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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2020년 12월 6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사랑

12. 6, 2020

:요한복음3:16

說敎:崔仁根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있을 때, 기억도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들을 향해서 호의를 가지시고 우리들을 자녀로 받아 주셨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과 그의 아버지의 기사를 신문에 보았습니다. 이 아들은 자기를 배신한 애인과, 애인과 사귀고 있는 남자를 죽였습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은 이 아들을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정죄하고 욕했지만 그러나 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감옥에 방문하여 기도해주고,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두려워하지 않도록 정성껏 돌보아주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은 모든 사람이 저주하는 살인자 흉악법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아들입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내 아들은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형집행을 받는 그날까지 매주 2번씩 찾아가주고, 그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옆에서 지켜 주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도 못난 놈을 사랑합니까. 왜 나같이 죄 많고 못난 놈을 사랑하십니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니라. 너는 내 모든 것이니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사랑입니다!

(01:0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완벽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한심한 사람이라도, 아들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 품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도 하나님의 잃어버린 아들로 생각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짧지만 굵게 정리해 놓은 성경 중의 성경말씀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단 한 마디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수 천 수 만 가지의 사랑의 정의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랑은 주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과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복된 성탄의 계절을 맞아 하나님의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생각하며 은혜를 사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 귀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정의는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랑하게 되면 아까운 것이 없어지고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상대의 모습에 행복해 합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우리 인간들도 이렇거늘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왜 우리들은 예수님이 없으면 안 될 만큼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아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며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혼자 독처하는 것을 보시고 외로워 보이고 보기가 안 좋아 함께 할 여자를 친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바로 그 여자가 남편인 아담까지도 넘어지도록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간의 허망한 모습을 보시고 결국은 그들을 심판하셨고 그 결과 죽어야 하는 비참한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으며 무상으로 받았던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23-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것이 하나님을 배신한 자들이 받은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면 죽습니다. 육신도 죽고 영혼도 죽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성경에 나타나는 죽음 중에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1:16-18)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배신한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배만 위해 살아온 우리들은 이와 같은 형벌을 받아야만 했던 버림받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 밖에는 이와 같은 형벌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처럼 타락한 우리들을 독생자 예수님을 주실 만큼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늘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토록 받아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것을 감사하며 화답하여 예배드리는 자가 바로 믿음 있는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나 죽으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며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전도자 A. G. Blackburn 목사에게 7살의 어린 소녀가 죽어가면서 목사님을 간절히 찾고 있으니 꼭 와달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얼른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어린 한 소녀가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야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꼭 목사님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너는 지금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느냐?”

, 목사님, 저는 이제 죽을 거예요.”

?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단 말이냐?”

, 저는 죽을 거예요.”

?”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줄곧 우리 아빠를 교회로 인도하려고 했는데 아빠는 저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므로 아빠는 도저히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죽으면 목사님께서 저의 장례식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실 것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 아빠가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우리 아빠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저는 죽어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 소녀의 바램과 같이 그녀의 아버지는 이와 같은 목사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딸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신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완악한 우리 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와 같은 사랑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404(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사도 바로 이와 같은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늘을 두루마기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지극한 사랑을 순간이라도 잊지 말고 화답하며 섬기며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죄로 영원히 죽어야 할 못난 우리들을 독생자 예수님을 주실 만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요 축복이라고 말입니다. 무자하던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이삭과 야곱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신 이도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성경이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인용해 드린 시편 127:3의 말씀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분명하게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녀들은 이뻐하면서도 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부모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귀하게 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 많지만 그 무엇으로 자식들과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도 소중한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주셨고 키워주셨고 또한 잘 되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절로 잘 크는 자식이란 없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그토록 비참하게 하나님과 부모에게 못된 짓을 다 해도 그 속에서 사무엘이 흠 없이 자라는 것을 보면 역시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키워주시고 복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과 절친으로 성실하고 진실하였으나 그 아비 사울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 말씀을 거역함으로 비참하게 젊은 날에 죽는 것을 보아도 하나님 앞에 선 자식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112:1-3)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128:3-4)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는 말씀들은 한결 같이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항상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식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고 사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은 자식들 때문에 말년이 고통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오래곤에서 50대의 아들이 80대의 어머니를 죽인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자식들이 잘 되고 형통하여 인생 말년이 행복하려면 부모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과 축복으로 부모와 자식들에게 복 주시는 이심을 믿고 모든 것을 다 바쳐 그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잘 되고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재물을 주셨습니다

(8:17-19)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걱정하시는 일이 하나 있음을 위의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잘 나서 잘 사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이에 관한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하지만 오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날나고 능력이 있어서 많은 재산을 누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없는 자는 무능한 자로 무시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경계하시고 싫어하시는 그 모양으로 살아가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잘 되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람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그 사랑에 감동하여 그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믿음의 삶을 지속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고 인격이 제대로 형성 되어 있지 않으면 재물을 가졌다고 오만하고 교만하여 부모와 스승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까지도 배신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미리 엄중히 경고해 두신 것입니다.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가슴에 새겨두고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잘 되어도 겸손하고 잘못 되어도 낙심하지 않으며 조용히 하나님의 뜻과 때를 기다리는 진실한 신자들로 거듭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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