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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0일 주일낮설교 (최상의 믿음)

최상의 믿음

 

 

11. 10, 2019

本文:에베소서2:8

:崔 仁

 

 

 

 

   우리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염려하신 그 마지막 때가 바로 오늘날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믿음이 제대로 정립된 성도들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과 같이 어렵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교회에 다니고만 있는 모습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믿음을 소유하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하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오늘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한다면 결국은 생명 없는 마네킹과 같은 삶을 살다가 가을 낙엽처럼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평생 교회에 다니고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때에 우리들이 가져야 할 최고 최대의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구원 받는 믿음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의 최후는 구원이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가장 으뜸이 되는 이유 또한 우리 죄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벧전1:5-9)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믿음은 구원을 얻어내야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려는 간수를 설득하고 외친 단 한 마디는 바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구원 받는 진리였습니다.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최상의 믿음은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같이 믿음으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오로지 이 땅에서의 축복과 부귀와 건강과 평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천국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탄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주로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상대적으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믿음을 소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만이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한국 학생 세 명이 24층에 있는 방을 하나 얻어 함께 룸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외출하였다가 돌아와 보니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멍청하게 서로를 쳐다보다가 우리는 아직도 젊고 힘이 있으니 계단으로 올라가자, 하고는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8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16층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학을 전공한 학생이 성경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24층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아파트 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경비실에 맡겨둔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24층을 다시 걸어내려 와야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힘을 다해 24층까지 올라갔다 할지라도 방문을 여는 열쇠가 없이는 결코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열쇠가 바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인 것입니다.

 

상을 받는 믿음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되 그 하나님은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일생을 바친 사도 바울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가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자랑할 만 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일생을 다해 복음을 전하며 헌신하였던 것은 오직 하나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는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하늘 상을 바라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을 바라본다는 뜻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상은 사람들이 제아무리 많아도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을 받는 믿음이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만한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초지일관적인 믿음으로 이렇게 상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결국 사람은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다 떠나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사도 바울과 같이 하늘 상을 위해 최선을 다 한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롯의 처가 세상에 미련을 두고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역사적인 사건은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창22:1-4)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 말씀은 차마 사람이 받을 수 없는 무서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쳐 드리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망설임 없이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바로 이튿날 새벽 미명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으로 향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바로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도 놀라운 순종을 할 수 있었을까요? 훗날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이처럼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놀라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이런 믿음이 있을는지요?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창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어떤 존재였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런 아들일리자도 미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쳤다는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그와 같은 순종과 믿음을 지나치지 않으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화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 넘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에 이와 같은 인물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노아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산중에서 배를 만들라고 명령을 받았으나 두 말하지 않고 산중에다 배를 만들었다가 그 배로 말미암아 자신의 여덟 식구를 다 구원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았던 인물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여 마지막 시대에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멕시코에 사는 홍인종들은 "믿는다."는 말과 "순종한다."는 말을 한 단어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과 순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믿으면 당연히 순종하게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 `홍수'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말 없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혀 전망도 보이지 않는 일을 당신에게 하라고 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순종은 축복의 길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주님, 저희가 사는 날 동안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행여나 우리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종은 하지 않는 그런 어리석은 교인들이 될까봐 두려워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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