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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두려워하느냐? (2020년 4월 19일 주일낮설교)

왜 두려워하느냐?

4. 19, 2020

本文:마태복음8:23-27

:崔仁根牧師

 

54일까지 시한을 두고 있는 외출금지령이 더 연장이 될 것이라는 불안한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도 미국과 세계 전역을 휩쓸고 있습니다. 워싱턴주에서도 확진자가 1만 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도 6백 명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걸렸던 한 여성 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코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감염이 확증되었다 해도 병원엘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병원은 환자들로 만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대책 없이 죽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前代未聞(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듯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안하고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순간순간 두려움에 직면하며 연약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도 두렵고, 직장에서 Lay off(해고)를 당하여도 두렵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암인 것 같습니다. 정밀 검사를 받아보아야 하겠습니다.”는 소리를 들으면 입맛도 없어지고 잠도 자지 못할 만큼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이것이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자식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며 간신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뜻밖에 일어나는 사건과 질병들은 한 순간에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게 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상이 축복이다!”는 말을 자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풍랑은 일어납니다

(8: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같은 배에 타고 계시는데도 배를 둘러엎을 만큼 무서운 풍랑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면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닥치지 않는다고 믿어왔습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할 때 근심도 사라지게 되었고 귀신도 도망갔으며 어떤 질병도 다 치료 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같은 배에 타고 계시는데도 거센 풍랑이 있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이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거센 풍랑과도 같이 불어 닥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걸 맞는 모습입니다. 비록 이 세상이 타락하고 물질만능주의로 떠내려가고 있어도 곳곳에서 아직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며 예배드리는 귀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교회의 문까지 걸어잠궈야 할 만큼 거센 바이러스의 파도가 전 세계를 뒤덮을 수가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같은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오늘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풍랑이 일어난 것은 그 풍랑으로 인해 잠시 고통은 당할지라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한 말씀이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9:1-3)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서 이렇게도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인도하시는가, 싶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앞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풍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당하는 풍랑 또한 이처럼 거룩한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임하는 풍랑이기에 우리는 족히 이겨낼 수 있고 그 이김을 통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들에게는 축복이 되는 결론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풍랑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견뎌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신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8:25-26)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고려신학대학을 다닐 때 존경하던 홍반식박사님이 결혼 주례를 맡아 서울에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악천후를 만나 중부지방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니 온 세상에 짙은 안개가 끼어 비행기가 착륙하지를 못하고 부산으로 갔다가 광주로 갔다가를 반복하며 기름을 거의 다 소진하여 버렸고 기내방송은 위기를 알려오며 비상사태를 준비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평생을 하나님을 믿어왔고 주님을 위해 순교도 각오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비행기가 결국은 공항을 못 찾고 착륙을 시도하는 중에 기름은 다 떨어져 버렸고, 추락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순간에 봉착하게 되니까 그렇게 무섭고 두려울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도 직접 그러한 위기의 순간을 하늘에서 만나보지 못했으면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실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푸른 물만 넘실대는 바다 위해서 작은 배를 넘어뜨릴 듯이 풍랑이 몰아친다면 어쩌면 조용히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보다 훨씬 더 두려움이 컷을 것입니다. 그 옛날 작은 배에는 파도로 인해 넘어온 물이 차게 되면 속절없이 가라앉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혼비백산한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전혀 그들의 두려움에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고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이 그러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배워서 알고 경험해서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분명 무슨 뜻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매정하게 위로는커녕 책망만 하시는 예수님의 깊은 뜻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 누구라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만 할 그 절박한 순간에도 이해조차 해 주시지 않고 책망하신 주님의 깊으신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다시 한 번 더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25-26)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렇듯 밑줄 친 말씀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렵습니다. 반대로 믿음이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는 믿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3:1-5)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이상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듭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권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자세한 설명도 친절하게 첨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편에서는 어떻게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극한 환경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8:26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진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동일시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악한 세력들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당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찍이 환난 앞에서 담대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아마도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죽음이 눈앞에 찾아 왔을지라도 우리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이, 사랑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을 집어삼키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게 하는 처참한 현실 앞에서도 그들에게 이처럼 소중한 믿음을 확증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은 죽음도 해결할 수 있는 기적을 친히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11:39-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고 수 십만 명이 죽어나가는 이 절박하고 두려운 때에 오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이 마지막 때에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진짜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해 주신 기적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발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지 말고 기적을 만드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라

(8:26-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수군거렸습니다.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하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이런 사람들은 아닌지요? 아니면 당연히 예수님이시니까 충분이 그런 기적은 가능한 것이지.”하십니까? 우리교회의 거의 대부분은 후자와 같이 대답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시인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믿지 않는 희한한 성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데도 시련과 풍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최소한 주님의 능력만큼은 믿을 수 있어야 할 것이기에 말입니다. 사실 요즘 우리 성도들이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위대한 능력은 믿지도 아니하고 기대하지도 않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고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오늘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에도 있었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12:5-16)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들의 일상에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상식선에서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의 책망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인식하고 깊은 각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근본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믿음은 우리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임을 순간도 잊지 말고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들을 지켜주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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