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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바친 사람들 (2021년 6월 27일 주일낮설교)

목숨을 바친 사람들

 

6. 27, 2021

:다니엘3:8-27

說敎:崔仁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밑에서 남동생과 함께 힘들게 살아가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당시 아버지들과 달리 매우 다정다감하였고 비록 엄마는 없었지만 엄마 몫까지 해 주시는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가셨다가 괴한을 만나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자 천의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 동생과 함께 단칸방을 얻어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며 참으로 힘들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살아가면서 자그만 사업을 남편이랑 함께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사업이 망하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만큼 빚더미에 올라앉고 말았습니다. 늦게 결혼한 연고로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이들은 이제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어려움은 더욱 가중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아버지의 존함을 대면서 그 분의 딸이 맞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낯선 남자는 자기 또래의 남자였습니다. 그분은 며칠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유언장에 당신 아버지의 딸을 찾아서 3억 원을 건네주라고 되어 있어서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인즉슨 오래 전 아버지가 알고 지냈던 그 남자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며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당시에는 엄청 큰돈이었던 천만 원을 빌려주어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소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하여 사업이 잘 되고 그 돈을 갚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러다가 자신이 중병에 걸려 차일피일하다가 갚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천만 원을 빌렸지만 이자와, 죽을 사람을 살려 준 고마움을 합쳐서 3억 원을 갚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이렇게 돈을 들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결혼 할 때 아버지의 친구라는 이름으로 천만 원의 축의금을 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아버지가 돈을 빌려드렸던 그 분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이 난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들고 동생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이것은 아버지의 돈이니 너와 내가 반반씩 갖는 게 옳다고 하면서 15천을 주니 동생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나는 지금 이런 돈이 없어도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으니 누나가 망한 사업을 일으키고 나중에 사업이 잘 되면 그때 달라고 하면서 누나에게 도로 돌려주어서 빚을 갚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귀한 시간에 장황하게 이 종이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돈은 우리들이 가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재산인데 이것을 순간순간 값지게 사용하여도 대를 이어가며 복을 누리는 것을 설명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돈보다 더 귀한 생명을 우리는 어떻게 유지하며 살아야 더욱 큰 축복을 우리들도 누리고 자손들도 누릴 수 있겠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워보려고 합니다. 사실 돈이든 생명이든 결국은 우리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분명한 말씀을 성경에 남겨 두셨습니다.

(6:20-21)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제대로 복을 누리며 멋지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부디 듣고 순종하여 제대로 된 복된 삶을 지속해 가시기 바랍니다.

이웃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4:15-16)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아하수에로 왕의 2인자였던 하만이 사사로운 개인감정으로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들을 몰살시키려고 간계를 꾸며 유다 민족을 다 죽일 수 있도록 왕의 제가를 얻어 놓은 위기의 순간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내용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남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내 놓을 사람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달랐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자신의 이웃들과 민족을 위해 기꺼이 내 놓겠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성경의 주인공이 되었고 성경책의 제목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천 년 전에 그녀는 죽었으나 오늘날까지 그는 성경 속에서 살아 있고 성도들의 가슴 속에서 또한 살아 있는 가장 복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배워야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할 목숨인데 그 목숨을 어떻게 하여야 가장 보람 있고 값지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 배워야 하고 또한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런 소중한 목숨을 꾸역꾸역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초라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우리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돈이나 생명은 결코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다시 취하시는 것입니다.

(12:19-21)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재물도 내놓지 못하는데 어떻게 목숨을 내놓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깊은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값지고 아름답게 사용하여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할 때면 늘 두 사람의 인물이 생각납니다. 한 사람은 중국의 유명 배우 주윤발씨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유명 가수인 김장훈씨입니다. 이 두 사람은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전 재산을 불쌍한 이웃들을 도우려고 다 내놓았던 인물들입니다. 주윤발씨는 56억 홍콩달러(한국 돈으로는 8,100) 전 재산을 내 놓았고 김장훈씨는 지금까지 약 300억 원의 돈을 내 놓았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인터넷에서 한국의 기부 왕이라고 치면 김장훈씨가 뜹니다. 그만큼 그는 문자 그대로 기부 왕으로 이웃을 섬기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언젠가는 다 두고 떠나야 할 사람들인데 재물도 생명도 주님과 이웃 사랑을 위해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사용하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진정한 멋쟁이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지난 612(현지 시각) 미국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시의 음식점 스텀블 인 바 앤 그릴에서 한 손님이 팁 16000달러(1,820만원)를 남겨 식당 직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약 한 달 전부터 이따금씩 이 식당에 들렀는데 이 날도 찾아 와 37.93의 식사를 마친 뒤 16,00불의 팁을 놓고 갔던 것입니다. 주인이 그 분을 알아 본 결과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사람인데 펜데믹으로 어려운 때에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서로 나누어 가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비롯한 8명의 직원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이 돈을 서로 나누어 가지며 큰 감사를 느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성경인물들 가운데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도 없습니다. 평생토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쫓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종래는 그 복음을 위해 거룩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오로지 그는 복음 하나를 위해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그렇게 살도록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9:10-15)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여기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두고 사람이 보는 눈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비록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사도 바울을 한갓 살인마로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택하신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그 눈으로 보고 그 귀로 듣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쓰시면 감사드리며 함께 손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결코 밥이나 먹고 돈이나 벌면서 자식들이나 키우며 살라고 피 흘려 구원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각양 고귀한 축복을 주시는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두 말로 변명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던져 주셨던 것입니다.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인생의 놀라운 열매를 맺힐 수 있는 복된 삶의 길을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명령으로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복 주시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무조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3:15-18)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아야 이와 같이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왕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멧느고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시키시는 일이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고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어찌 이렇게 당당하게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바로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하나님을 얼마나 섬겼으면 이렇게도 당당하게 외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비결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한 목숨이라도 내어 놓고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이 되었을 때 그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믿음의 자녀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친히 임재하시고 건져주시기 때문입니다.

(3:24-26)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 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내시어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주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보호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43:1-3)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담대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그대로 우리 삶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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