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0일 주일낮 설교 (찾아 갈 스승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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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Monday, 21 May 201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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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갈 스승을 가졌는가?
스승주일
5. 20, 2012
本文:요한복음3:1-15
說敎:崔仁根牧師
현제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던 아이였습니다. 두 살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하였고 6살 때에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었고 그 선생님은 어린 오바마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려느냐?”고 말입니다. 그 때 어린 오바마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커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래, 네 말 대로 훌륭하게 잘 자라서 너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거라.”고 말입니다. 그 말대로 오바마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2012년도 스승의 주일을 맞아서 예배드리는 복된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오바마와 같이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언제나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 받고 혼란한 이 시대에 올바른 길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과 같이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이처럼 소중한 선생을 만나는 유대의 한 성공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유대 공회의 큰 의원이었던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돈도 많은 사람이었고 당대에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존귀하게 여길 만큼 출세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잘 난 사람이었는데도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밤 중에 조용히 평소 마음에 두고 존경해 마지않던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렇게 찾아 갈 선생님을 마음에 두고 살아왔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요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가 이처럼 스승을 찾아 밤 깊은 때에 용기를 내었던 것을 보면 사람은 세상적인 만족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하고 풀어야 할 숙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말씀을 중심으로 스승의 주일에 복된 은혜와 축복을 사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마음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찾아 갈 스승을 가졌는가?
오늘 날 우리는 니고데모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 받고 크게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자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와 같이 한 밤중에라도 찾아 갈 수 있는 스승을 두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신적으로만 만족하는 오늘 우리들의 두려운 허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생은 결코 육신적인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번만 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 건너와 미국 가수를 발굴하고 훈련하여 미국 빌보드 Top 10에 진입시킨 전설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박진영씨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 유명 가수들을 수도 없이 배출하여 가요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인을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예상대로 그는 성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돈과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는 일약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은 바로 20억 원을 손에 쥐는 것이었습니다. 이 돈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므로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꿈을 26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성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풍성한 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코 그러한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다시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그 돈으로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사는 자선사업을 하며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데 투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자신의 제자들도 꾸준히 양성하며 가요계의 Top을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것으로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음악을 하며 사업을 하며 돈을 벌며 남다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자기 자신만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힘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신지? 석가모니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해 성경도 읽어보고 불경도 읽어보면서 인생의 본질을 이끌고 있는 진정한 자신의 스승을 찾고 싶어 지금은 거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종은 그 사람의 이와 같은 생각들을 전해 들으면서 그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에 진정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안내자 참 스승을 찾아 골몰하는 그 모습이 아무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 공회 의원이었던 니고데모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아니하고 참 선생님을 찾아 나섰던 그의 용기와 남다른 값진 생각 때문에 그는 성경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찾은 선생님을 우리들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출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니고데모가 왜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 나섰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미 이 종이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할 일 없이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나 바라보며 따라다녔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대 공회 의원으로서 그 누구보다 자신의 업무와 일에 전념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신 숱한 이적과 기사까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예수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범상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처럼 베푸시는 이적과 기사로 인해 온통 백성들의 관심과 이목이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결국 무엇입니까? 시기와 질투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범인들과 같이 질투나 시기심에 젖어 있지 않고 그의 그 엄청난 능력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증하고 그를 스승으로 삼고 가슴으로 흠모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니고데모를 통해 배워야 할 고귀한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바쁘고 지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한 순간도 예수님에 관한 관심에서 멀어져 있지 않고 세세하게 다 알고 있었던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님께 관심을 두고 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숱한 이적과 기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주님의 그와 같은 능력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니고데모와 같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접근해 갈 수 있는 그런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의심 많은 빌립에게 바로 이와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접근하시고 믿음을 강요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4:10-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 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 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우리 주님의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3년씩이나 주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라도 빌립은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던 니고데모보다도 못한 제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오늘날 예수님을 모신 신앙생활이 어떠하여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처럼 막연하게 주님을 따르지 말고 니고데모와 같이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는 실제적인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한 밤에라도 찾아가는 스승으로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나누는 대화를 눈여겨보면 참으로 니고데모의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 바로 그것입니다.
요3:3-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 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 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3:8-9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 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상의 대화에서 우리는 니고데모의 순수함과 어린 아이와 같이 배우려는 천진함을 의심 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자세가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과 직위를 넘어 배우려는 간절함으로 주님 앞에 엎드린 신실되고 순수한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니고데모는 유대 공회 의원이었지만 주님으로부터 알지 못함에 대한 책망까지 받았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주님으로부터 끝까지 가르침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요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 하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스승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제자일 뿐,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이와 같은 자세가 바로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자질인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진지함도, 순수함이나 겸손함도 없습니다. 오로지 헛된 자존심만 남아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삐지고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자존심을 들먹거리며 스승을 떠나 스스로 오만의 자리에 웅크리고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 니고데모와 같은 겸손한 자세로 한 가지라도 스승을 통해 배우려는 열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3년씩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듣지 못했던 놀라운 신구약 성경 전체의 요절이라 할 수 있는 놀라운 진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 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과 축복과 진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니고데모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는 사모하는 자세를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 워 주심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끝까지 스승을 모신 제자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는 예외 없이 모두가 다 나라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지고 군대에 가야 합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징병이 되어 가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자원하여 육군이나 공군 또는 해군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해병대에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별히 그 중에서도 해병대의 의리는 대단하여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슬로건까지 나올 정도로 그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그렇게도 연약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지 목회를 하면서 참으로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돗개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개는 평생에 주인을 딱 한 사람만 섬깁니다. 처음 태어나서 자신을 돌봐준 그 사람만이 영원한 주인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어떤 사람이 제 아무리 잘 해주어도 자신의 주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민교회를 담임해보면 참으로 가관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변화무상한지... 사람이, 특별히 신자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한 번 주인으로 섬겼으면 다소간의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극복하며 영원히 주인으로 섬겨야 진정한 신자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니고데모는 당시 환경과 여건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그래서 예수님도 남 몰래 한 밤중에 찾아왔지만 그는 그가 선생님으로 모신 이상 끝까지 자신의 스승으로 우리 예수님을 잘 모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변호하고 섬김으로 후대에 참으로 아름다운 귀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공회에서 예수님을 적극 변호하였습니다
요7:43-52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 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 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 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 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 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 느니라 하였더라
이렇듯 니고데모는 당당하게 모든 관원들이 율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잡으려는 악한 자들을 책망하며 예수님을 변호하는데 앞장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보통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특별히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더 더욱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당당하게 나서서 예수님을 변호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요 거듭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의리인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가장 값진 헌신을 하였습니다
요19:38-40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 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 라도가 허락 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 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자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떨고 있는 상태에서도 당당하게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값진 향유를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장례를 도왔습니다. 이는 참으로 가식 없는 충성이요 헌신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충성을 하되 주군이 살아 있을 때 만 충성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충신은 주군이 죽어 세상을 떠났을 때에 더욱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니고데모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 더욱 진정한 마음을 드리고 충성하고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지고 왔던 몰약과 침향은 당시 로마 황제의 장례 때나 쓰던 값진 것으로서 그것이 100근이나 되었다는 것은(당대 한 근이 340그람이었음) 그의 부가 대단한 것이었음과 주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엄청났던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비록 예수님과 더불어 공생하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가슴으로 믿었던 믿음을 기초로 한 그의 예수님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였던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한 번 예수님을 찾아와 제자가 된 이후 당대의 사람들이 평생을 두고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제자의 도리를 이처럼 아낌없는 충성심에 가득찬 사랑으로 감당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피상적이고 상징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주님을 섬기지 말고 니고데모와 같이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헌신하는 제자의 도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2년도 복된 스승주일입니다. 스승이 사라지고 제자가 없어지는 슬픈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밤 중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 왔던 니고데모를 통해 오늘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막연한 추종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증하는 신앙을 기초로 한 니고데모의 헌신과 충성은 오늘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막연한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아니라 니고데모와 같이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당당하고도 넘치는 헌신과 충성으로 진정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제자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들이 한 밤중에라도 스승을 찾아 나서는 찾아 갈 스승이 있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늘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들의 살아가는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이처럼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는 날 동안 멋들어진 충성심으로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그런 아름다운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5월 20일
스승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