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2021년 6월 20일 주일낮설교)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0 June 2021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304
우리 아버지!
아저지주일
6. 20, 2021
本文:마태복음6:9-13
說敎:崔仁根牧師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어떤 성도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저 말씀은 나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다.'고 생각하며 풍성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럴 때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섶을 태우는 불같고 바위를 치는 쇠방망이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성도는 말씀을 읽을 때 깊은 깨달음을 얻어 길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성도들에게는 평소에 무심코 지나던 말씀이 어느 날 갑자기 뜨거워지며 깨달아져 인생의 다른 길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손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조지 뮬러 목사는 독일 사람으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 공부하러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뮬러 목사는 평소 많은 고아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며 공부했는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편68:5)는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뮬러 목사의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뮬러 목사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뮬러 목사는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시라면 나는 고아들을 돌보는 총무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고아를 돌보는 사명을 주셨으니 길도 열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 고아원을 세우는 길을 얻어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이와 같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심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2021년도 아버지 주일입니다. 이 땅에 있는 아버지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만나는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자녀된 우리들의 삶을 오늘 이 순간까지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진정한 자녀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아버지’에 관한 진리를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란 말은 자녀가 여럿이란 뜻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이렇듯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앙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불러야 되겠는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제 우리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축복입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그렇게도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그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신 것은 오늘 우리 성도들이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자녀들은 그렇게도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로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알고 형제 되고 자매 된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귀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과연 이 땅에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 불효하게 되고 근심을 안겨드리는 못난 자녀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호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같은 맥락에서 동시에 기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한 형제와 자매가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고 함께 마음을 모아 부모님을 공경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방법이 바로 자녀들끼리 서로 사랑하과 이웃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우애 있게 살아가고 이웃들에게 선을 베풀어 칭찬을 받으면 그것이 곧 부모님께 가장 기쁜 일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성도가 되고 자녀가 된 마땅한 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김영삼장로님이 계셨던 상도동에 이화약국이 있습니다. 약사들이 수십 명이나 되는 매우 큰 약국입니다. 그 약국의 사장이었던 권사님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 분인지 매일 첫 수입은 따로 통을 만들어 보관하였다가 주일에 하나님께 갖다 바쳤습니다. 수십 명의 약사들은 한결 같이 매일 첫 수입은 그 통에 담아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목사님은 말할 것도 없고 말단 전도사까지, 심지어는 사찰까지 일일이 챙겼는데 아무도 모르게 냉장고를 점검해 보고 필요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와서 채워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태어났던 고향의 작은 마을 사람들을 친 형제와 같이 섬겨 그 마을에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베풀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고향 선산에다 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사랑을 받았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님을 모시듯이 묘를 날마다 보살피고 묘에 이르는 산길을 돌계단을 만들어 깨끗하게 단장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묘지 옆에다 두 마리의 양을 만들어 장식을 해 두고 아름다운 비석도 세워두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권사님을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그 얼마나 흐뭇하고 기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아 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이 돈을 벌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란 우리들만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아버지’도 아니고 ‘나의 아버지’도 아닌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는 누구나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는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 종은 오늘 말씀의 제목을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날에 너무 부정적인 것 같아서 다시 고쳐 오늘 본문에 있는 그대로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대는 참으로 불행한 마지막 때입니다. 문자 그대로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없어도 올바로 자라기 어려운데 하늘의 아버지가 없다면 얼마나 그 인생이 허무하겠습니까? 부모님이 없어도, 하나님이 없어도 오로지 돈만 있으면 인생을 잘 살아가고 행복할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으로 이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직접 경험해보면서 알 수 있고 간접적인 경험으로 이웃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사55:8-12)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와 같은 말씀과 같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들의 지식이나 경험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의 생각이나 지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길을 아버지와 같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고귀한 하늘 아버지가 없으니 어떻게 바른 길과 옳은 길을 달려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도 길을 잃고 해매이게 되는데 어떻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렇게 옳은 길,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우리 아버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으니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이처럼 정성을 다하고 예물을 준비하여 하늘 아버지께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아버지”란 우리들을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사49:14-19)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 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녀로 삼으신 이상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한 책임을 지십니다. 그래서 이처럼 강력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의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셔도 오늘 우리들이 믿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천국 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으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어느 정도 캐어하시는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12:22-30)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들의 아주 작은 것 까지도 캐어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은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와 같은 사실만 확실히 깨닫고 믿어도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돈 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롬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는 말씀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믿음에서 멀어진 너무나도 많은 교인들이 육신적인 생각에 갇혀서 진정한 믿음의 세계를 내다보지 못한 채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에 눌려서 그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 같은 가치관으로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교인들을 내려다보실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어린 아이를 한 번 보십시오. 저들이 먹고 살아갈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가 자기들을 보살피고 캐어해 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돈 때문에 걱정하며 배우자 때문에 신경 쓰고 있습니까?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까지 선포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순하게 어린 아이와 같이 우리 아버지를 믿고 그 품에서 자유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복된 아버지 주일에 이와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남은 삶을 최고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