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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4일 주일낮설교 (결단이 축복입니다!)

결단이 축복입니다!

 

 

8. 4, 2019

本文:창세기35:1-7

   : 牧師

 

 

 

 

성경은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결단이 요청되는 문제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연히 그리고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떠밀려 들어가거나 하나님 나라에 백성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결심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는 선택이라는 말에 대한 긴 설교라 해도 좋습니다. 아주 초기의 시대로 돌아가면 모세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에 백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랑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 또 여호수아도 그의 일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백성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였습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24:15)고 말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결단하지 못한 여인에게 임한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있는 롯의 아내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평원의 도시들은 너무도 가득 찬 죄악 때문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은 멸망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그 성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을 떠났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 보여 집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이것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여인에 관한 묘사입니다. 그녀는 도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단호한 결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는 재앙이 그녀를 덮치고 말았습니다. 누가가 전해주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도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눅17:32)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도 결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집에 가서 가족들과 작별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다."(눅9:62)고 말입니다. 이렇듯 성경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신중한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우리가 결단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그 어떤 은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소중한 몇 가지 진리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신자는 결코 혼자 있지 않습니다


 

(창28: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으나 형 에서가 이것을 알고 야곱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자 그 어머니 리브가가 아무로 몰래 야곱을 멀리 라반에 있는 외삼촌댁으로 피신을 시키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말씀은 어린 야곱이 외롭게 집을 떠나 외삼촌댁으로 가는 노중에 혼자 들판에서 잠을 자는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 어린 것이 낯선 곳에서 혼자 잠을 청하려니 그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그곳에 임재하시고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는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야곱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귀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단순하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함께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엄청난 축복을 보장해 주시면서 말입니다.

 

(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야곱만 체험한 고백이 아닙니다. 엘리야도 똑 같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불타는 믿음으로 850명의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과 갈멜산 상에서 싸워 당당하게 이겼을 때 그는 그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습니까? 하지만 그 성취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악녀 이세벨이 일어나 내가 너를 네가 850명의 선지자를 죽인 것 같이 죽여 그 원수를 갚으리라.고 이를 갈며 나타나자 그만 엘리야는 주눅이 들어 소금에 절여진 배추와 같이 늘어지고 말았습니다. 급기야는 그는 로댐나무 아래에 엎드러 죽기를 한하며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굶주린 그에게 먹을 떡을 주시고 마실 물을 주시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왕상19:1-7)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그 택한 자녀들을 결코 홀로 버려주지 않습니다. 언제나 귀한 것으로 찾아와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이와 같은 하나님과 함께 이 험한 세상을 정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더 이상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근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진리를 믿어야 바로 예수님의 제자요 먼 미래를 형통하게 승리하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잘될 때 방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은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 같은 축복으로 비록 외삼촌은 야곱을 속이고 사기 쳤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대신 야곱에게 엄청난 것으로 복을 주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빈손으로 외삼촌댁에 내려갔었지만 네 명의 아내와 13명의 아들딸들과 엄청난 종들과 양떼와 소떼를 거느리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창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는 그의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많은 재산과 가족들을 이끌고 드디어 외삼촌댁을 떠나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린 외삼촌 라반이 노발대발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야곱을 추적하며 따라왔습니다. 참으로 야곱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그와 같은 라반을 막아서시고 야곱에게 가타부타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심으로 야곱을 서슬 퍼런 라반의 칼날에서 놓여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창31:21-24)

그가 그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지 삼일 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야곱에게는 자신을 잡아 죽이려던 살기등등한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야곱은 많이도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 또한 깨끗이 해결하여 주셔서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에서가 오히려 입을 맞추며 영접하여 주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야곱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요 감사의 조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밤새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의 이와 같은 두려움을, 에서의 마음까지 움직이시고 해결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창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렇게도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였으면서도 그만이야 그 하나님 앞에서 자만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친히 약속 드렸던 그 약속을 망각하고 제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창33: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전에 야곱이 혼자서 외롭게 외삼촌댁으로 도망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시자 그는 그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창28:18-22)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모든 문제가 해결 되고 평안하게 되자 이와 같은 서원도 망각해버리고 제 마음대로 제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뜻밖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지역의 추장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고 야곱의 아들들은 그 추장과 족속들을 모조리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창34:25-27)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 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인해 야곱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과의 사이에도 언쟁이 일어나 서로를 비난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불행이 시작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34:30-31)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과의 약속을 떠올리게 됩니다. 벧엘로 가지 않았던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급기야 야곱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벧엘로 올라가는 결단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단만이 해답입니다

 

(창35:2-5)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일어나 결단하고 문제의 땅을 떠나 약속의 땅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 어떤 자들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막아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꼭 배우고 익혀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결단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직장을 얻어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비장한 각오로 인생을 새 출발하게 되거늘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직분과 축복을 받고서도 변화를 만들고 결단하지 못한다면 그 어찌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며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비장한 결단을 하여야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장한 결단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계적인 성공연구가 로버트 슐러 목사는 결단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하라는 교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첫째 조건은 이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그 둘째 조건은 이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그 셋째 조건은 이 일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이와 같은 세 가지 조건에 부합되는 일이면 시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별 생각 없이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심심해서 행동하고, 시간이 남으니까 행동하고, 친구가 하자고 하니까 행동할 때도 많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행동하고,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행동할 때도 많습니다. 윗사람이 시키니까 행동하고, 돈이 생기니까 행동하고, 명예가 생기니까 행동하고, 권세가 생기니까 행동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생각을 확 바꿔야 됩니다. 이제부터는 로버트 목사님의 충고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만 골라서 해야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앞두고 선택의 문제로 고민이 생기게 되면 위 세 가지 질문 앞에 바로 서서 확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어야만 최선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선택과 결단의 기회가 언제입니까?

오늘 밤 자보고, 내일하지 머!, 아닙니다.

금년에 다녀 보고 내년에 결단하지 머! 뭐 그리 급할 것 있느냐? 천만에 말씀, 그것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오늘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여기에 선택의 긴박성이 있습니다. 지옥에서 금메달을 딴 마귀가 차차마귀라고 하지 않습니까? 서두를 것 없다 천천히 결정해라. 얼마든지 충성해도 좋다. 그러나 천천히 해라. 뭐 급할 것 있느냐?라고 하는 차차마귀가 일등을 했답니다.

 

미국의 유명한 지도자 케네디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아이젠 하워 전 대통령을 찾아가서 자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젠 하워는 젊은 새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임무는 결단해야 할 때에 결단하는 것이요. 당신이 결단을 잘하면 미국이 행복해 질것이고, 당신이 결단을 잘 못 내리면 미국이 비참하게 불행할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유부단하거나 우왕좌왕하지 마십시오. 기회는 언제나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왔을 때 신속하게 바른 결단을 하는 사람만이 남을 앞서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만큼 행복하고, 선택만큼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나무나 돌을 선택한 인생의 가치는 나무나 돌의 가치만큼만 높아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만큼 높아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와 같은 주님을 위해 내 심장과 삶을 불사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고백하고 결단하여 합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잘못된 선택에는 언제나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고, 좋은 선택에는 언제나 그만큼의 좋은 보상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세계를 둘러보면, 일찍부터 하나님을 선택했던 나라들과 하나님을 버린 나라들 간에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GNP가 높은 선진국들은 대개가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여러분 노르웨이라는 나라를 아실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계에서 사회 보장제도가 잘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조상들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그들의 조상은 바이킹입니다. 배를 타고 남의 나라에 가서 보화를 강탈하고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고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해적이었습니다. 바이킹의 총 우두머리가 왕입니다. 그 왕에게는 다른 나라에서 잡아 온 수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노예 중에 유독 어느 한 어린 여자 노예가 있었는데, 그 어린 여자 노예는 늘 얼굴이 밝고, 입으로 무엇인가 종알종알 하면서 다니는 모습을 왕이 발견하고 그 아이를 불러서 물어봅니다. "너는 부모님도 보고 싶지 않니? 너는 여기 노예로 있는 게 무섭지도 않니?"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부모님도 보고 싶고 집에도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기에 늘 그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쁨으로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또한 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을 소개하면서 살아갑니다. 왕도 하나님을 섬기세요. 왕도 주님을 믿으세요." 라고 전도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그 어린 소녀에게 바이킹 왕이 전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전 바이킹에게 선포합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은 남의 나라에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노예를 붙잡아오는 것을 그만 한다. 그러나 그 밑에 있는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 왕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그 나라는 남의 나라에서 약탈하고 죽이는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97%가 기독교인들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국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모르는 척 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내 인생에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은 절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 결단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과 결단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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