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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신자들 (2020년 8월 2일 주일낮설교)

하나님 없는 신자들

8. 2, 2020

本文:출애굽기3:7-10

說敎:崔仁根牧師

 

구약성경 출애굽기는 단순한 히브리 민족들의 해방 이전에 영적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바 교훈이 실로 엄청납니다. 영적으로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그 세상에서 우리들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때에 인도하여 내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홍해를 건너는 위대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고 철옹성 같은 여리고를 무너뜨리시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을 하신 후에 목적지인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입성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는 문자적으로는 단순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이지만 영적으로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출애굽기의 해석은 곧 인류의 구원문제와 직결 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애굽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와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넜는데 그 홍해는 바로 세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40년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이 세상에서 훈련 받고 연단 받아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죄악의 심벌이었던 여리고성에서는 마침내 예수님의 보혈이 등장하게 됩니다. 죄악에 찌들려 있었던 여리고는 멸망의 대상이 되었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그 속에서 살고 있었던 라합과 그 가족들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모두가 다 별절 당해야 하는 여리고 속에서 오직 그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 밖으로 내민 붉은 줄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세상과 차별화 되는 표징이었고 그것을 본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멸절 당하는 여리고 성의 사람들과 구별하여 구원하여 내었던 것입니다. 익히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가히 라합은 여리고로 정탐을 나왔던 이스라엘 용사들을 목숨을 걸고 숨겨주며 보호해 준 공을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내린 붉은 줄은 바로 예수님의 보혈로 이처럼 멸망당하는 성에서도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 줄을 내렸던 라합과 그 온 가족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입성한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 성도들의 마지막 종착역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출애굽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여정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사건의 한 토막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고통당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바로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신선한 변화와 거듭남의 역사를 만들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 하셨습니다

(1:6-7)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하나님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때에 온 세상에 큰 흉년이 들게 하시고 그것을 지혜로운 요셉을 통하여서 극복해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야곱의 온 식구들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셔서 이처럼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신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놀라운 진리 하나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으로 히브리 민족이 번성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고통이 닥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12-14)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축복과 고통이 동시에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놀라운 진리를 가감 없이 잘 배워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고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까지도 엄청나게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나에게 임하게 하십니까?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 살았습니까?”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사도 바울의 믿음의 가치 하나를 배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상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진리를 똑바로 깨달아서 예수님을 잘 믿는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닥치느냐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믿는 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와 같은 고통의 연단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를 우주에 내 보내려고 하여도 그 우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말로 다할 수 없는 훈련을 받습니다. 하물며 천국에 들어가려는데 그 천국에 적응하도록 훈련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당할 때마다 그 고통이 모세 때문이라고 불평하며 모세에게 끊임 없이 항의하고 원망하며 불평하였습니다.

(5:17-21)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히 바칠지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14:10-12)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축복만 사모하고 그 축복을 누릴 훈련과 연단은 싫어한 하나님 없는 신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연단을 당연하게 여겼던 진짜 신자 욥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1:2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놀라운 진리는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만 바라보지 말고 그 축복과 함께 오는 고난도 기쁘게 수용하고 연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4:10-14)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모세는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겠노라고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위의 말씀에서 밝히 보는 바와 같이 그는 한사코 할 수 없다며 사양하나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면서까지 그를 세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다수의 주의 종들은 스스로 주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그 길이 돈을 잘 벌 수 있고 출세하는 길도 아니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악하고 불순종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듯 자신의 종을 스스로 선택하시고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도 바울도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9:11-15)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가장 소중한 객관적 증거를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없는 신자들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불행하게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모세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친히 보내신 모세를 학대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습니까?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그는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행세해도 그는 하나님 없는 신자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를 통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로 대우하지 못했으니 그들은 심판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모세를 향하셔 돌을 들고 치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일찌감치 자신은 말도 잘 못하는 자격 없는 자이니 할 만한 사람을 시키시라.”고 극구 사양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 잘 하는 아론을 지목하시면서 까지 끝내 모세를 선택하시고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짜 믿음이 있었다면 모세를 하나님 대하듯 모셔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틈만 나면 모세를 핍박하고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광야에서 다 심판을 받는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의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 없는 신자들을 많이 보는지 모릅니다. 제발 주의 종들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완전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시키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탓하고 자격을 운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 받는 성도들의 객관적인 믿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서도 그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를 거역하다가 결국에는 광야에서 망하는 치명적인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늘 그와 같은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으로 삼고 미련하고 불신앙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12:1-10)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삼인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삼 인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

이 말씀에서도 우리는 모세가 설령 구스 여인을 취하는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그를 비난하는 미리암을 하나님은 심판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지 지도를 받는 피지도자들이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이렇게도 엄격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바로를 심판하셨습니다

(12:29-30)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14:2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로는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원수였습니다. 요셉이 등장하고 요셉으로 인해 애굽이 최고의 부국으로 군림 할 그 때는 요셉과 요셉의 가족들이 풍성한 축복을 받았지만 세월이 흘러 요셉이 사라지고 요셉이 누군지도 모르는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졌을 때는 축복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저주와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오늘은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낯선 이방인들이 번성하며 확장되자 바로는 그들이 부담스러워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번성하지 못하도록 모든 사내는 태어나자 말자 죽여 버렸고 그들의 종족번식을 막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역을 시켰던 것입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도록 고통의 늪에 빠져 부르짖던 그들을 하늘의 하나님은 다 보시고 다 들으시고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환난과 고통을 친히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그 고통의 근원을 찾아 뿌리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극심한 고통이 닥쳤을 때 그들의 대표는 친히 바로를 찾아가서 하소연 하였습니다.

(5:15-18)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가로되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더러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는 왕의 백성의 허물이니이다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히 바칠지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권세를 다 쥐고 있는 바로는 일언지하에 그들을 물리쳐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더 이상 찾아가 하소연 할 곳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이제는 떨어진 명령 그대로 지키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감당 할 수 없는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와 같은 극한 상황 속에 처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시고 바로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실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끝끝내 바로의 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시고 출애굽의 기적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삶의 해답과 믿음의 결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늪에 빠졌을지라도 권세가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사건들이 너무나도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만의 계략으로 몰살 직전까지 갔던 유다민족들의 구원이 그랬었고, 다윗이 사울의 질투의 그물에 걸려 3천 명의 추적 속에서 살아남은 사건이 또한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바로를 제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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