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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침묵 (2021년 4월 11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침묵

4. 11, 2021

:무엘상28:3-10

說敎:崔仁根牧師

 

잉거솔(Ingersoll)이라는 독일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든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무신론 강연에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절정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풀더니 하나님에 대한 도전장을 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에게 5분이라는 시간을 주겠소. 나는 5분 동안 당신을 저주할 것이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저주하고 형벌을 내리시오.” 그리고 그는 5분 동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분이 지났는데도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이만하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때 그의 강연장 뒤편에 있던 한 노인이 서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감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한 그리스도인이오. 내가 감히 당신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오늘 당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단지 당신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명했을 뿐이지요. 내가 믿고 경험한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떠나서 거스를 때 책망하시고 때로는 징계까지 하셨던 분이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서 침묵하셨소. 그분의 침묵은 곧 당신이 그의 자녀가 아니라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침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노신사의 그 말은 백번 옳고 바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잘난 인간이 없다 한다고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그 스스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버림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고귀한 말씀을 남겨두었습니다.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여러 방면으로 그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를 공부하면서 우리 하나님께 한 발자국 더 다가서는 은총을 누려보려고 합니다. 복된 말씀에 귀 기울이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빈 가슴을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불순종 하는 자들에게 침묵하십니다

(삼상28:4-6)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에 대한 가장 분명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환경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의 두려움이 닥쳐 올 때는 사람이든 하나님이시든 찾게 되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짖으면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적군이 쳐들어와 큰 두려움에 빠졌을 때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모양으로든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삼상28:4-6)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조금이라도 그 두려움과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점쟁이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삼상28:7-9)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는 사울이 가로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게 또 너무나도 웃기는 장면인데 사울은 왕이 되어 친히 그와 같이 신접하거나 무당 짓을 하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신접한 자들을 잡아 죽여 놓고 이제 와서는 자신이 한 짓이 있으니 자신이 사울 왕이 아닌 것처럼 변장을 하고 그 신접한 자를 찾아갔으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 인간이란 게 이렇게도 비참하고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 그 자체가 바로 지옥과 같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30: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과연 지금 블레셋 군대 앞에서 떨고 있는 사울의 모습이 바로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적군을 코앞에 공격해 오는데 의지하고 도와 주셔야 할 하나님은 가만히 침묵하고 계시니 사울의 마음이 그 얼마나 위급하고 불안하였겠습니까? 오죽하면 자신이 잡아 죽였던 그런 신접한 자를 찾아가 그 앞에서 왕이 아닌 척 변장하고 굽실거리며 부탁을 다 하였을까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을 이처럼 비참하게 버려두시고 침묵하고만 계셨을까요?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상15:24-27)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아주 명확하게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왕을 버려 더 이상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도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결단하여야 하겠습니다. 평생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결국 사울왕은 그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고 자신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과 군사들 또한 대패하여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서시고 침묵하시면 우리 인생은 그 날로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을 성경은 사울왕을 통하여서 이렇게도 명확하게 증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 하는 자들에게 침묵하십니다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10-14)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우리는 사무엘상 3장에서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늙을 때까지 제사장으로 사용하셨던 엘리 보다는 아직도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31절에서 설명해 두셨습니다. 엘리제사장 때에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말씀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은 엘리도 그 아들들도 다 저주거리가 되고 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 어린 사무엘에게 친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생을 통해 하나님을 섬겼던 고귀한 직분자 엘리를 왜 하나님은 이렇게도 독하게 돌아섰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 때문이었습니다.

(삼상2:22-25)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참으로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시려면 결코 옳은 길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제고집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발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옳은 가르침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복이 되겠지만 흡니와 비느하스처럼 제고집대로 하고 깨닫고 돌아오지 못하면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던 것처럼 악한 흡니와 비느하스의 마음을 고집불통이 되게 하셨음은 결국 그들을 망하게 하시려고 하심이라는 사실은 실로 두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집쟁이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의 최후는 비참한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더 이상 죽이기로 결단하신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으며 하나님의 때가 되매 그들을 한결 같이 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삼상4:16-18)

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 인간의 모든 만사가 이렇게도 비참하게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흥망성쇠를 통치하시는 인생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침묵하십니다

(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구약에서 두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침묵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이 모든 심판을 상징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의 침묵은 더 풍성한 축복을 주시기 위한 연단이라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말씀 중에 특별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셔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천지창조도 하셨던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왜 나를 버리셨느냐?”고 울부짖으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과연 어떠하셨겠습니까? 당장에라도 그 악당들을 바람처럼 쓸어버리시고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그 모진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하실 수가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끝내 독생자의 외마디 부르짖음을 외면하시고 끝까지 못 들으신 척 침묵하셨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께도 예수님께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그 고통의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사흘 뒤에 십자가에서 끝내 목숨이 끊어져 무덤으로 내려가신 독생자 예수님을 도로 살려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전화위복의 기적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바로 우리들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침묵만 하시는 무관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픈 만큼 보상하시고 희생한 만큼 채워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묵묵히 예수님처럼 순종하고 복종하며 맡기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온 몸으로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대에 보상 받지 못한다면 대를 이어 자손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은 더 풍성하고 더 넘치게 채워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들은 그 마음이 너무 조급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급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기다리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만물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참으로 복된 계절을 맞았습니다. 우리들의 영혼도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침묵에 관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결코 그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우리들의 작은 신음에도 달려오시는 그런 하나님이 되실 수 있도록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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