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이기라! (2020년 4월 5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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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5 April 2020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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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이기라!
고난주일
4. 5, 2020
本文:요한일서5:1-7
說敎:崔仁根牧師
오늘은 2020년도 고난주일입니다. 고난주일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거룩한 희생을 기리고 가슴에 새기는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고난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주님께서 극복하신 고난의 지혜를 얻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환난의 때요 고난의 때입니다. 미국과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모든 사람들이 집안에 격리 되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열고 거룩한 부활절을 기대하는 영적인 대축복의 계절로 은혜를 덧입고 있을 것인데 지금은 모두가 집안에 갇혀서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조차 모른 채 고통의 날을 보내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리는 고난주일이니 고난 중에서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지혜롭게 고난을 극복하여야 하겠고 험악한 이 세상을 이겨내야만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소중한 진리로 오늘 우리들을 권면하고 계십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제대로 된 신자라면 고난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릴 대신하여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이 세상의 환난을 어떻게 극복하셨으며 오늘 우리는 또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하겠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위해 살을 찢고 피를 쏟아 거룩하게 희생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한 순간도 잊지 말고 고난과 환난에서 승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로 힘차게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고난을 이기신 예수님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렇듯 당당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그 모진 고난을 다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하나에서 열까지 다 불의에 의한 것이었고 인간들의 악한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었고 칼과 창에 찔리셔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는 말씀과 같이 오직 우리들의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고난을 당하고 죽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며 죄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을 따르며 죄악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이와 같은 우리들의 고난을 대신 지시고 우리들이 죽어야 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단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으시고 그 모진 고난을 온 몸으로 다 이겨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이 세상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시어 우리들의 영원한 구세주가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고난을 묵묵히 이겨내신 예수님의 숨은 비결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오직 하나 이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들을 한 순간도 버려두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마 같은 그런 인간들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짐승도 아닌 사람을, 사람도 아닌 하늘의 하나님을 이렇게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박아놓고 그 옷을 빼앗아 누가 가질는지 제비를 뽑으며 노는 이와 같은 비인간적인 폭도들도 예수님은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고난주일에 우리들이 가슴으로 배우고 새겨야 할 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의 계명을 남겨주셨던 것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말입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나누며 도와주며 걱정해 주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모두가 다 총체적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十匙一飯(십시일반)으로 나누기 위해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이 어려울 때 도와주고 챙겨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한인은행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유니뱅크가 이웃돕기를 나서면서 5만 불을 내 놓았다기에 참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원프리도 1천만 불을 내 놓았고, 아마존의 베조스도 1억불을 내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너무나도 어려운 정목사님 가족이나, 식당을 하면서 가장 타력을 많이 받고 있는 김한준장로님, 권희승집사님이나 송혁집사님이 이웃을 돕겠다고 봉투를 들고 와서 이 종은 참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록 자신들도 힘들고 어렵지만 더 어려운 성도들이 있을 것이기에 적은 정성이라도 보태는 손길이기에 가슴 찡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뜨거운 사랑으로 환난과 고통을 이겨내셨듯이 오늘 우리들로 이와 같은 따뜻한 사랑으로 오늘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Everett에 사는 선디 루터라는 42살의 한 여인은 남편과 사별하고 지난 8년 동안 6남매를 혼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 되어 입원을 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6남매는 그런 엄마를 위해 병문안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안타깝게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위독하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아이들이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엄마 곁으로 가보지도 못하고 창밖에서 외쳤습니다. “엄마 사랑해!”하고 말입니다. 사경을 헤매던 엄마는 아이들의 그 소리, “엄마 사랑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확인한 엄마는 편히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큰 보물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
성경에는 이 세상을 이기지 못한 채 오히려 이 세상에 휩싸여 실패하고 망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와 아간, 엘리사의 종 게하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개인 이기주의였습니다. 앞에 말씀 드린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돕고 챙기는 사랑이 아니라 이웃도 하나님도 없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는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례로 가룟 유다의 생각과 가치관을 한 번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12:3-6)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렇듯 가룟 유다는 은총 입었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조차 비난하며 가로 막았습니다. 이러한 자가 과연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조차도 사랑하지 못한 채 이웃을 비난했던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예수님조차도 은 30에 팔아넘기고 돈을 챙겼습니다. 그는 악한 세상을 이긴 것이 아니라 그 악한 세상을 앞장서서 쫓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처참한 멸망으로 끝을 맺고 말았던 것입니다.
(행1:16-18)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그는 결국 이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에 이와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만 세상 앞에서 이렇게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신자라면 인생이 우리들의 재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욕심으로 이스마엘만 낳지 않았어도 이 땅에 지금같은 비참한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네 후손은 이삭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셔도 아브라함은 조급한 자신의 불안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부인의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으므로 이 땅에 불행과 비극이 넘쳐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는 능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인간의 욕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는 엘리사의 종 게하시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을 내어 여리고성에서 금덩어리를 취하였던 아간이나 동일하고, 영원한 인류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과 같은 어렵고 힘든 고난의 때에 우리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조급하지 말고, 또한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말고, 묵묵히 이 세상을 이기시고 또한 이 세상을 이기라고 축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끝끝내 승리할 수 있도록 인내로서 현실을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최고의 승리자로 우뚝 서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던 성군 다윗은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시37:4-6)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라!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난국을 어떻게 타파하고 그 옛날처럼 평범 속의 축복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요? 사람도 아니고 경험자도 아니고 세상을 통달한 도사의 충고도 아닌 하나님의 방법이 있어 오늘 우리들에게 진정한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근거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고전15:57-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 속의 사도들은 오늘 우리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환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당당하게 이기고 승리하여 이토록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한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영원토록 진정한 해답이 되는 성경의 진리인 것입니다. 더욱 깊은 믿음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위험한 것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백신도,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 나라가 국경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막으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거역한 다음 죄인으로 전락하자 그러한 우리들을 고치시고 구원할 수 있는 치료약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과 신약입니다. 이 약을 먹으면 그 무서운 죄악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이 만들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인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만들어지는 길을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셨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과 같은 엄청난 환난과 고통이 만연해 있는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오직 한 길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을 만들어 주는 신약과 구약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마지막 시대에는 우리들에게 이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믿음에서 멀어지고 돈이면 만사가 다 되는 줄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21세기의 우리들에게 돈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려고 이와 같은 환난을 주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사도 요한과 같이 고백하고 선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믿음만이 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권세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믿음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소중한 말씀을 품에 품고 읽고 들으며 이 마지막 때에 복이 있는 자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기록하였던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의 일을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 말세에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나타난 지난 12월 말부터 오늘까지 불과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시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 되었고, 6만여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이러한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 길은 오직 하나 말씀을 읽고 들으며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방법이고 사도들이 친히 실천하여 기적을 본,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처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엄청난 이 난국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당당하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며 믿음으로 이 난세를 극복해 나가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