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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2021년 4월 25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말씀

4. 25, 2021

:디모데후3:14-17

說敎:崔仁根牧師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전설이었던 김익두 목사는 원래 황해도 깡패요 그 당시 소도둑으로 소문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고 하는 행패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러한 망나니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갑자기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 되어 전도하러 다니니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참으로 의아해하며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자네는 어떻게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이런 희한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나?” 하고 말입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는 천역덕스럽게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나는 요즘 약 두 첩씩을 매일 먹고 있다네.”라고 말입니다. “뭐야? 약을 두 첩씩 매일 먹고 있다고?” “그렇다네! 이 약을 먹으니 술과 담배와 향락보다 더 즐겁고 좋은 엄청난 축복이 쏟아지네 그려.” 그러자 친구들이 무척이나 궁금해 하며 우리에게도 그 약 좀 가르쳐 주게나.” 하며 졸라댔습니다. 그러자 김익두는 시치미를 뚝 떼고 정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주지. 그 두 첩의 약이란 바로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일세. 이 약만 먹으면 몸과 마음의 어떤 병이라도 모두 고칠 수 있지.” 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친구들에게 정성스레 신약과 구약을 먹여 그들의 몸과 정신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이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익두의 이 말은 사실입니다. 성경을 먹으면 그 어떤 사람도 변화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기 때문입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에는 수십 년씩 다니면서도 이와 같은 성경의 능력을 모르고 있는 교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다니면서 그 성경은 읽거나 묵상하거나 기대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의 능력을 분명하게 기록하여 두시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 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말입니다. 과연 지금은 말세라 교인들이 세상풍조와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세우고 듣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교회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사라져가고 인간의 귀만 즐겁게 하는 코미디 같은 설교만 넘쳐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말씀이 무엇인지,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인지에 관한 진리부터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그래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진리부터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열고 말씀을 들으시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배움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치를 모르면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만들어졌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벽을 맞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뜻이 무엇인지 매우 아리송합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헬라원문을 보았더니 θεόπνευστος(데오프뉴스토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라는 말 θεός(데오스)와 숨을 쉰다는 말 πνείν(프네인)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신다는 뜻으로 영어표현은 God-breathed가 되겠습니다.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먼저 사람을 만드시고 마지막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 있는 생령이 되게 하셨음을 상기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실 때도 생기를 불어넣으시듯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완벽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이 다른 역본들에서는 어떻게 번역이 되어 있는지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All Scripture is God-breathed(NIV)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KJV)

All Scripture is inspired by God(TEV, PME, RSV, JB) [TEV=Today's English Version/PME=Phillips Modern English/RSV=Revised Standard Version]

이렇듯 거의 대부분의 번역된 성경들은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졌다.”는 우리 말 성경이 가장 정확하게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렇지만 하나님의 감동이 어떻게 성경을 기록하는데 역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신학적으로 그래서 성경의 영감설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지고 신학대학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그 내용이 중요함으로 강도사 고시나 목사 고시에 꼭 출제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계적 영감설

성경기자의 정신활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수동적 자세로 성령께서 받아쓰도록 불러주시는 것만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은 필사자로서 통로에 불과했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각 권의 기자에 따라 독특한 문체 및 개인적인 다양한 경험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극단적 인 견해로 우리들이 수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역동적 영감설

하나님께서 성경기자에게 영감을 불어 주기는 했으나 그것은 심적, 영적 활동에 대한 고무(힘을 내도록 격려하여 용기를 북돋우는)에 불과할 뿐 성경 기록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이 주장은 하나님의 영에 고무된 성경 기자들이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기존의 다양한 자료들을 배경으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성경은 어느 정도 권위는 있으나 반드시 정확무오하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견해를 피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주장은 성경의 오류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성경기록에 대한 특별영감의 영역을 인정치 않으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유기적 영감설

성령께서 성경 기자들을 감동시켜 그들 각 개인의 성격, 재능, 은사, 교양, 문체 등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성경 기록에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는 주장입니다. 성경 기록 당시 성령께서는 성경기자를 감동시켜 그들의 자질이 죄의 영향 하에 들지 않도록 주권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기억을 새롭게 하셨으며, 심지어 용어 하나의 선택에 이르기까지도 지도하시고 간섭하셨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 기자 개인의 문체적, 시대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것들이 모두 성령의 감독 하에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오류에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견해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유기적 영감론을 성경 영감의 성질에 대한 정설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단 하나의 오류나 잘못이 없는 완벽한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영감을 주시고 또한 간섭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신묘막측한 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결코 세상에 있는 책들과 동일시 될 수 없으며 너무나도 신비로운 책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아는 성도라면 항상 이렇게도 신비로운 감동으로 기록된 이 성경을 읽고 들으며 은혜를 받고 그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구원의 지름길인 믿음을 만들어 줍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고 단언하였던 것입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백성들을 책망하실 때는 항상 이와 같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마지막 때에는 세상에서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을 것을 예언하시고 친히 탄식하시기도 하셨습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실 오늘날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만나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그 예수님을 섬기며 그 예수님 때문에 삶의 낙을 누리고 미래에 꿈을 가지는 그런 성도들을 만나보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탄식하시고 믿음 없음을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믿음이 이렇게도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은 우리들이 구원 받아 천국 가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을 信者(신자)라고 부릅니다. 믿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聖徒(성도)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속에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신자도 아니고 성도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인들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의 위로나 받고 예배드리고 예물 드리고 기도하여서 이 땅에서 잘 되고 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절간이나 찾아가는 종교생활이지 결코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돈보다 더 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소중한 믿음을 만들어 주는 필수적인 방법이 성경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이 마지막 때에 이와 같이 성경을 읽고 듣는 사람들이 복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참으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듣는데 어떻게 믿음이 만들어지고 축복이 임하게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에가 뽕잎을 먹고 실크를 만들어 내듯이 오늘 우리들도 성경 말씀이 그렇다 함으로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

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읽고 듣고 묵상하여 삶에 실천하는 자들을 친히 복이 있는 자들이라 인정하시고 삶을 형통하게 하시는 놀라운 축복으로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축복을 사모하여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므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욕심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세상과 재물로 향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베드로와 같이 돌아서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기 때문에 그대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라함을 그 샘플로 기록해 두고 오늘 우리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11:8-1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이와 같은 성경의 권위와 축복을 바로 알고 주야로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축복을 받아 짧은 인생을 누구보다도 유복하게 잘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평소 부모의 말이라곤 전혀 듣지 않던 말썽꾸러기 아들이 세월이 흘러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평소 행동거지를 잘 아는 그의 어머니인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침 입대 일이 되어 떠나게 된 자리에서 이 말썽꾸러기 아들의 어머니는 조그마한 책 한권을 주면서 당부하는 말이 "얘야! 이 책은 보통 책하고는 다른 책이니 너의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틈틈이 읽도록 하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해서 아들은 전쟁터에서도 자기 어머니가 준 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어머님을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무사히 훈련 과정을 마치고 그는 월남전에 파병이 되었습니다. 첫 전투에 참전한 이 아들은 그만 적이 쏜 총탄에 가슴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고 누워 있는데 한참 있어도 통증이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해서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던 그는 총알이 박힌 조그만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님이 주셨던 책임을 기억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책은 바로 포켓용 성경이었던 것입니다. 이 아들은 이때부터 틈틈이 성경을 읽게 되었고 마침내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후일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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