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1일 주일낮설교 (믿음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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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1 August 2019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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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생명입니다!
8. 11, 2019
本文:사무엘상4:1-11
說敎:崔 仁 根 牧師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책망 받은 것은 바로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할 때 이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다른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책망을 받았다면 몰라도 어떻게 예수님을 두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그렇게 많이 체험하고서도 그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모두가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보면 믿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예수님께서 곁에 계신다면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마16:7-8)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그만이야 그들이 먹어야 할 떡 가지고 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길거리에서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이것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즉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당연히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대책을 마련하여야 하겠거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 왜 “믿음이 적은 자들아!”고 하시면서 책망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떡을 친히 준비하시고 마련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생활이고 생활은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주님의 책망의 대상이고 이와 같은 믿음이 없다면 결국은 구원에서 멀어지고 영원한 생명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 속에 믿음이 없습니다. 목사들이 모이는 곳에 가 보아도, 평신도들이 모이는 곳에 가 보아도, 그 어디에도 믿음이 없습니다. 모두가 사람의 소리요 경험의 소리로 지식의 소리만 요란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날을 미리 내다 보셨던 예수님은 친히 다음과 같이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19명의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이 임직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피택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과연 가슴 속에 하나님만이 보시고 칭찬하실 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실로 두려운 마음으로 이 부분에 대해 자문자답하시고 남은 삶을 오직 이 믿음에 대해 자유할 수 있도록 믿음의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사무엘이 선지자의 사명을 시작 할 무렵에는 엘리 제자장이 지도자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믿음이 없었고 무능하여 하나님과 멀리멀리 단절되어져 있었습니다.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엘리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어 버렸으면 그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셨겠습니까?
(삼상3:10-14)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믿음에서 떠난 자들과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관절이 없으면 뼈와 뼈가 연결 될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커낵션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관절이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믿음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각종 소중한 덕목 중에서 믿음은 그 기초가 되고 또한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벧후1:5-7)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자는 덕이든 지식이든 절제든 인내든 경건이든 형제우애든 사랑이든 다 무용지물로 보시고 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과 단절되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에게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당대 최고 지도자였던 엘리에게는 이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늙어 어느 덧 98세가 되었고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에게 지도력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것은 그 두 아들은 아버지보다 배나 더 불량자였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반드시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늘 믿음, 믿음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렇게도 믿음이 없어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 되고 무능하여 자식들마저도 제대로 교육하고 믿음으로 키우지 못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나이 늙어 은퇴하고 자식들에게 그 소중한 제사장의 직분을 물려주었으나 그들은 그 아버지보다 더 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야 말았습니다. 견디다 못하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 집을 향하여 진노의 말씀을 선포시고 말았습니다.
(삼상2:27-35)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블레셋을 일으키시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시어 예언하셨던 심판을 구체화 하셨던 것입니다. 천하에 이스라엘을 이긴 나라가 없었거늘 오늘 전쟁은 그 당일에 4천명이 죽어나가는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실로 놀랍고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단 하루 만에 천하무적이었던 이스라엘 용사들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삼상4:1-2)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 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이와 같은 처참한 현실 앞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탄식하였습니다.
(삼상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깜짝 놀라 외쳤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이 외침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장수가 누구였느냐?”, “도대체 용사들을 어떻게 훈련하고 다스렸기에 단 하루만에 4천명이나 죽어나갔느냐?”, “도대체 실패의 요인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잘 살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이도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요인을 이렇듯 하나님께 여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 해답은 오직 하나, 믿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제대로 소통만 하고 있으면 전쟁도, 질병도, 생명도 다 그 하나님으로부터 이김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아직 어리고 전쟁에 관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믿음으로 당당하게 전쟁에서 승리하였던 믿음의 아들 다윗은 한결 같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17:45-50)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렇게도 참담한 실패 앞에서 하나의 묘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법궤였습니다. 법궤란 나무 상자로 그 속에는 십계명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가 들어 있는 하나님께서 머무시고 지키시는 놀라운 이스라엘의 보물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법궤를 실로에 둔 사실을 기억해 내고 그것을 가지고 올 것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삼상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서둘러 실로에 있던 법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삼상4:4-5)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 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군에게 대패하고 무려 3만 명이나 죽었던 것입니다.
(삼상4:10-11)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전쟁에 나아갈 때에 법궤만 있으면 언제나 승리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히 혼비백산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역시 믿음입니다. 그들의 지도자 흡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서 이미 버린 자요, 그를 추종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께서 이미 버리고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 앞에 법궤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법궤는 어리석을 만큼 그것을 의지하는 백성들의 우상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이 좋고 명예가 좋고 출세와 성공이 좋은 것이지만 이렇듯 하나님께서 떠나버린 그 모든 것들은 한갓 우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원과 삶과 생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니라.”고까지 선포하셨겠습니까?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여 엘리의 집안은 풍비박살이 났고 그들이 이끄는 이스라엘 역시 적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전쟁의 비참한 소식, 즉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전쟁터에 나갔던 용사들은 무려 3만 4천 명이나 죽었으며 하나님의 법궤가 적들에게 빼앗겼다는 비참한 소식을 전해들은 엘리는 그만이야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며느리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갑자기 아기를 조산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삼상4:17-22)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 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엘리의 가정은 이렇게도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 없는 인생들의 최후가 무엇인지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증거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우리들에게 놀라운 한 말씀을 남겨 두었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상을 받아 자손만대에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