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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으라! (2020년 10월 18일 주일낮설교)

나를 믿으라!

10. 18, 2020

:요한14:1-6

說敎:崔仁根牧師

 

마틴 루터가 로마에 도착하여 교회의 부패상을 목격했을 때 크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완전히 무흠한 교회로 믿었던 그의 신앙이 무섭게 동요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죄인이며 반역자로 생각하여 성당으로 가서 스칼라 상끗타(신성한 계단)를 올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뇌리 속에서 성경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묵상하고 연구한 후 가톨릭교회와 공식적인 절연을 선언하고 의신칭의의 교리를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인은 행함이나 고해성사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16세기에 역사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오직 믿음에서 출발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언과 같이 남긴 말씀에서 그 첫 마디로 나를 믿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다리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심장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 귀하지만 굳이 강조한다면 다리보다는 심장이 더 귀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서 모든 것이 다 귀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11:6). 뿐만 아니라 믿음이 없으면 천국으로 들어가는 기본 관문인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신앙생활의 심장과도 같이 영적인 삶에 가장 소중한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지자 하박국은 단도직입적으로 외쳤습니다.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말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도 하박국의 이와 같은 놀라운 선언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통해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한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는 선언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마지막 때에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우리 주님의 명령을 가슴으로 받고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의 나를 믿으라!”는 이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길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친히 선포해 두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십니다. 인생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황당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일은 없습니다.

지난 925일 강원도 삼척에서 70대 남성이 버섯을 따러 산에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10m 낭떠러지에 떨어져 숨진 것을 이튿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그 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머나 먼 인생 여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길을 잃은 불쌍한 인생들은 인생을 포기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자살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도 바울도 스스로는 가장 잘난 척 하던 사람이었지만 실제로는 인생의 참 길을 잃고 방황하던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사람을 돌로 쳐 죽이고서도 그것이 얼마나 악한 죄인 줄도 모르고 증인의 괴수가 되었겠습니까? 그러하던 그가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 제대로 된 길을 찾고 사도가 되었으니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길 중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사도 바울과 같이 스스로 잘나서 돈과 권세를 자랑하며 진정한 길을 잃고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 없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도 결국은 소중한 천국 길을 잃게 하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어리석은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던 서입니다.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신앙생활 중에서 믿어야 할 숱한 진리들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길이 되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진리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이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의 반대 개념은 거짓과 가짜입니다. 사실 예수님 없는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신기루와 같은 어리석고 의미 없는 거짓이요 가짜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의 생애를 들여다 보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온갖 금은보화와 권세를 안고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살았던 전무후무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인생 말련에 무엇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1:1-2)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길이 없는 인생의 그 모든 부귀영화가 제아무리 넘쳐나도 결국은 인생을 이처럼 허무하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가장 의미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가장 강력한 소망이 되시는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런데도 빌라도는 세상에서 엄청난 권세를 잡았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을 몰라 역사에서 가장 비참하고 저주 받은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18:37-38)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그가 만약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해 오늘 우리들처럼 바로 알았더라면 그렇게 저주 받은 생을 마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후 오늘 날까지 예배 시간마다 전 세계의 성도들이 신앙고백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라는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모르면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평안을 누리는 것이 지상 최고의 축복인 것을 아는 사람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안은 진정한 자유함에서 오고 그 진정한 자유는 바로 진리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와 같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또한 바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을 떠나 하늘나라로 올라가시기 전에 이처럼 나를 믿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진리만이 우리들의 인생을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소중한 진리를 바로 깨닫고 그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로 믿고 섬기는 진짜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축복을 대를 이어 누리시는 진정한 행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생명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의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임산부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배속에 있을 동안에 태반에 쌓여 있고 그 태반은 산모인 엄마에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엄마로부터 영양과 모든 환경 여건을 통해 성격이 형성되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 세상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배꼽입니다. 이 배꼽은 엄마로부터 오는 모든 생명의 원천을 공급 받은 흔적입니다. 여기에서 이 아이에게 생명이라는 것은 곧 엄마인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엄마가 없으면 아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예수님께서 지금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네 생명이 됨을 믿으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순간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들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다음 장인 요한복음 15장에서 아주 세세하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15:1-5)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생명이시라는 이 놀라운 진리를 너무 크고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듯 단순하게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만 우리들의 존재가 의미 있다는 정도로 가슴에 새겨 두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가장 소중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또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같은 가치관을 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같은 가치관이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우리들의 허망한 생명을 건져내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을 만큼 우리 생명을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 해의 표어처럼 가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영국 웨일즈 지방의 어느 외딴 농장에 병에 걸려 몹시 위독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홀어머니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며 8km나 되는 먼 길을 달려 의사를 데리러 갔으나, 의사는 달갑지 않은 듯이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는 행색이 초라한 아이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과연 이 여자한테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을까?"하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의사는 진료비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생명을 구한다 해도 그 아이는 자라서 가난한 노동자가 될 것이 뻔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다 밖에는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사로서의 양심과 의무 때문에 할 수 없이 어린 생명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그 어머니와 함께 농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로이드 죠지(Lloyed George)-의사가 고친 바로 그 아이-가 영국의 재무부 장관이 되었을 때 이미 늙어 버린 의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생명을 구하면서 내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보호하는 책임은 주셨을망정 누군가의 생명이 보존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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