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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2년 6월 10일 주일낮 설교(여호와의 눈이 머무시는 곳)

2012년 6월 10일 주일낮 설교(여호와의 눈이 머무시는 곳)

여호와의 눈이 머무시는 곳

 

6. 10, 2012

本文:열왕기상9:1-9

說敎:崔仁根牧師

어린 아이를 가진 엄마는 그 아이로부터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아이의 안전과 그 아이를 향한 사랑이 풍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을 향해 한 순간도 그 눈을 떼지 않으시고 살피시며 우리들을 보호하심으로 우리들을 향한 사랑을 입증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우리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으로 노래하였고 우리들을 지키시되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지키신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121:4-6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 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 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솔로몬이 하나님께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헌당해 드릴 때 이에 감동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나타나시어 복을 주시고 지속적인 그 복을 누릴 수 있는 놀라운 비법을 가르쳐 주시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왕상9:1-3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 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 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솔로몬이 온갖 정성을 다해 건축한 성전에 있겠다고 하신 이 약속의 말씀은 솔로몬에게 주신 최상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찾아보니 이처럼 하나님의 눈이 머무르는 곳이 몇 군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곳이 과연 어떠한 곳인지? 찾아보고 그렇게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려고 합니다. 잘 들으시고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눈이 머무시는 곳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솔로몬에게 나타나시고 소원을 친히 물으시며 놀라운 축복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는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솔로몬이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헌당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복을 주신 사례입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축복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머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축복 같지만 이를 깊이 음미해 보면 이 축복은 축복 중의 축복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대의 배려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곳에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고 엄청난 능력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더 놀랍고 풍성한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상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상9: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 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 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이것이 바로 온 맘과 정성과 재물을 다 모아 하나님께 성전을 건축하여 드린 솔로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온 맘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한 몸과 마음과 예물을 하나님께 바쳐드리고 솔로몬이 받았던 축복 “여호와의 눈과 마음이 머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이 보다 놀랍고 풍성한 축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곳이 과연 어디인지? 이제 구체적으로 성경으로 돌아가 축복의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성전에 머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온 정성을 다해 건축한 성전을 받으시고 매우 흐뭇해 하셨습니다. 사실 이 성전은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때부터 온 정성으로 준비된 역사적인 건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그 성전에 머물러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상9: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 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 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축복이기 때문에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눈은 항상 그 성전에 머물고 계십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와 같은 말씀을 다음과 같은 다른 표현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이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특별한 곳으로 지정된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친히 머물고 계시는 거룩한 곳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성전을 Sanctuary(거룩한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결코 사람의 소리가 나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라도 이곳에서 함부로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온 마음과 귀를 우리들에게 기울이고 계시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삶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신선하고 아름답게 거듭나는 곳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거룩한 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들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친히 계시고 마음과 눈으로 우리들을 살피신다고 생각하면 과연 이 성전에서 어떻게 운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래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모교회에서 열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회의라는 것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고 찬, 반으로 대립되기도 합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심각하게 다투고 있을 때 한 목사님이 화장실로 가서 인분을 퍼 와서는 반대편 총대들을 향하여 퍼붓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거룩한 성전이 인분 냄새로 진동하게 되었고 회의를 하던 목사와 장로들의 온 얼굴과 옷에 인분이 뒤덮여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장로회 총회사에 영원히 남을 웃지 못 할 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서운 비극이 그렇게 인분을 성전에다가 퍼부었던 목사님에게 일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가 자기 교회 성전건축을 할 때 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친히 건축자재를 구하여 대형 트럭으로 운송하고 오던 중 사고가 발생하여 달리던 트럭이 넘어지고 말았는데 바로 그 트럭에 깔려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러운 인분으로 거룩한 성전을 더럽힌 그 목사님을 통하여 성전이 건축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이 후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머무시는 곳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예배드리고 있는 이 성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거룩한 성전에 나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은총 입은 증거임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가나안 땅에 머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 목표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가난과 전쟁과 외세로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해 주신 축복의 땅이 가나안이기 때문입니다.

 

신11:11-12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 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

 

이는 참으로 놀랍고도 감동적인 약속입니다. 왜 하나님의 눈이 항상 가나안 땅 위에 있는 것일까요?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포도송이 하나를 장정 두 사람이 겨우 매고 갈 정도로 비옥한 데 하나님께서 친히 그 땅을 지키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그 땅에 거하는 사람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에는 황무지가 되게 하십니다.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고 샘을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옥토를 변하여 소금밭이 되게도 하십니다.

 

시107:33-34 여호와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로 염밭이 되게 하시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비록 가나안과 같이 비옥하고 구별된 축복의 땅일지라도 밤낮으로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사람들의 죄악과 타락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언제까지 그렇게 지키신다고 하셨습니까? “세초부터 세말까지” 그렇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시편 기자를 통해 우리들에게 보장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놀라운 약속이요 축복입니다.

 

시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 다

 

시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들이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이 특심하고 모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우리들이 살아 온 길을 한번 뒤돌아보십시다. 과연 우리들이 영특하고 잘나서 지금까지 잘 지내 왔습니까? 암에 걸리지 않도록 특별히 건강에 유의를 잘 하고, 교통사고나 각종 사고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했으며 미국에 올 때 재산을 정리하고 많은 돈을 들고 와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입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저께 한국일보에 게재된 뉴스를 보면 더욱 더 우리들을 놀라게 하는 소식이 있습니다.

 

[이행성세포암종이라는 방광암 진단을 받은 스무 살 처녀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유방암을, 이모는 방광암을 앓고 있었다. 세 삼촌도 대장암과 전립선암, 기질암 환자였다. 의사들은 이 처녀의 암 발병은 '가족력'이 원인이라고 꼽았다.]

 

참으로 기막힌 가족들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이 노력한다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노력한다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영육 간에 건강하게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축복이요 지켜주심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하며 선언한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가나안땅을 향하여 눈을 거기에 머물게 하며 지키겠다고 약속하신 축복을 바라보며 그 축복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도 동일하게 머물 수 있도록 소망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없이 이 험악한 세상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에게 머무십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의인”입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욥이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욥기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 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우리는 또한 이 땅에 온 인간들이 다 하나님의 물 심판으로 다 죽어나갈 때 노아의 가족들만이 방주 속에서 구원 받았던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와 같은 노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록해 놓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 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이 두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에게는 공통되는 영적인 분모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들은 “의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들은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으며 살았던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욥36:6-7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욥과 노아가 왜 그토록 놀라운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그들 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에게 머물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과 축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그들처럼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의인에게 머물고 있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한결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대로 응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도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풍성한 기도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다음의 말씀에서 찾는다면 너무나도 충격이 될까요?

 

사1:15-17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 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죄송하지만 기도 응답이 안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들이 의인이 되지 못한 채 죄인과 악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의인이 되는 길을 제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는 것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도 지나치게 이기적입니다. 솔직히 이와 같은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불쌍히 여기고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는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수없이 사랑을 말하지만 이웃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열지 않고 시간을 만들지 않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받는 의인이 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의인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들이 매 수요일마다 강해를 듣고 있는 로마서의 핵심 주제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데 눈곱만큼도 의의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믿음이 있다면 사도 야보고의 가르침과 같이 행함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례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의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열납 되는가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행10:1-4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 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 으니

 

이 말씀은 당대 하나님의 사도들조차도 외면하였던 이방인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 가족들이 예수님을 한 마음으로 믿고, 그 믿음의 객관적인 증거로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며 꾸준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그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었다고 선포해 주었습니다. 그 말씀만 다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 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그랬습니다.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정확히 알고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한 의인이었습니다. 특별히 4절에 밝히 기록된 대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다." 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기도응답에 구제가 영향력을 미쳤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은 그에게 머물고 있었고 그가 구하는 것을 정확히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위에서 인용해 드렸던 신명기나 욥기서에서 하나님의 눈은 의인에게 머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입증해 주는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응답하심과 돌아보심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가장 큰 조건인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믿음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이와 같은 의인의 여건만 갖추게 되면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그와 같은 의인에게 머물고 계시기 때문에 고넬료와 같은 엄청난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과 생업과 자녀들과 교회와 사회 위에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면 그 보다 더 귀한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축복만 사모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찾지 않으니 그것이 차라리 더 안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복되고 귀한 아버지의 날에 아버지 집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오늘 참으로 복되고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그 엄청난 능력의 눈이 어디에 머무시는지? 정확히 배울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들이 늘 기쁘게 나와 예배드리는 성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은 우리들의 생업과 삶 위에 머물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눈은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줄 아는 진정한 “의인” 위에 머무십니다. 이처럼 분명한 성경의 증거도 드물 것입니다. 가슴에 새겨 두고 하나님의 눈이 머무는 그런 삶을 찾아 변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만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우리들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이 머무시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어 삶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그런 놀라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이처럼 보장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6월 10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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