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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9년 8월 25일 주일낮설교 (사랑이 없다면!)

2019년 8월 25일 주일낮설교 (사랑이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8. 25, 2019

本文:고린도전서13:1-3

   :

 

 

 

 

   지난주일 심한 교통사고로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지만 오히려 위로와 기쁨이 되는 집사님들이 있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찬양예배를 마치고 조금은 지친 상태에서 당회장실로 올라왔는데 집사님 부부가 올라와서 목사님, 저희들이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 목사님의 자동차를 사드리기로 하였습니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성도들이 더러 담임 목사님의 자동차를 사드렸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곳 시애틀에서 40여 년 동안 목회를 하고 있지만 성도들이 목사님께 좋은 자동차를 사드렸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기쁘고 감사하였습니다. 딱히 자동차를 받아서가 아니라 36년 동안 섬겨온 우리 교회에서 이런 성도들이 나왔다는 자체가 감동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역시 힘들고 어려운 목회의 36년이었지만 그 헌신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보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한두 푼이 아닐 진데 어떻게든 아픔을 겪고 소중한 자동차를 잃어버린 목사님께 위로를 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다음에 기회를 다시 가져보라고 정중히 사양을 하였지만 마음은 훨씬 더 기쁘고 감사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돈이 있다고 목사님께 자동차를 사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해 이맘때에 우리교회 부흥회 강사로 오셨던 목사님은 조그마한 시골교회 목사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시골에서 여유도 없는 집사님이 목사님께 좋은 자동차를 사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사랑은 결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이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 좋은 실례가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독생자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독생자 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만 있으면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들 가슴 속에 이런 사랑이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아무리 천사 같은 말로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도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기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들이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우리 속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는 일꾼들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역시 우리 속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하고 불쌍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말은 허망합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천사 같은 말로 사람을 호리고 마음을 빼앗을지라도 사랑이 없는 말이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마니 결국은 사기꾼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시몬 베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감히 예수님과 동료들 앞에서 이처럼 호언장담하는 어리석은 말잔치를 벌였습니다.

 

(마26:31-35)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던 그가 과연 어떻게 하였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보시는 면전에서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는 자의 말은 이렇게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결과를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인간들의 자화상입니다. 누구 할 것 없이 오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가슴 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말 장난질에 가슴 아프고 상처 입고 배신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목사일 것입니다. 교회에는 베드로와 같은 말장난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아예 이렇듯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는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까지 선언하였습니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발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말로 인격과 믿음을 털어내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문제를 만들고 말로 이웃과 다투고 말로 형제를 판다하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다. 말은 할수록 거칠어지고 축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입니다. 축복과 사랑을 나눌지언정 말로서 이웃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단련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향하여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경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말에 진실성이 없으면 바로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단 한 마디의 말이라도 그 속에 사랑이 담겨 있으면 죽을 자도 살리고 낙심한 자를 일으켜 세우며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어 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마당에 나온 주인공은 이슬을 머금고 활짝 핀 장미를 보고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것을 한 줌 꺾어서 꽃병에 꽂아 두면 보기도 좋고 향기도 좋을 것 같아서 탐스러운 것만 골라 한 줌 꺾었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을 친구에게 주어라! 순간 친구라...하면서 생각하다가 평소에 교류도 별로 없던 이웃을 생각해냈습니다. 곱게 다음은 꽃들을 화병에 탐스럽게 담고 작은 카드 하나를 만들어 겉봉에다 친구에게 이 꽃을 바칩니다!고 써서 옆 집 현관 문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옆집 아주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 메모가 적힌 카드를 들고서 말입니다. 그리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어젯밤에 한 숨도 자지를 못했습니다. 십대 아이가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늦게 들어오고 신경을 쓰게 해서 친구들 때문에 이렇게 모범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얼마나 좋은데... 엄마는 그런 친구도 없잖아!하면서 대꾸하여 너무나 큰 상처를 입고 친구가 없는 자신을 되짚어 보며 슬펐습니다. 그렇게 잠도 자지 못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출근을 하려고 현관을 나서는데, 이렇게 친구에게 꽃을 바친다.는 메모와 꽃을 받고 얼마나 위로가 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의 능력입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처 입고 힘겹게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로라도 위로하고 도움이 되는 그런 따뜻한 삶을 말입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바로 앞에 선 모세와 술객들의 모습을 보시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니 바로의 술객들도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뱀이 술객의 뱀을 삼켜버렸습니다. 술객들이 만든 뱀은 헛것에 불과하였고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 앞에 눈을 빼앗기고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조국 대한민국을 보고 있습니다. 나라가 온통 한 사람 때문에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가장 깨끗한 척, 가장 고상하고 잘난 척, 모든 정치인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였던 조국이라는 서울대학교 교수가 결국은 그와 같은 쇼맨십으로 청와대의 민정수석이 되고 급기야는 법무부 장관후보로까지 발탁되었으나 그의 삶과 자식들, 그리고 형제들과 가족들의 현실을 들춰보니 그런 구정물이 없고 그런 추악한 인간이 없는 벌거벗은 모습이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이 없는 인간들의 벌거벗은 민낯인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 모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이라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이런 능력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사회적인 칭송을 받지 못한 채 인생 말년에 감옥에나 가고 백성들의 손가락질이나 받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가슴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믿음은 곧 자기 의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기 자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만들기에 급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자기 의에 빠져 있던 제자들을 하나님은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를 지금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실제로 귀신을 쫓아내 보셨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여 보셨습니까? 이들은 지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 스스로 권능을 행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했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왜 이토록 놀라운 일꾼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엄히 책망하시고 내어 쫓아버렸습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돈과 세상의 경험과 지식과 능력으로 교회를 섬기고 목사님의 목회에 유익을 드렸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출발하지 못했다면 주님으로부터 이와 꼭 같은 책망을 받게 됩니다. 가슴에 하나님이 없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포장한 인간의 가증한 공로를 하나님께서는 격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몹시 추운 어느   저녁, 뉴욕에서 어떤 전도자가 전도지를 들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그가 어떤 건물 앞에서 헐벗은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전도지를 주자 이 사람은 욕을 퍼 부으면서 "당신이 날도와주겠다면 당신 코트나 벗어 주시오. 추워 죽겠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전도자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코트를 벗어 그 어깨위에 걸어주었습니다. 이 친절한 행동에 그 사람은 감동이 되어 선교사를 따라와 선교부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사람은 선교부의 관리자가 되어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수많은 소외된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관 위에 흰 장미꽃을 얹어놓았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표시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진정한 믿음은 사랑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따뜻한 사랑이 담긴 믿음이 있는 행동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내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없는 희생은 쇼에 불과합니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재산을 털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 밖에 없는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정도면 보통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단 한 마디로 선언하시고 맙니다. 의미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의미 없다고 선언하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어떻게 이렇게도 놀라운 희생에 하나님은 의미 없다고 단 한 마디로 선언하시고 마는 것일까요? 이 또한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행5:1-6)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모습을 목도하게 됩니다.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다 갖다 바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을까요? 가슴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헌신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의를 내 세우고 자랑하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커다란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이 종은 만 46년 8개월을 교회에서 성도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지나왔습니다. 실로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치면 바친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인정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그 일을 멈추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헌금으로 주의 종을 쥐락펴락하는 잔인한 인간들이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타코마 지역에 바로 그런 장로가 있었습니다. 돈을 엄청 많이 가지고 호텔 모텔을 여러 개 나 운영하는 그는 멀쩡하게 시무하는 목사를 내 쫓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출신인 그 목사는 장로가 나가라 한다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장로는 그 날부터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그 교회는 그 장로의 헌금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사는 사례를 받지 못하고 온 식구들이 굶주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이기 이전에 가정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었습니다. 버티다 못해 결국에는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헌금이나 구제나 충성이나 헌신은 하나님 앞에 무의미 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한 가지만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깨달읍시다. 헌금은 목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믿음을 다해 드리는 예물입니다. 이 거룩한 예물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됩니다. 불행하게도 그 장로는 그 많은 재산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급사하여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넌 아니야! 하고 선언하시면 그 날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거의 외우다시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깨닫고 생활 속에서 가슴으로 따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겨 주셨으면 죽도록 충성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우리들이 직분을 받았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것을 감당하는 데는 오로지 충성만 있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우리 개인의 감정이나 유익을 개입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고귀한 일을 맡기신 보람을 누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위해 우리는 목숨이라도 내어 놓으면서 충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수고와 헌신과 충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의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내성적인 할머니 성도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웃에게 증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설교를 들은 할머니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교회 목사님은 할머니에게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차츰 할머니는 이웃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이웃이 이사를 가고 그들이 살던 집이 비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곧 그 집에 이사 올 새로운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드디어 새 이웃의 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는 날이 되자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가게 문을 두드리면서 쇼핑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지고 이사 온 집으로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길 건너 사는 사람입니다. 방금 이사 오셨지요? 아침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좀 가지고 왔어요." 마침내 할머니는 그토록 망설여왔던 사랑의 표현을 시작한 것입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할머니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 가족 전원이 전도 받아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이웃을 살리고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를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듯 소박한 커피 몇 잔과 샌드위치 몇 개면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이웃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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