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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오신 주님! (2020년 9월 20일 주일낮설교)

나를 찾아오신 주님!

9. 20, 2020

本文:출애굽기3:1-5

說敎:崔仁根牧師

 

어린 나이에 혼자서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찾아갈 곳도 없고 외롭고 답답할 때, 현재명의 고향생각을 노래하며 고국을 그리워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해는 저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사실 외로운 이 미국 땅에 이민 와서 이처럼 처량하게 고향생각하며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부모형제를 사모하며 눈물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모두 다 경험하는 바와 같이 이 미국 땅은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정든 친구들이 없고 부모형제가 없다는 것이 한없이 우리들을 외롭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들여다보면 우리 하나님은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이 넘쳐서 이렇게 외롭고 힘든 우리들을 친히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찾아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역사로 인생을 복되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성으로 교회에만 다니지 말고 이처럼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온 몸과 영으로 체험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이렇듯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실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지치고 곤한 인생 여정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신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주님을 위해 못 할 것이 없고 세상의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신비로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 속 인물들 중에서도 이렇듯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위대한 인물로 거듭났고 역사에 길이 남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그 주님의 손을 잡고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승리하고 역사에 남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는 제대로 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함께 성경으로 돌아가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인물들을 찾아보고 또한 하나님은 왜 그들을 찾아가셨는지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망자 모세를 찾아가신 하나님-실패자를 찾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셨습니다

(3:1-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숱한 특혜를 누리며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요게벳이 유모로 들어가서 모세를 키우므로 민족의식과 신앙을 잘 훈련 받았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모세는 왕궁에서 장성한 후에 노예살이를 하며 고통을 당하는 민족을 해방시켜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어느 날 궁에서 나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애굽인 사람이 자신의 민족을 학대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순식간에 그 애굽인을 쳐 죽이고 학대 받는 동족을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다름 날 또 나가보니 이번에는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힘을 합하여도 애굽인을 대항할 수 없거늘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어제는 애굽인을 쳐 죽이더니 오늘은 또 우리를 쳐 죽이려고 하느냐?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세웠느냐?”고 반문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모세는 깨달았습니다. 애굽인을 살인한 이 사실이 이미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바로까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어린 때부터 자라났던 보금자리인 바로의 왕궁을 떠나 정처 없이 광야로 나갔습니다. 우선은 몸을 피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찾아가시고 그에게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3장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들이 알고 있는 모세가 어떻게 그렇게도 위대한 역사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매우 기초적인 지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살인을 하고 광야에서 피신이나 하고 있던 무명의 모세를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신선한 기회를 주셔서 위대한 히브리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알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4:13-14)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거절하는 모세에게 화를 내시면서까지 강력하게 지도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의 연약함을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수행할 수 없노라고 거역할지라도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시고 해야 할 일을 맡기시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공부해야 할 나이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남의 구둣방에서 직공생활을 하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소년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고 12명의 기도 동지들을 모아 일주일에 하룻밤씩 모여서 특별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비록 많은 공부는 하지 못했으나 노동하며 기도하던 그 소년은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전 세계에서 350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엄입니다. 그러한 그가 고백하였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난하여 이 세상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지만 권세와 능력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은 나를 조건 없이 찾아와 주시고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찾아오시는 우리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의 때를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배신자를 찾아가신 예수님-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역사적인 인물이 되게 하셨습 니다

(20:19-20)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얼마나 초라하게 예수님을 배신하고 돌아섰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26:55-56)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것도 한 둘이 아니라 모두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도망가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행여 예수님을 잡아간 그 유대인들이 뒤쫓아 올세라 그들은 한적한 집으로 도망가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유익을 좇아 말씀을 뒤로 하고 두려움을 피해 몸을 숨길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하나의 소망이 있는 것은 사랑의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악당들에게 붙잡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미련 없이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 가버렸던 제자들이었지만 부활하시자 말자 그들이 숨어 있는 집으로 친히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도 쓸모없는 제자들을 부활하시자 말자 이렇게도 친히 찾아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배신하고 도망 가버린 못난 제자들을 찾아가셨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연약함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고 도망 갈 수밖에 없었던 그 연약함을 예수님은 이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끝까지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의 이와 같은 모습이 오늘 우리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이해를 해 주지 못합니다. 결과만 보고 판단하고 돌아서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한 순간에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 지속해 나왔던 사랑을 던져 버리고 돌아서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었다 깨도 찾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 이처럼 배신하고 떠나버리고 도망 가버린 그런 친구, 그런 사람을 한 번이라도 따뜻한 가슴으로 찾아가서 용서하고 사랑을 회복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거의가 다 그렇게 못합니다. 자손심이 있고 체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보다 천 배 만 배 더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존심도, 체면도 다 내려놓고 친히 그 배신자들을 찾아가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예수님이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고 또 따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처럼 사랑해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친히 찾아와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복하여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지속적으로 그 예수님을 전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지속해 나갔고 나중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사랑하는 그 예수님을 위해 몸을 던져 순교하는 거룩한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여러 가지의 두려움에 직면하고 또 느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앞날을 모르는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에게는 내일이란 없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안겨 주는 것은 역시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가지는 그 영원한 세계 그 미지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시작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려고 사람들은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나 아무도 이를 피해간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의 에녹과 엘리야를 빼놓고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극한 두려움에서 떨고 있는 연약한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14:24-27)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캄캄하고 망망한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타고 있던 배가 요동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다급한 나머지 물 위로 걸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로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험과 두려움에서 순식간에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주님만 찾아오시면 만사형통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주님과 함께 소망 속에서 승리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인마 사울을 찾아가신 예수님-살인마를 최고의 사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9:1-5)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 바울이 전무후무한 위대한 사도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위대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불행하게도 자기 의에 빠지고 스스로 잘난 교만에 사로잡혀 예수님 믿는 귀한 사람들을 어마무지하게 잡아 죽이는 살인마였습니다.

(7:57-58)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 바울이 청년이었을 때 그는 무고한 스데반집사를 돌로 쳐 죽이고 증인들의 두목이 되어 스데반집사의 순교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위에서 읽어보신 바와 같이 스스로 살기(殺氣)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가 그곳에서도 예수님 믿는 신자들을 잡으려고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이 어리석은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거꾸러뜨리시고 인생이 스스로 잘난 것이 아님을 체험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광명하신 예수님을 보자말자 장님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권능입니다. 우리들을 보게도 하시고 보지 못하게도 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들의 눈을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내 눈이고 늘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그럴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에 사울과 같이 눈을 멀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눈을 지으신 이가 하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우리는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이 놀라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너무 자기중심으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자기 오만에 빠져 사는 사울에게 나타나셨겠습니까? 인생은 스스로 잘나서 악을 행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들을 순식간에 항거불능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게 하시고 일거리를 주시고 섬길 좋은 교회를 주셨을 때 아낌없이 충성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내일을 아는 이는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옛날 런던에서 양품점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빼앗은 후 그 일가를 몰살하고 도망친 남자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진범이 아닌 자를 체포하여 재판에 넘겨 결국 사형시켰습니다. 진범은 미국으로 도망가 20년간 거기서 여유 있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젠 안심이겠지"하고 그는 신분을 감추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런던의 일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을 때, 호각 소리가 나며 동시에 쿵쿵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습니다. "여보시오, 저 놈은 도적이니까 붙잡으세요." 경찰관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전신은 벌벌 떨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듯 한 순간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결국 자수하고 말았습니다. 여유롭게 아무 것도 않고 태평하게 보냈던 20년의 생활,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불안에 찬 어쩔 수 없는 생활이었지 진정한 자유로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똑 같은 경우였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찾아가심으로 인해 그는 사도라는 엄청난 사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평생에 가장 감사하였던 것은 자신과 같은 죄인에게 사도라는 놀라운 직분을 주심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딤전1:12-17)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살인마를 찾아가시고 성자 사도 바울로 만들어 쓰신 하나님의 능력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칼로 사람만 죽이지 않았지 다투고 미워하고 원수 맺으며 살아온 우리들의 지난 삶은 사도 바울과 다를 바 없는 살인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형제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친히 찾아오시고 구원하여 천국 백성 삼아주신 것도 감사한데 천사도 흠모할 고귀한 직분을 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죽도록 충성하고 직분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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