위로가 함께 하는 그런 신령한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이 세대에 가장 실망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경건한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은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세상적인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칭송을 받기에 합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그를 귀하게 여기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기다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확신을 주셨던 것입니다.
(눅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릴 줄 아는 진정한 신앙인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자, 바로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사울과 같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복을 주셨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에만 급급하다가 망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결국 그에게서 성령님이 떠나시니 그는 너무나도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시므온과 같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성령님께서 위로하시며 함께 해 주시는 그런 놀라운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그 계절이 바로 지금 성탄의 계절입니다. 다행히도 시므온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기약조차 없었지만 죽기 전에는 만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끝까지 기다리다가 끝내 예수님을 만난 그렇게도 많은 성경 인물들 중에서 극히 보기 드문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끝내 살아서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쌍용건설 직원 김일룡씨(29)의 불굴의 도전정신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1999년 A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입사시험에서 무려 109번이나 낙방한 아픈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2000년 3월, 110번째인 쌍용건설 입사시험에서 합격해 지금은 유능하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10번의 취직시험을 위해 서류준비에 드는 비용만 무려 100만원이 넘었습니다. 오직 ‘합격’이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그리면서 1년 넘게 신입사원 선발현장을 찾아다녔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낙방사실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쌍용건설 면접관들은 바로 이 점을 높이 평가해 그를 선발했다고 합니다. 낙방사실을 그대로 공개하는 솔직함과 ‘110번의 시험’에 도전하는 불굴의 투지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기다림과 인내는 같은 의미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이렇듯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기회가 오기 전에 꿈을 접고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꿈이 있고 믿음이 있다면 시므온과 같이 김일룡씨와 같이 끝까지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귀한 것일수록 오래 기다리게 하시고 사모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 쉽게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라면 이와 같은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대에 큰 부자였을 뿐 아니라 공회의 의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세상의 부귀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마27:57-58)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이 어디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해답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삶의 목적인 오늘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이야기는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살았기에 성경에 기록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기도의 제목을 친히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마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해야 하며 그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고 죽어서 천국에 갈 수도 없는 가장 불쌍한 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당시 빌라도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죽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권세를 가진 빌라도에게 요셉은 어떻게 나아갔다고 했습니까? “당돌하게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돌아볼 때 역시 그는 남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도 모조리 도망가 숨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목숨이라도 내어 놓은 사람 마냥 모든 권세를 다 쥐고 예수님까지도 처형시킨 그 빌라도 앞에 당돌하게 나아갔으니 입니다.
(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슴에 품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는 이처럼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나아가서 예수님을 달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정복하며 살아야 하고 권세를 지배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부자라 자기 자신을 위해 미리 예비해 두었던 돌을 판 고급스러운 무덤을 예수님께 내어 드렸던 것입니다. 그것도 이미 죽어 시신이 되어버린 그런 예수님께 말입니다.
(마27:59-60)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사랑입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바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장님의 개가 감기 들었을 때는 “회장님, 얼마나 상심이 많으시겠습니까?” 하고 병문안을 와도 정작 회장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바로 얄팍한 현대인들의 속성을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단 한 번도 장사를 지낸 적이 없는 자기 자신을 위해 준비 해 두었던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고이 장사지냈던 것입니다. 그는 왜 이토록 사심 없는 헌신과 사랑을 다 쏟아 예수님을 모셨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한 해답을 간단하게 단 한 줄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하늘나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실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사모하고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부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이 세상의 권세보다, 이 세상의 부귀보다 더 예수님을 기다리고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진정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을 위해 바쳐드리는 모든 것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고 더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들은 단순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므온이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통해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친히 기다리는 자에게 볼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30:18-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예수님을 기다리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진실하신 분이시기에 이처럼 진실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애3: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토록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시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잠시 살다 갈 이 세상에 뿌리를 박지 말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주님을 위해 소중한 것을 드리며 그 나라를 기다리고 사모하는 성숙한 성도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을 찾아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까지 강림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결단은 있어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혹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줍지 못하셨나요? 틀림없이 엊저녁에 그 오페라극장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니 아직은요.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잠깐만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지배인은 이 말을 남기고 목걸이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로 사라졌습니다. 얼마 뒤, 지배인이 돌아와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부인, 기뻐하세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 여인은 지배인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으러 간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극장 지배인이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를 추적하려고 백방으로 애써 보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여인과 같이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가 응답을 주시기에 가장 적당한 때인지를 아시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기다리면 복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복된 계절이 우리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므온과 같이 예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들의 열정이 있어야 우리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마음이 한결 기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세상에서 값진 것을 가지고 누린다고 해도 예수님은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소중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리마대 요셉은 그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당당하게 빌라도를 찾아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이고 믿음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소중하게 준비 해 두었던 새 무덤을 아낌없이 주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의 이와 같은 사랑과 희생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위해 아까운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주님을 기다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라는 성도들을 친히 기다리고 계시면서 그와 같은 귀한 심령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진정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사모한다면 이처럼 우선적으로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고 하늘의 진정한 은총을 사모하고 기다라는 심령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소중한 날을 구별하시고 몸과 마음과 예물로 준비하여 거룩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도 예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게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12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