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주일낮설교 (쓰임 받는 축복)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30 December 2018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730
쓰임 받는 축복
송년주일, 직원임명식
12. 30, 2018
本文:창세기6:9-22
說敎:崔 仁 根 牧師
우리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신약시대의 거장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두었습니다.
(딤전1:12-14)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와 같이 거짓말 잘하고 선한 자들을 핍박하고 잔인하게 살해하였던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고귀한 직분을 맡겨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는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직분이 그 얼마나 고기한 것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와 같은 귀한,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시는 고상한 직분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성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 가치를 몰라서 그렇겠지만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불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자들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미워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하시고 친히 엄청 무섭게 심판을 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구약에서는 에서였고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말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행1:16-19)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직분을 한 그릇 팥죽에 팔아버린 에서는 미워하시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사모하였던 야곱을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단순히 미워만 하신 것이 아니라 3절에 밝히 기록된 대로 “산들을 황무케 하시고 그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이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직분을 자신의 사리사욕에 사용하였던 가룟 유다를 하나님께서 버리시니 스스로 목을 매고 비참하게 죽는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단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귀한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도전과 축복을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쓰임 받는 축복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인간들은 결국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들의 유익과 쾌락만을 위하여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습니다.
(창6:1-3)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는 인간의 타락한 모습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들을 모조리 홍수로 심판하시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실 것을 굳게 결심하게 됩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새로운 사람들과 동물들을 지속적으로 유지 보존하시기 위해 하나의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들 중에 사람들과 동물들을 구별하여 홍수로 심판하신 이후의 세계를 위한 종족 번식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동물들을 보존하시기 위해서 엄청나게 큰 배를 지으시고 홍수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명을 지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셨으니 바로 노아였습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는 이 단순한 한 절의 말씀이 이 모든 말씀의 해답을 제공해 주는 단초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이 그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우리는 과연 노아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동안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소중한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들도, 우리들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자녀들도 내일을 보장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받고 가슴에 꼭 새겨두어야 할 가장 소중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다는 것은 그만큼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가 되는 것이요 그만큼 믿음을 지키며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마음 귀를 열고 말씀에 깊이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대로 직분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원해서 우리들이 요구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안 받으면 더 편안하고 부담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우리 지역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배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은 성탄주일이었는데 자기는 참 슬픈 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성탄주일에 왜 목사님의 마음이 슬프냐고 되물었습니다. 내년이면 은퇴를 해야 하는데 새로운 후임자를 선택하기 위해 청빙위원을 구성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신의 소임이 이제 다 끝났구나 싶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청빙위원을 구성해야 하는 그 자체가 슬펐고 은퇴하고 나면 집 페이먼과 살아갈 앞날이 까마득하여 세상에 나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50년을 목회한 선배의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보잉을 다니는 사람들은 은퇴하고 나도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보장한다고 하고 주정부 공무원도 은퇴하고 나면 주정부가 죽을 때까지 연급을 주는데 하나님의 일을 50년 동안 했는데도 은퇴하고 나서 살아갈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이와 같은 일을 이 세상 그 누가 하고 싶겠습니까? 다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시키시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명이고 하나님의 일꾼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그랬고 오늘날 목숨을 걸고 전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이 그러하며 오늘날 교회의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님이나 권사님들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지 않다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꾼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초보적인 신앙인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노아를 선택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창6:13-14)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결심하시면서도 단 한 사람 노아에게 그들이 이 심판의 와중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 주시고 그 일을 친히 노아에게 시키셨던 것입니다. 오직 노아 한 사람만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고 그 놀라운 일을 하도록 사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의 일은 모두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특정인들만이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일을 맡은 노아가 하나님을 향하여 반항하거나, 왜 나에게 이 엄청난 일을 맡기느냐고 불평을 하거나 못하겠다고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당대 그 모든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죽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두 말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다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놀라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거절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사람도 “제가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나를 데려가 주세요.” 해서 데리고 쓰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일에 열중하고 살아가고 있는데서 친히 예수님께서 다가가시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살인마까지도 친히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라운 사실은 단 한 사람도 “싫어요, 난 아니에요.”하면서 도망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배도 버리고 아버지도 버려두고 단숨에 예수님을 따라 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 같으면 과연 이 상황에 어떻게 응답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일꾼들은 스스로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한다고 꽁무니를 빼고 도망 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 본문 노아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거절하는 순간 그 엄청난 홍수의 희생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을 홍수로 멸절시킬 계획을 세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노아를 부르시기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상황을 다 설명해 주셨습니다.
(창6:11-13)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신다면 오늘 우리들도 감히 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홍수의 희생자가 되어 죽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배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생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속 깊은 뜻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홍수 때의 인간들과 같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 하나님을 무시한 채 세상의 그것으로 자만하고 자랑하고 의지하면서 천년만년 이 땅에서 그것을 누리고 살 것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노아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유일한 해답이요, 그것을 통해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결국 우리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일꾼들에게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실로 하나님은 노아에게 엄청난 일을 시키셨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짐승들이 암 수 둘씩 들어가야 하는 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이 홍수 동안 먹고 살아야 할 양식을 넣어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8식구가 먹고 살 물과 양식도 또한 넣어야 했습니다. 이는 지금 같이 장비가 충분한 때에도 거의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하물며 노아의 당시에는 그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단 한 마디도 “내가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 묵묵히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산 속에서 배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을 받은 노아가 감당해야만 했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을 던져버릴 수가 없었던 것은 그 길만이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각오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우리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뼈 속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매우 엄격하시고 분명하신 분이십니다. 절대로 그냥 일을 시키시고 일이 끝나면 나 몰라라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일을 시키신 다음에 모르는 척 하신 사람을 단 한 사람만 찾아내 보십시오.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키셨으면 끝까지 그 열매를 확인하셨고 그 열매를 확인하신 후에는 거기에 따른 풍성한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25:14-21)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일을 시킨 다음에 반드시 그 결과를 확인하신다는 것입니다. 확인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악 간에 복과 심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배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엄청난 일을 노아는 묵묵히 거의 120년 동안을 헌신하여 배를 다 완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물로 심판하실 때 그 배로 인하여 자신과 8식구를 다 구원해 낼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노아가 거절하거나 불순종하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든 세상 사람들과 함께 노아도 그의 온 가족들도 물속에 잠겨 다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사건을 중심으로 깊은 깨달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거역하거나 뿌리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실 때에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시실을 믿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에베렛 다운타운에 가면 록펠러의 이름을 딴 록펠어 에베뉴라는 길이 있습니다. 누가 록펠러입니까? 세계적인 최고의 부자 석유 왕이 바로 록펠러입니다. 그는 어떻게 그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을까요? 어릴 때 그의 어머니는 항상 그에게 3가지 지침을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에 가면 꼭 앞자리에 앉아라,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 반드시 드려라,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록펠러는 어머니의 그와 같은 3대 지침을 평생을 두고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는 너무나 고집이 세고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을 지도해 보면 록펠러 같은 인물을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록펠러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말씀을 순종하였다가 기적 같이 구원 받은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록펠러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순종하고 따라서 세계적인 부호로 그 이름을 역사 속에 깊이 남겨 두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토를 달지 말고 순종하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함으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기적 같은 복을 받고 우리들의 후손들도 노아의 후손들처럼 복을 누리는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 순종입니다! 제발 사사로운 우리들의 생각과 의견을 내 놓지 말고 노아처럼 한 마디 불평조차 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배를 만드는 멋들어진 순종으로 남은 삶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무조건적인 순종만이 기적을 만들어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놀라운 진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엄청난 명령을 받은 노아가 단 한 마디의 질문이나 원망도 없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그대로 다 순종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 두 말씀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결과를 거듭 두 번씩이나 기록해 둔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아는 그토록 놀라운 순종의 사람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후 수천 년이 지난 후에 노아의 기록이 신약성경에 다시 한 번 더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아가 그 때 어떻게 그렇게 순종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말입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훗날 하나님은 노아가 그처럼 하나님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련한 우리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시중들게 하심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을 훈련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처럼 분주한 연말에 교회당으로 보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도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엄청난 계획과 일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물로 온 세상을 다 심판하겠다고 하실 때 그 뜻을 모두 다 이해하였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때로는 현실에 안 맞고 형편에 안 맞을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고 노아처럼 기적을 체험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8년도 송년주일입니다. 어느 덧 한 해도 다 저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미련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새로운 또 한 해와 새로운 직분을 또 허락해 주시니 그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믿음으로 잘 순종하여 죽음 같은 심판을 모면하고 가족들까지도 다 살려 낸 노아의 충성심을 배워보았습니다. 과연 노아는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한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그 엄청난 작업을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순종하여 끝내는 생명의 방주를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하게 하실 줄 믿고 군소리 없이 순종하여 기적을 만들어 놓는 그런 믿음의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엄청난 축복으로 보상하시고 생명으로 화답하시는 보상의 하나님이시기에 오늘 우리들도 노아와 같은 축복을 능히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을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귀한 직분을 또 다시 기회로 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노아와 같이 순종함으로 2019년도의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신선한 사명감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노아에게 임하였던 풍성한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8년 12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