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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아느냐? (2020년 7월 19일 주일낮설교)

너는 나를 아느냐?

7. 19, 2020

本文:시편121:1-8

說敎:崔仁根牧師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기도를 드렸다 해도 과언이 안 될 아굴의 기도는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부자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가난하게도 하지 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의 기도 내용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0:7-8)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아굴의 기도 내용입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내심 꼭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바라는 우리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는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고 재물의 필요를 날마다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굴은 당당하게도 부자가 되게 하지 말라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멋진 기도를 드린 그가 오늘 우리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오늘 우리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도전이 됩니다.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그는 왜 이렇게 우리들에게 너는 그를 아느냐?”고 질문하고 있을까요? 그 분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신앙생활도, 제대로 된 기도도 드릴 수 없다고 그는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성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식이 어떻게 그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많이 얻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행히도 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이 때에 우리 하나님에 대한 보다 더 분명한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16:13-17)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에 관한 정확한 고백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에 관한 정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우리의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기자는 절망 중에 먼 산을 바라보며 도움을 얻지 못해 탄식하다가 스스로 그 도움의 주인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고 대답하면 최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상대적으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도움을 구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31: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이 임하거나 삶에 위기가 닥치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자녀들을 도와주실 하나님께로 부르시는 사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사인을 받고 다른 곳에 가서 도움을 청하니 벌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찌감치 선언해 두셨습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고 말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입니다. 진실로 우리 하나님처럼 우리들을 사심 없이 도와 줄 이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과 언제나 힘이 되는 돈을 의지할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님보다 가까운 사람을 더 찾는 것이 생활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믿음이 있다면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이 진리를 믿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삶의 도우심으로 삼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121:3-5)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6번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식을 정말 사랑합니다. 오죽 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하지만 그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채 잃어버리게 될 때나 병들게 될 때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부모는 그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을 눈물로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켜준다.”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랑만으로도 안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와주시고 또한 위험과 위기에서 지켜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도우시고 지키실만한 능력이 있으시다는 말씀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천지만물을 지으실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이 종이 총신 신학대학원 2학년 때 75회 동기생들 중에서 12명을 뽑아 사모스라는 그룹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홀로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할 때 방학을 맞았는데 가 있을 곳도 없고 돈도 없어서 교역자들을 무료로 받아주는 좋은 기도원에 들어가 생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 와서 기도하고 있던 선배를 만났는데 목회라는 것이 화려하고 대접 받는 것 같아 보여도 무지 외롭고 힘든 것이니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믿을만한 좋은 친구들을 규합해서 그룹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평생토록 좋은 의지와 힘이 된다고 충고해 주신 말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지금 필라델피아에서 목회를 잘 하는 김풍운목사입니다. 그가 교회에서 아프리카로 선교지를 방문하러 갔는데 파송한 선교사님이 우전하는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데 어느 덧 서산에 해가 기우려고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을 재촉하며 빨리 달리기를 원했지만 길이 비포장도로라 생각대로 빨리 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펑하고 타이어가 펑크 나고 말았습니다. 차에서 내리는데 숲속에서 한 떼의 무리들이 나타났습니다. 강도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숲속으로 달아났습니다. 한 참이 지난 후 친구는 명세기 목사가 되어 자기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잡혔는지, 잘 숨어 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숲속에서 나왔는데 그만 강도들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친구 목사의 몸을 뒤졌고 선교사님께 드리려고 호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3천불의 돈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그 돈을 빼앗은 뒤 유유히 사라졌고 잠시 후에 나온 선교사님과 무사히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만약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선교사님이 말해 주어 간신히 선교지에서 목숨을 건지고 돌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순간순간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간증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지나간 숱한 환난가운데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특별히 자신이 운이 좋았다거나 지혜롭게 잘 대처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 모든 것이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환난을 면케 해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믿음에서 멀어진 교인들의 생각은 아직도 환난을 면케 해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너무나도 확실하게 불신의 벽을 깨뜨려버리고 신자들의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해 주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우리들이 안전하게 살아 온 것은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였음을 오늘 우리들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쩌다가 당하는 환난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여정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을 다 면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태어남으로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 환난 속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군 다윗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당한 환난은 보통 사람들이 당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무겁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거대한 골리앗을 상대해야만 했었고 수도 없는 전쟁터에 나갔으며 무엇보다도 목숨을 걸고 섬겼던 사울 왕의 시기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무서운 환난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끈질긴 사울 왕의 추적 속에서도 거짓말처럼 다윗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건져내 주셨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던 사울을 제거해 주셔서 근본적으로 환난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겪으며 아버지로서 더 이상 슬플 수 없는 비극을 당했으나 그는 여전히 왕위를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신다는 말씀을 응하게 하였습니다. 과연 이것이 일반적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했을 때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악한 왕 사울은 피난 다니는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유로 제사장 70명을 한꺼번에 죽일 만큼 다윗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다윗을 해칠 수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 고백한 다윗의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시고 그렇게도 무서운 모든 환난을 면케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환난을 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바울과 같이 감사드리며 날마다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24세 때에는 레판트 해전에서 팔을 다쳐 불구자가 되었으며, 28세 때에는 적국의 포로가 되어 5년이나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38세 때에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나 팔리지 않아 생활고로 세금징수원이 되었고 영수증을 잘못 발행한 죄로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고 작품을 써 명작 <돈키호테>를 완성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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