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게 하소서! (2021년 8월 22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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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2 August 2021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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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되게 하소서!
8. 22, 2021
本文:요한복음17:6-11
說敎:崔仁根牧師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무장 반군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 참혹한 폭정과 인권 유린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고 거리에 나선 여성이 탈레반에 총살을 당했다. 아프간을 떠나려 공항 근처에서 대기하던 여성과 아이들은 채찍질에 쓰러졌다. 탈레반이 아프간 국기를 든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 3명이 사망했다. 탈레반은 과거 그들에게 맞섰던 아프간의 한 종족 지도자 석상도 부쉈다. 철군을 밀어붙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의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비극은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현지 시간)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이날 아프간 북동부 타하르주의 주도 탈로칸에서는 한 여성이 부르카를 안 입고 거리에 나왔다가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남색 바탕에 흰색, 분홍색 꽃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쓰러진 여성 주변엔 피가 흥건했다. 부모와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시신을 부둥켜안았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가혹하게 해석하고 적용해 과거에도 부르카를 안 입은 여성을 탄압했다.
17일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주변에서도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공항 주변에 탈레반 군인들이 나타났다. 이곳엔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탈레반은 갑자기 총, 채찍, 칼, 곤봉 등을 꺼내 들고 여성과 어린이 등 시민들을 폭행했다. 채찍질을 한 뒤에는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총도 쐈다. 총에 맞은 사상자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 사진에는 당시 참상이 담겨 있었다. 한 성인 남성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축 늘어진 채 품에 안긴 아들은 초등학생 정도의 몸집이었다. 다른 사진에는 한 여성이 의식을 잃고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검은색 부르카 차림이었다. 옆에는 한 소년이 옷에 피가 묻은 채 울고 있었다. 이 여성의 생존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채찍질당하는 모습을 보며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 남성의 모습도 보였다. 영국 더 선은 “1시간 만에 최소 6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아프간의 새로운 공포 현실”이라고 전했다.
탈레반이 15일 아프간을 점령하기에 앞서 저질렀던 만행들도 알려졌다. 18일 미국 CNN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아프간 북부 작은 마을에서 한 여성의 집이 탈레반의 공격을 받았다. 탈레반은 15인분의 음식을 만들라고 강요했다. 여성이 “저희는 가난하다”고 하자 탈레반은 그를 AK-47 소총으로 구타해 살해하고 집에 수류탄을 던졌다. 숨진 여성은 어린 아들 셋과 딸 한 명을 둔 엄마였다. 딸은 “탈레반은 전에도 세 번이나 찾아왔고 네 번째 우리 집을 노크했을 때 엄마를 죽였다”고 말했다.
미군이 주둔하던 20년간 사회 각계에 진출했던 여성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아프간 국영TV 유명 앵커인 하디자 아민은 자신과 동료 여성 직원들이 무기한 정직을 당했다며 “탈레반은 탈레반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17일 비판했다. 탈레반은 기자회견 다음 날인 18일 아프간 국기를 앞세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해 3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시위대는 탈레반 점령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트위터에는 탈레반의 잔혹행위를 담은 영상이 잇달아 올라왔다. 탈레반이 소총과 휴대용 로켓포를 들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무릎 꿇린 뒤 위협하는 영상도 있었다. 이슬람교로 개종을 거부하는 기독교인 여성의 머리를 총으로 쏴 살해하는 영상도 올라왔다. 영상 속 장면이 벌어진 시점이 탈레반의 카불 점령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8일 AP통신에 따르면 아프간 중부 바미안주에서는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탈레반에 의해 파괴됐다. 마자리는 1990년대 탈레반과 대립했던 인물이다.](동아일보 2021년 8월 19일자에서 발췌)
이와 같은 살벌한 현실 앞에서 “하나가 되는 기적”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이 같은 처절한 현실을 내다보시기라도 하신 듯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들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말세에는 이렇듯 사랑이 식어지고 오직 악한 인간 자아만이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처럼 마지막 때의 개인주의를 앞에 두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우리 예수님의 기도를 중심으로 “하나 되는 일”에 관한 진리를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하나 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예수님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도록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따뜻한 가슴으로 하나 되는 기적을 이루어 가시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하나 됨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0:37-39)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요14:10-11)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을 훈련하시던 중 참으로 한심한 모습을 목도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누가 더 큰가 하는 다툼과, 아무로 몰래 야고보와 요한이 찾아와서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앉혀달라는 청탁이었습니다.
(눅9:46-48)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막10:35-3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이것을 알고 분노하며 일어났습니다.
(막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러니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자신은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자신의 모든 사명을 대신 감당해야 할 제자들이 마음을 합해도 감당할까 말까인데 이렇게도 서로 다투고 분내고 분열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고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처럼 안타까운 제자들을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이 조용하면서도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막10:42-45)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이렇게 자신을 낮추며 하나가 되는 기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장 작은 가정에서조차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결국 Selfish(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아프카니스탄이 저렇게 될 줄을 미국이 몰랐겠습니까? 하지만 바이든과 미국 정부는 미국에 유익이 더 이상 안 된다고 판단하고 그들이야 죽던지 말든지 철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렇게도 탈레반이 비인권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백성들을 학대하고 죽이고 있는데도 중국이 그들의 손을 들어주며 “잘 한다”고 치켜세우고 있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얻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희토류라고 하는 첨단기술 즉 반도체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물질이 바로 아프카니스탄에서 대량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국제사회나 우리 개인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단편적인 이기주의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비록 십자가에서 죽을지언정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선포하시니 과연 오늘 우리들의 구세주요 우리들이 믿고 따를 참 생명과 진리의 주인공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주님께서 친히 우리들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 위해 죽음도 마다 않으시고 희생하시며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뜻을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길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가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나가 되시어 오늘 우리들을 섭리하시는 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요15:4-8)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14:10-11)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죽지 않고 사는 길임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비단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험악한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간관계 또한 이처럼 하나가 되어야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름에 캠핑을 가서 우리는 캠파이어를 합니다. 캠파이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작들이 서로 얽혀서 잘 타도록 불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작더미를 여러 겹 쌓아서 불을 붙이면 장작들이 서로 얽혀서 잘 타지만 장작 하나만 놓고 불을 붙이면 절대로 불이 붙지를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제아무리 힘들고 환난이 넘쳐나도 서로 하나가 되어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면 헤쳐나기지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무와 가지처럼 서로 떨어지지 말고 하나로 연합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 연합하고 하나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겸손입니다. 자신의 잘난 것도,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욕심도, 고집도, 유익도 다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서로 어우러질 수가 있고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려놓으셨던 것입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자리도 다 내려놓으시고 그 저주의 십자가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렇듯 목숨까지도 다 내 놓으셨던 것입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나무와 가지를 비유하시면서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생명을 유지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결국 하나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15:9-12)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하나 되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신 것 또한 그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일하게 주님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요구하십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안에 머물렀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안에 머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예수님의 기쁨이 오늘 우리들 속에 가득하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 본드이기 때문입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엡5:31-32)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은 이처럼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비밀을 말씀해 주셨고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비밀이 크도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가 있습니까? 그 비밀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진정한 사랑보다는 오히려 조건을 더 살피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비록 사랑으로 출발하였을지라도 결국 자신에게 유익이 없으면 가차 없이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 주변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지속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과 같이 겸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하는 방법은 자신의 유익과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하나 되는 유일한 길이요 방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됨의 결과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요15:7-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눅15:18-24)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는 말씀이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기입니까? 아들이 집을 나가 둘이 되었던 것이 집으로 돌아옴으로 하나가 되는 기쁜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쉽게 말하면 하나가 되는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가 되기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축복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위에 언급해 드린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 가장 단순한 모델이 우리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의 자리도 내어놓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복종하셨더니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다시 살려내시고 만유 위해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만 세상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희생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되기 위해 힘쓰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겠다.”(요15:11)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약속과 축복이 아니더라도 하나 되는 기쁨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말예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가 되는 부부는 비록 싸우고 다투더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곧 다시 회복이 되어 행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가 된 부부만이 누리는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가 되면 이렇게도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비전프로젝트를 출발하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100Million짜리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들의 꿈나무들을 키워내고 평생 고생만 하신 어르신들을 섬기며 온 세상에 선교사님을 파송하고 서로 사랑하며 복을 누리는데 이 프로젝트가 큰일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힘든 세상에서 지치고 낙심 될 때도 많이 있지만 서로 사랑하고 돌아보며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하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