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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5일 주일낮설교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항상 함께 있으리라!

 

신년주일

1. 5, 2020

本文:마태복음28:19-20

:崔 仁 牧師

 

 

 

새해의 첫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또 한해를 선물로 주시는 것은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새해를 맞고, 새해를 맞았으니 새로운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속마음을 잘 읽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아낌없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이와 같은 깊은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한없는 축복을 받아보았던 성군 다윗은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의 팁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소원 성취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이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올해에는 우리 모두 다윗의 이와 같은 소중한 충고를 가슴으로 받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멋진 신앙생활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눅15:4-7)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잃은 양을 찾고 계시는가 하는 것과 찾으신 즉 또 그 얼마나 기뻐하시는가에 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잃은 하나의 양을 찾기 위해 오늘 우리들을 산과 들로 내보내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하나님의 잃은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돌아오게 한다면 이 세상 끝날 까지 항상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모하는 최고 최대의 축복은 과연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항상 함꼐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실 때 일어나는 축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와 같은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새해 첫 주일의 축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병 고침을 받게 됩니다


 

(요5:5-9)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눅18:37-43)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예수님의 행적이 기록되어져 있는 4복음서에서 우리들이 특이하게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곳에는 병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병에 걸렸을지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다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다 치료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병든 자를 치료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셔서 불쌍하게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이처럼 질병에서 해방 되고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이제 우리는 생각조차도 육신을 넘어 신령한 영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진정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복된 새해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 풍성한 능력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 삶이 풍족해집니다

 

(요6:5-7)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텅 빈 광야, 저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모여든 군중들에게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랑이 한이 없었던 예수님은 그들의 굶주림을 아시고 어떻게든 그들을 먹여보시려고 곁에 선 제자 빌립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계산에 빨랐던 빌립은 얼른 사람의 수와 떡 값을 산출하여 예수님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있어야 하겠습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당시 장년 한 사람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액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 소년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도 열 두 광주리 가득히 부스러기를 거두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요6:12-13)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우리 예수님의 능력을 증거 하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나고 그 주님과 함께 한다면 이런 기적도 어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날 주님의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내가 벌어서 내가 밥을 먹고 살아가는 줄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는 이와 같이 많이 벌어서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채워 놓고 만족해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역설적인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먹는 것 보다 더 소중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이처럼 우리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제대로 된 부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육신의 양식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그 말씀을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과 함께 하여 우리들의 삶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주님의 소원은 우리들이 이루어 드리는 그런 제대로 된 행복을 추구하는 한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납니다

 

(요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오라비가 병들어 죽게 되자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모시고 올 때부터 그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과 하시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 극과 극이었음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 함께 하시면 죽어서 나흘이 지나 이미 썩은 냄새가 나는 시신도 살아날 수 있다는 엄청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보다 더 복되고 귀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와 같은 능력을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치부하고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친히 지적하신 바와 같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11:39-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우리들의 경험과 관념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의 능력조차도 작은 인간의 가슴에 가두어버리는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죽 주님께서 답답하셨으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까지 반문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 주님의 능력과 권능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죽은 자도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풍족하고 행복 할수록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인은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부활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하루가 세상에서의 천 날 보다 낫다는 고백이 오늘 우리들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 모시고 동행하게 되면 간단하게 소개해 드린바와 같이 우리들이 삶의 실제적인 분야에서 엄청난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믿음은 이와 같은 예수님을 가슴으로 모시고 우리들의 생각과 경험을 넘어 절대적으로 그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질병과 양식과 죽음의 문제를 주님과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면서 하나의 조건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본문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그 하나의 조건이 바로 가서 제자 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은 이와 같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그 풍성한 축복을 누리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니 집안의 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또 다시 새해라는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변화의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며 한 발 더 가깝게 다가서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순종하고 또 다른 제자를 만들어 갈 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으로 풍성케 해 주실 것입니다. 밝은 새해를 맞아 이와 같은 신선한 변화와 축복으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외국의 유명한 크리스챤 잡지에 세계 선교에 대한 특집 기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동안 세계 선교가 발전해 온 것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에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고 계신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후 100년 그러니까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면서 박해와 고난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에 이어 사요 요한이 사망할 당시까지 세상에는 그리스도인 대 비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1 대 360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1년에는 세계 인구의 칠분의 일(1/7)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또 이란 지역에 사는 무슬림 즉 회교도인 가운데 최근 10년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회교도인의 숫자는 그 이전 1000년 동안 개종한 숫자를 모두 더한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1950년에 백만 명에 지나지 않던 중국의 그리스도인이 이제는 6천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1900년에 인구의 겨우 3퍼센트에 지나지 않던 아프리카 지역의 그리스도인 숫자가 현재에는 인구의 40 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복음을 들고 이 지역에 들어갔던 선교사의 수고와 파송된 선교사를 기도와 물질로 지원한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수고한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 교회에 대한 그분의 목적이 전도인 것을 제자들에게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진실로 우리는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은 단지 지역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바로 곁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우리 손이 미쳐야 할 땅 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수행해야 하는 사명만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생활에서 수행해야하는 가장 큰 사명이자 목적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아십니까? 친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85퍼센트 이상이 계속 그의 믿음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의 85퍼센트는 쉽게 그 믿음을 잃는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리는 관계전도라고 부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첫 사랑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복음이 필요한 가까운 사람에게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이것이 지금 우리 교회와 우리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지상 명령 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지역 선교사로 살아가는 복된 새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입니다. 이는 전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는 밤을 새워서까지 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예로, 멋있는 사람과 막 교제를 시작한 처녀를 보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신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관해서 만큼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그 놀랍고도 감격적인 복음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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